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 못 사용하는 최고급 그래픽카드 - AMD 라데온 HD 6990
컴퓨터 사양에 목숨을 거는 일부 마니아급 사용자들은 언제나 최신 기술이 집약된 초고사양의 제품을 쓰고 싶어 한다. 따라서 성능만 높일 수 있다면 들어가는 비용은 물론이거니와 전기세가 얼마나 나오든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그들이기도 하다. 컴퓨터 성능은 그들에게 곧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10년전 가정에서 보급형 컴퓨터를 구매하려면 보통 200만 원 정도를 지출해야 했다. 하지만 현재는 50만 원대면 웬만한 수준의 보급형 컴퓨터를 구매할 수 있다. 제조 기술이 발달하고 부품 단가가 낮아짐에 따라 적은 비용으로도 만족스러운 성능을 발휘하는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초고사양 PC를 위한 각종 제품들은 일반 사용자에게 여전히 먼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컴퓨터 매니아들을 위한 고급 제품들은 온갖 최신 기술과 성능, 사용자 편의 기능 등이 집적됨에 따라 만만치 않은 비용이 필요하다. 이를 테면, 100만 원이 넘는 CPU와 그래픽카드, 수십 만 원을 호가하는 메인보드와 컴퓨터 케이스 등이 그 주인공이다. '최고를 위한, 최고의 가격'이라는 문구가 이들 제품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이다.
이번에 살펴 볼 AMD 라데온 HD 6990 그래픽카드는 AMD에서 위와 같은 컴퓨터 마니아를 위해 만들어진 2011년 '신상' 최고급 그래픽카드로서, 지금까지 AMD에서 출시된 그 어느 그래픽카드보다 월등한 사양과 성능을 자랑하는, 그야말로 '최종보스'의 모습을 보여주는 제품이다.
막강 성능을 위한 공식 - '2X2=4'
3.0GHz, 4.0GHz 등으로 표기되는 동작속도(클럭, Clock)의 발전에 한계를 느낀 그래픽카드 제조사들은, 하나의 그래픽 칩셋에 두 개 이상의 코어(Core)를 넣어 그래픽 데이터 처리 성능을 향상시킨 멀티코어(Multi-Core) 기술을 개발했다.
멀티코어(Multi-Core)란 같은 크기의 칩셋에 두 개 이상의 처리 부품(코어, core)을 내장해서 칩셋 하나로 두 배 이상 성능을 향상시키는 최신 기술의 집약체이다.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는 기술이다.
컴퓨터 CPU(Central Processing Unit)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듀얼코어(코어 2개) 제품이 시판되었고, 최근에는 스마트폰, 태블릿 제품 등에도 듀얼코어 CPU가 장착되어 사용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래픽카드 또한 이러한 멀티코어 기술을 이용해서 그래픽 품질이나 성능을 높일 수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방법은 동일한 컴퓨터에 그래픽카드를 두 개 이상 장착하는 것이다. AMD의 크로스파이어X(CrossFire X) 기술, 엔비디아의 SLI 모드 기술이 이에 해당된다.
하지만 최고의 성능을 바라는 매니아에게 이 기술마저도 부족하게 느껴진다. 흔히 컴퓨터 매니아들이 사용하는 메인보드는 그래픽카드용 슬롯이 두 개뿐이라 그 이상은 장착할 수 없다. 이런 경우 그래픽카드 하나에 두 개의 코어가 내장되어 있다면, 그리고 이러한 그래픽카드를 두 개 장착하여 사용한다면 결국 4개의 그래픽카드를 장착한 것과 유사한 성능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AMD 라데온 HD 6990 그래픽카드는 이렇듯 그래픽 코어를 두 개 장착한 듀얼 GPU(그래픽처리장치, Graphics Processing Unit) 그래픽카드로서, HD6990 하나만으로도 이미 최고의 성능을 발휘하지만, 이를 하나 더 장착한다면 컴퓨터 한 대에 무려 4개의 그래픽카드를 장착한 셈이 된다. 그래픽 성능이야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우주 최강'이다.
작년부터 수많은 그래픽카드가 출시되었지만, 2010년 초에 출시된 듀얼 GPU 기반 그래픽카드인 HD 5970를 뛰어넘는 제품이 거의 없었다. HD 6990은 이런 HD 5970의 계보를 잇는 제품으로, 강화된 성능, 줄어든 소비전력, 발열 및 소음 감소 등의 장점을 내세우며 2011년 4월 기준, 명실공히 '세계 최고 성능의 그래픽카드'라는 타이틀을 달게 됐다(단일 그래픽카드 기준). 물론 AMD도 그러한 최고급 그래픽카드를 개발, 생산하는 브랜드로 인식됐다.
