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CEO 열전] PDF의 아버지, 어도비의 창립자 '존 워녹'
[IT동아 강일용 기자] 어도비 시스템즈(Adobe Systems), 줄여서 어도비라고 불리는 이 기업은 두 가지 소프트웨어로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나는 보관용 전자 문서의 표준이나 다름없는 PDF 파일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지 편집 업계의 제왕인 포토샵이다. 최근에는 마케팅 관리 서비스나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사업 다각화를 꾀하고 있으나, 지난 30년 동안 어도비는 두 소프트웨어를 토대로 사업을 꾸려왔다.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 다음가는 소프트웨어 회사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이러한 두 가지 원천 기술을 어도비에 심어준 인물이 바로 존 워녹(John Edward Warnock) 어도비 창립자 겸 초대 최고경영자(CEO)다. 존 워녹은 위대한 컴퓨터 공학자다. 포스트스크립트(Postscript)와 PDF 파일을 개발해 누구나 손쉽게 컴퓨터로 문서를 출력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 또한 날카로운 사업 감각을 보유한 경영자이기도 하다. 대학원생이 만든 컴퓨터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그 자리에서 아이디어와 프로그램을 사들여 포토샵으로 다듬어냈다. 전자 문서와 이미지 편집 시장에 큰 발자취를 남긴 존 워녹의 일대기를 살펴보자.
<어도비를 창업한 존 워녹, 출처 유타대>
컴퓨터 그래픽 연구에 일생을 바친 1세대 프로그래머
존 워녹은 컴퓨터의 여명기와 함께한 1세대 프로그래머다. 1940년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태어나 유타 대학교에서 수학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고, 당시로서는 생소하기 짝이 없던 컴퓨터 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자신의 지도 교수가 설립한 컴퓨터 그래픽 및 상호 작용 디자인이라는 팀에 합류했다. 지금이야 컴퓨터에서 그래픽이 출력되는 것이 당연시 여겨지지만, 당시 컴퓨터는 흑백 화면에 문자만 출력되는 것이 전부였다.
존 워녹은 컴퓨터 화면에서 이미지를 표현하는 기술을 연구한 후 박사 학위 논문으로 '워녹 알고리즘'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출했다. 컴퓨터가 그래픽을 표현할 때 여러 이미지가 겹치면 숨겨진 면을 어떻게 표시해야 하는지 그 방법이 담긴 알고리즘이었다. 이를 통해 당시 컴퓨터의 그래픽 표현은 더욱 진일보할 수 있었다. 워녹 알고리즘 논문은 표지, 목차, 주석 등을 제외하면 고작 25장에 불과했다. 유타대 박사학위 논문 역사상 가장 짧은 논문이었지만, 그 유용함과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아 아무런 문제없이 통과되었다.
<워녹 알고리즘 / 출처 위키피디아>
이후 존 워녹은 컴퓨터 사이언스 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를 거쳐 1972년 '일리악4(ILLIAC IV)'라는 슈퍼컴퓨터의 프로그래머로 참여했다. 일리악4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인류를 달이나 우주로 보내기 위한 우주선을 제작할 때 이용한 시뮬레이션용 슈퍼컴퓨터다. 1978년부터는 자신의 본업인 컴퓨터 그래픽 업계로 돌아왔다. 자신의 지도교수인 데이비드 에반스와 그래픽사용자환경(GUI)을 개발한 이반 서덜랜드가 함께 설립한 컴퓨터 그래픽 회사 에반스&서덜랜드에 합류했다.
이 회사에 재직하면서 존 워녹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컴퓨터에 출력되는 그래픽을 그대로 출력할 수 있다면 고가의 인쇄기를 구매하지 않아도 사용자들이 손쉽게 문서를 출력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때도 컴퓨터 그래픽을 출력해주는 장비는 존재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 전용 소프트웨어와 이에 연동되는 출력기를 갖추고 있어야만 했다. 높은 비용 때문에 일반 사용자는 물론 회사조차 이러한 기기를 갖추는 것이 쉽지 않았다. 존 워녹은 모든 출력기에서 이용할 수 있는 통합 그래픽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를 위해 근무하던 회사를 떠나 당시 최신 컴퓨터 기술의 산실이었던 제록스 팔로알토 연구소(Xerox PARC)로 이직했다. 이후 자신의 아이디어에 포스트스크립트라는 이름을 붙이고 상용화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제록스 경영상 문제로 포스트스크립트의 상용화는 무산되었다.
<어도비 포스트스크립트 / 출처 어도비>
집 뒤 하천 이름을 따 어도비를 설립
존 워녹은 자신만의 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했다. 동료 프로그래머였던 찰스 게스케와 의기투합해 1982년 어도비를 설립했다. 회사의 이름은 팔로알토에 위치한 자신의 집 뒤에 흐르는 자그마한 하천인 어도비 강(Adobe Creek)에서 따왔다. 영어로 들으니 있어 보이는 것이지,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의역하면 회사의 이름을 '청계천 콤퓨타(?)'로 지은 것이나 다름없다.
