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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IT 기술과 결합한 패션의 신세계

강일용

[IT동아 강일용 기자] 패션과 인공지능, 가상현실,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IT 기술의 융합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가장 흥미로운 변화는 옷과 IT 기술이 결합하는 것이다. 수 많은 도전과 혁신으로 '아저씨들이나 입는 청바지 브랜드'라는 인식을 벗고 재도약하고 있는 리바이스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1870년 세계 최초로 청바지를 만들어 유통한 이 브랜드는 2000년대에 들어 큰 침체에 빠져있었다. 2011년 리바이스에 합류한 칩 버그(Chip Bergh) 최고경영자는 강력한 브랜드 리모델링 끝에 리바이스의 인지도를 개선하고 하락하는 매출을 반등시키는데 성공했다.

칩 버그는 청바지의 원조라는 전통과 IT 기술이라는 변화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유서 깊은 브랜드가 과거에 지나치게 머무르면 낡고 먼지 쌓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역사를 무시하면 가장 강력한 자산으로부터 멀어지는 꼴이 된다"며 과거의 유산을 IT 기술을 적극 활용해 최신 트렌드에도 대응할 수 있는 핫(Hot)한 아이템으로 바꾸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리바이스 스마트 재킷<리바이스가 구글과 협력해 개발한 스마트 트러커재킷>

지난 해 9월 리바이스는 트러커재킷(트럭 운전사들이 즐겨 입는다는 뜻의 데님 재킷) 출시 50주년을 맞이해 구글 첨단 기술 제품팀(Advanced Technology and Products, ATAP)과 협력해 '스마트 트러커재킷'을 출시했다. 2015년 '프로젝트 자카드'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소개된 이 스마트 트러커재킷은 데님 원단 속에 구리 소재의 전도성 물질을 넣어 소매 부분을 터치하는 것만으로 스마트폰을 제어할 수 있는 웨어러블(Wearable) 기기다. 소매 부분을 좌우로 쓸어 넘기거나 두드려 음악 변경, 전화 응대, 문자 확인, 구글 지도 등을 실행할 수 있고, 스마트 단추에서 생겨나는 진동이나 미리 연결해둔 이어폰을 통해 현재 위치나 목적지를 향해 가는 방법 등 다양한 정보를 안내받을 수 있다. 전용 앱을 통해 개인에게 맞게 설정을 변경할 수도 있다. 한 번 충전으로 2주 정도 이용할 수 있고, 스마트 모듈을 탈부착할 수 있기 때문에 빨래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이러한 스마트 트러커재킷을 통해 리바이스의 옷은 다시 시장에서 통하는 핫 아이템이 될 수 있었다. 2017년 리바이스 트러커재킷 판매량은 전년 대비 40% 이상 늘어났다. 이러한 성공에 고무된 리바이스는 현재 구글과 협력해 두 번째 스마트 재킷을 준비하고 있다.

옷만 변하는 것이 아니다. 옷을 대중에게 알리는 마케팅 방식도 IT 기술을 적극 활용해 변하고 있다. 미국의 의류 브랜드 타미힐피거는 2015년 고객이 자사 매장에서 모델들의 런웨이(패션쇼에서 모델이 걷는 무대)를 감상할 수 있는 가상현실 패션쇼 마케팅을 진행했다. 가상현실 기기만 있으면 매장을 방문한 고객이나, 집에 있는 고객 모두 패션쇼에 참가한 것처럼 360도로 런웨이 현장을 감상할 수 있다. 과거에는 일반 고객이 패션쇼를 감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패션 채널에서 하는 방송도 패션쇼에 대한 고객의 열망을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하지만 패션쇼에 가상현실 기술을 접목함으로써 패션쇼를 모든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마케팅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에르메스, 발렌시아, 폴로 랄프로렌 등 내로라하는 패션 브랜드들이 가상현실을 활용한 패션쇼 마케팅을 앞다투어 선보였다.