HD 6990은 AMD 그래픽카드 제품 중 단일 GPU 그래픽카드인 HD 6970 두 개를 하나로 집약한 제품이다. 비디오 메모리 또한 HD 6970의 2GB의 두 배인 4GB에 달하여, 초고해상도에서의 게임이나 여러 대의 모니터를 한 화면으로 연결하는 'AMD 아이피니티' 기능 구현 시 진가를 발휘한다.
또한 사진에 보이는 작은 스위치로 이중 바이오스(BIOS, Basic Input Output System. 각 하드웨어의 기초 설정을 주관하는 내장 프로그램)를 설정할 수 있다.
HD 6990의 이중 바이오스는 과도한 전력 공급이나 시스템 에러로 인한 바이오스 손상위험도 줄여줄 뿐만 아니라, 자체적인 오버클러킹(Over Clocking)을 지원한다. 기본적으로는 830MHz의 속도로 동작하지만, 바이오스 스위치를 2번으로 설정하면 약 50MHz가 올라간 880MHz의 속도로 동작한다. 당연히 성능은 그만큼 향상된다. 하지만 성능이 향상되는 만큼 소비 전압 또한 1.12V에서 1.175V로 상승한다.이에 따라 전반적인 소비 전력이 기본 375W(와트)에서 450W로 급격하게 올라가고, 발열과 소음이 심해지는 점은 사용자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앞서 말했듯, HD 6990은 일반 그래픽카드에 비해 전력소모가 굉장히 높다. 따라서 일반 컴퓨터에 사용되는 300~400W의 전원공급기(파워서플라이)로는 제품 장착 후 부팅조차 불가능하다.
또한 2개의 그래픽카드를 최대한 집약했다고 하더라도 제품 크기는 실로 거대한 수준이다. 일반적인 그래픽카드가 대략 15~20cm임에 비해 HD 6990은 30cm를 넘기 때문에, 컴퓨터 케이스가 큼직하지 않거나 내부 공간이 협소하면 그래픽카드 장착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발열과 소음 측면에 있어서도, 3D 게임 등을 실행하면 게임에 몰입하지 않는 한 거센 팬 회전 소리가 귀를 자극한다. 팬 회전 속도를 최대로 설정하면 마치 선풍기를 틀어놓는 듯한 소음이 방전체를 가득 채운다. 또한 성능이 높은 만큼 발열 역시 심해 평균 80도를 넘나드니, 공기 순환이 원활하지 않은 케이스라면 게임도중 발열로 인해 컴퓨터가 다운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HD 6990은 가격 또한 무시 못할 수준이다. 2011년 4월 현재 인터넷 오픈마켓 기준으로 90만 원대를 형성하고 있다. 컴퓨터 본체도 아니고 그래픽카드 하나가 100만 원에 육박하니 일반 사용자로서 쉽게 인정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 할 수 있다. 따라서 HD 6990은 높은 발열과 소음, 가격 등의 패널티를 모두 감수할 수 있는, 즉 그래픽 성능 하나를 위해 그 어떠한 투자도 아끼지 않는 매니아들을 위한 제품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90만 원짜리 그래픽카드의 성능은 어느 정도?
외관과 가격으로는 우주라도 정복할 기세를 보여주는 라데온 HD 6990. 과연 실제 성능은 어느 정도일까? 얼마나 뛰어나길래 가격이 100만 원에 가까울까? 이에 여기서는 시덥지 않은 일반 온라인/패키지 게임은 제외하고, 고사양 게임이라 정평이 나 있는 게임들만 엄선, 플레이하면서 HD 6990이 뿜어내는 그래픽 화질과 성능을 눈여겨 관찰했다. 초당 프레임 출력 프로그램인 'Fraps'를 이용해 게임 플레이 시 초당 프레임을 기록했다.
최신 3D 패키지 게임인 '크라이시스2'와 '배틀필드:배틀컴퍼니2'를 실행했다. 극강의 사양을 요구하는 악명 높은 게임 중 하나다. 게임 내 설정 메뉴 중 그래픽 품질 항목에서 HD 6990을 자동으로 인식하고 알아서 '풀옵(풀옵션)'으로 설정한다. 당연할 결과다.
