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와 SKT, 그리고 HTC간의 묘한 관계
날 버리고 떠난 애인이 라이벌이라 생각하고 있는 이와 만나고 있다면 무슨 생각이 들까? 결코 상큼하지는 못할 것이다. 서로 정나미가 떨어져 합의하고 헤어졌다 해도, 하필이면 내 라이벌과의 만남이라니. 행여나 나중에 그들이 정겹게 지낸다는 소식이 들리기라도 하면, 속은 쓰리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못할 게 분명하다. 비약이 좀 심하긴 하다만, 최근 이와 유사한 일이 KT와 SKT, HTC 사이에서 벌어졌다.
지금까지 SKT를 통해 국내에 다양한 스마트폰을 출시했던 HTC가 디자이어HD를 KT로 독점 공급한다는 발표가 그것이다. 의외였다. KT가 애플 아이폰을 출시한 뒤, SKT로 안드로이드폰이 몰리던 지금의 양상에 변화가 생길 수도 있을 듯하다. 물론, 그간 KT를 통해서 출시된 안드로이드폰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다. 구글 레퍼런스폰인 넥서스원, 언제 출시되었는지도 잘 모르는 HTC 레전드 등이 있었지만, 이 제품들은 보급형 스마트폰으로 시장 구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KT를 통해 독점 출시되는 디자이어HD는 기본 사양만 봐도 갤럭시S, 아이폰4와 경쟁해도 좋을 제품이다.
KT, 드디어 안드로이드폰 라인업에 든든한 우군을 얻다
KT 입장에서는 전혀 나쁘지 않은 소식이다. 애플 아이폰으로만 편중되던 제품 라인업에 다변화를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출시했던 구글 넥서스원, HTC 레전드 등의 안드로이드폰은 영 결과가 좋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삼성전자 갤럭시S를 위시한 SKT의 안드로이드폰 진영에 맞서기에는 제품의 종류와 성능 등에서 뒤떨어진다는 평가가 많았다.
최근 출시한 삼성전자 갤럭시K와 LG전자 옵티머스원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의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한다며 홍길동폰이라 불렸던 갤럭시K나, 이동통신 3개사에서 모두 출시된 옵티머스원으로는 뭔가 좀 부족했다. 아이폰과 함께 안드로이드폰으로 확실하게 내세울 만한 카드가 부족한 지금, 디자이어HD는 정말 든든한 지원군임에 틀림없다.
KT 표현명 사장이 디자이어HD를 독점 공급하게 되었다며 “뛰어난 멀티미디어 기능을 갖춘 최신 프리미엄 스마트폰인 디자이어HD를 소비자에게 소개할 수 있게 되어 대단히 기쁘다. 이번 디자이어HD 출시를 시작으로 소비자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스마트폰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디자이어HD는 KT에게 그동안 가려웠던 곳에 잘 듣는 약과 같은 셈이다.
SKT와 헤어진 HTC, 아니 대체 왜?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KT가 HTC 디자이어HD를 출시하며 SKT보다 더 좋은 조건을 내걸었거나 둘째, SKT와의 협력 관계에 대해서 HTC가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HTC 디자이어HD가 KT로 출시되면서 얻을 이득이 SKT로 출시할 때와 비교해 썩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KT가 제품 판매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보조금이나 마케팅 홍보를 SKT보다 더 많이 해줄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보조금 및 마케팅 홍보 비용의 제한을 두었기 때문이다.
또한 KT에서 안드로이드폰을 위한 특화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이 부분은 SKT가 더 낫다. 지난 1년간 안드로이드폰을 중점적으로 제공(지난 1년간 SKT를 통해 출시한 대부분의 스마트폰은 아래 사진과 같다)하면서 스마트폰의 경쟁력이라 할 수 있는 다양한 애플리케이션과 콘텐츠 종류를 KT보다 더 많이 보유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HTC가 SKT에 서운한 부분이 있었기에 KT로 디자이어HD를 출시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간 SKT를 통해 출시한 HD2와 디자이어의 저조한 판매량이 이를 방증한다. 그나마 국내 시장에서 많이 팔렸다는 디자이어의 판매량이 5만 대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SKT로 출시된 같은 안드로이드폰인 삼성전자의 갤럭시S는 국내 판매량만 100만 대가 넘는다. HTC로서는 삼성전자와 SKT간의 관계 때문에 자사의 제품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삼성전자와 HTC간의 보이지 않는 경쟁도 디자이어HD의 KT 출시에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업계 일각에서는 지난 3분기 제조사별 스마트폰 판매량에서 삼성전자가 HTC를 넘어선 것도 분명 한 이유가 되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디자이어HD의 KT 출시에 맞춰 방한한 HTC 피터 쵸우 CEO가 “SKT와의 향후 협력 관계를 여기서 말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라며, “앞으로 KT와 좋은 협력 관계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말한 것도 생각해 볼만하다.
이번에 선보인 디자이어HD가 대체 뭐길래
HTC의 디자이어HD는 전 세계 시장 판매를 목표로 선보인 주력 제품이다. 기본 사양은 4.3인치 대형 디스플레이(해상도 800x480), 800만 화소 안면 인식 카메라(플래시, 오토 포커스, 디지털 줌), 돌비 모바일/SRS 서라운드 사운드, 퀄컴 1GHz 스냅드래곤 CPU, 768MB 램, 1.5GB 내장 메모리, 최대 32GB 외장 메모리(MicroSD) 지원, FM 라디오, 802.11 b/g/n, 블루투스 2.1, 1,230mAh 배터리(최대 통화: 9시간, 최대 대기: 490시간), 3.5mm 오디오 단자 지원 등이다. 다만, 일부 국내 사용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DMB 기능은 빠져 있다.
여기에 안드로이드 2,2버전(프로요) 운영체제와 차별화된 HTC만의 센스 UI(User Interface)가 탑재되어 있다. HTC 측은 센스 UI의 기능을 더 매끄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강화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의 부팅 시간을 이전보다 더 단축했으며, 여러 메일 계정을 한번에 확인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기본으로 탑재했다.
특히 PC를 통해 원격제어할 수 있는 클라우드 서비스 ‘HTC 센스닷컴’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스마트폰을 분실한 경우 폰 기능을 잠글 수 있고,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으며, 필요하다면 저장 데이터를 모두 삭제할 수도 있다. 이외에도 유용한 기능이 다수 탑재됐다.
정리하자면, HTC가 주력 제품을 SKT가 아닌 KT를 통해 출시하면서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 미묘한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까 예상된다. 제조사와 이동통신사의 협력 관계가 언제 어떻게 달라질지 모를 일이다. 현재는 전혀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SKT와의 협력 관계를 내세웠던 모토로라도 향후 KT 또는 LG U+로 새로운 스마트폰을 선보일 수도 있다. 빠르게 발전하는 IT만큼이나 더욱 거세지는 경쟁 속에서 마지막에 미소 짓는 이는 누구일지, 사뭇 궁금하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