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 IT(잇)다] 이소향 이소닉스 “아이소터, 생활 가전 같은 AI 물체 선별기로”
[IT동아 차주경 기자] 이소향 이소닉스 대표는 자체 개발한 색채 선별기 ‘i-Sorter(아이소터)’에 히말라야 핑크 소금을 붓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틀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소리, 무엇인가를 불어내는 바람 소리가 연거푸 들렸다. 본체 아래 설치된 통으로 히말라야 핑크 소금이 우수수 떨어졌다. 색이 진한 것과 옅은 것이 나뉜 채였다.
색채 선별기는 쌀이나 콩 등 수 mm 크기의 알갱이 형태 물체를 색깔별로 분류하는 기계다. 쌀을 넣으면 일반 흰 쌀과 벌레가 먹은 거뭇거뭇한 쌀을 구분한다. 커피 콩을 넣으면 잘 익어서 까만 커피 콩과 상해서 빛이 바래진 커피 콩을 구분한다. 곡물뿐 아니라 플라스틱, 유리 구슬 등 작은 알갱이를 선별할 때에도 쓴다.
이소향 대표는 색채 선별기를 보고 처음에는 ‘커피 원두를 선별할 때 유용하겠다’고 생각했다. 상한 커피 원두가 단 하나만 들어가도 커피의 풍미와 맛이 크게 떨어진다. 바리스타들이 커피 원두를 볶은 다음, 상한 커피 원두를 하나하나 세심히 골라내는 이유다.
“그런데 알고 보니, 커피 원두 선별은 색채 선별기 업계에서 가장 구현하기 어려운 기술로 알려져 있었어요. 커피 원두는 외관이 대동소이한데다 색깔 차이도 두드러지지 않으니까요. 벌레가 먹은 원두, 일부분만 깨진 원두를 찾는 것도 만들기 어려운 기술이었어요. 그래서 우선 곡물 선별 기술부터 갈고 닦기로 결정했어요. 선별 기술을 차근차근 개발하고 노하우가 쌓이면, 가장 어렵다는 커피 원두 선별도 머잖아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기존 색채 선별기의 기술을 연구해 장점은 강화하고 단점은 보완했다. 그렇게 태어난 것이 이소닉스의 색채 선별기 아이소터다.
색채 선별기는 ‘라인 스캔 카메라’로 물체의 색깔과 외관을 파악한다. 기준 선(라인)을 정하고 그 곳을 지나가는 물체를 1초에 사진 수백 장을 찍는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해 선별하는 원리다. 이소닉스 아이소터는 기존 제품과 달리, 기준 선을 여러 개 모아 ‘면’을 만들어 사진을 찍는다.
“선이 아닌 면으로 물체를 파악하면 인식 속도를 단축할 수 있습니다. 실눈을 하고 물체를 볼 때와 눈을 완전히 뜬 채 물체를 볼 때, 어느 쪽이 더 잘 보이는지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워요. 나아가 면 안에 있는 물체 여러 개의 색깔이나 외관을 동시에 감지하면 분포도가 보입니다. 이를 토대로 물체의 색깔과 외관을 더 빨리 구분할 수 있고요. 이를 데이터로 만들어 아이소터에 적용하면 동작 효율이 더 좋아질 것입니다.”
이소닉스 아이소터는 물체의 색깔과 외관을 파악한 다음, 기준에 맞는 것은 그냥 내려보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바람으로 불어 날려 제거한다. 바람을 부는 기구는 촘촘하게 배치된다. 한 알의 불량품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이 제품은 물체를 선별한 결과를 거의 실시간으로 바람을 부는 기구로 전달한다. 이 역시 차별점이라고 이소향 대표는 강조한다.
“물체를 선별하는 속도도 중요하지만, 그 만큼 결과를 분석하고 처리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선별을 아무리 빨리, 잘 해도 그 결과를 빨리 전달하지 못한다면? 불량품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기계가 머뭇거리는 사이 불량품과 양품이 섞여버리지요. 기존 색채 선별기는 1초에 수십 개에서 수백 개의 물체를 감별했습니다. 이소닉스 아이소터는 그 열 배인 천 개 이상의 물체를 단 1초만에 구분해요.”