<2010년 마르코니상을 받는 찰스 게스케(왼쪽)와 존 워녹 / 출처 마르코니 협회>
그런데 고작 두 명의 프로그래머가 설립한 이 자그마한 기업에 눈독을 들인 인물이 있었다. 바로 스티브 잡스다. GUI를 갖춘 세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리사'를 개발하면서 잡스는 컴퓨터 그래픽에 관한 원천 기술을 확보하길 원했다. 20년 가까이 컴퓨터 그래픽을 연구하고 포스트스크립트라는 아이디어를 낸 존 워녹의 어도비는 GUI 기반의 컴퓨터를 만들길 원하는 잡스 입장에선 놓쳐선 안될 대어였다. 잡스는 500만 달러(54억 원)라는 당시로서나 지금이나 엄청난 거금에 어도비를 인수하고자 했다. 하지만 자신만의 회사를 이끌어나가고 싶었던 존 워녹은 이 제안을 거부했다. 대신 애플에게 포스트스크립트와 어도비의 차세대 프로젝트에 관한 라이선스를 5년 동안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라이선스를 통해 어도비는 설립 1년 만에 영업 이익을 낸 최초의 실리콘밸리 기업이 될 수 있었다. 어도비의 시총은 현재 862억 70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94조 원 회사다.
1984년 존 워녹은 자신이 개발하던 포스트스크립트를 시중에 공개했다. 포스트스크립트를 읽을 수 있는 프로그램만 있으면 컴퓨터 기기와 출력 장치의 종류에 관계없이 그래픽과 문서를 출력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먼저 포스트스크립트의 라이선스를 받은 애플은 1985년 이 언어를 해석할 수 있는 레이저 프린터 '레이저라이터(Laser Writer)'를 시중에 출시했다. 이후 애플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에서 나온 프린터도 포스트스크립트를 해석할 수 있는 기능을 탑재하기 시작했고, 포스트스크립트는 컴퓨터 그래픽 출력을 위한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포스트스크립트 덕분에 사용자와 기업은 전문 인쇄소가 아닌 사무실 책상에서도 많은 문서를 빠르고 손쉽게 출력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구나 자신의 문서를 간행물로 출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이러한 변화를 탁상 출판(Desktop Publishing)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애플 레이저라이터 / 출처 위키피디아>
존 워녹과 어도비는 포스트스크립트를 활용해 1987년 벡터 이미지(수학적 공식을 이용해 만든 이미지)와 디지털 글꼴을 제작할 수 있는 프로그램 '일러스트레이터(Illustrator)'를 발표했다. 출시 이후 30년 동안 일러스트레이터는 지속적인 버전업을 통해 벡터 이미지 편집 업계의 사실상 표준으로 군림하며 어도비의 입지를 강화시켜주었다.
세계 제일의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을 사들이다
'포토샵(Photoshop)'은 따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유명한 이미지 편집 소프트웨어다. 오늘도 수많은 사용자가 포토샵을 이용해 자신의 얼굴을 더욱 아름답게 고치고 있다. 포토샵의 방대한 기능을 활용해 먹고사는 이미지 편집 전문가들도 많다.
포토샵은 일러스트레이터와 달리 어도비의 창립자 존 워녹의 작품이 아니다. 포토샵을 만든 인물은 미국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토마스 놀과 특수효과 감독 존 놀 형제다. 포토샵의 원형은 1987년 토마스 놀이 박사과정 연구를 진행하던 도중 태어났다. 논문 준비를 위해 애플 매킨토시 플러스 컴퓨터를 구매한 토마스 놀은 컴퓨터 모니터에서 흑백 이미지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그의 동생 존 놀은 이 프로그램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루카스필름에 근무하면서 접했던 그래픽 편집 전문 기기와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놀 형제는 프로그램에 이미지를 다른 이미지 형식으로 변환할 수 있는 기능과 감마 보정 도구 등을 추가해 '이미지프로(Image Pro)'라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냈다.
<포토샵에 들어있는 토마스 놀과 존 놀 형제의 초상화>
존 놀은 형에게 이미지프로를 상용화하자는 제안을 했다. 이를 위해 여러 소프트웨어 업체에 접촉했다. 하지만 놀 형제는 문전박대를 받아야만 했다. 몇몇 기업은 자신들이 진행 중인 프로젝트와 비교해 수준이 낮다고 평가절하했고, 어떤 기업은 자사의 제품군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거부했다. 여러 번의 좌절 끝에 놀 형제는 존 워녹을 만났다.
