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앱] “참 쉽죠?” 밥 아저씨 그림 배경화면
흰색과 푸른색 유화물감이 하얀 캔버스 위에 대충 흩뿌려진다. 그 위로 나이프가 쓱쓱 지나가더니 연이어 블렌더 브러시가 거침 없이 캔버스를 누빈다. 불과 5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하얀 설경이 일품인 알래스카 산 하나가 뚝딱뚝딱 완성되고, 아프로 머리를 한 아저씨가 ‘아빠미소’를 지으며 뒤돌아 선다.
“참 쉽죠?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That easy, you can do its).”
20대 중반 이상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바로 EBS TV에서 방영한 ‘그림을 그립시다(원제 The joy of painting)’에 등장했던 화가, 밥 로스(Bob Ross, 이하 밥 아저씨)다. 밥 아저씨가 멋진 풍경화를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30분. 먼저 칠한 물감이 다 마른 다음 덧칠하는 일반적인 유화가 아닌,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물감을 덧바르는 ‘Wet on Wet’ 기법 때문이다.
(매우 어려워 보이는데도) “참 쉽죠?”를 연발하는 밥 아저씨의 말버릇 때문에 그는 ‘사기꾼’으로 통했다. 일부는 그의 그림이 촌스럽고 화려해 ‘이발소 그림’이라고 폄하하기도 하고, 일부는 그가 알래스카 풍경화 이외에는 그릴 줄 모른다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전 세계가 사랑하는 화가 중 한 사람임은 분명하다. 그가 출연했던 방송은 미국 내 450여 개의 공영 방송국을 통해 9,350만 가정에 방영됐으며, 일본, 멕시코, 필리핀, 타이완, 홍콩, 영국, 네덜란드, 독일, 오스트리아, 캐나다 등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국에는 밥 아저씨가 별세한 다음 해인 1996년 뒤늦게 방영되어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밥 아저씨의 신작은 더 이상 만나볼 수 없지만, 과거에 그렸던 그림은 다시 감상할 수 있다. 그것도 HD급 화질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서. 바로 ‘밥 로스의 그림(Paint From Bob Ross)’ 배경화면 어플리케이션(이하 어플)이다. 밥 아저씨와 관련된 저작권을 관리하는 Bob Ross 회사와 관계 없는 중국인 개발자가 만들었다는 점이 살짝 걸리긴 하지만, 무료 어플이니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클릭, 끝! 참 쉽죠?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밥 로스의 그림 어플은 허탈할 정도로 매우 간단한 구조다. 어플을 실행하면 밥 아저씨가 그린 20개의 그림이 뜨는데, 그 중 마음에 드는 그림을 선택해서 배경화면으로 설정하면 된다. 정말 참 쉽다. 밥 아저씨의 그림은 따라 할 수 없어도 이 어플은 쉽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담은 슬라이드쇼 등 다양한 부가 기능이 담겨 있다면 더 좋겠지만, 아쉽게도 이게 전부다. 그림을 자세히 보고 싶어서 터치스크린에 손가락을 대고 확대해보려 했지만 그것조차 되지 않는다. 가로세로 화면전환도 되지 않아 스마트폰을 세운 상태에서만 제대로 그림을 볼 수 있으며, 그나마도 한 화면에 그림이 다 나오지 않아 좌우 스크롤을 해야 한다. 게다가 그림 수도 턱없이 부족한 느낌이다. 참 간단하면서도 불친절한 어플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밥 아저씨의 그림은 여전히 아름답다. 눈이 쌓인 히말라야 풍경만 잘 그리는 줄 알았더니, 색감이 다양한 풍경화들도 제법 많이 그렸나 보다. 이지러진 달무리와 검푸른 파도가 일으키는 포말이 만들어내는 쓸쓸함이 인상적인 등대 그림, 갈대와 갈매기와 마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색채감이 어우러진 황혼의 바닷가 풍경, 눈 내린 스산한 숲 속에 비치는 오두막의 노란 불빛이 적막함을 불러일으키는 설경 등 다양한 분위기의 그림이 수록돼 있다. 그림 아래쪽에 ‘ROSS’라고 쓰여진 붉은색 서명이 없다면 밥 아저씨의 그림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하겠다.
누군가의 스마트폰 배경화면에서 풍경화를 발견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미술을 전공한 사람인가? 아니면 그림을 좋아하는 고상한 취미가 있나?’ 그만큼 순수예술은 대중의 취향과 거리가 있다. 하지만 그 그림이 밥 아저씨의 작품이라는 것을 듣고 나면 이내 고개를 끄덕거릴지 모른다. 대한민국 대중이 가장 좋아하는 풍경화 작가 중 한 명인 밥 아저씨의 그림은 스마트폰 배경화면으로 사용돼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비록 그림의 깊이나 표현력은 부족할지 몰라도, 밥 아저씨는 내 마음속에서 최고의 화가다.
글 /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m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