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의 시대가 정말로 올까?
[IT동아 권택경 기자] 3D로 된 가상세계 안에서 사람들이 소통하며 관계를 맺고, 상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경제활동을 한다. 유명인도 자신과 꼭닮은 아바타로 접속해 대중들과 소통한다. 유명 기업들은 이 가상세계 자사 브랜드 매장을 세우고 제품 홍보에 나섰다. 유력 대선 후보가 선거 유세장을 만들기도 했다. 이게 언제의 이야기일 것 같은가? 모두 2003년 서비스를 시작해 2006년에서 2007년 사이 폭발적 인기를 누린 가상현실 서비스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에서 벌어진 일이다.
세컨드 라이프는 한때 전 세계 이용자가 800만이 넘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세컨드 라이프 성공에 고무된 소니가 2007년 ‘플레이스테이션 홈’이라는 모방작을 내놓기도 했다. 세컨드 라이프 열풍은 새로운 미래의 도래처럼 여겨졌지만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SNS 등장과 함께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세컨드 라이프는 현재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상태이고, 플레이스테이션 홈은 2015년 문을 닫았다.
미국 린든 리서치가 개발한 세컨드 라이프는 최근 뜨거운 키워드 중 하나인 ‘메타버스(Metaverse)’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메타버스는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와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를 합친 말이다. 현재 명확히 합의된 정의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대체로 현실처럼 경제·사회·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가상세계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된다.
세컨드 라이프 사례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새로운 무언가가 등장한 것처럼 떠들썩한 메타버스 열풍에 의아함을 느낄 수도 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리니지’ 같은 온라인 게임을 꾸준히 즐긴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십여 년도 전부터 있었던 이러한 게임들도 최근 얘기하는 메타버스 개념과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메타버스가 ‘오래된 미래’일 뿐이라는 지적과 회의론이 일각에서 계속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유독 열광하는 '메타버스'
주목할 만한 점은 전 세계에서 ‘메타버스’라는 주제에 가장 관심을 쏟는 나라가 한국이라는 점이다. 구글 트렌드에서 ‘메타버스’ 주제에 관한 전 세계 관심도를 조회해보면 지난 12개월 기준으로 대한민국이 관심도 100으로 1위, 중국이 관심도 29로 2위다. 미국은 관심도 5에 불과하다. 메타버스를 향한 관심이 우리나라에서 유독 과열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메타버스가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건 올해 2월이다. 로블록스(Roblox)가 상장을 앞둔 시기였다. 로블록스는 아바타로 가상세계에서 접속해, 이용자들이 직접 만든 게임을 즐기는 플랫폼이다. 1억 5000만 명이 넘는 월간활성이용자수 중 절반이 넘는 숫자가 16세 이하다. ‘Z세대가 열광하는 메타버스’로 주목받으며 큰 관심을 받았다. 이러한 관심은 로블록스가 시가총액 460억 달러로 상장 전 추정가치 300억 달러를 훌쩍 뛰어넘으며 첫 거래를 마친 지난 3월 10일 이후 더 높아졌다.
이처럼 국내에서 메타버스가 주목받은 계기가 로블록스 상장이다 보니, 메타버스 그 자체보다는 투자 상품으로서의 가치에 좀 더 관심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국내 대형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메타버스’를 입력하면 ‘메타버스 관련주’, ‘메타버스 대장주’, ‘메타버스 코인’이 자동 완성 검색어로 제시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사람들이 해당 검색어를 많이 검색했다는 뜻이다. 투자 시장에서 일종의 ‘메타버스 테마주’라는 게 형성된 셈이다.
특정 정치인이 부상하면, 아무런 연관도 없는 기업 주가가 단지 대표가 해당 정치인 학교 동문이라는 이유로 엮여 오르는 것처럼, 테마주라는 건 종종 허술한 논리로 얼기설기 엮이곤 한다. 소위 ‘메타버스 테마주’가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메타버스’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건 다 붙이고 보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주가를 띄우는 데 도움이 되는 건 물론이고, 뭔가 더 새롭고 대단한 것처럼 포장해 관심을 더 끌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열된 관심보다는 건강하고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
메타버스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사용되는 건 메타버스라는 용어의 모호함 자체에도 원인이 있다. 비영리 기술 연구 단체인 미국미래가속화연구재단(ASF)은 지난 2006년 메타버스를 증강현실, 라이프로깅(LifeLogging), 거울세계, 가상세계로 네 범주로 분류한 바 있다. 증강현실은 포켓몬 GO, 라이프로깅은 나이키 런 같은 운동 추적앱, 거울세계는 구글 어스, 가상세계는 세컨드 라이프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이렇게 범주가 아주 넓다 보니 뭐라 딱 집어 정의하기가 모호하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인터넷의 다음 버전”, 에드워드 마틴 유니티 프로덕트 매니지먼트 총괄은 “결국 인터넷을 지칭하는 또 하나의 이름일 뿐”이라고 표현한다. 이 정도면 사실상 차세대 정보통신 관련 기술을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봐야 할 정도다.
그나마 흔히 받아들여지는 좁은 정의는 앞서 언급한 세컨드 라이프나 네이버Z의 ‘제페토’ 같은 가상현실 세계다.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닐 스티븐슨의 사이버펑크 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에서도 고글과 이어폰 같은 웨어러블(Wearable) 장비를 착용해서 접속하는 실감 나는 가상 세계로 묘사된다. 현실과는 다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과 영향을 주고받는 또 다른 현실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메타버스의 ‘초기 형태’로 ‘포트나이트’나 ‘마인크래프트’를 제시했다. 포트나이트 속에서는 유명 가수가 콘서트를 열기도 하고, 마인크래프트 안에서는 청와대가 재현되거나 도서관이 설립되기도 한다. ‘초기 형태’라는 말에는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을 모두 아우르는 확장현실(XR) 기술이 발전하면 SF영화에 등장할 정도로 실감 나는 메타버스를 구현할 수 있다는 기대가 담겼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 등장하는 가상세계 ‘오아시스’가 가장 와닿는 예시일 것이다. 이 때문에 메타버스는 종종 XR 산업과 동의어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수준의 메타버스가 당장 가까운 미래에 현실이 되거나 대세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핵심이 될 XR 분야에서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산업 생태계도 아직 크지 않다. 생태계 자체가 작으니 대자본이 투입된 이른바 ‘킬러 콘텐츠’가 나오기 힘든 구조고, 그렇다 보니 거금을 들여 기기를 장만할만한 매력도 떨어진다. 악순환에 갇혀 있는 셈이다. 대부분 업체가 영세한 수준에 머무는 이유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XR 기업 591곳의 XR 사업 평균 매출은 13억 6,000만 원에 그쳤다.
당장 최근 콘텐츠 시장 트렌드를 들여다봐도 XR 산업에 그리 유리하다고 말하긴 힘들 듯하다. 최근 MZ세대가 오디오 콘텐츠를 선호하는 이유로 꼽는 게 ‘멀티태스킹’이다. 영상과 달리 온전히 집중하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 다른 일을 하면서 즐길 수 있는 게 매력이라는 뜻이다. 영상조차도 ‘집중해야 하는 피로’로 인해 외면 받는 게 요즘 추세다. XR같은 완전한 몰입을 요구하는 체험형 콘텐츠에겐 더욱 불리하다.
메타버스를 향한 투자시장의 관심이 얼마나 오래갈지도 의문이다. 메타버스는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문화 확산과 함께 주목받았다. 그러나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다시 대면 활동 수요가 늘어나면 상황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반짝인기로 끝난 세컨드 라이프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당장 과열된 관심에 편승하기보다는 건강한 관심이 지속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