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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CEO 열전] 에어비앤비 창업자 3인, 성공의 비결은 절실함... 운도 따랐다

강일용

[IT동아 강일용 기자] 동갑내기 친구인 브라이언 체스키(Brian Joseph Chesky)와 조 게비아(Joseph Gebbia Jr)는 전형적인 20대 중반의 한량이었다. 둘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손 꼽히는 미대인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스쿨(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RISD)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하면서 만나 친해졌다.

체스키는 학교를 졸업한 후 로스앤젤레스(LA)에서 직장을 구했고, 게비아는 RISD의 자매 학교인 브라운대에서 비즈니스 관련 공부를 계속했다. 이후 게비아는 샌프란시스코에 자리를 잡고 자신의 친구인 체스키에게 샌프란시스코에서 새 시작을 하자고 권유했다. 체스키는 친구의 요청을 기꺼이 수락했다.

하지만 청년들의 삶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나마 구한 직장은 둘의 눈높이를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둘은 어거지로 일하느니 차라리 백수로 노는 삶을 선택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둘이 실직한 사실을 알게된 집주인 할머니가 둘이 거주하는 아파트의 월세를 올려받기로 한 것이다. 돈이 필요해진 둘은 이 난국을 타개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체스키와 게비아가 이러한 고민을 하고 있던 2007년 10월, 마침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미국 산업 디자인 학회 연례 컨퍼런스가 열릴 예정이었다. 호텔은 꽉꽉찼다. 많은 산업 디자이너들이 호텔을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굴리고 있었다. 둘은 이를 보고 아아디어를 냈다. 여행객들에게 자신의 아파트 일부를 숙박용으로 빌려주고 아침을 제공하는 대가로 돈을 받으면 어떨까?

이들은 에어베드(AirBed, 공기침대) 3개를 구입하고 호텔을 예약하지 못한 디자이너들에게 자신들의 방을 빌려주고 아침을 제공했다. 여행객들은 둘의 아이디어를 호평했다. 호텔보다 저렴하게 숙식을 해결하고, 샌프란시스코의 문화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평가했다. 체스키와 게비아는 1주일 만에 1000달러의 돈을 벌어서 아파트 월세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두 명은 이 아이디어가 생각보다 괜찮은 사업 아이템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홈페이지를 만들어 방을 빌려주길 원하는 사람과 호텔을 예약하지 못한 관광객들을 연결해주는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회사의 이름은 자신들이 빌려준 공기침대와 아침식사에서 따온 에어베드&브렉퍼스트(AirBed & Breakfast), 줄여서 '에어비앤비'라고 지었다.

둘은 멋진 홈페이지를 만들기 위해 한 명의 동업자를 더 찾았다. 게비아의 예전 룸메이트였던 개발자 네이선 블레차르지크(Nathan Blecharczyk)에게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들려주고 함께하자고 권유했다. 블레차르지크도 이에 흔쾌히 동의했다. 2008년 8월 셋은 에어베드&브렉퍼스트닷컴을 오픈하고 사업에 나섰다.

에어비앤비
<에어비앤비를 창업한 세 사람, 왼쪽부터 브라이언 체스키, 네이선 블레차르지크, 조 게비아>

세계 최대의 숙박공유 서비스인 에어비앤비는 이렇게 태어났다. 20대 중반의 야심만만한 청년 세 명이 시작한 이 기업은 불과 10년 만에 전 세계 2억 명 이상의 사용자, 20개의 지사, 26개의 언어를 지원하는 글로벌 숙박공유 서비스로 거듭났다.

에어비앤비는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치있는 유니콘 스타트업(10억 달러 이상의 기업 가치를 보유한 비상장 스타트업)으로, 그 가치는 310억 달러에 이른다(2017년 투자조사기관 피치북 기준). 3000명을 조금 넘는 직원을 보유한 이 기업이 힐튼, 메리어트 등 100년 전통을 보유한 호텔 브랜드를 제치고 전 세계에서 가장 가치있는 숙박 관련 기업이 된 것이다.

