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국내 망 사용료 갈등, 망 중립성 해체 가속화?
[IT동아 김영우 기자] 지난 19일, 인터넷서비스제공자(이하 ISP)인 SK브로드밴드는 콘텐츠제공자(이하 CP) 중 한 곳인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망 이용료)를 내야 한다는 취지의 중재안을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 신청했다. 국내에 넷플릭스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인터넷 망에 막대한 트래픽(부하)가 발생했으며, 이에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에 망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만약 방통위가 SK브로드밴드의 손을 들어준다면 KT나 LG유플러스를 비롯한 다른 ISP 역시 넷플릭스에 망 사용료를 요구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해묵은 논쟁인 ‘망 중립성’ 원칙의 실효성에 관련되어 있다. 망 중립성이란 이용자와 CP의 권리를 우선하여 ISP는 모든 콘텐츠를 차별없이 다뤄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특히 CP들로부터 호응을 얻는 주장이기도 한데, ISP가 CP 덕분에 이용자들에게 요금을 받고 있다는 점을 그들은 강조한다. 반면, ISP들의 주장은 다르다. 오히려 CP들이 ISP가 구축한 망을 이용해 사업을 하며 수익을 얻고 있으므로 당연히 CP는 ISP에게 망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를 가리는 것만큼이나 풀기 어려운 문제다. 이와 관련하여 2012년, KT는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삼성전자 스마트TV의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했다가 방통위의 중재로 5일 후 차단을 해제하는 일도 있었다.
최근의 상황은 ISP가 CP에게 일정한 망 사용료를 내는 것으로 정리되고 있는 것 같다. 이미 네이버나 카카오 등의 국내 대형 CP들은 ISP에게 매년 수백억 원 단위의 망 사용료를 지불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가 아닌 해외 CP들은 망 사용료를 내고 있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이들은 해외에 데이터센터를 두고 있기 때문에 한국 이용자들은 이들 서비스를 원활하게 이용하려면 ISP측에서 해외 접속용 망을 증설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다만, 해외 CP들은 이와 관련해 망 사용료를 내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이들이 아예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설치하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이런 본격적으로 투자를 하기엔 한국 시장의 규모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이러는 와중에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의 해외 CP들의 서비스가 크게 인기를 끌면서 그동안 국내 CP에게는 '갑'이었던 ISP들이 해외 CP들에겐 '을'이 되어버리는 상황이 되었다. 이는 ISP는 물론, 이들에게 망 사용료를 지불하던 국내 CP 입장에서도 썩 맘에 드는 상황이 아니다. '역차별'을 당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해외 CP들은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설치하거나 망 사용료를 지불하는 대신 한국의 ISP에 '캐시 서버'를 설치하는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는 이용자와 가까운 곳에 자주 이용하는 임시 데이터를 저장해 두는 서버로, 이를 이용하면 해외망 접속빈도를 줄일 수 있어 전체적인 트래픽이 개선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참고로 구글은 한국의 ISP에 캐시 서버를 설치해 운용하고 있다.
< 구글의 캐시 서버인 '구글 글로벌 캐시' (출처=구글)>
이번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 사이의 망 사용료 갈등 과정에서도 넷플릭스 측에서 SK브로드밴드 측에 캐시 서버의 설치를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SK브로드밴드에선 망 사용료 지불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예전에 또 다른 해외 CP인 페이스북과의 분쟁 과정에서 결국 망 사용료를 받는 것으로 올해 초 계약을 맺은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SK브로드밴드에 이어 KT와도 올해 10월 망 사용료 계약을 체결했으며, 또다른 ISP인 LG유플러스와도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 다수의 해외 CP가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망 사용료 갈등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상황은 ISP측에 좀 더 유리해 보인다. 무엇보다도 지난 2018년 4월,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망 중립성 원칙을 공식적으로 폐기했다는 것이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상황이 극단화 된다면 이용자들이 지불하는 인터넷 접속 요금이 인상되거나 소규모 CP가 망 사용료 부담으로 인해 사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례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ISP와 CP가 각자의 노력에 의한 정당한 대가를 주고받되, 사용자의 편익을 등한시하지 않는 기본 자세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