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전자 장병화 회장 "40년 걸은 음향 길, 이제 청년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
[IT동아 권명관 기자] 가락전자는 우리의 가락을 소중히 생각하고 이어가겠다는 일념으로 1977년 설립한 이후, 42년간 이어온 국내 최초 음향/영상 전문 기업이다. 끊임없는 개발을 통해 확보한 기술력 국내뿐만 아니라 독일, 미국 등 세계 여러 나라에 제품을 공급하는 수출 기업으로, 30여 년간 음향설계, 컨설팅, 전문시공 등의 경험을 통해 음향/영상 분야에서 전통성과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가락전자의 전신 '경일엔터프라이즈'를 설립한 장병화 회장은 42년간 이어온 경험만큼 이력도 화려하다. 장 회장은 1977년 10월부터 1995년 9월까지 경일엔터프라이즈 대표, 1995년 11월부터 2015년 5월까지 가락전자 대표로 약 40년간 민간 기업을 운영했다. 또한, 부천벤처협회 회장, 관동대학교벤처창업 겸임교수, 방송음향산업협의회 회장, 성남산업진흥재단 대표 등을 역임한 바 있으며, 현재 한국무역협회 이사, 광복회 이사 등으로 70이 넘은 나이에도 아직까지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가락전자 장병화 회장 >
이에 IT동아는 부천 테크노파크에 위치한 가락전자를 찾아 장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자신이 쌓아온 40년의 사업 경험을 통해 후배들을 위한 길을 열어주고자 한다. '인생은 삼모작'이라며, 이제 사회 공헌 활동를 위해 노력하고 싶다는 장 회장의 바람을 이 자리에서 전한다.
42년, 음향 한길만을 걸어온 가락전자
IT동아: 42년. 실감나지 않는 세월이다.
장병화 회장(이하 장 회장): 73년 인생 동안 절반이 넘는 기간을 가락전자와 함께 걸어가는 중이다. '미치면 영원히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다(웃음). 다만, 인생이라는 큰 세월 동안 나름의 방향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인생은 삼모작'이라고 생각한다. 서른까지 나 자신을 완성해가는 단계라고 한다면, 서른부터 예순까지 완성된 것을 가지고 자아실현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예순부터 사회 공헌, 사회 봉사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문제에서 길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하는 중이다.
IT동아: 음향/영상 전문 기기를 개발하고 있는 가락전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장 회장: 처음 시작은 앰프였다. 가락전자의 전신 경일엔터프라이즈를 설립한 70년대는 '음악다방'의 시대였다. 영화 '쎄시봉'을 떠올리면 될텐데, 팝음악뿐만 아니라 클래식 등을 많이 틀어줬었다. 당시 국내 업체 최초로 DJ를 위한 오디오 믹서(여러 종류의 음원을 합치거나 조절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 공급했다. 지금의 가락전자가 탄생한 셈이다.
당시 대부분의 음악다방 DJ들은 품질은 좋지만 값이 비쌌던 수입 오디오 믹서를 사용했는데, 저렴하고 품질도 좋은 우리 제품을 인정받으면서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 서울 명동 등 유명 음악다방을 거쳐 전국으로 확장하며 당시 왕성하게 활동하던 DJ들은 대부분 만났던 것으로 기억난다. 쎄시봉도 우리 가락전자의 믹서를 사용했다(웃음).
< 장 회장 사무실 한쪽에 마련된 청음실 >
IT동아: 40년 전의 기술과 지금의 기술은 많이 다를텐데.
장 회장: 맞다.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당시 기술은 진공관이었지만, 이제는 디지털 시대다. 당시 기술은 이제 사장되었다. 변화하는 시장의 흐름에 맞춰 계속해서 기술을 개발한 것이, 40년이라는 세월 동안 한 분야에서 꾸준히 사업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자부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있다. 음향/영상이라는 것은 그저 '기술'만으로는 완성할 수 없다. 예술적인 것, 인문학적인 것이 필요하다. 사운드, 소리라는 것은 개개인마다 다르다. 청취자들이 원하는 소리를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소리를 다루는 전문가(DJ, 엔지니어 등)의 의견도 중요하다. 제품을 다루는 '사용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찾아야만 한다.