괴짜 디자이너와 천재 프로그래머의 만남

현재 에어비앤비의 최고경영자는 체스키다. 신규 사업 진출과 다른 회사 인수를 결정하는 등 회사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다. 게비아는 최고상품책임자로 재직 중이다. 에어비앤비 사업과 함께 '네이버후드'라는 자신만의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네이버후드는 스타트업의 사무환경에 어울리는 모듈형 사무가구를 판매하는 업체다. 자신의 전공이었던 산업디자인을 살린 새로운 도전이다. 블레차르지크는 최고기술책임자를 거쳐 최고전략책임자 겸 에어비앤비 차이나의 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쿠바, 중국 등 에어비앤비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지만 진출이 어려운 국가에 에어비앤비를 안착시키는 업무를 맡고 있다.

체스키는 폴란드와 이탈리아 출신 부모님 아래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체스키가 RISD에 진학한 것은 어찌보면 필연일지도 모른다. RISD에 진학한 그는 자신의 괴짜 성향을 살려 학교 하키팀에 마스코트를 하나 남겨주었다. 스포츠에 도통 관심이 없던 동문들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스코티'라는 누가봐도 인상적인 마스코트를 디자인했다. 스코티의 디자인은 남성 성기와 매우 유사한 것이 특징인데, 현재도 RISD의 하키팀인 너즈의 마스코트로 이용되고 있다.

메사추세츠주 보스턴 시에서 태어난 블레차르지크는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 신동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고등학교때 스팸 사업자를 위한 웹 호스팅 사업을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학비를 포함해 제법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하버드대에 진학해 컴퓨터 과학을 전공한 후 약 3년 동안 여러 IT 기업에서 수석 개발자로 일하다가 게비아의 권유를 받고 에어비앤비에 합류했다.

에어비앤비

어려운 시기... 집조차 없이 사무실에서 숙식 해결

에어비앤비가 처음부터 순탄한 길을 걸은 것은 아니다. 낯선 여행객들에게 자신의 집을 빌려 준다는 것은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아이디어였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에어비앤비는 생각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당시 미국에는 여행객들에게 집을 빌려줌으로써 이익을 얻는 서비스가 에어비앤비 외에도 한가득 있었다. 유사한 서비스가 이미 시장에 존재했고,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는 항상 빈방을 단기간 빌려준다는 광고가 올라왔다. 심지어 창업자인 체스키와 게비아조차 에어비앤비의 성공 가능성을 낮게 봤다. 체스키는 훗날 월세를 내기 위한 돈만 벌고 더 좋은 아이디어로 사업을 진행해야겠다고 결심한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사업을 시작한 후 셋은 현실의 냉혹함에 직면했다. 수요는 생각보다 적었고,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한 빚은 나날이 늘어났다. 빚을 막기 위해 신용카드를 하도 많이 만들어 신용카드를 보관하기 위한 바인더를 따로 구해야할 지경이었다. 당연히 사무실을 구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결국 체스키가 희생하기로 했다. 사업이 자리잡을 때까지 자신의 집을 사무실로 이용하기로 결정하고 15명의 직원이 체스키의 집에 옹기종기 모여 일해야만 했다. 당연히 체스키는 사무실에서 모든 숙식을 해결했다.

회사를 운영하고 서비스의 규모를 확대하려면 외부 투자를 받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투자자와 벤처캐피탈의 반응은 냉담했다. 에어비앤비를 이용할 관광객의 수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지적하는 곳도 있었고, 자체 숙박시설 하나 없이 숙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곳도 있었다. 난립하는 숙박공유 서비스 속에서 에어비앤비만의 차별성을 찾을 수 없다고 하는 곳도 있었다. 셋은 한동안 아무런 투자도 받지 못하고 회사를 운영해야만 했다.

사실 체스키와 게비아가 회사 경영에 대해 잘 모르는 디자이너 출신이었다는 점도 투자자와 벤처캐피탈이 냉담하게 반응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둘은 회사가 어떻게 돈을 벌 것이냐는 투자자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주기 보다는 회사의 비전과 목표라는 조금은 추상적인 부분에 대한 설명에 집중했다. 심지어 체스키는 한 스타트업 최고경영자가 엔젤(엔젤투자자)을 소개시켜주겠다는 말을 하자 이를 '이 사람은 아직도 천사가 있다고 믿나보다'고 생각할 정도로 업계 관련 지식이 부족했다.

지인들의 냉담한 시선도 셋을 힘들게 했다. 체스키는 사업을 시작한 후 LA에 거주하던 자신이 존경하는 디자이너에게 에어비앤비 사업에 대해 들려주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체스키씨, 설마 지금하고 있는 일이 이것이 전부는 아니겠지요?"라는 싸늘한 반응뿐이었다.

