3D로 스캔하는 복합기, 약 만드는 프린터가 있다? HP의 ‘마당발’ 행보
IT시장의 중심이 북미 및 유럽에서 아시아-태평양(이하 아태)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낌새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특히 한국 및 중국, 그리고 일본 등을 중심으로 한 아태 시장은 인구 및 구매력, 그리고 성장 가능선 면에서 세계 정상급으로 인식되고 있다.
프린터 및 복합기 시장의 글로벌 강자인 HP가 2011년의 사업 전략 및 주요 신제품을 소개하는 ‘HP Innovation for Impact’ 행사를 처음으로 중국에서 개최한 것이 좋은 예일 것이다. 9월 8일, 중국 상하이에서 HP가 개최한 이 행사에 IT동아가 직접 찾아갔다.
상하이에서 찍고, 서울에서 뽑는다
이날 발표는 HP의 이미징 프린트 그룹 부사장인 비요메쉬 조쉬(Vyomesh Joshi)씨가 담당했다. 조쉬 부사장은 본격적인 발표에 앞선 기조 연설에서 “최근 아날로그 미디어를 디지털화 하는 것이 대세이긴 하지만, 디지털화된 미디어를 다시 아날로그 형태로 되돌리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말하며,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HP가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최근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태블릿 컴퓨터 등의 각종 모바일 기기가 보급되면서 시간과 장소에 관계 없이 결과물을 출력할 수 있는 기술이 주목 받고 있으며, 여기에 HP가 제공하고 있는 이프린트(ePrint) 기술이 최적의 솔루션이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프린트 기술은 모바일 기기에 관련 어플을 설치, 이를 이용해 사진이나 문서를 네트워크를 통해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프린터로 전송, 출력하는 기술이다. HP 프린터나 복합기 중에서 웹 접속 기능이 있는 제품이면 대부분 이프린트 기술을 지원한다. 특히 조쉬 부사장은 현재 판매되는 HP 제품 중 웹 접속 기능이 있는 모델 가격이 79달러까지 떨어졌기에 이프린트의 대중화는 급속히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쉬 부사장은 이프린트 기능을 통해 아침마다 조간 신문이 프린터에서 자동 출력되는 기능을 이용하고 있으며, 출장 중에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집에 있는 프린터로 곧장 전송, 출력하여 가족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며 이프린트의 유용성을 재차 강조했다.
3D로 스캔하는 복합기 - ‘HP 탑샷’
기조 연설 이후에는 신제품 소개가 이어졌다. 이날 공개된 제품 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HP 탑샷 M275(TopShot LaserJet Pro M275)’ 잉크젯 복합기 제품이다. 이 제품은 종이 문서 외에도 각종 다양한 물체를 입체적(3D)으로 스캔할 수 있는 기능을 갖췄다.
이를 이용, 한 번의 3D 스캔으로 다각도에서 물체를 찍은 후 이 중 최적의 영상을 골라 출력한다. 이는 다양한 느낌의 고품질 제품 이미지가 많이 필요한 쇼핑몰 등에서 특히 최적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복합기와 인테리어 소품의 경계에서 - ‘HP 엔비’
다음으로 주목 받은 제품은 기능뿐 아니라 인테리어 효과, 그리고 공간 활용성까지 강조한 ‘HP 엔비(ENVY) 110’ 잉크젯 복합기다. 작년에 출시된 2010년형 엔비 복합기는 마치 고급 AV기기를 연상시키는 디자인, 그리고 기존 복합기의 절반 정도 크기의 컴팩트함으로 화제가 되었는데, 이는 이날 공개된 2011년형은 그러한 특성이 더욱 강화됐다.
엔비 복합기는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등의 애플 제품과 잘 어울리며, 실제로 애플 제품 애호가들에게 특히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고 HP의 관계자들은 밝혔다.
이젠 프린터 기술로 약도 만드는 시대?
이날 발표 내용 중에서 한가지 특이한 것은 프린터 업체인 HP가 의학 분야에 진출했다는 소식이다. 정확히는 신약 개발에 쓰이는 기기를 발표했다는 것. HP가 개발한 디지털 제약 적정 분사 시스템은 잉크젯 프린터에 쓰이는 잉크 분사 기술을 제약에 응용, 신약 개발 시 사용되는 각종 약물을 정확한 분량만큼 섬세하게 분사해 약품 합성에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날 행사에는 실제로 이 시스템을 이용해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는 시가(SIGA)사의 사례가 소개되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 외에도 최소형의 컬러 복합기인 HP 레이저젯 프로 100 컬러 M175nw, 대기업을 위한 컬러 레이저 프린터 HP 레이저젯 엔터프라이즈500 컬러 M551 시리즈, 그리고 사용이 간편하고 경제성이 높은 중소기업용 흑백 프린터인 HP 레이저젯 엔터프라이즈 600 M601, M602, M603 시리즈 등이 함께 공개됐다.
기자의 눈으로 본 행사
이날 행사는 세계 각국에서 초청된 700여명의 취재진이 모여 성황을 이뤘다. 글로벌 프린터 기업의 위상에 어울리는 면모라고 할 수 있다. 행사 진행은 신제품의 기능과 특징을 소개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는데, 그 어떤 제품을 소개하더라도 꼭 빼 놓지 않는 내용이 있었으니 바로 ‘이프린트’와 ‘친환경’이다.
프린터라면 대개 PC와 연결해 쓰는 주변기기라는 인상이 강하지만, 이날 HP의 발표만 봐서는 마치 스마트폰 및 태블릿 컴퓨터야말로 프린터와 찰떡궁합을 이루는 기기라고 인식될 정도였다. 그만큼 HP가 이프린트 기술의 개발과 홍보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그리고 ‘친환경’의 경우, 소비자들이 단지 자연 환경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으로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지는 않는다는 현실을 잘 파악했는지, ‘친환경 = 경제성’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 많은 설명을 덧붙였다. 특히 HP의 정품 잉크 및 토너가 얼마나 경제적인지에 대한 설명이 여러 번 이어졌으며, 이프린트 기능을 쓰기 위해는 프린터의 전원을 항상 켜두어야 하므로 HP 프린팅 제품의 대기 전력이 업계 최소 수준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이프린트 기술이 널리 퍼지고 HP 제품의 친환경성(경제성)이 대중들에게 입증된다면, HP는 타사 제품이 프린터/복합기 시장에 끼어들 여지를 완전히 봉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시점에서도 HP가 이미 이 시장의 최대 강자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위와 같은 시나리오의 성공 가능성이 다분히 높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다른 업체들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을 터, 앞으로 프린터 시장의 생존경쟁은 한층 격화될 것이다.
글 / IT동아 [중국 상해]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