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아이디어를 현실로··· 생각에서 탄생한 가전제품 이야기
[IT동아 남시현 기자] 아이작 뉴턴은 ‘발명의 비결은 부단한 노력에 있다’는 말을 남겼지만, 현실에서는 행운도 중요한 요소다. 많은 발명품이 실수나 우연, 발상의 전환에서 기인하고, 이것을 상품화하는 과정이나 시장의 반응도 운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OLED부터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에 쓰이는 전도성 플라스틱 ‘폴리아세틸렌’은 실험 도중 반응 촉매를 수천 배 이상 사용한 것이 노벨 화학상으로 이어졌고, 2차원 나노 구조물인 ‘그래핀’은 흑연 덩어리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가 떼면 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발상에서 시작해 노벨 물리학상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단순한 현상과 실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시각은 때때로 위대한 발명으로 이어지며, 인류를 진보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최근에 출시되고 있는 가전제품과 IT 기기에서도 이처럼 우연하고 다양한 계기로 탄생하는 제품이 많다. 독특하고 우연한 아이디어를 현실로 옮긴 가전제품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소개한다.
햇빛에 반짝이는 먼지를 청소기로, 다이슨 V15 디텍트
해 질 무렵, 창문에 내리쬐는 햇빛에 먼지가 반짝거리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햇빛이 강한 낮 시간대나 실내 조명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먼지가 유독 특정 조건에서만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먼지가 빛을 반사해 반짝거리는 이유가 첫 번째다. 두 번째는 빛을 맞은 먼지와 주변 배경이 고대비를 이루기 때문이다. 공중의 먼지는 햇빛을 반사해서 밝은 상태고, 주변 배경은 어두워서 잘 드러나는 것이다. 햇빛이 밝은 시간이 아닌 어스름할 무렵에만 먼지가 잘 보이는 이유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먼지를 보면 그저 실내가 더럽구나 생각하지만, 다이슨의 엔지니어는 이 현상을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 먼지가 잘 보이는 원리를 청소기에 적용하면 바닥에 가라앉은 먼지를 더 깔끔하게 청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다이슨은 2년 동안 127번의 시제품과 500번 이상의 설계 변경을 통해 레이저가 먼지를 잘 보이도록 돕는 최적의 조건을 만들었고, 이 제품이 다이슨 V15 디텍트의 레이저 슬림 플러피 클리너 헤드다.
다이슨 V15 디텍트는 지면에서 7.3mm 떨어진 지점에 1.5도 각도로 정확하게 녹색 레이저를 투사하는 기술이 탑재돼 숨어있는 먼지를 강조한다. 녹색 레이저이므로 백색 바닥에 하얀 먼지가 떨어져 있어도 쉽게 구분할 수 있고, 스마트폰 카메라나 로봇 청소기 등에 탑재되는 1급 레이저라 시력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아울러 다이슨 V15 디텍트와 V12 디텍트 슬림은 피조 센서를 탑재해 흡입된 먼지 입자를 수치로 보여준다. 먼지를 흡수한 다음, 먼지 입자가 청소기 내부에서 튀면서 발생하는 진동을 전기 신호로 바꿔 1초에 15,000번 측정하고, 이렇게 수집된 정보를 후면 LCD 창으로 표기한다. 사용자는 동작 환경의 먼지나 조건을 파악해 먼지를 줄이는 시도를 할 수 있다.
수증기가 구겨진 옷을 펴더라, LG전자 트롬 스타일러
출시 10년 만에 가전제품의 새로운 카테고리로 떠오른 LG전자의 ‘트롬 스타일러’도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간단한 아이디어로부터 시작했다. 조성진 전 LG전자 부회장의 아내는 조 부회장에게 ‘출장 중 화장실에 뜨거운 물을 틀고 수증기가 꽉찬 상태에서 옷을 걸어놓으면 구김이 펴지는 효과가 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조 부회장은 이 말을 놓치지 않고 가전제품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에 착수했다.
