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자다!" 터프한 로봇청소기 아이로봇 룸바 551
딱히 고리타분한 가부장적 관습을 운운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대부분의 가사 활동은 여성이 담당해왔고, 이에 따라 생활가전 분야에서는 다분히 여성 취향에 맞춘 제품이 많이 나왔다는 걸 말하고 싶을 뿐이다. 꽃과 나비를 새겨 넣은 양문형 냉장고, 여성스러운 느낌을 주는 붉은색 계통의 세탁기, 곡선미를 강조한 압력밥솥 등 무생물에 성별이 있다면 생활가전들은 아마 여성일 것이다.
금까지의 로봇청소기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화려한 색상과 유려한 디자인, 꼼꼼하고 조곤조곤한 청소 스타일은 전형적인 과거 여성상과 빼닮았다. 공상과학 영화에 등장하는 가정부 로봇도 아저씨보다는 아줌마에 더 가까운 것을 생각해보면, 아직까지 청소는 여성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이 박혀있나 보다.
하지만 군대를 갔다 온 남성이라면 잘 알 것이다. 요리나 빨래는 못하더라도, ‘내가 마음만 먹으면 여성보다는’ 청소를 더 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얼굴이 비치도록 반짝반짝 빛이 나는 내무반 마루바닥이라던지, 한 점의 곰팡이도 서식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세면장 타일은 남성만의 전유물 아닐까. 실제로 가사분담을 하는 가정의 경우 청소는 대부분 남성의 몫이 된다.
아무렴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생활가전 전부를 여성 취향에 맞추는 불합리한 상황을 용납할 수 있겠는가. 남성이 청소를 담당한다면, 적어도 로봇청소기 정도는 남성 취향의 제품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명품 무늬가 새겨져 있지 않아도 좋으니, 거침 없이 밀고 나가는 ‘마초적’ 청소 성능을 갖춘 제품이면 좋겠다.
아이로봇의 ‘룸바 551’이 딱 그랬다. 디자인부터 성능까지, “하! 이 놈 남자네!”라는 생각을계속해서 하게 하는 로봇청소기다. 남성을 위한, 남성을 닮은 독특한 로봇청소기 룸바 551을 살펴보도록 하자.
리모콘? 물걸레? 그런 거 안 키운다
룸바 551의 별명은 ‘룸바 블랙’이다. 551이라는 숫자보다는 제품 색상으로 부르는 것이 홍보하기에 더 편리하기 때문인데, 이 때문에 자칫 고급 제품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보통 ‘블랙’이라는 이름은 기존 라인업보다 한 단계 수준이 높은 제품을 칭할 때 쓰는 게 관행이기 때문이다. 주류 이름에 따라 붙는 ‘블랙 라벨’이나, ‘X라면 블랙’ 등의 고급 제품이 그 예다.
하지만 룸바 551은 고급과는 거리가 멀다. 그 흔한 하이그로시 재질의 ‘피아노 블랙’도 아니고 그냥 블랙이다. UV 코팅된 블랙 패널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게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 리뷰어의 눈에는 치장따위 신경 쓰지 않는, 평범한 검정색으로 도배가 된 로봇청소기가 보일 뿐이다. 사실 가격도 ‘룸바 627’에 비해 낮은 편이다(2011년 6월 공식 홈페이지 기준 룸바 627은 718,400원, 룸바 551은 615,600원). 꼭 필요하지 않은 기능은 과감하게 제거한 실속형 로봇청소기라고 할 수 있다.
‘군더더기’리모콘이 없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룸바551에는 요새 내로라하는 로봇청소기의 필수 옵션인 리모콘이 없다. 청소를 시작할 땐 직접 로봇청소기에 다가가 버튼을 눌러야 하고, 청소가 완료되면 다시 직접 버튼을 눌러 충전기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 아니면 완전 방전될 때까지 방치하거나.
언뜻 불편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로봇청소기는 수시로 채널을 바꿔야 하는 TV와는 다르다. 보통 청소를 시켜 놓고 외출을 하기 때문에, 실제로 조작을 자주 바꾸는 일은 많이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간수해야 하는 리모콘이 늘어나서 귀찮아질 뿐이다. 더욱이 세탁기에 양말을 온전히 넣었음에도 꺼낼 때는 한 짝을 잃어버리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남성들이라면 금세 리모콘을 분실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로봇청소기 충전기 옆에 두자니, 그 리모콘 줍는 시간에 그냥 로봇청소기의 버튼을 누르겠다. 즉 있으면 편리할 때가 있겠지만 없어도 큰 문제가 없는 물건이다. 이 때문인지 시중의 로봇청소기 리모콘들은 대부분 조잡하다.
물걸레 기능도 마찬가지로 없다. 물걸레 전용 로봇청소기를 제외하고, 시중의 로봇청소기에 달린 물걸레 기능은 “대체 이걸 누가 쓰지?” 싶을 정도로 유명무실하다. 손바닥만한 수건을 질질 끌고 다니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걸레 한 장으로 바닥을 다 닦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제대로 닦고 있는지도 심히 의심이 간다. 하물며 평소 청소솔로 화장실 타일을 빡빡 문질러야 직성이 풀리는 남성들에게는 있으나 마나한 기능이다. 쓰지 않을 바에는 차라리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아서 챙겨야 할 부품을 하나라도 줄이는게 더 남자답다.
