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열전] 유니콘 기업의 명성 되찾을까? 고프로와 액션캠
[IT동아 이상우 기자] 액션캠은 특별한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제작한 캠코더다. 몸에 부착할 수 있을 정도로 작고 가벼우며, 조작법 역시 간단해 버튼 한두 개만으로 설정을 바꾸거나 녹화를 시작할 수도 있다. 주로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거나, 자전거나 모터사이클 등을 취미로 타는 사람들이 자신의 장비나 몸에 부착해, 평소에는 촬영하기 어려웠던 장면을 촬영하는 데 쓴다. 특히 동영상을 촬영하면서도 두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환경에 더 어울린다.
최근에는 많은 제조사가 이러한 제품을 출시하고 있지만, 이전까지 액션캠을 부르는 대명사는 '고프로'다. 사실 실제 제품명은 '히어로'며, 고프로는 제조사 이름이지만, 마치 회사 이름이 브랜드 명칭처럼 자리잡고, 이 명칭이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고유 대명사 처럼 쓰이고 있는 셈이다.
고프로는 미국의 사업가 '닉 우드먼'이 세운 액션캠 전문 기업이다. 마케팅 회사를 세웠다가 사업을 접고, 파도타기 여행을 떠났던 닉 우드먼은 일반적인 필름 카메라를 이용해 사진을 촬영하던 중, 카메라를 손에 쥐고 보드를 타며 사용하기가 불편하다는 점을 알게 됐고, 이를 위한 제품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이렇게 2005년 4월 13일 출시된 고프로의 첫 번째 제품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오늘날의 캠코더가 아닌, 필름 카메라였다. 플라스틱 하우징 내부에 소형 필름 카메라를 집어넣어 물이나 외부 충격으로 부터 카메라를 보호하고, 탄력 있는 밴드를 팔에 감아 고정 시켜 사용한다. 쉽게 말해 35mm 필름 카메라를 하우징에 넣고, 이를 팔에 감아 고정시킨 제품이다. 생각보다 단순한 아이디어였지만, 이전까지는 아무도 이러한 방식을 생각하지 못했다. 즉 기존에 없던 시장을 개척해낸 것이다.
실제로 이전까지 이러한 역동적인 상황에서 사진이나 동영상을 얻기 위해서는 기존에 사용하던 캠코더나 카메라를 헬멧 같은 장비에 테이프로 붙여서 고정시키는 형태로 사용했다. 크고 무거운 장비를 몸에 붙였기 때문에 움직임이 불편하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카메라나 캠코더는 원래 이러한 용도로 제작한 장비가 아니기 때문에 조작 역시 불편했다. 이 때문에 영화 처럼 특수한 목적이 아닌 이상, 일상 생활에서는 사실상 사용하기 어려웠다.
이와 달리 고프로 히어로 35mm 모델은 200g의 가벼운 무게에 가로 7.6cm, 세로 6.4cm로 작으며, 버튼 하나만으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만큼,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최고의' 순간을 조금 더 쉽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기록할 수 있게 했다. 전용 하우징을 통한 방수 기능(수심 5미터)을 갖춰, 기존에는 담을 수 없었던 색다른 장면도 사진으로 기록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이 제품을 제작한 닉 우드먼 본인이 익스트림 스포츠 애호가인 만큼,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어떤 기능과 디자인이 필요한지 파악하고 이러한 점을 제품 개발에 적극 반영했다.
고프로 히어로 최초에는 35mm 필름 카메라로 시작했지만, 카메라와 관련한 기술이 발전하면서 히어로 제품군의 성능과 기능 역시 매년 강화됐다.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한 제품은 2006년 부터 본격적으로 출시됐으며, 우리가 오늘날 '고프로'라는 제품을 생각할 때 떠올리는 크기와 외형 역시 이 때부터 적용하기 시작했다. 고프로는 액션캠 제품을 매년 출시할 정도로 의욕이 왕성했다. 최초의 디지털 모델은 320 x 240 해상도의 동영상을 초당 10프레임으로 10초까지 밖에 촬영할 수 없었지만, 1년 뒤 출시된 모델은 500만 화소 카메라를 탑재하고, 512 x 384 해상도의 동영상을 최대 1분까지 30프레임으로 촬영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2010년 부터는 본격적으로 1,000만 화소가 넘는 이미지 센서를 탑재하기 시작했으며, 해상도도 풀HD 수준으로 높아졌다. 2012년 하반기 등장한 고프로 히어로3는 최초로 와이파이를 통한 무선 전송 및 원격 제어 기능을 갖춰 스마트폰 시대에 대응했으며, 2013년에는 이보다 촬영 성능을 개선하고 크기와 무게를 줄인 히어로3 플러스를 출시했다. 이듬해에는 성능을 개선한 것은 물론, 처음으로 터치스크린을 내장한 모델도 함께 선보이며 사용성을 더 개선하기도 했다.
고프로는 이처럼 의욕적인 제품 출시와 새로운 시장 개척을 통한 브랜드 이미지 확립에 힘입어, 2014년 6월 26일 성공적인 기업공개를 마치고 나스닥에 상장했다. 그간 쌓아온 브랜드 인지도 덕분인지 상장 첫 날, 주가가 한 때 38%까지 상승하기도 했다. 당일 고프로 시가총액은 4조 560억을 넘어섰다.