존 워녹은 이미지프로를 보고 그 자리에서 바로 놀 형제의 아이디어와 프로그램을 사들이기로 결정했다. 어도비는 일러스트레이터를 출시한 이후 종합 컴퓨터 그래픽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었지만, 한 가지 약점이 존재했다. 벡터 이미지 편집 분야에선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래스터 이미지(픽셀을 이용해 만든 이미지) 편집 분야 관련 기술은 부족했다. 놀 형제의 이미지프로는 이러한 어도비의 약점을 해결해, 어도비가 벡터 이미지와 래스터 이미지라는 두 가지 컴퓨터 이미지 분야에서 주도권을 쥐게 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어도비 창업자 존 워녹 / 출처 유타대>
놀 형제와 어도비는 2년 동안의 연구 개발을 진행해 1990년 포토샵을 시장에 선보였다. 포토샵은 출시와 함께 래스터 이미지 편집 업계를 평정했다. 28년 동안 포토샵은 많은 사용자에게 이용되며 세계 제일의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이라는 입지를 다졌다. 일러스트레이터는 코렐 드로우 등 경쟁 프로그램이 시장에 존재하지만, 포토샵에겐 경쟁 프로그램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능 말고 사용자 수라는 측면에서) '그림판'만이 간신히 포토샵에 아성에 도전할 수 있다. 미래를 예견한 존 워녹의 높은 안목이 이 같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존 워녹과 어도비가 1988년 포토샵에 대한 모든 권리를 인수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일부 권리를 사들인 후 개발 비용을 지원했다. 어도비가 포토샵에 대한 모든 권리를 취득한 시기는 1995년이다.)
새로운 전자 문서 표준을 만들다
포토샵을 성공리에 시장에 선보인 존 워녹은 다음 해 새로운 전자 문서 규격을 만들기 위해 '카멜롯 프로젝트(The Camelot Project)'를 시작했다. 카멜롯 프로젝트는 컴퓨터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이 다르면 보이는 결과물도 다른 기존 전자 문서의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다. 존 워녹은 기기, 소프트웨어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보이는 문서를 만들어 문서 공유와 출력이 더욱 효율적으로 진행되길 원했다.
존 워녹과 어도비의 연구 끝에 1993년 'PDF(Portable Document Format)'라는 새로운 전자 문서 형식이 시장에 공개되었다. PDF는 DOC, HWP 같은 편집 위주의 전자 문서와 달리 열람, 출력, 보관에 최적화된 전자 문서였다. 어떤 기기와 프로그램에서 열람하든 동일한 결과물을 보여준다. 존 워녹은 PDF가 보다 많은 사용자들에게 전파되길 원했다. 이를 위해 처음부터 문서의 모든 사양을 무료로 공개해, 문서 작성 프로그램 개발사가 별도의 라이선스 비용 없이 문서 작성 프로그램에 PDF 형식을 추가할 수 있게 했다. 이를 통해 PDF는 당시 여러 가지 파일 형식이 난립하던 열람용 전자 문서 업계에서 경쟁자를 몰아내고 독점적 지위를 구축할 수 있었다. 편집용 문서는 DOC, XLS, PPT로 작성하고, 보관용 문서를 PDF로 작성하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어도비는 2008년 존 워녹의 뜻을 이어받아 PDF에 관한 대부분의 권리 포기하고 국제표준화기구(ISO)에 PDF 관리 권한을 넘겼다. PDF는 이제 더 이상 어도비만의 것이 아니다. 어떤 기업이든 PDF 기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컨소시엄에 참여해 PDF를 더욱 나은 전자 문서로 개선할 수 있다.
존 워녹은 컴퓨터 그래픽 및 전자 문서 기술 개발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많은 과학 기술상을 받았다. 1989년 미국 컴퓨터 학회에서 수여하는 '소프트웨어 시스템 상'을 받았고, 2000년 광학기술협회(OSA)로부터 상을 받았다. 2004년 영국 컴퓨터 협회의 러브레이스 메달을, 2008년 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의 컴퓨터 기업가 상을 받았다. 2009년에는 미국 오바마 정부로부터 국립 기술 혁신 메달을 받았다.
존 워녹은 최고경영자보다는 컴퓨터 공학자라는 정체성이 더 강한 인물이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창업에 나섰고, 이후 꾸준히 컴퓨터 그래픽 관련 신 기술을 발표하며 회사를 경영했다. 돈을 벌기 위해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연구하다 보니 그 독보적인 기술력 덕분에 알아서 돈이 들어온 케이스다. 기술을 강조하는 회사의 최고경영자는 어떤 비전과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존 워녹은 2000년 어도비의 최고경영자 자리를 후임에게 넘겨주었다. 이후 최고기술책임자를 거쳐 찰스 게스케와 함께 어도비의 공동 회장을 맡았다. 2017년 1월부터는 회장 자리도 자신의 후임인 샨타누 나라옌 어도비 최고경영자에게 물려주었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