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진화하는 '바보 상자' - 텔레비전(Television)
텔레비전(Television)은 전기 신호가 닿는 곳이면 어디서나 영상을 볼 수 있는 기기를 뜻하며, 흔히들 ‘TV’라고 줄여 부르곤 한다. 텔레비전이란 이름은 그리스어로 ‘멀리’를 뜻하는 ‘tele’와 라틴어로 ‘본다’를 뜻하는 ‘vision’이 합쳐진 단어다. 지금은 인간 문명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해졌지만, 20세기 초 까지만 하더라도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마법 같은 물건이 바로 텔레비전이다. 참고로 흔히 말하는 ‘테레비’는 텔레비전의 일본식 발음(テレビ)에서 나온 것이므로 한글 표준어가 아니다.
텔레비전이 개발되기까지 정말로 많은 학자들 및 기업들의 노력이 있었다. 기기의 특성 상 여러 가지 복합 적인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영상을 촬영하여 전기 신호로 바꾸는 기술은 물론, 이러한 신호를 멀리까지 전달하는 기술, 그리고 이를 영상으로 표시하는 기술 등을 개발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을 조합해 하나의 기기로 만드는 일 역시 쉽지 않았다.
원판 회전으로 화면을 표시하는 기계식 텔레비전
1843년, 스코틀랜드의 기술자인 알렉산더 베인(Alexander Bain)이 영상을 전기 신호로 바꾸어 전송하는 기술을 발표했다. 이 기술은 후에 팩스 개발의 뿌리가 되었는데, 이뿐 아니라 텔레비전의 개발에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만 전기 신호를 전달할 수는 있어도 이를 다시 영상으로 변환해 볼 수 있게 하며, 더욱이 정지된 영상이 아닌 움직이는 영상을 표현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던 1884년, 독일의 발명가인 폴 닙코(Paul Nipkow)는 전기 신호를 움직이는 영상으로 변환해 표시할 수 있는 기계 장치인 주사판(scanning disk), 일명 닙코 디스크(Nipkow disk)를 발표하여 화제를 불렀다. 이 장치는 소용돌이 모양으로 구멍이 뚫린 금속 디스크를 회전시키며 작동하는데, 이 원판에 전기 신호에 따라 밝기가 달라지는 빛을 발사하여 이 빛이 구멍을 통과하면 움직이는 영상이 반대쪽에 표시되는 원리였다. 그리고 이를 역으로 이용하면 움직이는 영상을 전기 신호로 바꾸는 것도 가능했다.
닙코가 발명한 주사판은 이후 기계식 텔레비전의 개발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1925년에 스코틀랜드의 존 로지 베어드(John Logie Baird)는 개량된 주사판을 이용해 촬상(撮像: 빛을 전기 신호로 변환)과 수상(受像: 화면을 표시함)을 동시에 하는 세계 최초의 기계식 텔레비전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1929년에 영국의 BBC에서 기계식 텔레비전을 위한 시험 방송을 시작함으로써 본격적인 텔레비전의 시대가 열린다. 다만, 기계식 텔레비전은 시청 중에 끊임 없이 주사판을 돌려야 하며, 화질을 높이는데도 한계가 있어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다.
전자식 텔레비전의 본격적인 등장
주사판 없이도 움직이는 영상을 표시할 수 있는 전자식 텔레비전의 개발은 1897년, 독일의 물리학자인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Karl Ferdinand Braun)이 음극선관(CRT: Cathode Ray Tube), 통칭 ‘브라운관’을 개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브라운관은 전자총에서 음극 전자를 발사해 형광물질이 칠해진 유리면을 때리면 빛이 나는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닙코의 주사판과 달리 움직이는 부품이 없는데다 한층 높은 화질의 화면을 구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1926년, 일본의 공학자인 타카야나기 켄지로가 브라운관을 이용한 최초의 텔레비전을 발표했다. 다만 이 텔레비전은 화면의 표시가 전자식이었지만, 촬상 과정은 여전히 기계식 주사판을 이용했기 때문에 완벽한 전자식 텔레비전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완전한 전자식 텔레비전의 최초 발명자로 인정 받고 있는 것은 미국의 필로 판즈워스(Philo Taylor Farnsworth)다. 판즈워스는 1927년, 촬상과 수상 과정이 모두 전자식으로 이루어지는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발표해 대중들에게 공개했다. 판즈워스의 이 텔레비전은 이후 등장하는 모든 텔레비전의 기초가 되었으며, 1936년에 영국의 BBC에서 전자식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하면서 기존의 기계식 텔레비전은 급속히 사라지게 되었다.
칙칙한 흑백에서 화사한 컬러로
초기의 텔레비전은 흑백 화면밖에 표시하지 못했고 화질도 매우 조악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총 천연색을 표현할 수 있고 화질도 향상된 컬러 텔레비전이 등장했다. 컬러 텔레비전 역시 처음에는 기계식이었는데, 최초의 기계식 텔레비전을 발명한 바 있는 존 로지 베어드가 1928년에 기계식 컬러 텔레비전의 방송 송출 실험에 성공했다. 그리고 1953년에 미국 RCA사에서 컬러 브라운관을 실용화하고 이듬해부터 출시에 들어갔으며, 같은 시기에 미국 NBC와 CBS가 전자식 컬러 텔레비전용 방송을 시작하여 전자식 컬러 텔레비전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등장하게 되었다.
