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생태계의 변화] 스타트업 선발 기준을 바꾸다

[IT동아 권명관 기자] 지난 2017년 6월 서울시와 서울산업진흥원이 개관한 서울창업허브는 입주기업을 위한 사무 공간 등을 제공하는 창업 보육 기관이다. 서울시에 위치한 창업보육센터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로 스타트업 관련 정책과 정보를 종합화하고, 기존 각 센터에서 제공하던 공통·중복된 기능을 통합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앙정부, 민간, 시 산하 창업기관 등 주관부처나 사업목적에 따라 흩어질 수밖에 없었던 창업지원정책과 창업관련 정보를 하나로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개관했다.

2019년 6월 기준, 서울창업허브가 창업을 지원한 스타트업은 887건에 달한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는 파트너 기관은 144개, 해외진출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 48곳을 확보했으며, 신규 고용건수는 1,237건에 달한다. 또한, 2020년 1월 기준, 약 300개 스타트업을 인큐베이팅했으며, 입주한 130여 기업들이 535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고, 743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서울창업허브
서울창업허브

그런 서울창업허브가 다시 한번 변화하고 있다. 스타트업과 함께 성장하기 위해 보다 현실적이고, 보다 효율적인 방향으로 지원 정책과 조직을 개편 중이다. 필요없다고 판단하면, 기존 틀도 과감하게 버린다. 천편일률적인 스타트업 지원 방식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에 IT동아는 서울창업허브가 구축하고자 하는 스타트업 생태계를 ‘스타트업 선발 방법’, ‘해외 진출’, ‘투자 지원’, ‘스타트업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 크게 4가지로 나눠 소개하고자 한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양적 인프라는 이뤘지만…

좋은 스타트업. 스타트업 생태계를 구축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씨앗이다. ‘될 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다. 찾아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모두가 성공을 자신한 스타트업도 한순간의 실수로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다. 2003년 엘리자베스 홈스가 창업한 ‘테라노스(Theranos)’는 피 몇 방울로 240여가지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에디슨’을 개발해 약 9,0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당시 기업가치는 10조 원에 달했다.

하지만, 2015년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서 에디슨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질병은 10여개뿐이라고 폭로하며 사태는 일파만파 커졌다. 미국식품의약군의 승인 없이 제품을 공개해 투자자를 모았고, 문제점을 숨기기 위해 샘플을 조작한 사실 등도 밝혀졌다. 기업가치는 계속해서 떨어졌고, 홈즈는 각종 사기 혐의로 고소까지 당했다. 결국 테라노스는 남은 투자금을 돌려주며, 사업을 접었다. 이외에도 리싱크 로보틱스(Rethink Robotics), 십(Shyp), 어프렌다(Apprenda), 에어웨이(Airware), 블루스마트(Bluesmart) 등 무리한 투자 유치와 사업 확장, 시장 분석 실패 등으로 많은 해외 스타트업이 실패했다.

국내 스타트업 상황은 어떨까.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 부처 창업지원사업은 모두 1조 1,180억 원으로 사업화(45.9%), 연구개발(33.9%), 시설·공간(13.4%), 창업교육(4.2%), 멘토링(2.0%), 네트워크(0.6%) 등의 지원 사업을 진행 중이다.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을 위한, 양적 인프라는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원 사업은 창업 3~7년의 초기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다.

출처: 중소기업벤처부
출처: 중소기업벤처부

2015년 전국 사업체 조사에 따르면, 7년 이내 스타트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에서 절반 이상이다. 해당 스타트업은 초기 평균 매출과 고용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다가, 정부 지원이 끊기는 4~5년차에 평균 매출과 평균 고용이 감소한다. 5년차 생존율도 1년차 생존율(62.7%)의 절반 이하(27.5%) 수준이다. 정부 지원 과제, 정부 지원 사업이 끊기면 사업을 영위할 수 없는 기업을 일컫는 '좀비 스타트업'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1년마다 졸업하는 스타트업은 늘어났지만, 시장에서 사라지는 스타트업이 대부분이라는 뜻이다.

스타트업 지원 기준을 바꿔라

SBA창업본부 투자 팀장, 서울창업허브 센터장을 거쳐 지난 2월 SBA창업본부 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태훈 본부장은 서울산업진흥원 내 여러 부서를 거치며 스타트업 투자, 보육, 해외 진출 등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에 대한 실무 경험을 쌓았다. 소위 말해 잔뼈가 굵다.

SBA창업본부 이태훈 본부장
SBA창업본부 이태훈 본부장

그는 “정부, 지자체가 운영하는 스타트업 지원 센터, 허브는 그동안 양적 지원에 힘썼다. 매년 수백, 수천개의 스타트업이 전국에서 창업한다. 지원 정책도 초기 기업에 맞춰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한 스타트업을 육성하는데 노력했다”라며, “이제는 양적 인프라가 아니라 질적 인프라를 논할 때다. 마치 성적표와 같은 1년짜리 성과보고는 경쟁력이 없다. 지속성장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찾고, 육성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1년짜리 성적표. 대부분의 스타트업 지원 센터는 정부 또는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운영한다. 연초 지원 예산 규모를 결정하고, 스타트업을 모집한 뒤, 다양한 성장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액셀러레이팅, 재무, 회계, 기업가 정신 교육 등 프로그램은 무수히 많다. 서비스 또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도 지원한다. 그리고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데모데이 또는 수료증을 받는다. 그렇게 수백, 수천개의 스타트업이 전국에서 창업한다.