이소향 대표는 아이소터를 ‘소상공인이 쓰기 적합한 소형 색채 선별기’로 소개한다. 기존 색채 선별기는 부피가 커 설치하기 까다롭고 물체를 선별하는 속도도 느렸다. 아이소터는 부피가 작아 공장은 물론 가정, 소규모 가게에서 쓰기 알맞고 물체 선별 속도도 빠르다. 특용작물을 다루는 농가, 곡물을 가공해 상품을 만드는 공장에서도 요긴하게 쓰인다.
“쌀, 콩 등 곡물로 2차 가공 식품을 만드는 기업이 아이소터를 주로 찾아요. 부피가 작아서 중소규모 공장의 생산 라인에 설치하기 알맞은데다 선별 속도도 빠른 덕분이에요. 저희 제품 덕분에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었다며 고마워하는 분들이 많아요. 지금까지 좁은 공간에서 사람이 손으로 하던 선별 작업을 아이소터가 빠르고 정확하게 대신 해주니까요.”
그녀는 강원도 내 한 섬에서 온 소비자의 사례를 함께 소개했다. 고급 쌀을 소분해서 판매하던 그는 쌀과 불순물을 자동으로 골라줄 색체 선별기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집이 넓지 않은데다 섬에서 살고 있어, 무게가 수백 kg에 달하는 색체 선별기를 들여놓기 어려웠다. 부피가 작고 무게도 70kg 남짓으로 가벼운 이소닉스 아이소터를 가져간 그는 ‘작업 효율을 높여 동종 업계 판매량 1위에 올랐다’며 감사 전화를 전했다고 한다.
이소향 대표의 다음 목표는 아이소터에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을 탑재하는 것이다. AI로는 물체의 색깔, 나아가 외관과 품질을 구분한다. 그리고 로봇으로 불량품을 신속·정확하게 집어서 제거한다.
색상으로 알갱이를 구분하고 바람으로 제거하는 기술의 정확도는 96%쯤이다. 반면, 색상과 AI로 알갱이를 구분하고 로봇으로 제거하는 기술의 정확도는 100%, 사람이 눈으로 보고 손으로 골라내는 것 만큼 정확하다는 것이 이소향 대표의 설명이다. 이 기술은 이미 완성 단계에 다다랐고 2022년 초에는 상용화 가능하다고 한다.
“커피 바리스타들은 커피 원두 한 알 한 알을 소중히 여깁니다. 이 분들에게 사람처럼 정확히 원두를 선별하고 골라내는 기술을 전하고 싶어요. 아이소터의 부피도 꾸준히 줄여 커피 농가, 개인 카페 등에 보급하려 합니다. 올 11월에 열릴 ‘서울 카페쇼’에서 이소닉스의 AI 기술을 시연할 예정입니다.
AI와 로봇 기술을 적용하면 아이소터의 활용 범위는 더 넓어질 것입니다. ‘식용 곤충 선별’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애벌레는 색상은 거의 같지만, 모양이나 체격은 저마다 달라요. 그래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골라내기 정말 어렵습니다. 기존 색체 선별기는 모양과 체격을 구분하지 못하지만, 아이소터는 해냅니다. 데이터만 있으면 AI와 로봇 기술을 자유롭게 개량 가능하니 활용 범위를 더욱 넓힐 수 있어요.”
AI와 로봇 기술은 이소닉스 아이소터의 성능을 높이고 부피는 줄일 것이다. 이소향 대표는 이 단계에 다다르면 색채 선별기가 어엿한 생활 가전이 될 것이라고 소개한다. 택배로 배송 받아 탁자 위에 놓을 수 있을 만큼 작은, 소상공인은 물론 가정주부도 큰 부담 없이 살 만큼 저렴한 색채 선별기. 세계 각국의 카페와 가정에서 활약하는 색채 선별기. 이소닉스 아이소터의 미래다. 그 전까지 그녀는 색채 선별기를 맞춤형 설계, 보급해 저변을 넓힐 예정이다.
“이소닉스 아이소터는 용도, 설치 위치에 따라 맞춤형으로 설계 가능해요. 곡물이나 유리알, 플라스틱 알갱이 등 크기가 작은 재료라면 무엇이든 선별합니다. AI 자동화 기술로 어떤 재료도 선별 가능하도록 완성도를 높이고 있으니, 언제든 이소닉스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글 / IT동아 차주경(racingca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