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고수' Arm, 국내외 반도체 스타트업 지원에 팔 걷다
[IT동아 김영우 기자]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 아무도 의식하지 못하지만...”
이상한 비밀 결사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영국의 반도체 기업인 'Arm 홀딩스(Arm Holdings, 이하 Arm)'의 이야기다. 모바일 기기용 프로세서 업체라면 흔히들 '퀄컴'이나 '삼성전자' 등을 떠올리겠지만, 이들이 만드는 프로세서는 대부분 Arm이 개발한 아키텍처(Architecture, 설계기술)에 기반하고 있다.
최근에는 모바일 기기뿐 아니라 세탁기나 냉장고, TV 등의 가전제품, 그리고 협동 로봇 등의 산업용 장비에도 프로세서가 탑재되는데, 이러한 내장형(Embedded) 시스템 역시 태반이 Arm 아키텍처 기반의 프로세서를 이용한다. 현 시대를 사는 이들 중에서 Arm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많아도, Arm의 기술을 이용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실력과 영향력이 막대함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지는 않는 '은둔고수' 같은 존재다.
모르는 사람은 많아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는 Arm
Arm은 본래 1978년에 설립된 영국의 컴퓨터 기업인 '아콘 컴퓨터즈(Acorn Computers)'에서 기원한다. 이 회사는 케임브리지 대학, BBC, 애플 등 다양한 단체 및 기업과 협력해 고성능 프로세서를 개발 및 공급하고 있었다. 이들이 개발한 CPU 아키텍처에 'ARM(Acorn RISC Machine)'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1990년에 아콘 컴퓨터즈와 애플, 그리고 VLSI 테크놀로지스의 조인트 벤처가 설립되면서 회사 이름도 Arm이 되었다.
Arm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아키텍처뿐 아니라 제품까지 직접 생산하는 다른 프로세서 공급사(인텔 등의 IDM)와 달리, 아키텍처를 비롯한 기술만 개발해 그 IP(지적재산권)을 타사에 라이선싱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Arm의 고객사는 퀄컴, 삼성전자, 엔비디아, 프리스케일, 미디어텍 등 무수히 많다. 이들은 Arm의 아키텍처를 이용해 스냅드래곤(퀄컴), 엑시노스(삼성전자) 등 자사의 SoC(System on a Chip)를 만들어 판매하거나 자사 제품에 탑재하곤 한다.
전 세계 스마트폰 및 임베디드 시장에서 Arm 기술이 적용된 제품의 비율은 90%를 훌쩍 넘을 정도이니, 이 회사의 위상과 영향력은 막대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데이터센터를 위한 제품군인 '네오버스(Neoverse)' 시리즈 및 오토모티브 전용 AE(Automotive Enhanced) 제품군을 선보이는 등, 고성능 컴퓨팅 시장과 자율주행 시장에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반도체 생태계 확대를 위한 'Arm Flexible Access'
Arm 아키텍처 기반의 반도체는 적은 소비전력, 작은 크기로도 높은 성능을 발휘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장점 덕분에 CPU, GPU, RAM, 스토리지 등 여러 시스템 구성요소를 하나의 칩에 담아 만드는 SoC를 구성하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최근 Arm은 이러한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Arm Flexible Access'를 도입했다. 2019년 7월에 처음 도입된 이 기획을 통해 기업들은 Arm의 IP 라이선스 비용을 초기에 지불하지 않고도 SoC를 설계할 수 있으며, 실제 제품이 완성되어 생산에 들어갈 때 IP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면 된다.
기존에는 Arm에게서 IP 라이선스를 구입해야 관련 기술에 대한 접근이 가능했지만, Arm Flexible Access 계약을 체결한 기업들은 연간 소정의 멤버십 비용만 부담하면 Arm이 보유 중인 70% 이상의 IP에 즉시 접근할 수 있다. IP 접근 외에도 다양한 툴과 모델이 제공되며 Arm을 통한 지원 및 교육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특히, 스타트업의 경우 Arm Flexible Access Startup 프로그램을 통해 멤버십 및 초기 라이센스 비용 부담 없이, 제품설계 및 한 차례의 초기 실리콘 검증까지 진행할 수 있다.
이는 기술력은 있으나 자금이나 인력이 부족한 스타트업, 중소기업에 유리하다. Arm Flexible Access의 확대를 통해 Arm은 기존의 고객사를 넘어, 새로운 기업들이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5G통신 등의 다양한 분야의 반도체 사업에 좀더 적극 진출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스타트업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도 눈에 띄어
이는 한국의 스타트업도 예외가 아니다. 작년 4월, Arm은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와 협약을 맺고 3년간 국내 스타트업 지원 투자 프로그램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는 매년 유망 스타트업 10곳을 뽑아 1년간 Arm Flexible Access에 접근할 권한을 주는 내용이다. 현재 13개 스타트업이 선정되었고, 2021년에도 Arm은 중기부와의 협력을 이어갈 계획이다.
Arm Flexible Access의 성과도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작년 8월, Arm은 Arm Flexible Access 출시 첫 해에 60개 이상, 현재까지 130개 이상의 파트너사와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그 중 절반 이상이 신규 고객이었으며, 패러데이(Faraday), 소시오넥스트(Socionext), 노르딕 세미컨덕터(Nordic Semiconductor) 등의 기존 기업과 더불어, 아트모직(Atmosic), 헤일로(Hailo) 등의 스타트업 등을 성공사례로 지목했다. 특히 미국의 스타트업 펨토센스(Femtosense)는 임베디드 기기를 위한 초저전력 추론능력을 구현한 뉴로모픽(neuromorphic) AI 칩을 개발,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20개 이상의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이 이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다.
한편 Arm은 작년 6월, Arm Flexible Access에 참여한 국내 기업들에 대한 맞춤형 반도체 설계 지원을 위한 AADP(Arm Approved Design Partner) 프로그램의 확장도 발표했다. AADP 파트너들은 Arm Flexible Access로 제품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및 중소기업과 협업해, 한층 광범위한 Arm IP 설계 능력과 파운드리 협력 경험을 토대로 삼성, TSMC 등의 파운드리에 최적의 시제품 및 양산 제품의 반도체 설계 서비스를 제공한다. 에이디테크놀로지와 에이직랜드와 더불어 코아시아, 가온칩스, 하나텍 등이 AADP 파트너들이다.
Arm Flexible Access와 관련해, Arm 코리아 황선욱 지사장은 "2년전 시장에 첫 선을 보인 본 프로그램을 통해 기존의 여러 고객들이 새로운 방식의 설계를 진행하고 있으며, 국내 반도체 스타트업을 위한 중소기업부의 기업 프로그램에도 채택되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며, "Arm은 스타트업부터 중견기업에 이르는 한국 팹리스(설계만 하는 반도체 기업)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끊임없는 프로그램의 개선과 지원으로 한국 반도체 산업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글 / IT동아 김영우 기자(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