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랑 함께 열심히 밀어봤는데... 통신사 VR의 현실
[IT동아 강형석 기자] 5세대 이동통신(5G) 서비스 도입과 함께 국내 이동통신사가 공통적으로 언급한 것이 있다면 바로 콘텐츠인데, 특히 ‘가상/증강현실(VR/AR)’을 강조해 왔다. 차세대 이동통신의 강점인 ‘고속전송·저지연’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가상현실은 가상의 세계관 혹은 공간을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다. 때문에 이를 잘 표현하는 기기(HMD)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에 비례해 데이터를 빠르게 주고 받아야 된다.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구조라면 위치(공간) 정보부터 표시되는 화면 등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 즉각 반응이 있어야 하기에 지연 또한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점을 앞세워 통신사는 앞다퉈 5G 서비스 초기부터 가상현실 관련 서비스와 장비를 선보이며 고객 유치에 나섰다. 현재 SK텔레콤은 오큘러스 고(Oculus Go), KT는 슈퍼VR(Super VR)이라는 이름의 피코 G2 4K, LG유플러스는 기어VR·피코U·피코리얼 플러스 등 다양한 기기를 선택하는 형태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시작은 거창했는데... 현실은?
5G라면 다 가능하다며 야심차게 준비했던 가상현실 서비스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대부분 서비스는 유지하고 있지만, 기대한만큼의 저변 확대는 쉽지 않은 모습이다. SK텔레콤은 오큘러스 고 VR팩을 할인해 판매하고 있으며, KT는 슈퍼VR을 인수형 장기 렌탈 형태로 출시한 상태다. LG유플러스는 뚜렷한 변화가 감지되지 않았다.
먼저 SK텔레콤은 지난해 오큘러스 고 가상현실 기기를 22만 6,800원에 출시한다고 공개한 바 있다. 12개월 분할 납부를 지원해 이를 선택하면 월 1만 8,900원씩 지불하면 됐다. 사용자는 기기 내에 SK텔레콤의 가상현실 소프트웨어인 점프VR을 설치해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출시 6개월 가량 지난 시점에서 오큘러스 고는 19만 8,000원, 12개월 분납 시 월 1만 6,500원에 판매되고 있다.
KT의 슈퍼VR은 월 2만 원대 렌탈(인수형) 상품으로 탈바꿈했다. 초기 출시 가격은 45만 원. 현재는 24개월 렌탈 기간 동안 월 1만 9,900원을 지불하게 된다. 선납금 3만 200원에 월 1만 9,900을 24개월 지불하면 50만 원 이상 비용을 써야 된다. 프라임 무비팩과 시즌 이용권(렌탈 기간 내 무상제공)을 고려해도 경쟁력이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일반 구매 시에는 프라임 무비팩 3개월, 시즌 이용권 6개월이 제공된다.
추가하자면 KT 슈퍼VR 장기렌탈은 롯데렌탈을 통해 진행되는 것이다. 기존 KT 홈페이지를 통해 구매하거나 단기 렌탈 형태의 판매도 진행 중이다.
LG유플러스의 VR 기기는 처음부터 가격이 저렴하다. 피코U는 4만 원, 기어VR은 14만 9,000원, 피코리얼 플러스는 25만 원 등에 책정했다. 그러나 요금제에 따라 정가 혹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 이는 LG 유플러스의 가상현실 기기의 성능이 모바일 환경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대체로 통신사의 VR 기기와 서비스는 가급적 소비자 진입 장벽을 낮추는데 초점을 두려는 모습이었다. 그 결과, SK텔레콤은 가격 인하가 이뤄진 반면에 KT는 흥미롭게도 전체 구매 가격은 상승하는 효과가 발생했다. 이는 KT가 직접 24개월 할부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렌탈 업체가 수수료와 선납비 등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5G 장점을 내세울 수도 없는데, 할 만한 것이 있는가?
가격도 낮추고 렌탈 서비스 등으로 영역을 넓힌 가상현실. 코로나-19 사태로 가정 내에서 즐길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가상현실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반영한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콘텐츠를 강조하고 있는 반면, 5G 서비스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서비스 도입 초기 5G 서비스와 가상현실을 강조한 것에 비하면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이는 현재 VR 기기들이 5G 서비스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모두 LTE 혹은 와이파이를 쓰거나 스마트폰을 가상현실 장치에 거치해 쓰는 형태로 품질이 떨어진다.
오큘러스 고와 슈퍼VR은 기기 단독으로 작동(스탠드 얼론)하는 구조다. 각각 퀄컴 스냅드래곤 821과 835를 쓰고 있다. 모두 기존 LTE 시절에 쓰이던 칩으로 당연히 5G 신호를 받을 수 없다. 다른 기기는 스마트폰 USB 단자에 연결하거나, 거치하는 식이어서 5G 신호를 받는다 하더라도 그 품질이 뛰어나다 보기는 어렵다.
가상현실 자체를 제대로 즐기려면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는 부분도 약점이다. 가상 모임이나 영상을 보는 등 움직임이 적은 콘텐츠는 공간 제약을 받지 않지만, 격렬히 움직이는 게임이라면 공간에 따라 움직임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 PC용 가상현실 기기에 비하면 가격이나 편의성 등은 뛰어나지만 그만큼 성능과 활용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이들 기기는 모두 시장에서 구매 가능하다. 심지어 최근 기술 향상으로 이들보다 뛰어난 성능을 갖춘 기기도 여럿 있다. 통신사 채널을 통해 구입하거나 비싼 렌탈 이용료를 지불하기 전에 자신에게 필요한 콘텐츠가 있는지, 혹여 한 번 쓰고 방치하지는 않을지 여부를 꼼꼼히 따져보는 것을 권장한다. 우리 손에 있는 돈의 가치는 소중하니 말이다.
IT동아 강형석 (redb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