또, 화성 탐사를 다룬 영화 마션에서는 고프로 액션캠을 소품으로 사용한 것은 물론, 주인공인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 분)의 화성 생활을 담은 장면 중 상당수는 고프로 액션캠을 이용해 촬영한 장면이다.
이처럼 '액션캠=고프로'라는 공식은 오랜 기간 유효했지만, 이러한 영광은 오래 가지 못했다. 고프로가 기존에 없던 시장을 개척했으며, 이후 액션캠이라는 시장을 이끈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고프로가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우선 제품 용도가 제한적인 점이다. 방수, 소형, 간편한 조작 등의 장점은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이나 TV 예능에서 추격전을 촬영하는 데는 상당히 매력적인 조건이다. 하지만, 일반인이 공감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다. 특히 시장이 생각보다 작고, 제품 교체 주기가 3~4년 정도인 반면, 출시 주기는 1~2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신제품이 시장에서 자리잡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고프로의 가장 큰 어려움은 시장 진입 장벽이 너무 낮아 경쟁자가 많다는 점이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가장 처음 내놓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아이디어가 한 번 등장하고 나면 경쟁 업체가 유사한 제품을 쉽게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니의 경우 자사가 기존에 갖춰온 캠코더 제작 능력을 기반으로 액션캠 시장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흔히 짭프로라고 부르는 SJCAM의 유사 제품은 낮은 가격을 앞세워 인지도를 높였다. 사실 고프로의 장점은 기존 촬영 장비보다 저렴한 가격이었지만, 이보다 더 저렴한 유사 제품의 출현으로 위기를 맞은 셈이다.
이러한 실적 부진 때문인지 2016년 1월에는 인력을 7% 감축했으며 이에 따라 주가가 20%나 급등하기도 했다. 상장 이후 주당 86달러에 이르기도 했지만, 2016년 9월 말에는 16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다. 가격과 성능 양쪽 모두 강력한 경쟁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극복할 수단이 필요했다.
고프로의 선택은 시장 확대였다. 단순히 몸에 부착하는 액션캠을 벗어나서 용도를 더 다양화하고, 기존보다 더 넓은 영역에서 '일상을 기록하고, 공유할 수 있는 스토리 텔링 솔루션'을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고프로 액션캠을 장착해 사용할 수 있는 드론 '카르마'나 핸드 짐벌인 '카르마 그립' 등을 2016년 가을에 공개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고프로 액션캠 제품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터치 몇 번만으로 동영상을 제작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퀵'을 선보이기도 했다. 올해 초에는 카메라 하나만으로 360도 동영상 촬영이 가능한 액션캠 고프로 퓨전 제품군을 추가하며 포트폴리오를 확장했다.
하지만 이 역시 생각보다 순탄하지 못했다. 2016년 하반기 출시했던 드론 카르마는 전원부 문제로 출하한 모든 제품을 회수했으며, 이 때문에 제대로 된 제품 출시가 늦춰졌다. 그 사이 드론 시장의 기존 강자였던 DJI가 입지를 굳혀가며 고프로 카르마는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잃게 됐다. 2018년, 결국 고프로는 드론 사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으며, 이와 관련한 부서의 인력 역시 감축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올해 초에는 JP모건체이스를 통해 회사를 매각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러한 부진을 개선하기 위해 고프로 역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고프로 인력을 전세계 1,000여명 수준으로 감축해 운영 비용을 줄이고, 2018년 한 해 닉 우드먼 대표의 현금보상을 1달러로 낮췄으며, 제품 가격 역시 기존보다 낮게 책정하는 등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 중이다.
특히 '일상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라이프스타일 솔루션'이라는 콘셉트로 익스트림 스포츠뿐만 아니라 일반 소비자까지 시장을 확대하고,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전용 앱을 통해 아주 쉽게 편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경쟁사가 쉽게 따라할 수 없는 독자적인 색깔을 갖춘다면, 유니콘 기업으로 이름을 떨치던 과거의 명성을 다시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SWOT 분석
S: 고프로의 강점은 CEO가 제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며, 액션캠이라는 분야를 개척한 기업인 만큼 브랜드 자체에 대한 인지도 역시 높다.
W: 고프로의 약점은 이미지 센서나 렌즈 등 캠코더 제작에 필요한 원천기술을 보유하지 않은 점이다. 고프로는 제품뿐만 아니라 서비스를 함께 강화해 소비자에게 고유한 경험을 제공해 경쟁력을 얻어야 한다.
O: 시장에서 고프로가 갖춘 기회는 최근 유튜브 등의 동영상 플랫폼이 성장하면서 스스로 동영상을 촬영하고 이를 편집해 콘텐츠로 만드는 사람이 늘어난 점이다.
T: 고프로가 직면한 위기는 수많은 경쟁자다. 액션캠이라는 아이디어는 훌륭했지만, 후발주자들이 접근하기 쉬운 분야기도 하다. 이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나 성능 등 빠르게 따라오는 경쟁 기업의 강점을 상쇄할 만한 가치를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글 / IT동아 이상우(lswo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