때문에 많은 외부 활동을 통해 고객을 만났다. 세미나, 강연에 참석하고, 소양을 높일 수 있는 전문 서적도 탐독했다. 시대의 흐름에, 기술의 발전에 도태되지 않는 심미적인 가치를 추구했다. 예술적 감각과 스토리가 – 장 회장은 이를 '디자인'이라고 표현했다 – 중요하다. 사용자가 찾지 않는 기술은 시장에서 필요로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도태되기 마련이다.
< 장 회장은 '가락'에 담은 뜻을 항상 저장하고 다닌다 >
소리를 디자인한다는 의미
IT동아: 가락전자가 말하는 기술 '디자인'이라는 것이 궁금하다.
장 회장: 디자인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그림, 디자이너 등을 연상한다. 하지만, 진정한 디자인의 뜻은 '주어진 목적을 조형적으로 실체화하는 것'이다. 스마트폰 이후 강조되고 있는 사용자 경험(UX), 사용자 인터페이스(UI)도 넓은 의미로 보면 '디자인'이다. 사용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원하는 바를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 준비하고 제공해야 하는지 등을 파악해야 한다. 사용자를 위해 제품을 디자인하고, 사용자를 위해 기술을 디자인해야 한다.
< 가락전자 강당 우수조달 사례 >
가락전자는 지난 세월을 이렇게 디자인했다. 초기 음향 기기는 단순했다. 믹서와 앰프, 스피커 등 제품을 잘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의 음향 기기는 하드웨어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면 안된다. 소리를 이해해야 한다. 고음과 저음을 보완하는 회로가 필요하고, 음향 제품을 설치하는 장소과 용도에 따라 소리를 달리해야 한다.
넓은 강연장에서 강연자가 많은 청중에게 목소리를 전달한다고 가정해보자. 음향 기기가 강연자의 소리를 크게 전달하면 끝일까? 아니다. 강연자의 감정을 청중들이 느낄 수 있도록, 소리를 보정해서 감정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제공해야 한다.
IT동아: 소리를 이해하고 소리를 디자인한다는 것은, 결국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파악해 그에 알맞는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나.
장 회장: 맞다. 그게 디자인이다. 우리는 소리를, 목소리를 분석한다. 강연자의 말을 (청중에게) 끊기지 않게 전달되어야 하고, 저음과 중음, 고음이 뒤섞인 음악을 명확하게 들려줘야 한다. 무엇보다 각각 성향이 다른 청중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 그래서 음악이, 음향이 참 어렵다.
< 소리를 디자인한다는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장 회장 >
야외무대에서 진행하는 콘서트를 생각해보자. 야외는 실내와 또 다르다. 무대 위 소리와 주변의 소리가 함께 들린다. 허공에 부는 바람에 따라 소리가 흩어지기도 하고, 예상할 수 없는 고음이 음악 속으로 뛰어들기도 한다. 고민이 필요하다. 무엇을 강조할 것이고, 무엇을 덜어낼 것인지.
그저 싸고, 음량 큰 스피커가 최고다? 아니다. 이런 생각으로만 음향 기기를 다루던 업체들은 다 무너졌다. 전문 기술과 더불어 경험(운영에 대한 노하우)이 필요한 이유다.
스타트업을 향한 인생 삼모작 열정
IT동아: 지난 3월, 4년간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노력했던 성남산업진흥원 원장 퇴임식이 있었다.
장 회장: 4년 전, 성남시가 현장 경험을 쌓은 기업인을 찾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돌이켜보면 당시 성남시 이재명 시장(현 경기도지사)이 기업 전문가를 찾았던 것 같다. 약 15명 정도가 원장 취임에 응시했고, 성남산업진흥원 원장을 역임하게 됐다.
