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한의 미디어 세상] 한국 시장에서 넷플릭스를 배척하고 싶다? 글로벌에서 싸울 각오를 해야 한다
[IT동아] 넷플릭스에 넷플릭스 로고를 달고 있는 콘텐츠가 늘어난다고 겁을 먹어야 하나?
Figure 1: 나중에는 넷플릭스 로고가 없는 콘텐츠가 화제가 될 날이 올지도.
제작(Original Production) 오리지널, 합작(Co-production) 오리지널, 라이선스 오리지널 등 모든 오리지널 콘텐츠에 넷플릭스 로고가 붙는다. 우리는 넷플릭스 내에서 넷플릭스 로고가 늘어날 때마다 그들의 영향력이 두렵다고 이야기한다.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는 넷플릭스의 정책(?) 때문에 한국에선 가입자 외에 넷플릭스의 영향력이 부풀려져 있는 부분도 있다.
최근에 정리한 몇 개의 글을 통해 넷플릭스의 영향력에 대해 알아보자. 넷플릭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있는 담당자들을 위한 글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싱가포르 기반의 이동통신사 Singtel과 Warner Media, Sony Television의 합작 OTT 회사인 훅(Hooq)의 프로모션 메일을 받았다.
훅(Hooq)은 필리핀을 비롯해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 싱가포르 등지에서 제공되는 SVOD/TVOD 혼합형 OTT 서비스다.
Figure 2: 메일 제목은 'Teen-rific shows & movies'였다. (10대들의 끝내주는 TV 쇼, 영화 이런 느낌이랄까)
오래된 콘텐츠도 보였지만, 그중에서 Marvel 브랜드를 달고 있는 두 TV 쇼를 발견할 수 있었다.
Figure 3: 왼쪽이 작년 11월에 훌루에서 서비스한 러너웨이즈, 오른쪽이 6월부터 방영 시작한 프리폼의 클록앤대거. 둘다 마블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이다.
Runaways는 미국의 OTT 플랫폼인 훌루(Hulu)가 제작한 작품이다. Cloak & Dagger는 Z세대(Generation Z)와 영 밀레니얼(Young Millennials) 공략을 위한 디즈니의 채널 프리폼(Freeform)에서 선보인 콘텐츠다. 둘 다 마블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만든 드라마이고, 둘의 세계관이 곧 크로스오버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훌루의 콘텐츠가 넷플릭스에 공급된 사례는 없다.
최근 디즈니가 폭스의 지분을 인수하려 하면서, 훌루 역시 넷플릭스의 미국 내 경쟁력을 깎아서 생존하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기려는 생각도 하는데, 힘들겠지만 넷플릭스와 훌루 둘의 공존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글로벌에선 힘들다. 훌루는 공식적으로 미국 내에서만 서비스하는 진행 중이다. 일본에도 동명의 서비스는 있지만 니혼TV 소속이다. 예전에 처분했다.
훌루가 러너웨이즈를 제작한 것이나 넷플릭스에게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을 가져온 것만 봐도, 그들의 목표가 영 밀레니얼과 Z세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단 방송이 아닌 오리지널에 한해서다.
Figure 4: 넷플릭스가 키즈 콘텐츠 수급에 열정적인 이유는 다 이유가 있다. 최근 넷플릭스에 올라온 카툰 네트워크의 어드벤쳐 타임을 보자.
넷플릭스가 사용 데이터 공개를 안 하는 이유 중 하나가 키즈 콘텐츠의 사용시간이다. 미국 NAB Show의 팍스 어소시에이트 콘퍼런스 중 신뢰할 수 있었던 내용을 들었다. 넷플릭스가 시청 데이터를 세분화해서 공개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키즈 콘텐츠의 리런(Re-run) 때문이라고 한다. 그 어떤 콘텐츠들 보다 상위에 위치한 것이 키즈 콘텐츠들이다. Z세대 시청자들은 좋아하는 콘텐츠를 한 번만 보지도 않고, 에피소드를 남겨두지도 않는다. 성인 오리지널들은 단 한 번도 키즈 콘텐츠를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함께 내놨다.
프리폼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넷플릭스와 디즈니가 갈라서기 전에 새도우헌터(Shadowhunters) 시리즈를 넷플릭스에 오리지널로 공급했으니 말이다.
그렇다 이것도 라이선스 오리지널이다.
Figure 5: 넷플릭스가 300억을 주고 구매했다는 스튜디오 드래곤의 미스터 선샤인도 넷플릭스가 제작에 관여하지 않고 로고만 붙이는 라이선스 오리지널이다.
해외에서는 스튜디오 드래곤의 미스터 선샤인도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이해할 것이다.
