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을 잡아라, 새로텍 플로라 크리스티앙 외장 하드디스크
밋밋한 하얀색 때문에 ‘백색가전’이라고 부르는 냉장고. 언제부터인가 같은 색, 비슷한 디자인을 고수해오던 냉장고들이 예술품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꽃의 화가’ 하상림 작가의 꽃그림이 냉장고 전면에 가득 피어나기도 하고, 디자이너 앙드레김이 만든 꽃무늬와 나비가 냉장고 하단에 아로새겨져 있기도 하다. 기술과 예술의 만남, 데카르트 마케팅(Techart Marketing)의 대표 사례다.
데카르트 마케팅은 기술(tech)과 예술(art)의 합성어다. 주로 IT나 가전제품 디자인에 유명 예술가나 디자이너의 작품을 채용해 디자인 차별화에 나서는 마케팅이다. 초기에는 여성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하는 가전 분야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프라다폰, 아르마니폰 등의 휴대폰과 노트북을 거쳐 이제는 IT 주요 제품군에서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보편적인 마케팅이 됐다.
시중에 범람하고 있는 외장 하드디스크를 보면서, 데카르트 마케팅이 적용된 제품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IT에 관심이 많은 여성 소비자를 뜻하는 ‘테크파탈(Tech fatale)’들이 외장 하드디스크를 가지고 다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얼마 전 새로텍이 출시한 ‘플로라 크리스티앙’ 외장 하드디스크가 그것이다. 이 제품에는 프랑스의 인기 작가 크리스티앙 볼츠(Christian Voltz)의 대표작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의 삽화가 그려져 있다. 이 제품에서 디자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수준이 아니다. 외장 하드디스크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성능과 가격의 비중을 넘어 섰다. 진정 ‘디자인’으로 승부하는 외장 하드디스크가 드디어 등장한 것이다.
엘 우즈도 탐낼만한 디자인
직업 특성상 수많은 IT기기를 만져보게 된다.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은 제품이 넘치다 보니 어지간히 예쁘지 않고서는 이 바닥에서 ‘예쁘다’는 소리를 듣기 힘들다. ‘괜찮네’, ‘심플하네’ 이 정도면 그나마 디자인이 상위급에 해당한다는 찬사다. 더욱이 여기자 하나 없는 ‘남자소굴’ IT동아에서 디자인으로 인정받기란 하늘에 별따기에 가깝다. 플로라 크리스티앙은 그런 치열한 심사(?)를 통과했다. 이 제품, 충분히 예쁘다.
예쁜 게 무슨 소용이냐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남성이다. 여성에게 있어 IT제품을 선택할 때 디자인은 정말 중요한 요소다. 알고 지내는 여성 중에 분홍색 ‘헬로키티’ 키보드를 고집하는 사람이 있다. 버튼마다 고양이 스티커가 붙어 있는 통에 키감이 정말 형편 없는 제품이다. 매일 키보드를 두드려야 하는 직업이면서 왜 이런 제품을 쓰냐고 물어보면 대답은 한결같다.
“예쁘잖아.”
(이해는 안 되지만) 마음에 안 드는 디자인은 어떤 이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다. 예쁜 노트북, 예쁜 마우스, 예쁜 휴대폰을 모두 가진 이들은 칙칙한 외장 하드디스크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마치 영화 ‘금발이 너무해’의 주인공 엘 우즈처럼. 영화 속에서 엘 우즈는 참 일관성 있게 핑크색 제품만을 고집한다. 핑크색 구두, 핑크색 모자, 핑크색 노트북, 핑크색 마우스, 핑크색 볼펜까지. 엘 우즈가 외장 하드디스크를 사야 한다면 첫 번째로 핑크색을 찾을 것이고, 그게 없다면 이 플로라 크리스티앙을 택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이 외장 하드디스크의 디자인은 눈에 띈다.
전면부에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에 등장하는 해적 소녀와 4명의 난쟁이가 그려져 있으며, 그 위에 프랑스어로 ‘un jour elle rencontra 7 nains(어느날, 그녀는 일곱난쟁이를 만났다)’라고 새겨져 있다. 또 후면부에는 크리스티앙 볼츠의 사인이 새겨져 있다. 마치 한정판과 같은 느낌이 나서 크리스티앙의 팬이라면 좋아할만한 요소다. 전면부와 후면부 모두 아이보리색으로 하이그로시 코팅을 했고, 모서리는 둥글게 처리했다.