호텔

성공의 비결은 절실함... 운도 따랐다

갖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셋은 결국 성공을 일구어 냈다. 비결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절실함'과 온디멘드(on demand) 서비스의 핵심인 '사용자 중심으로'였다.

셋은 살아남기 위해 온갖 일을 다했다. 당시 미국 대선 정국이었다는 점을 활용해 수집가치가 있는 아침 식사용 시리얼 '오바마 오스'와 '캡앤 매케인즈'를 만들어 팔아서 회사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렇게 온갖 일을 하면서도 회사의 본업을 잊지는 않았다. 블레차르지크가 서비스를 개발하고 관리하는 동안 체스키와 게비아는 뉴욕, 시카고 등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에어비앤비 사용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자신들의 집을 빌려주는 임대 사업자가 되어 달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이렇게 어렵게 사업을 유지하던 에어비앤비에 동아줄이 내려왔다. 이들의 치열함을 눈여겨본 인큐베이터와 벤처캐피탈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2009년 폴 그레이엄이 주관하는 인큐베이터 와이 콤비네이터에 참여할 수 있었고, 세쿼이아 캐피탈로부터 58만 5000달러의 첫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이때에 맞춰 셋은 에어베드&브렉퍼스트라는 긴 이름을 대신 에어비앤비라는 간결한 이름으로 회사와 서비스의 정식 명칭을 변경했다. 침대 및 공용 공간만 빌려주던 서비스에서 주택 전체, 아파트, 성, 보트, 통나무집 등 다양한 숙박시설을 빌려줄 수 있는 서비스로 변경된 것도 이때쯤이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에어비앤비는 땅 위에 정식으로 세워진 주택뿐만 아니라 티피(아메리칸 원주민의 텐트), 이글루, 개인이 보유한 섬 등 사람이 숙박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빌려주는 서비스가 되었다.

폴 그레이엄과 와이 콤비네이터는 에어비앤비 서비스 발전을 위한 많은 도움을 제공했다. 체스키에게 서비스 규모를 키우기보다는 내실을 다지라는 조언을 했다. 서비스를 좋아하는 100만 명보다 서비스에 열광하는 100명이 더 낫다며 샌프란시스코 근교에서만 사업을 진행하지 말고 뉴욕에서도 사업을 진행하라고 권유했다.

이를 들은 체스키와 게비아는 에이비앤비의 서비스 지역을 뉴욕으로 확대하고 에어비엔비에 참여하려는 호스트들의 집에 방문해 사진을 온라인에 일일이 찍어올리는 열정을 보여줬다. 뉴욕에서 에어비앤비를 경험한 관광객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도 에어비앤비를 도입하고 싶어 했고, 이는 에어비앤비가 미국 전역으로 서비스 지역을 확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인큐베이터와 투자를 받고 1년 후 5천 달러 내외에 불과했던 에어비앤비의 월 매출은 5만 달러로 10배 이상 상승했다.

호텔

셋은 어려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서비스의 핵심 가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에어비앤비의 핵심 가치는 '쉽고 멋지게'였다.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고, (에어비앤비에 올라오는 숙박시설은) 누구나 이용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멋져야만 했다. 참으로 디자이너다운 발상이었다.

다행히 블레차르지크는 체스키와 게비아의 이러한 철학을 현실화시켜줄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역량을 갖춘 개발자였다. 블레차르지크는 24시간 내내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누구나 이용하기 쉬우며, 숙소 리스트는 멋지게 보이는 서비스를 만들어냈다. 마우스를 세 번만 누르면 예약을 완료할 수 있을 정도로 사용도 간편했다. 체스키와 게비아는 에어비앤비에 올라온 숙소가 더욱 멋지게 보일 수 있도록 전문 사진사가 숙소를 무료로 찍어주는 서비스도 제공했다.

이 모든 것은 사용자 중심으로라는 온디메드 서비스의 핵심 철학과 일맥상통한다. 에어비앤비에겐 빈 집을 관광객들에게 빌려준다는 핵심 사업 아이템을 공유하는 수 많은 경쟁자가 있었지만, 이들은 사용자 중심으로라는 에어비앤비의 핵심 철학을 흉내내지는 못했다. 덕분에 에어비앤비는 경쟁사를 제치고 숙박공유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사실 셋에게는 천운도 따랐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많은 집 주인들이 대출을 갚지 못하는 문제에 직면했다. 이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집을 관광객들에게 제공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공급 급증에 힘입어 에어비앤비는 급격히 성장할 수 있었다.