범용 가상현실 기기 대신 직접 가상현실 기기를 개발해 패션 마케팅에 나선 기업도 있다. 프랑스의 패션 브랜드 디올은 '디올 아이(Dior Eye)'라고 이름 붙인 전용 가상현실 헤드셋을 선보였다. 디올 아이와 스마트폰을 연결하면 디올 런웨이 백스테이지 풍경은 물론 메이크업 아티스트에 둘러싸인 모델과 디올의 주요 디자이너들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지금도 많은 독립 디자이너들이 자신이 개최한 패션쇼 런웨이를 일반 동영상뿐만 아니라 가상현실 기기용 360도 영상으로도 제작해 관객들에게 현장에 온 것 같은 생생함을 전달하고 있다.

디오르 아이<디올 아이>

하지만 사용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는 옷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유통 환경이 변하는 것이다. 중국 최대 인터넷상거래 사업자인 알리바바는 2016년 가상현실을 활용한 쇼핑 시스템을 선보였다. 가상현실 기기를 착용하고 알리바바 앱을 실행하면 가상으로 만든 백화점이 소비자 눈 앞에 펼쳐진다. 가상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옷을 둘러보고, 패션쇼와 같은 각종 이벤트를 체험한 후 실제로 해당 물건을 즉기 구매할 수 있다. 이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해 알리바바는 놈매직(GnomeMagic)이라는 가상현실 연구소를 설립해 관련 기술을 개발했다.

지난 8월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고 전 세계 최초로 혼합현실(Mixed Reality) 쇼핑몰도 개장했다. 혼합현실이란 현실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실감나는 증강현실 기술을 의미한다. 알리바바의 본사가 있는 중국 항저우 일대에 세워지는 '타오바오마이아(Taobao maia)'는 모든 쇼핑이 증강현실로만 이뤄지는 쇼핑몰이다. 소비자들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증강현실 헤드셋 ‘홀로렌즈’를 착용하고 쇼핑몰에 들어서면 곳곳에 진열된 상품의 홀로그램을 통해 상품의 정보를 얻은 후 이를 구매할 수 있다. 타오바오마이아는 제품 진열부터 판매까지 모든 것이 무인화되어 있다. 소비자는 단지 증강현실 헤드셋을 끼고 매장에 입장해서 서비스를 경험한 후 다시 헤드셋을 반납한 후 자신이 구매한 제품을 받아서 퇴장하면 된다. 경험, 구매, 지불이라는 모든 절차가 자동화된 미래의 쇼핑몰인 셈이다.

패션에 인공지능을 결합한 패션 큐레이션 스타트업 스티치픽스의 사례도 주목할만하다. 하버드대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던 카트리나 레이크(Katrina Lake)가 2011년 설립한 이 기업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한 맞춤형 패션 큐레이션이다. 사용자가 자신의 신체 사이즈, 취향, 옷을 입을 시기 등을 앱과 사이트를 통해 알려주면 패션 큐레이터와 인공지능이 이를 분석해서 엄선한 5개의 패션 아이템을 보내준다. 사용자는 이 가운데 마음에 드는 아이템을 구매하면 된다.

스티치픽스는 수천 명의 패션 큐레이터를 고용하고 있지만, 패션 추천의 핵심은 수집한 빅데이터를 통해 생성한 정교한 인공지능이다. 100여명의 개발자들이 사용자가 선호하는 패션과 트렌드를 분석해 수백 개의 알고리즘을 만들어 추천 시스템에 적용했다. 알고리즘을 토대로 사용자의 신체 사이즈, 피부톤 등을 분석해 사용자가 마음에 들어할 패션 아이템을 찾아낸다. 이렇게 인공지능이 찾아낸 패션 아이템을 패션 큐레이터가 한 번 더 검증함으로써 사용자의 구매율을 높이고 있다. 이러한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지난 해 11월 미국 나스닥에 입성한 스티치픽스는 약 26억 달러의 시가총액과 6000여명이 근무하는 기업으로 거듭났다. IT 기술을 활용한 추천 서비스를 통해 소규모 다품종 유통을 추구하는 스티치픽스의 사례는 대규모 소품종 유통을 중시하는 패스트패션이 지배해왔던 기존 패션 업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스티치 픽스