한편, 우리나라에는 1956년에 미국 RCA사가 출자하여 설립한 HLKZ-TV 방송사가 최초로 흑백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했으며, 1966년에는 금성사(현재의 LG전자)에서 최초로 국산 텔레비전을 내놓았다. 그리고 1980년부터 한국방송공사(KBS)와 문화방송(MBC)에서 일부 컬러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하였는데, 모든 방송 프로그램이 컬러로 송출되기 시작한 것은 1984년부터다.
‘배불뚝이’ 브라운관을 밀어낸 ‘평판 디스플레이’
브라운관은 1897년에 첫 개발된 이후 한 세기 이상 동안 텔레비전의 대표적인 화면 표시장치로 쓰였다. 하지만 화질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으며, 특히 화면 크기가 커질수록 앞뒤로 차지하는 공간도 기하 급수적으로 불어난다. 그래서 1990년대 후반 및 2000년대 초반부터는 벽걸이로 장착할 수 있을 정도로 두께가 얇은 평판 디스플레이(flat-panel display) 방식의 텔레비전이 브라운관 방식의 텔레비전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에 주로 사용되는 평판 디스플레이는 LCD(Liquid Crystal Display)와 PDP(Plasma Display Panel) 방식이 대표적이다. LCD는 전기 신호에 따라 다른 빛을 반사시키는 액정(液晶) 입자를 조밀하게 배치한 패널로 화면을 구성하는데, 패널 뒤쪽의 백라이트(back light: 후방 조명)에서 발사되는 빛이 액정 입자를 통과하면서 화면을 빛나게 하는 방식이다.
한편 PDP는 얇은 유리 사이에 가스를 채워 넣은 튜브로 구성된다. 이 튜브에 전압을 가하면 플라즈마(기체방전) 상태가 된 가스가 빛을 발하는데, 이를 이용해 화면을 출력한다. LCD는 소비 전력과 발열, 선명도 등에서 유리하며, PDP는 시야각이나 잔상, 색감 면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다. 하지만 ‘날씬한’ 평판 텔레비전을 만드는데 적합하다는 점에서 양쪽은 유사하게 취급 받고 있다.
2011년 현재, TV시장에서 브라운관 방식의 제품은 거의 사라졌으며 그 자리를 LCD와 PDP 방식의 제품이 채우고 있다. 그 외에 ‘LED TV’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평판 텔레비전도 있으나 이는 사실 기존의 LCD에서 백라이트만 개선한 것이라 완전히 새로운 제품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리고 LCD와 PDP보다 화질을 향상시킨 OLED(Organic Light Emitting Diode: 유기 발광 다이오드) 방식의 평판 텔레비전도 서서히 시장에 진입하는 중이다.
텔레비전의 디지털화와 HD화
21세기에 들어 전자기기 전반의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텔레비전 역시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디지털 방식 텔레비전 최대의 장점은 화질인데, 기존의 아날로그 텔레비전보다 5배 이상 정밀한 HD급(High-Definition. 1280 x 720, 1920 x 1080 해상도)의 화면을 구현할 수 있다. 그리고 화질뿐 아니라 음향 역시 한층 발전, 홈시어터 장비를 이용한다면 5.1채널의 입체음향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디지털 방송은 기존의 아날로그 방송에 비해 많은 신호를 전달할 수 있다. 따라서 같은 대역폭(데이터가 전달되는 통로)에서 아날로그 방송보다 훨씬 많은 채널 수를 제공할 수 있으며 단순한 실시간 방송 시청 외에 쌍방향 데이터 방송, 주문형 비디오(VOD: Video On Demand), 프로그램 가이드 등의 다양한 서비스가 가능하다.
미국은 2009년 9월부터 아날로그 텔레비전 방송을 중단하고 디지털로 전환했으며, 우리나라는 2012년 12월 이후부터 완전한 디지털 전환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따라서 기존의 아날로그 텔레비전에서 디지털 방송을 보려면 별도의 수신기(셋탑박스, STB)를 추가해야 한다.
3D TV와 스마트 TV로 진화하는 현대의 텔레비전
텔레비전에 디지털 기술이 더해지고 화질도 HD급으로 향상된 이후, 3D 입체영상을 볼 수 있는 ‘3D TV’ 가 등장해 보급을 본격화 하고 있다. 3D TV는 시청자의 양쪽 눈에 각각 다른 각도에서 촬영된 영상을 전달하여 입체감 있는 화면을 볼 수 있다. 2011년 현재의 3D TV는 전용 안경을 착용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지만 조만간 안경이 필요 없는 3D TV도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인터넷 접속 기능을 기본으로 갖추고 PC 및 스마트폰과 유사한 기능을 제공하는 ‘스마트 TV’도 인기를 끌고 있다. 스마트 TV는 각종 응용프로그램의 설치 및 활용이 가능하며,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UCC 감상, 정보 검색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텔레비전은 최초의 원천 기술이 개발된 이후 두 세기 동안, 단순한 방송 시청을 넘어 디지털 종합 멀티미디어 기기로 진화하고 있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