2011년 1월 회사 설립 후 3년 만에 100만 건의 예약을 수주했고, 1년이 지난 2012년 1월에는 500만 건의 예약을 받아 회사가 급격히 성장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2011년 5월에는 독일의 유사 서비스 업체를 인수해 해외 서비스를 개시했고, 이후 런던, 파리, 밀라노, 바르셀로나, 모스크바, 상파울루, 서울, 베이징, 도쿄 등에 지사를 차례대로 설립해 전 세계적인 서비스로 거듭났다.

에어비앤비는 밀레니얼 세대의 선호와 소셜미디어의 확산 덕분에 사용자 수를 급격히 늘릴 수 있었다. 많은 사용자들이 호텔 대신 에어비앤비를 이용함에 따라 호텔, 콘도 등 전통적인 숙박업소는 위기에 처했다. 호텔컨설팅기업인 HVS는 2016년 보고서를 통해 미국 뉴욕 소재 호텔들이 에어비앤비로 입은 피해는 연 4500만 달러에 이른다고 추산하기도 했다.

물론 체스키와 에어비앤비는 이러한 조사에 동의하지 않는다. 체스키는 "에어비앤비는 호텔의 경쟁자가 아닌 숙박 업계를 함께 성장시키는 동반자"라고 강조했다. 내가 성공한다고 당신이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는 실리콘밸리의 격언을 들며 "여행과 숙박 산업은 시장 규모가 정해진 것이 아니며, 에어비앤비와 호텔이 함께 시장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성수기 때의 사례를 들어보자. 성수기 때 숙박 업체들은 숙박료를 평소보다 비싸게 받는다. 이러한 큰 비용을 내기 부담스러운 관광객들은 에어비앤비에서 더 저렴한 숙박 업체를 찾게 된다. 여기서 둘의 의견이 갈린다. 숙박 업체들은 에어비앤비 때문에 관광객들이 자신들의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에어비앤비는 비싼 숙박료 때문에 여행을 오지 못했던 관광객들도 여행을 오게 되어 시장 전체의 규모가 성장한다고 말하고 있다.

에어비앤비는 과거 단순히 집주인(호스트)과 관광객들(게스트)을 연결해주었던 서비스에서 벗어나 종합 여행사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변화를 위한 대표적인 사례가 인스턴트 예약과 트립스다. 인스턴트 예약은 모바일 기기에서 호스트가 올려놓은 객실을 마치 호텔처럼 간편하게 예약할 수 있는 서비스다. 트립스는 호스트가 게스트를 위해 주변 관광명소, 음식점, 놀이기구 등을 알려주고 여행 일정을 짜주는 서비스다.

에어비앤비
<에어비앤비 창업자 3인의 모습>

체스키, 게비아, 블레차르지크는 처음 에어비앤비를 시작할 때 자신들이 관광객과 친밀해지는 경험을 한 것처럼 다른 집주인과 관광객들도 여행을 함께 다니고 맥주도 함께 마시면서 친밀해지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셋은 억만장자가 된 지금도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있는 자신들의 집을 에어비앤비를 통해 여행객들에게 빌려주고 있다.

에어비앤비는 성장에 따른 많은 홍역을 치르고 있다. 대표적인 문제가 집주인과 관광객의 대립이다. 관광객이 집주인의 집을 망쳐놓거나(기물 파손, 마약 파티 등) 반대로 집주인이 관광객들에게 잘못된 서비스(감금, 몰래카메라 등)를 제공하는 문제가 종종 일어나고 있다. 집주인과 관광객 모두가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현재 에어비엔비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다.

에어비앤비는 창립 이래 계속 적자였으나, 2016년 하반기부터 영업이익을 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상태다. 유사한 사업 아이템을 보유한 우버의 경우 리프트, 디디추싱, 그랩 등 경쟁자의 약진으로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에어비앤비는 강력한 경쟁자가 없고 영업이익을 내기 위해 꾸준히 신사업을 추진한 것이 주효했다. (사실 그나마 있던 경쟁자도 에어비앤비가 성장하기 전에 모두 사들였다. 호텔스닷컴에서 운영하는 '홈어웨이' 정도만이 간신히 버티고 있다.) 이제 체스키, 게비아, 블레차르지크 셋에게 주어진 과제는 에어비앤비를 상장시켜 기업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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