유통 업계의 강자 아마존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패션 큐레이션 사업에 진출했다. 2017년 아마존은 사용자가 자신의 사진을 업로드하면 인공지능 비서 서비스인 알렉사를 통해 사용자에게 어울리는 패션 아이템을 제안하는 '에코 룩'을 선보였다. 아마존은 여러 패션 브랜드를 인수한 상태인데다가 로봇이 자동으로 옷을 만들어내는 재단사 로봇과 주문형 생산 시스템에 관한 특허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등 에코 룩과 시너지 효과를 낼 요소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사실 에코 룩의 비즈니스 모델은 스티치픽스와 동일하지만, 아마존닷컴으로 미국 온라인 유통 업계와 알렉사로 가정용 인공지능 시장을 장악한 아마존이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파급효과가 훨씬 클 전망이다. 실제로 아마존이 에코 룩 비즈니스를 본격적으로 전개하자 51달러로 최고점을 찍었던 스티치픽스의 주가는 26달러 정도로 줄어들었다. 위기감을 느낀 카트리나 레이크 스티치픽스 최고경영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스티치픽스의 강점은 패션에 특화된 인공지능 알고리즘과 수천 명의 패션 큐레이터에 있다며, 이는 아마존이 결코 따라하지 못하는 스티치픽스만의 강점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아마존 에코룩

변화는 해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내 패션 브랜드들도 패션과 IT 기술을 결합해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을 운영 중인 롯데쇼핑은 인공지능 챗봇 '로사'를 개발해 쇼핑을 즐기러온 사용자들에게 다양한 브랜드와 패션 아이템을 추천해주고 있다. 로사는 사물을 인식하는 인공지능 기술(컴퓨터 비전)울 활용해 사용자가 촬영한 패션 아이템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유사한 스타일의 제품까지 소개해주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는 강릉 직영점을 가상현실과 사물인터넷을 활용한 지능형 쇼핑몰로 탈바꿈 시켰다.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 맞춰 한시적으로 운영된 이 매장은 상품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스마트 행거, 옷을 직접 입지 않아도 디스플레이를 통해 옷을 입은 모습을 미리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 미러, 신체 인식 기능을 통해 맞춤형 상품을 추천해주는 스마트 브로셔, 증강현실로 원하는 아이템을 입어볼 수 있는 AR 피팅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회사의 도전은 예시일 뿐이다. 국내의 모든 패션 브랜드가 패션과 IT 기술의 융합을 통한 변화와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한 가지 근본적인 의문에 부딪친다. 왜 패션 브랜드들은 꾸준히 IT 기술과의 융합을 시도하고 있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고객 경험 향상과 쇼핑 실패 방지에 따른 구매율 향상이다. 오프라인 쇼핑은 만족도가 높지만 접근성이 떨어진다. 온라인 쇼핑은 접근성은 뛰어나지만, 쇼핑 실패에 따른 만족도 저하라는 문제가 있다.

IT 기술은 이러한 쇼핑업계의 딜레마를 해결해줄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다. 기술을 통해 고객 경험을 향상시키고, 이를 통해 이들의 구매를 유도한다. 개인의 취향을 분석해 최적의 패션 아이템을 제시함으로써 쇼핑이 실패한 확률을 최소화한다. 이를 통해 정체된 매출과 영업이익을 신장시키고, 브랜드 충성도 높은 팬층을 만들 수 있다. 핵심은 고객 만족이다. 패션 브랜드를 비롯한 모든 기업에게 IT 기술은 고객 만족을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IT 기술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 칼럼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행하는 격월간 매거진 '엔콘텐츠(N content) vol.9 : 콘텐츠가 상상하는 문화기술의 미래'에 실린 기사를 다듬은 것입니다. 해당 링크에 들어가면 더 많은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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