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화되고 있는 한국오라클의 파업... 클라우드 경쟁력 악화로 이어지나

강일용 zero@itdonga.com

[IT동아 강일용 기자] 한국오라클노동조합의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지만 아직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16일부터 한국오라클노조는 무기한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오늘로 77일째다.

한국오라클노조의 파업은 외국계 IT 기업의 파업으로 최장 기록을 매일 경신하고 있다. 이전까지 외국계 기업의 최장 파업 기록은 지난 2000년 한국후지쯔의 18일간의 파업이었다. 모든 업무를 전면 중단하는 전면 파업(Strike)이 아니라 특정 시간에만 파업을 하거나 처리할 수 있는 업무량을 줄이는 일부 파업(Sabotage) 형식을 취하고 있다.

2017년 10월 설립된 한국오라클노조는 한국HP, 한국마이크로소프트에 이어 IT 업계의 외투법인에 세워진 세 번째 노조다. 오라클은 미국의 IT 업계의 거인 래리 엘리슨이 설립한 데이터베이스, 서버,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관련 기업으로, 특히 데이터베이스 업계에선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회사다.

한국오라클
한국오라클
<파업에 돌입한 한국오라클노조>

과거 한국오라클은 높은 연봉과 좋은 대우로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직장이었다. 하지만 클라우드 시대가 열리고, 한국오라클 사업 전체가 부진의 늪에 빠지자 사상누각을 드러내고 말았다.

한국오라클노조가 파업에 나선 가장 큰 이유는 성과급제의 임금체계다. 한국오라클은 대부분의 직원과 성과급 기반의 연봉계약을 맺고 있다. 직원 상당수가 오라클의 기술과 서비스를 국내 기업에게 판매하는 영업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 한국오라클은 기본급을 거의 인상하지 않고 직원들이 성과를 내야 관련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매년 직원들이 내야하는 성과를 정한 후 이를 100% 달성해야 계약서에 적어둔 연봉을 모두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오라클의 사업이 부침에 빠지자 100% 성과를 내는 직원의 수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상당수의 직원들이 50%가 채되지 않는 성과를 내고 있다. 기본급이 동결된 상태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니 사실상 임금 삭감과 다를바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 때문에 10년 이상 일한 직원들보다 신입직원의 연봉이 더 높은 경우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물론 오라클의 기술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우수고객도 한국에는 아직 많다. 100%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는 기업들이다. 하지만 한국오라클노조의 주장에 따르면 관리자(매니저)들과 친한 직원만 이렇게 좋은 고객사를 받을 수 있고, 대다수의 직원에겐 이러한 고객사가 할당되지 않는다.

한국오라클노조가 지적하는 두 번째 문제는 높은 노동강도다. 노조에 따르면 주당 110시간 이상 근무하는 직원들도 있다. 고객사에게 문제가 생기면 바로 출동해야하기 때문에 주말에도 24시간 대기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장애가 장기화되면 일주일 이상 집에 가지 못하고 밤새 일해야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인력이 부족해 교대근무도 쉽지 않다.

문제는 이렇게 장기 근무를 시키면서 직원들이 근무시간을 80시간까지만 입력할 수 있도록 해 관련 수당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노조측의 지적이다. 80시간을 초과하는 근무시간은 대체휴가로 보상을 제공하고 있지만, 실제론 인력부족이라는 문제 때문에 이러한 휴가를 제대로 쓸 수 있는 직원은 거의 없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한국오라클노조가 파업에 나서기 앞서 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하자 전체 조합원의 96%가 파업에 찬성할 정도였다. 현재 한국오라클의 직원은 1150여명 정도인데, 이 가운데 600명 이상이 노조에 가입한 상태다.

오라클 디지털 프라임
오라클 디지털 프라임
<클라우드 사업을 위한 한국오라클의 '오라클 디지털 프라임' 사업부>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한국오라클의 비즈니스도 타격을 입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회사의 미래 먹거리가 되어야할 신규 서비스와 사업 관련 홍보와 마케팅이 마비된 것이다. 지난 5월 한국오라클은 기존 데이터베이스 관리 방식을 혁신할 '자율주행 데이터베이스(Autonomous Database)'를 언론과 고객사를 대상으로 알릴 계획이었으나, 한국오라클노조의 파업으로 관련 행사를 전면 취소했다. 언론의 관심이 오라클의 기술과 서비스 대신 파업에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5월 이후 한국오라클은 언론을 대상으로한 기자간담회를 개최하지 않고 있다. 클라우드 관련 홍보와 마케팅도 경쟁사들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반면 한국오라클의 행동은 멈춘 상태다.

클라우드 사업은 올해가 고비다. AWS,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클라우드 등 오라클의 경쟁사들은 클라우드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가트너 매직쿼드런트 리더 등급(인프라 서비스 기준)을 받고 관련 기술 개발과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미국 오라클 본사도 이에 대응하기 위해 관련 기술 개발과 마케팅에 적극적이다. 네이버클라우드플랫폼, KT 등 국내 클라우드 사업자들도 스타트업과 공공부문을 대상으로한 클라우드 사업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오라클은 이러한 움직임을 손놓고 바라만 봐야 하는 상황이다. 데이터베이스 기업에서 클라우드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앨리슨 오라클 회장의 선언이 무색하다. 한국오라클의 클라우드 사업과 신규 데이터베이스 기술이 국내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한국오라클사측과 노조간의 타협이 절실한 시점이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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