면과 같은 옷감은 셀룰로오스라는 분자로 이뤄져있고, 흡수율이 좋은 수증기가 침투한 다음 증발하면 셀룰로오스 배열이 고정돼 옷감의 주름이 펴진다. 옷감을 걸어놓은 상태에서 내부에 수증기를 채워 옷감을 폄과 동시에 살균하고, 저온 건조로 수분을 빼내 다림질한 것과 비슷한 상태로 만든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가전을 만들기 위해 LG전자는 9년동안 연구 및 개발에만 투자했고, 약 530개의 특허 기술을 집약해 스타일러를 만들어냈다.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스타일러는 세탁기, 건조기와 함께 백색 가전을 대표하는 의류 가전으로 거듭났다. 이외에도 LG전자는 세탁기와 결합된 신발건조기나 가정용 맥주 제조기인 홈브루, 플랙서블 디스플레이로 화면을 말아서 보관하는 LG 시그니처 OLED R 등 다른 기업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색적인 제품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일상의 아쉬움을 발명으로, 네스프레소와 발뮤다
매일 아침을 간단히 차려먹는다면 아침부터 인스턴트 커피가 아닌 바리스타가 갓 내린 커피를 마시고 싶다거나,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빵을 먹고싶다는 생각이 종종 들 것이다. 네스프레소와 발뮤다의 엔지니어들은 이런 상상을 현실로 만들었다.
캡슐 커피를 발명한 사람은 네슬레의 엔지니어인 에릭 파브르(Eric Favre)다. 1970년 초, 사람들은 빠르고 쉽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인스턴트 커피를 선호했다. 하지만 인스턴트 커피는 품질 면에서 바리스타가 제조한 커피를 따라갈 수 없었다. 인스턴트 커피처럼 간단하지만, 고품질의 커피를 즐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그는 아내와 함께 이탈리아 여행을 하던 중 한 카페를 들린다.
바리스타가 여러 번에 나누어 커피를 내리는 것을 본 그는 인스턴트 커피를 대신할 수 있는 고품질의 커피머신 제작에 나서게 되며, 1976년에 관련 특허를 취득한다. 그가 만든 캡슐은 커피 원두를 최적의 상태로 보관하고, 기기에 넣고 추출하기만 하면 돼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캡슐 커피가 지금처럼 보편화할 수 있던 계기는 2012년 5월, 그가 만든 캡슐커피 원천특허가 소멸하면서 여러 브랜드들이 캡슐 커피머신을 내놓으면서 부터다.
발뮤다(BALMUDA)의 더 토스터도 우연한 계기의 산물이다. 2014년 5월, 발뮤다의 테라오 겐 대표는 직원들과 함께 우천에서 바베큐 파티를 연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사무실에서 먹던 빵을 숯불에 굽기 시작했고 겉은 바삭한데 속은 촉촉한 독특한 토스트가 탄생한다. 그때 그 맛을 잊지 못한 엔지니어들은 기존의 토스터로는 당시의 빵을 재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도쿄의 유명 베이커리와 협력해 그때의 맛을 재현한 토스터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발뮤다의 더 토스터가 다른 토스터와 다른 점은 수분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토스터 상단에는 5cc 용량의 탱크가 있고, 빵을 굽기 전에 여기에 물을 채운다. 토스트가 구워지기 시작하면 이 물이 수증기로 증발해 빵 표면에 얇은 막을 형성하고, 겉만 구워지고 속은 촉촉한 토스트가 완성된다. 단순히 수분만 공급하는 게 아니라 빵 속의 풍미를 살리기 위해 60도로 시작해, 이후 빵이 구워지는 160도를 유지하고, 마지막에 220도로 겉만 바싹하게 구워서 내놓는다. 이때 상부 히터와 하부 히터가 번갈아 가며 동작하며 최적의 맛을 찾는 게 발뮤다 더 토스터의 비결이다.
스쳐 지나갈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꾸다
발명가들 사이에서는 ‘발명을 하려고 생각을 해 보면, 세상에 필요한 건 벌써 다 누가 만들어놨더라’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 어떤 아이디어라도 이미 다 제품으로 있는 것 같다는 말이다. 하지만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거보다 더 많은, 더 참신한 제품들이 우리 일상을 메우고 있으며 등장하는 속도도 점차 빨라지고 있다. 컬러 텔레비전이 LCD TV로 진화하는 데 50여 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스마트폰은 등장한 지 10년 만에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우리 곁에 있는 많은 물건들은 부단한 기술 개발의 산물이지만, 상기의 예시처럼 우연한 계기로 등장하기도 한다. 흔히 볼 수 있는 불편함을 그냥 넘어가지 않는 사고력이 앞으로도 더욱 다채롭고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원천이 될 것이다.
글 / IT동아 남시현 (s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