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D + SSD = 하이브리드 HDD?
IT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PC 장치들의 전반적인 처리 속도가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 유독 발전이 늦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드디스크(이하 HDD)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 이유는 반도체 기반의 장치인 CPU, 메모리, 그래픽카드 등과 달리, HDD는 자기디스크 기반의 장치이기 때문이다. 반도체의 경우, 제조 공정을 세밀화하거나 입력 전압을 높이는 등의 작업으로 비교적 쉽게 성능 향상을 기대할 수 있지만, 자기디스크는 회전속도를 높이는 등의 물리적인 방법으로 성능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그 한계가 명확하다.
문제는 다른 장치들에 비해 유난히 느린 HDD 때문에 PC의 전반적인 성능이 저하된다는 점이다. 자동차 경주에 비유한다면, 출력이 높은 엔진과 뛰어난 실력을 갖춘 드라이버가 탄 경주차는 있지만 달려야 할 트랙이 좁고 험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 할 수 있겠다(좋은 기록을 내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PC 업계에서는 진작에 인식하여 대책을 연구해왔고, 그 결과물로서 나온 것이 바로 SSD(Solid State Drive)다. SSD는 자기디스크가 아닌 플래시 메모리(Flash Memory: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지워지지 않는 메모리)를 이용해 데이터를 저장하기 때문에 HDD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빠르다. 그리고 디스크를 물리적으로 회전시킬 필요가 없으므로 전력 소모가 적으며 소음도 전혀 없다.
그런데 SSD의 문제는 가격 대비 용량이다. 2010년 9월 현재, 인터넷 최저가 기준으로 160GB 용량의 HDD인 ‘씨게이트 모멘터스’는 4만 5천 원 정도면 구매가 가능하지만, 같은 용량의 SSD인 ‘인텔 X25-M’은 무려 55만 8천 원에 달한다. 성능이 아무리 좋더라도 이 정도로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면 선뜻 구매를 결정하기 어렵다. 차츰 SSD의 생산 기술이 개선되고 수요가 늘어나고 있으니 언젠가 SSD도 HDD 못지않게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시대가 오긴 하겠지만,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하이브리드 HDD’다. 하이브리드(Hybrid: 혼합, 복합)라는 의미 그대로 HDD와 SSD의 특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가격은 일반 HDD보다는 약간 비싸지만 SSD보다는 훨씬 싸다.
하이브리드 HDD의 기본 원리
하이브리드 HDD는 내부에 일반 HDD의 자기디스크와 SSD의 플래시 메모리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 이를테면 씨게이트의 신형 하이브리드 HDD인 ‘모멘터스 XT 500GB(2010년 인터넷 최저가 기준 18만 원)’ 제품의 경우, 500GB의 자기디스크와 4GB의 플래시 메모리가 조합되었다. 플래시 메모리의 용량이 상대적으로 너무 적은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플래시 메모리의 용량을 무작정 늘리다간 SSD와 다름없는 비싼 가격이 될 것이다.
하이브리드 HDD의 플래시 메모리는 일반적인 데이터 저장용이 아닌 ‘버퍼(buffer)’에 가깝다. 버퍼란, 동작속도가 다른 두 장치 사이에 위치하면서 속도 차이를 조정하는 임시 저장장치를 의미하는데, 하이브리드 HDD의 경우, 대부분의 파일은 용량이 큰 자기디스크에 저장하지만, 운영체계의 시스템 파일이나 자주 사용하는 프로그램의 실행파일은 속도가 빠른 플래시 메모리에 저장하여 버퍼처럼 사용한다.
기존의 일반 HDD도 버퍼 메모리는 있었지만 용량이 2~32MB 정도로 적었고, 플래시 메모리가 아닌 일반 램(RAM)이었기 때문에 속도는 빨랐지만 지속적인 데이터 보관을 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물론, 하이브리드 HDD 역시 버퍼 램은 갖추고 있다).
하이브리드 HDD의 장점
위와 같은 특징으로 인해 하이브리드 HDD는 기존 HDD에 비해 몇 가지 장점을 가지게 되었는데, 구체적으로 짚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① 부팅 및 프로그램 실행 속도
: 플래시 메모리를 갖춘 덕분에 자기디스크만으로 구동하는 일반 HDD에 비해 부팅 속도 및 자주 사용하는 프로그램의 실행 속도가 빠르다.
② 소음
: 데이터의 일부를 플래시 메모리에 저장하기 때문에 그만큼 자기디스크를 덜 회전시켜도 된다. 플래시 메모리는 모터와 같은 구동부가 필요 없으므로 전반적인 소음을 줄일 수 있다.
③ 소비 전력
: 자기디스크의 회전 빈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모터 회전으로 인한 전력 소비 역시 감소했다는 의미다. 이러한 이유로, 하이브리드 HDD는 데스크탑 PC용보다는 배터리 절약이 중요한 노트북 PC용 규격으로 주로 출시되고 있다.
하이브리드 HDD의 단점
물론, 그렇다 하여 하이브리드 HDD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구매 전에 확실히 체크하지 않으면 곤란할 수도 있는 단점 몇 가지가 분명히 존재한다. 이 역시 짚어 보자.
① 가격
: 하이브리드 HDD가 SSD보다는 훨씬 싼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반 HDD에 비해 다소 비싼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저장 용량이나 디스크 회전속도, 버퍼 등의 사양이 같은 일반 HDD에 비해 하이브리드 HDD는 30% 정도 비싼 값을 주어야 한다.
② 특정 상황에서의 속도
: 플래시 메모리에 저장된 데이터는 빠르게 처리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자기디스크에 저장된) 데이터를 실행할 경우에는 일반 HDD와 속도 차이가 없다. 이를테면 운영체계를 막 설치하고 첫 번째 부팅을 했을 경우, 혹은 자주 사용하지 않는 프로그램을 실행했을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단순 파일 복사 작업을 할 때도 일반 HDD에 비해 속도 향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③ 운영체계 호환성(일부 모델)
: 2007년 즈음에 나온 삼성전자의 ‘스핀포인트 MH80’나 씨게이트의 ‘모멘터스 PSD’ 같은 초기형 하이브리드 HDD의 경우, 윈도우 비스타 및 윈도우 7에서만 제 성능을 발휘했으며, 그 외의 운영체계에서는 일반 HDD와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2010년에 나온 씨게이트의 모멘터스 XT와 같은 제품은 이 점을 개선하여 다른 운영체계에서도 완전한 성능을 발휘하게 되었다.
HDD와 SSD의 사이의 징검다리
하이브리드 HDD의 특성은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다. 간략히 요약하자면 하이브리드 HDD는 성능 측면에서는 SSD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일반 HDD보다는 높은 수준을 기대할 수 있으며, 가격 측면에서는 일반 HDD보다 다소 비싸지만 SSD에 비하면 훨씬 싸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매우 이상적인 저장 장치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제조사의 지속적인 홍보 및 소비자들의 관심이 더해지지 못한다면 그 어느 쪽에도 특화되지 못한 어중간한 제품으로서 시장에서 사라질 우려가 있는 사실이다. 실제로 2007년 즈음에 나온 초기형 하이브리드 HDD는 이렇다 할 시장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잊혀졌다.
하지만 최근, 고성능 저장장치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제조사 측에서도 초기 모델보다 성능이 개선된 새로운 하이브리드 HDD를 내놓고 있으므로 상황이 조금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HDD와 SSD의 사이에서 하이브리드 HDD가 ‘징검다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