전체적인 외형을 본 소감을 말하자면, 솔직히 데카르트 마케팅 치고 고급스럽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앙드레김 냉장고나 프라다폰처럼 눈을 잡아 끄는 우아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귀여운 동화 캐릭터에서 문구업체에서 판매하는 귀여운 팬시용품과 비슷한 느낌이 난다. 40대 사모님보다 10대 여중생이 더 선호할만한 디자인이라고 할까.
함께 제공되는 파우치에서도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아이보리색의 합성피혁(야구점퍼 소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위 ‘레자’ 재질)이 따뜻한 느낌을 주며, 내부는 푹신푹신하게 처리해 외장 하드디스크가 받을 수 있는 충격을 완화해준다. 일반적인 데카르트 마케팅이었다면 스웨이드나 애나멜 소재를 사용해 고급스러움을 강조했을 텐데, 동화 작가의 작품이다 보니 이렇게 일관성 있게 아기자기하게 만든 게 아닌가 싶다.
기능과 성능은 평범한 수준
인터페이스는 USB 2.0 포트, 백업 버튼, DC잭(어댑터를 연결해 전원을 공급할 수 있다), LED조명이 전부인 간단한 구조로 이루어졌다. 보통은 USB를 통해 전원을 공급받으며, 안정적인 전원 공급이 필요할 땐 케이블에 달려 있는 별도의 전원 공급용 단자를 사용하면 된다. 최근 출시되는 고성능 외장 하드디스크에는 USB 3.0을 지원하는 포트가 달려 있는데, 이 제품에는 당연하게도(?) 없다. 누누이 말하지만 애초부터 기능을 강조한 제품은 아니다.
용량은 500GB, 640GB, 750GB 3종이며, 가격은 2011년 3월 인터넷 최저가 기준 500GB가 8만원대, 750GB가 13만원대 선이다.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존 외장 하드디스크와 큰 차이가 없다.
이번엔 파일 전송속도를 점검해봤다. MP3 파일 수백 개가 담겨 있는(약 3.32GB) 폴더를 PC에서 외장 하드디스크로 옮기는데 걸린 시간은 총 3분 10초. 특별히 빠르다고도 느리다고도 볼 수 없는 평범한 성능이다.
하드디스크 파일 전송속도를 체크해주는 벤치마크 프로그램 ‘ATTO Disk’를 통해 읽기/쓰기 성능을 재확인했다. 테스트 결과, 일기 성능은 약 31MB/s, 쓰기 성능은 약 25MB/s였다. 이 역시 다른 외장 하드디스크와 현저한 차이는 없는 수준이다. 참고로 벤치마크 프로그램의 결과는 테스트 환경에 따라 오차가 있음을 감안하도록 하자.
외장 하드디스크들의 성능이 상향평준화되면서, 이렇게 성능을 테스트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특별한 기능을 강조하는 하이엔드급 제품이 아닌 이상 성능 비교는 도토리키재기에 불과하다. 플로라 크리스티앙이 디자인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이 때문이리라.
어머 저건 사야 해 vs 안사요
플로라 크리스티앙에 대한 호불호는 분명히 갈릴 것으로 보인다. 디자인을 중시하는 소비자라면, 특히 귀엽고 아기자기한 IT기기를 선호하는 소비자라면 이 제품을 본 순간 지름신을 영접할 것이다. 반면 디자인보다 성능을 우선시하는 소비자라면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고화질 이미지와 동영상을 대량 보관할 외장 하드디스크가 필요하다면 플로라 크리스티앙보다는 TB급 용량에 USB 3.0을 지원하는 하이엔드급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여러 모로 살펴봤을 때, 플로라 크리스티앙은 미드(미국드라마)나 일드(일본드라마) 같은 비교적 가벼운 동영상을 부담 없이 담기에 적합하다. 업무용이 아닌 일반적인 외장 하드디스크를 필요로 하는 테크파탈들에게 권하고 싶은 제품이다.
글 /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