특이한 것은 손잡이도 없다는 점이다. 원래 아이로봇의 룸바 시리즈에는 상단에 손잡이가 달려 있어 여성도 쉽게 들고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룸바 551은 손잡이 따위 ‘안키운다’. 그냥 두 손으로 들고 나르라는 뜻일까. 사실 일반적인 남성 이라면 귀찮게 손잡이를 끄집어 내느니 그냥 손으로 들고 나를 법도 하다. 하지만 어지간해서는 손잡이 정도는 만들어줘도 좋았을텐데, 참 일관성있게 남자다운 로봇청소기가 아닐 수 없다.
먼지를 쓸어담는 사이드 브러쉬도하나 뿐인데, 이는 룸바 시리즈 전체가 가진 공통적인 특징이다. 사이드 브러쉬가 양쪽에 하나씩 있다면 청소 동선이 짧아지긴 하겠지만, 사실 로봇청소기가 갖춰야 할 첫 번째 미덕은 짧은 청소 시간보다는 우수한 청소 성능이다. 룸바 551은 같은 곳을 여러 번 반복해서 청소하기 때문에 굳이 사이드 브러쉬가 여러 개 있을 필요가 없다.
다른 로봇청소기보다 많은 것이 있다면 아마 언어일 것이다. 룸바 551은 한국어를 포함해 총 16개국 언어를 내장하고 있다. 문제 발생 시 선택한 언어로 원인을 말해주니 해결이 수월하다. 외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학용(?)으로 활용한다고 해도 말리지는 않겠다.
충돌은 두렵지 않아, 난 터프가이니까
이번엔 청소 성능을 시험할 차례다. 아이로봇 룸바시리즈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로봇청소기 중 하나고, 그 성능 역시 많은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아 왔다. 이 룸바 551 역시 상당히 우수한 청소 성능으로 기대에 부응했다.
룸바 551의 청소 모드는 스팟 모드(직경 1m 이내의 좁은 공간을 집중적으로 청소하는 모드), 클린 모드(청소 구역을 스스로 측정해 적절한 청소 시간을 설정한 후 청소하는 모드), 독 모드(충전기를 치운 상태에서 배터리가 완전 방전될 때까지 청소하는 모드)로 나뉜다. 아무래도 가장 일반적인 청소 형태인 클린 모드로 사용할 일이 많을 것이다.
청소를 시작하자 룸바 551이 무서운 기세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불도저를 보는 듯했다. 거침없이 질주하다가 장애물을 만나면 아무렇지 않게 충돌하는데, 그 힘이 여지껏 만나 본 로봇청소기 중 가장 셌다. 꽤 무거운 편에 속하는 의자가 충격에 흔들릴 정도였다. 슬리퍼를 비롯한 작은 장애물들은 (조금 과장을 보태) 나가 떨어지고 만다. 벽과 같은 장애물을 만나면 다른 로봇청소기들처럼 속도를 줄이는 것으로 보아 적외선 센서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전체적인 청소 스타일은 남성이 힘을 주어 청소하는 모습처럼 과감하고 저돌적이었다.
또 하나 놀라웠던 것은 장애물을 쉽게 타고 넘는다는 점이다. 청소를 한 장소는 IT동아 사무실로, 두꺼운 케이블과 콘센트가 널려 있어 이동이 쉽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룸바 551은 꽤 높은 장애물도 거침없이 지나다녔다. 다른 로봇청소기로 같은 곳을 청소했을 때 해당 제품이 콘센트에 걸려 에러를 일으키고 멈췄던 것을 생각하면 참 대조적이다.
다만 같은 곳을 반복해서 청소하느라 동선이 복잡해지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은 있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면 “비켜, 그냥 내가 할게!”라며 룸바 551을 밀어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원래 룸바 551의 청소 스타일이 청소를 빨리 하는 것보다 깨끗하게 청소를 하는 쪽에 가깝다. 여러 번 청소하다보니 확실히 결과는 더 좋았다. 어차피 외출시 로봇청소기를 사용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느리더라도 확실히 청소하는 게 더 낫다.
바닥 인식 기능이 약해 계단이 있는 곳에서의 청소는 주의를 요한다. 설명서에 의하면 바닥 인식은 높이의 차가 10cm 이상이 되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마음놓고 룸바 551이 돌아다니게 놔뒀다간 자칫 현관과 같은 낭떠러지에서 굴러 떨어질 수 있다. 이때는 번거롭더라도 제품 구성에 포함돼 있는 자동가상벽 센서를 설치해야 한다. 자동가상벽 센서는 2개가 제공된다.
먼지통은 버튼을 누르고 잡아 당기면 간단히 분리된다. 먼지통이 꽤 크고 입구가 좁은 형태라 많은 양의 먼지를 담을 수 있으면서도 분리할 때 사방으로 튀지 않는다는 점이 좋다. 다만 먼지필터가 금방 더러워지니 항균효과를 제대로 누리고 싶다면 자주 새것으로 갈아주길 권한다. 여분용 먼지필터는 2개가 추가 제공된다.
디자인과 부가 기능은 부족해도, 내가 진국이지
룸바 551은 투박한 디자인에 부가 기능도 다소 부실하다. 남성으로 치면 ‘꽃미남’이나 ‘엄친아’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청소 하나만은 진득하게 잘 해낸다. 다소 시간이 걸리기는 해도 꼼꼼하고 힘 있게 먼지를 쓸어담는다. 청소 자체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면 만족할만한 제품이다.
가격도 합리적이고 성능도 우수하지만 아쉽게도 배터리는 리튬이온이 아닌 니켈수소다. 따라서 메모리 효과(완전히 방전하지 않고 다시 충전했을 때 다음부터 전체 용량을 사용하지 못하는 현상)가 일어날 수 있다. 완전히 방전할 때까지 청소하는 모드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짐작된다. 오래 제품을 사용하고 싶다면 배터리 충전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글 /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