하지만, 창업 후 시장에서 경쟁하기 시작한 스타트업 중 살아남는 스타트업은 절반에도 못미친다. 이 본부장은 지금의 스타트업 생태계, 스타트업 지원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서울에 스타트업 지원센터만 44개가 있다. 정말 많다. 많다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비효율적인 운영이 문제로 보였다. 중복되는 지원 사업, 중복되는 지원 프로그램이 눈에 보였다”라며, “모든 센터가 10개 과목에서 100점 맞을 필요가 있을까. 어떤 곳은 스타트업 사무공간 임대를 잘 운영하고, 어떤 곳은 초기 투자를 잘 컨설팅하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출처: 서울창업허브
출처: 서울창업허브

컨트롤타워다. 서울창업허브가 서울에 위치한 스타트업 지원센터를 통합 관리해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나섰다. 연초에 각 센터가 운영할 사업계획서를 받았고, 교통정리에 나섰다. 내부 경쟁을 유도했다. 서울시 전역의 인프라와 네트워크를 활용해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틀을 다졌다. 그렇게 정리한 것이 ‘초기 투자’와 ‘해외 진출’, ‘데이터베이스 구축’이다.

그는 “서울창업허브가 잘하는 것이 있고, 각 센터가 잘하는 것이 있다. 이것부터 파악했다. 그리고 서울시를 권역별, 지역별로 나눴다. 규모가 작은 센터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고, 전체 네트워크를 활용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라며,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은 민간의 협력을 구했다. 대기업 참여를 유도했고, 글로벌 네트워크부터 만들었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2019년 12월, CJ ENM 오쇼핑 부문과 제조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업무 협약이 대표적이다. SBA가 액셀러레이팅을 맡아 팀을 선발, 보육하고 제품 홍보를 CJ가 맡았다. 글로벌기업인 메르세데스벤츠, 국내 대기업인 에스오일, 오비맥주 등도 서울창업허브에 상주한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 개발을 스타트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다. SBA가 직접 나서서 연결하는 다리다.

민간 파트너와 함께 스타트업을 지원한다

그동안 SBA는 스타트업 선발 즉, 창업 지원을 위해 네트워크 연계에 집중했다. ‘민간과 함께 우수창업기업을 발굴·육성 하고, 공공이 지원’하는 보육 체계다. 2020년부터 이를 본격 적용해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플랫폼이다. 앤젤투자자, 액셀러레이터, 벤처캐피탈 등으로 구성된 ‘민간’과 금융기관, 언론기관 등으로 구성된 ‘유관기업’, 정부기관, 대학 등으로 구성된 ‘공공’을 묶었다. 이를 통해 투자 유치 금액은 2018년 200억 6,200만 원에서 2019년 371억 6,300만 원으로 185% 성장했으며, 기업 매출은 2018년 314억 7,100만 원에서 2019년 487억 6,600만 원으로 155% 성장했다.

현재 SBA와 함께하고 있는 기관은 총 337개에 달한다. 심사·선발 파트너 33개, 보육·성장 파트너 22개, 글로벌 파트너 57개, 전문 교육기관 44개, 허브특화분야 협력사 3개, SBA 투자 네트워크 178개 등이다.

서울창업지원허브가 구축한 창업지원 플랫폼, 출처: 서울창업허브
서울창업지원허브가 구축한 창업지원 플랫폼, 출처: 서울창업허브

정리하자면, 서울창업허브는 민간과 스타트업을 함께 선발하고, 함께 육성한다. 정부, 지자체 중심이 아닌, 협력 네트워크다. 스타트업 성장에 도움된다는 판단에서다.

이 본부장은 “기존에는 1년이나 6개월, 또는 분기별로 300여명의 심사위원 중 10여명을 불러서 스타트업 발표 10분을 듣고 선발했다. 과연 이게 옳은 방식인지 궁금하다.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스타트업이 얼마나 많이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지, 그리고 심사위원들이 얼마나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지 말이다”라며, “민간에서 실제 투자를 검토하고 있는 스타트업을 추천 받고, 내부에서 다시 한번 검토한 후에 입주기업, 프로그램 지원, 초기 투자 등을 검토한다. 파트너와 함께 스타트업을 성장시키기 위한 전략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스타트업 선발 기준, 지원 기준을 바꿔야 한다. 시장에서 필요로 하고, 시장에서 성장 가능성을 검증받은 스타트업이 빠르게 스케일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서울창업허브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서울창업허브가 스타트업 초기 육성 후 자연스럽게 민간으로 연계한다. 투자 성사, 시장 안착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서울창업허브는 지난 2년간 컨트롤타워의 역할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했다. 무엇보다 실질적인 스타트업 성장에 대한 인프라 구축에 집중했고, 그래서 찾은 결론이 민간과 공공 함께하는 전략이다.

  • 다음 기사는 서울창업허브와 민간이 함께하는 스타트업 ‘투자 지원’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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