그런 디즈니, 훌루가 글로벌 판매를 위해서 디지털 OTT 파트너로 Hooq과 손을 잡은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넷플릭스의 힘을 더 키워줄 생각은 없으니 말이다. 일본도 넷플릭스가 아닌 일본 훌루에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디즈니의 글로벌 채널, 혹은 이제 FOX의 채널에서도 방영할 가능성이 높다. 넷플릭스 없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전략을 짠 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넷플릭스와 겨룰만한 콘텐츠 제작력과 유통력이 있는 회사다. 힘이 약한 사업자들은 넷플릭스와 경쟁을 하기보다는 손을 잡기도 한다.
넷플릭스를 잡으려고 만든 오리지널을 넷플릭스에 공급한 사례를 살펴보자.
Figure 6: 최근 넷플릭스에 올라온 폭스텔(호주 유료방송 사업자, 가입자 270만명)의 오리지널 콘텐츠 '시크릿시티'.
얼마 전 넷플릭스에 공개된 시크릿시티는 호주 쇼케이스(Showcase)라는 채널에서 먼저 방송한 후 유료 방송 사업자인 폭스가 만든 OTT 서비스인 폭스 플레이에 독점 공급한 콘텐츠였다. 이 작품의 경우 캐스팅과 스토리는 괜찮은 편이다. 한국에서도 인기였던 SF 드라마인 프린지에서 열연을 했던 호주 배우인 애나 토브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제작비 이슈로 영국과 같은 전략(미니시리즈, 6편이 1 시즌)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호주는 넷플릭스 때문에 고생한 대표적인 국가다. 뉴질랜드와 함께 아태지역에서 넷플릭스가 점령한 대표적인 사례다. 호주에서 넷플릭스의 영향력은 북미보다 더하다.
작년 말 넷플릭스 시청률이 FTA(지상파) 시청률을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출처: Roy Morgan / http://www.roymorgan.com/findings/7343-netflix-subscriptions- june-2017-20170927071
호주 유료방송 가입자보다 넷플릭스 가입자가 더 많기 때문이다.
구독자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설문조사에 따르면 호주의 넷플릭스 사용자는 900만 명이 넘는다. 2016년 11월 폭스텔 사용자보다 넷플릭스와 같은 OTT 사용자가 더 많다는 시장 조사 결과도 나왔다.
출처: Roy Morgan / http://www.roymorgan.com/findings/6957-svod-overtakes-foxtel- pay-tv-in-australia-august
결국 폭스텔은 넷플릭스와 경쟁하는 자국 내 OTT인 STAN과 경쟁하지 않고 모두 품는다는 전략을 세우게 된다.
폭스텔 나우(Foxtel Now)와 함께 자체 유료방송 플랫폼에서 STAN, Netflix를 모두 시청할 수 있는 플랜을 선보였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LG유플러스가 자사의 IPTV에 왓챠플레이와 넷플릭스를 모두 넣는다는 결정을 한 것과 마찬가지다.
어차피 경쟁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호주 시장에서 넷플릭스와 비슷한 수준의 콘텐츠를 생산해서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
넷플릭스가 단순 콘텐츠 어그리게이터였다면 이길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호주에서는 넷플릭스와 정면 승부를 벌였다가 다른 서비스로 전환한 퀵플릭스(QuickFlix)라는 사례가 있기 때문에, 캐나다 쇼미처럼 정면 승부를 하지 않고 같이 상생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http://it.donga.com/25156/ 참고, 이후 쇼미는 스포츠에 투자를 해서 살아남는다)
물론 항복 선언을 하고 있지 않은 Stan은 많은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시장 자체가 크지 않은 호주에서 오리지널이 잘될 리가 만무하다. 때문에 iFlix, Hooq 등 동남아의 OTT 파트너들과 협업하여 오리지널을 해외에 동시에 유통하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경쟁을 하되 손해를 보면 안되기 때문이다.
폭스텔은 넷플릭스와 관계 개선으로 호주에서 손해를 보지 않게 되었고, 무리하게 투자한 콘텐츠도 글로벌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타이틀을 달아 공급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 전략은 한국의 스튜디오 드래곤과 비슷하다. CJ E&M이 글로벌 매출이 필요한 드라마를 넷플릭스에 공급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넷플릭스와 경쟁자가 넷플릭스를 이용하는 방법
이제 방송국이 아닌 넷플릭스의 경쟁자가 넷플릭스를 이용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사례를 알아보자. 자사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에 유통하고 있는 아이치이(IQIYI)가 대표적이다.
Figure 7: 넷플릭스 오리지널 초즌:살인:게임
아이치이는 중국의 1위 동영상 플랫폼이다. 월 사용자만 5억 명이 넘는다. 최근 나스닥 상장도 성공하는 등 중국에선 넷플릭스의 대항마로 떠오르고 있다.
초즌은 원래 중국에서 아이치이 오리지널로 제작된 콘텐츠다. 이를 넷플릭스가 글로벌에 유통 중이다. 폭스텔과 유사한 케이스로 이해할 수 있으나 사실 조금 다른 면이 있다.
Figure 8: 넷플릭스에서 초즌을 실행하면 가장 먼저 뜨는 로고, 한국으로 따지면 넷플릭스에서 SK 브로드밴드의 OTT 서비스인 옥수수(oksusu)의 로고가 뜨는 것과 같다.
