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크림슨창업지원단 정경희 교수, "취업과 창업 중 선택하는 시대"
기업 가치 1조 원 이상의 스타트업을 ‘유니콘’이라고 부른다. 2019년 1월 기준, 전세계 유니콘 300여개 가운데 51개는 스탠퍼드대학 출신이 창업한 스타트업이었다. IT 공룡기업인 구글, 휴랫팩커드, 시스코, 야후, 인스타그램, 페이팔, 링크드인 등의 창업가도 이 대학을 나왔다.
스타트업의 요람, ‘실리콘밸리’의 성공을 비상한 ‘괴짜’들과 이들을 배출하는 ‘스탠퍼드대학’, 그리고 구멍가게를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시키는 ‘벤처캐피털(VC)’의 힘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실리콘밸리를 둘러보면 이 삼박자가 멋들어지게 어우러져 돌아간다.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기업들 사옥은 대부분 캠퍼스로 불린다. 단독 빌딩이 아니라 넓은 정원 부지에 건물들이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고층 빌딩은 없다. 마치 대학교 캠퍼스와 같은 분위기다. 실리콘밸리와 스탠퍼드대학 부근에 위치한 샌드힐로드에는 코슬라벤처스, 세콰이어캐피털, 어거스트캐피탈 등이 위치하고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VC들이다.
젊은 대학생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이를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대학과 기업, 그리고 VC가 만들어내는 연주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실리콘밸리가 찾은 유니크한 그들만의 스타트업 생태계다. 그리고 최근 한국의 전국 대학들도 스타트업 활성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스타트업을 향한 학생들의 창업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대학의 역량을 평가하는 주요 지표 중 하나로 떠올랐다. 정부가 창업 지원을 강화한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지난 1999년, 당시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창업보육센터로 지정받아 학생창업지원을 시작한 고려대학교의 크림슨창업지원단 기술창업학 박사 정경희 연구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고려대는 지난 20년간의 창업 노하우를 바탕으로 작년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2019 초기창업패키지’ 사업으로 10개월간 22억 원, 과학기술일자리진흥원이 주관하는 대학기술경영촉진사업(TMC)으로 2021년까지 18억 원을 지원받는다.
고려대 창업지원의 중심, 크림슨창업지원단
IT동아: 만나서 반갑다. 먼저 크림슨창업지원단에 대해서 설명을 부탁드린다.
정경희 교수(이하 정 교수): 크림슨창업지원단은 현재 교내 창업 지원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999년 창업보육센터로 지정되면서 학생창업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2008년에는 국내 최초로 창업 전주기 정규 교과목인 ‘캠퍼스 CEO’ 과목을 개설한 바 있다. 이는 서울시 주관 ‘캠퍼스 CEO 육성사업’의 모태로 작용했다.
2016년 ‘SK청년비상프로그램 사업’, ‘2017년 미래창조과학부 주관 과학기술기반창업중심대학’, 2017년 ‘서울시 캠퍼스타운 시범사업’, ‘2018년 메이커스페이스 구축/운영 사업’ 등에 선정되며 역량을 쌓았고, 2018년부처 창업교육체계를 정비하면서 연구부총장 직속으로 지금의 ‘크림슨창업지원단’을 설립했다.
고려대는 지난해 2학기부터 창업지원단이 운영하는 ‘기술창업융합전공’을 새롭게 개설했다. 이 전공은 대학 내 연구실에서 구현하는 아이디어를 우리 생활 속 서비스로 전환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공과대학 7개 학과와 경영학과, 컴퓨터학과 등 총 9개 학과가 참여해 ‘캠퍼스 CEO’. ‘벤처 경영’ 등의 교과목을 개설했다.
IT동아: 컨트롤타워 역할이라고 한다면, 창업 지원을 위한 다른 정책도 있다는 것인지.
정 교수: 학내 창업지원 부서가 다양하다. 2016년 9월 개원한 ‘스타트업 연구원’, 대학과 지역의 협력적 관계를 구축해 청년창업을 지원하는 ‘캠퍼스타운지원센터’, 38개의 컨테이너 공간으로 꾸민 교내 아이디어 발전소 ‘KU개척마을’, 등이 있다. 이외에도 이외에도 ‘기술사업부’, ‘고려대학교 기술지주회사’ 등을 통해 교내 인프라를 활용한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크림슨창업지원단은 이처럼 창업을 지원하는 각 부서마다 다른 특성과 자율성을 반영해 유기적으로 협업할 수 있도록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돕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고려대 창업 강좌는 ‘창업기초’, ‘창업기본’, ‘창업심화’, ‘창업실전’ 등 4단계로 나눠 운영한다. 무엇보다 이론에 그치지 않는, 실행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학생들이 창업 교과목 내 팀빌딩으로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멘토링을 통해 사업화 검증을 마치면 ‘캠퍼스 CEO 창업경진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매 학기 25개 내외 팀이 경진대회에 참가하는데, 수상팀에게는 제품 제작과 상금 50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취업과 창업을 직접 선택하는 젊은 청년들
IT동아: 스타트업, 창업을 대학교가 직접 지원하는 이유가 있을까.
정 교수: 최근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지만, 사실 창업 지원은 20년 전부터 진행하고 있었다. 앞서 언급했던 ‘창업보육센터’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 1990년대 후반 벤처기업의 성장과 함께 정부 차원에서 대학교와 기업을 연결할 수 있는 다리를 만들고자 했다. 미국과 비교하면 20~30년 정도 늦었지만, 발빠르게 대처했던 시기라고 생각했다.