테스트 결과는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화려한 특수효과와 풍부한 색감 덕에 게임 플레이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어 '게임 할 맛'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다. 다만 앞서 언급한 대로, 그래픽 최고 성능을 끌어내려다 보니 발열도 제법 심하고, 그에 따라 팬 회전 소음도 요란하긴 하다. 그런데 충분히 참아줄 만하다. 시속 200km 이상 주행하는 슈퍼카를 두고 소음이 심하다고 지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다음은 그래도 대중적인 게임인 '스타크래프트2'다. 전작과 달리 3D 그래픽 효과를 대폭 주입한 비주얼한 전투 장면이 인상적인 게임이다. 따라서 사양과 성능이 어느 정도 받쳐 주지 못하면 '풀옵'으로 즐기기 어렵다.
그래픽 성능 풀옵션(아주 높음)으로도 대규모 전투 시 조금의 머뭇거림도 발생하지 않았다. 물론 여기에는 HD 6990 그래픽카드 외에 CPU나 메모리, 네트워크 대역폭 등의 영향도 없지 않지만, 그래픽카드의 성능이 낮으면 제 아무리 나머지 부품 성능이 높다 해도 만족스러운 그래픽 품질을 얻을 수 없다.
게임 외에 3D 그래픽 벤치마크 프로그램인 '3D MARK 11'을 통해 객관적인 성능 수치도 측정해 봤다. 그리고 결과를 HD 6970, HD 5970과 비교했다.
결과 그래프에서 보듯, HD 6990은 전 단계 모델은 두 제품을 압도하는 수치를 보여줬다. 참고로 2011년 4월 기준 HD 6970의 시장 가격은 약 45~50만 원대, HD 5970은 약 75~80만 원대다. 얼핏 보면 성능 수치와 가격대가 엇비슷하게 일치하는 듯하다. 50만 원대의 HD 6970은 5,000점대, 70만 원대의 HD 5970은 7,000점대, 90만 원대의 HD 6990은 9,000점대를 기록했으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HD 6990은 HD 6970, HD 5970에 비해 현격한 성능 차를 보이며 높은 성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만큼 비싼 제품이니 당연한 결과다. 발열이나 소음 부분은 세 제품 모두 비슷하였으나, HD 6990이 소비전력과 발열이 다소 높게 측정되었다. 소음계를 통해 정확하게 측정하지 못했지만, 소음 역시 다른 제품에 비해 높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사양, 고성능 제품일수록 발열과, 소음. 전력소모는 높아질 수 없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그럴 수밖에 없는지, 어느 하나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지 궁금하다. 대부분의 전자/가전기기가 그렇듯이, 성능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그 이외에 것들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강력한 성능을 발휘하지만 쾌적하고 저렴한 제품'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이들 제품의 숙명이다.
그래픽카드 시장에서 HD 6990과 같은 최상위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1% 미만이다. 그러한 성능이 필요한 사용자도 많지 않고 가격대 역시 일반 사용자가 접근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래픽카드 제조사가 이와 같은 괴물급 제품을 계속 출시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경쟁사와의 경쟁 구도에서 상징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것이다. 즉, '최고급 그래픽카드를 만들고 시장을 주도하는 브랜드는 바로 우리!'라는 인식을 업계와 사용자에게 심어주기 위함이다. 제조사에게는 제품 판매량 못지 않게 중요한 달성 과제다. 현재까지 HD 6990은 AMD의 그러한 목적에 부합되는 사양과 성능을 보여주는 프리미엄 그래픽카드다.
아울러 AMD는 최근 발표한 '게이밍 이볼브드(Gaming Evolved)' 전략을 통해 국내외 게임 제작사들과 제휴하여, 게이밍 환경을 AMD의 CPU와 그래픽카드 등을 주축으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HD 6990은 AMD의 플래그쉽(대표) 모델로서, 게이밍 이볼브드 전략의 핵심 마스코트로 활약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무나 할 수 있었다면 나는 해병대에 지원하지 않았다'는 해병대 입대자/전역자의 자부심처럼, 라데온 HD 6990 역시 아무나 사용하는 그래픽카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에 따라 이런 프리미엄 제품이 적합할 만한 사용자들은 딱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컴퓨터 사용 목적이 오직 '폭발적 성능' 하나에 맞춰져 있는 컴퓨터 마니아고, 또 하나는 경제적으로 아주 여유가 있는 사용자다. 물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서 성능에만 초점을 두는 사용자라면 두말 할 나위 없이 적극 권장이다.
그 외의 사용자라면 이런 최상위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제조사 중 하나가 'AMD'라는 사실만 기억하면 된다. AMD가 이들에게 바라는 것도 이 뿐이다.
글 / 박진우(qoozi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