< 성남산업진흥원 퇴임식 당시 장 회장 모습, 출처: 성남산업진흥원 블로그 >
지난 4년간 참 많은 것을 바꾼 것 같다(웃음). 부임하면서 내세웠던 경영방침은 '2현 3무' 즉, 이틀은 현장을 분석하고, 사흘은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4차산업혁명 흐름 속에 스타트업 스스로 새로운 시장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지식포럼을 강화했고, 이를 발판으로 다양한 응용 소프트웨어, 서비스 시장 진출을 위한 전략과 플랫폼 기반 사업 등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했다.
젊은 청년들이 창업에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컨셉의 '정글on+ 창업센터'는 그렇게 탄생했다. 무한한 가치가 정글 속에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스타트업 스스로 정글 속에서 가치를 찾길 희망했다.
'정글on', '정글on+', 'Connect21', '특허은행', '메디바이오캠퍼스', 'CES REVIEW', 'FWC', 'Wisdom salon', 'KAIST co-up', '친구맺기 2현3무', '리빙랩', '벤처펀드', '엔젤펀드', '진흥원 명칭변경', '결제간소화', '수평조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기억이다. 미약하지만, 성남시 중소벤처기업 경쟁력 강화와 4차산업혁명 정책추진에 도움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 제 4차 J-포럼(정글on/정글on+)의 장 회장 모습, 출처: 성남산헙진흥원 >
IT동아: 초기 스타트업이 창업 아이템,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도록 도운 느낌이다.
장 회장: 맞다. 아이디어를 찾으면 사업화하는 것은 우리가 돕겠다는 생각이 컸다. 그리고 스타트업이 찾아낸 아이디어를 지킬 수 있도록 주력했다. 아이디어를 특허로, 특허를 지적재산권(IP)으로, IP를 보호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IP는 자산이고, 기술 평가의 가치라는 개념을 새겼다.
성공적인 스타트업 생태계라고 꼽히는 미국의 실리콘밸리는 사실 'IP 거래소'에 가깝다. 좋은 IP를 발견하고 보호한 뒤, 성장시킨 스타트업이 좋은 가치 평가를 얻는다. 스타트업이 아이디어를 IP로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기초기술을 위한 확보도 병행했다. 달리 표현하면, 완성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해 부품에 필요한 기술 즉, 요소기술이다.
기초기술, 요소기술은 대부분 대학교가 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은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요소기술을 스타트업 아이디어와 융합해 제품 또는 서비스를 출시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에 서울대와 카이스트를 유치해 스타트업을 연결할 수 있는 창구 역할도 담당했다.
< 가락전자가 보유하고 있는 다양한 특허증 및 인증서, 상표/디자인 등록증 등 >
IT동아: 외람되지만, 40년 가까이 업체를 성장시킨 뒤 창업, 스타트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이제 현장에서 물러나 쉬어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지 않을 것 같 같은.
장 회장: 가락전자에서 오래 근무한 직원들이 퇴사하면 창업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떻게 보면, 사내벤처와 비슷했다. 자신의 꿈을 찾아 나서는 직원들에게 경험을 알려주면서 자연스럽게 스타트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창업 그거, 돈만 있으면 되는 것 아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아니다. 생각을 바꾸고, 방법을 바꿔야 한다. 지금 창업을 위해 지원하는 자금은 찾아보면 주변에 정말 많다. 초기 자금 3,000만 원을 지원받아 창업하고, 하다가 안되면 말고, 다른 아이디어로 다시 초기 자금을 지원받아 창업하고… 불필요한 반복이다. 마치 좀비 기업, 좀비 스타트업과 같은 모습이다.
좋은 성적표를 받아 마치 졸업하는 듯한 창업 문화의 스타트업은 필요 없다. 투자자, 심사위원이 스타트업과 끝까지 함께 성장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IT동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장 회장: 지난 4년 동안 성남산업진흥원에서 많은 스타트업과 긴 시간을 보냈다. 가락전자로 돌아온 지금, 이제는 그 동안의 경험을 젊은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을 주고 싶다. 협력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지, 하나씩 찾아갈 생각이다. 인생 삼모작 중 마지막 단계 아닌가. 작은 지식이지만, 스타트업에게 사용해보고자 한다. 그저 창업이 끝이 아닌, 파트너로서 길을 걷고 싶다. 젊은 청년과 함께 걷고자 하는 가락전자에게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