지금 대학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해 새로운 과학기술의 발전과 적용으로 우리 삶이 변화할 것을 감안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대학 내 연구실이나 실험실 속 아이디어와 기술을 바로 실생활 속의 제품과 서비스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IT동아: 고려대학교가 기술창업융합전공을 개설한 것도 같은 이유인가.
정 교수: 맞다. 기술창업융학전공의 모든 교과는 단순한 이론교육이 아닌, 기회의 발견, 문제제시, 이에 대한 솔루션을 도출하는 교과 흐름을 원칙으로 한다. 이론과 함께 직접 아이디어를 창업으로 연결할 수 있는, 실무적인 접근을 병행한다. 크림슨창업지원단의 지원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기관과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모든 프로그램을 지원받을 수 있다.
어떤 전공의 학생이라도 전공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실생활에 접목시킬 수 있는 역량은 향후 진로선택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술창업융합전공은 실제 본인의 사업을 해보고 싶거나, 진로/창업교육, 투자 전문가, 기술이전 및 기술사업화, 창업관련 공공부문 진출 등에 도움될 것이다.
IT동아: 이론, 학문만 쫓던 대학교에 작은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정 교수: 지금은 아이디어가 실생활 속으로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빠른 실행력이 필수다. 이에 맞춰 대학교도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창업은 취업을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학생들이 창업을 직접 선택한다. S사, L사와 같은 대기업에 취업을 확정한 학생도 고민한다. ‘내 아이디어로 직접 창업해볼까?’라고.
이제 대학은 학생들의 졸업 이후 진로 선택에 있어 새로운 기회 발견을 통한 창업과 전공기반의 양질의 취업에 도움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고려대가 준비한 것이 크림슨창업지원단이다.
소브스, 탈잉, 드리머리… 고려대의 스타트업들
IT동아: 창업지원단을 통해 창업한 스타트업 중 기억나는 곳이 있는지.
정 교수: 너무 많다(웃음). 작년에 육성한 창업동아리는 70여개에 이른다. 이중 캠퍼스 CEO 창업경진대회를 통해 45개 학생 창업팀을 발굴했고, 작년 초기창업패키지 지원사업을 통해 19개 기업이 12억 원의 사업화 자금을 지원받기도 했다. ‘2019 대학 학생창업유망팀 300’에서 15개 팀이 선정, 수도권 내 대학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SOVS-구도 카메라’와 ‘SOVS2-포즈 카메라’ 등 2개 앱을 출시한 ‘소브스(SOVS)’는 얼마 전, 해외에서 투자도 받았다. 두 앱은 스마트폰 카메라 화면 위에 원하는 포즈 구도를 가이드라인으로 보여줘서, 누가 사진을 찍어주든지 원하는 모습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돕는다.
2015년 4월 설립한 ‘탈잉’은 개인의 재능을 콘텐츠로 공유하는 재능 플랫폼이다. 공강시간을 PC방이나 당구장에서 보내는 후배들의 모습을 보며, 그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없을까라는 고민에서 시작해 현재 누적 방문자 500만 명을 넘어섰다. 탈잉을 통해 가장 높은 수익을 창출하는 ‘튜터’의 경우 작년 기준 2억 원 가량의 부가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외에도 사용자 경험을 진단/분석해 기업에 솔루션을 제공하는 ‘디비디랩’, 헤어디자이너와 고객을 연결하는 ‘드리머리’, 밀레니얼 세대들의 여행 정보 공유 플랫폼 ‘마이리얼트립’, 학과 종합 정보 플랫폼 ‘잡쇼퍼’, SNS로 음식 콘텐츠를 제공하는 모바일 방송국 ‘쿠캣’ 등이 기억에 남는다.
지식과 함께 사고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고 싶습니다
IT동아: 대학교와 창업을 연결하는 현장에 오래 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 교수: 2001년부터 창업보육센터에서 일을 시작했다. ( 거의 20년이 가까워진다는 말에) 참 많은 일을 겪은 것 같다(웃음). 조교부터 시작해서 MBA 과정까지 거쳤고, 당시 창업보육센터와 기술이전센터에서 실무를 모두 담당해 처리했다.
정부가 창업선도대학을 선정하던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창업단계별 필요한 교육은 무엇인지, 제도적인 보완은 무엇이 필요한지, 학생들을 위한 지원 정책은 무엇인지, 대학교가 창업 생태계를 위해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등. 많이 고민하고, 준비했던 것 같다.
IT동아: 대학교가 학생을 위한 창업을 지원하는데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정 교수: 창의적 사고 함량에 집중하고자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교과 성적만이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경험해본 인재를 원한다. 기술과 아이디어를 통해 기회를 찾아 융합할 수 있는 인재다. 아무리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라도 자기 자신만 알고 거만한 사람이라면 과연 스타트업 대표로서 크게 성장할 수 있을까? 기술융합 창업에 필요한 실무적인 스킬과 능력 배양 이외에도 한 사람으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사고할 수 있는 역량에도 신경쓰고 있다.
스타트업, 창업은 변화가 빠르고, 성공에 대한 기준도 다양한 영역이다. 사회의 인식도 이제 다시 정립되고 있는 순간이고, 예측할 수 없는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창업은 학생 개인이 도전적이고 주도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준다. 학생들이 자기주도적인 판단과 실행력을 도울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앞으로도 크림슨창업지원단에 아니, 우리 학생들에게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