초즌을 실행하면 넷플릭스의 로고와 함께 아이치이의 로고가 뜬다. 아시아 공략과 북미 내 중국 커뮤니티를 위해 내년에 넷플릭스는 중국 콘텐츠 수급 및 오리지널 확보에 더 박차를 가할 예정이라고 한다.
최근 미국에서 한류/중화 콘텐츠를 유통하는 플랫폼인 드라마피버 차트에도 중국 콘텐츠가 상위권에 올라왔다. 넷플릭스가 가지고 있는 파워도 문제이지만, 우리가 자국 내 시장만 보다가 글로벌 트렌드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면 시장을 더욱 이해해야 한다. 중국도 노력하고 있다. 한한령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콘텐츠 파워가 약해 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다시금 생각해봐야 한다.
넷플릭스와 싸울 것인가? 그러면 누구랑 손을 잡을 것인가?
디즈니는 인도의 넷플릭스라고 불리는 핫스타(Hotstar)를 손에 넣었다. 넷플릭스와 아마존이 인도 시장에 어마어마한 투자를 한다 해도 핫스타를 이기기 힘들다. 인도에서 핫스타의 시장 점유율이 70%가 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1%도 되지 않는다.
폭스가 핫스타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디즈니는 폭스 인수를 통해 핫스타를 확보했다. 넷플릭스에게도 뼈아픈 일이다.
핵심은 이것이다. 협력을 하지 않겠다면, 글로벌에서 싸울 수 있게 명확한 카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적과 싸우려면 아군 설정이 중요하다. 넷플릭스랑 싸워서 이기고 싶은 것인지 그냥 지금의 편한 생활이 방해 받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먼저 파악해야 한다.
아시아에서 뷰(Viu - 홍콩 기반의 OTT 서비스로 아시아 10개국 이상에 서비스를 하고 있다. 대부분의 콘텐츠가 한국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많은 돈을 주고 한국 콘텐츠를 구매하고 있으며, 체리피커(콘텐츠를 선택해서 구매)가 아닌 볼륨 형식으로 콘텐츠를 구매하고 있다)에게 콘텐츠를 공급하는 것이 지상파를 비롯한 한국 방송사들의 행복이었다면 큰일 날 수도 있다.
그들이 대량으로 구매해주던 트렌드는 이제 끝날 가능성이 높다. 텐센트의 아시아 공략도 이제 시작될 듯 하다. 북미/유럽/남미에서 대단한 넷플릭스도 아시아에서는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과연 돈이 되는 시장인지 재고할지도 모를 일이다.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에 미칠 영향력이 너무 무섭기에 넷플릭스를 배척할 계획이라면, 한국 회사끼리 손을 잡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리고 기존의 프레임도 잊어버려야 한다. 얼마 전까지 티빙은 넷플릭스 이슈가 터지기 전 푹과의 전투를 위해 종편을 아군으로 장착한 것처럼 보였다. 아시아는 한국 방송사의 매출의 보고인 뷰(Viu)가 있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갈 수 있을까. 뷰도 콘텐츠 구매를 위한 현금이 빠르게 마르고 있다. 지상파 연합인 KCP는 북미에서 코코와라는 플랫폼을 드라마피버, 온디멘드 코리아, 비키에 공급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미국 시장의 주류가 아니다.
"넷플릭스와 싸우고 싶다면 주류와 손을 잡아야 한다."
한국 회사들이 뭉쳐 플랫폼을 만든 후 글로벌 시장을 공략한다?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아시아에서는 통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북미에선 어렵다. 한류가 주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방송사들도 넷플릭스와 10년간 싸우면서 망가질 대로 망가지기도 했지만 성장을 하고 있는 것은 기존 관습들을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얼마나 위협적인지 인정을 하기 시작했다.
HBO, Showtime의 최근의 행보를 공부하자. 그리고, 워너 미디어, 디즈니와 손을 잡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보자. 넷플릭스가 공통의 적이라면 우리끼리 손을 잡지 말고(잡아본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의 범위를 글로벌로 확대하자.
넷플릭스에게 한국에 못 들어온다고 문전박대한 후, 뒤에 가서 글로벌 콘텐츠 유통 좀 부탁한다고 이메일을 보낼 셈인가?
IT칼럼니스트 김조한 넥스트미디어를 꿈꾸는 미디어 종사자. Rovi에서 Asia Pre-sales/Business Development Head, LG전자에서 스마트TV 기획자, SK브로드밴드에서 미디어 전략 기획을 역임했고, KickSubs CSO를 거쳤다. '플랫폼전쟁'의 저자이며, 페이스북 페이지 'NextMedia'를 운영 중이다. 미국과 중국 미디어 시장 동향에 관심이 많으며, 매일 하루에 하나씩의 고민을 풀어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글 / IT칼럼니스트 김조한(kim.zohan@gmail.com)
*본 칼럼은 IT동아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