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CEO 열전] 세계 최고 농구 선수에서 에이즈로 나락… 수천억 자산가로 재기, 매직 존슨
[IT동아 강일용 기자] 매직 존슨('Magic' Johnson), 농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이름을 모를 수 없다. 1980년대 래리 버드와 함께 NBA의 인기를 견인한 이 슈퍼스타는 마이클 조던과 함께 농구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다. "매직 존슨과 마이클 조던 가운데 누가 더 위대한 농구 선수인가"는 논쟁은 NBA 팬들에게 심심하면 회자되는 소재다. 결론은 낼 수 없다. 펠레와 마라도나 가운데 누가 더 위대한 축구 선수였는지 가릴 수 없는 것과 같다. 둘 다 위대한 농구 선수다.
<매직 존슨 / 출처 매직 존슨 페이스북>
그는 전설이었다. 1979년 LA 레이커스 소속으로 NBA에 데뷔한 이래 12년 동안 LA 레이커스의 에이스로 활동하며 팀을 영원한 우승후보로 만들었다. 선수로 활동하면서 매직 존슨은 5번의 NBA 챔피언(팀 우승), 3번의 NBA 파이널 MVP 등을 수상했다. 1981년을 제외한 나머지 해에는 꼬박꼬박 NBA 올스타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매직 존슨은 1991년 갑작스레 은퇴를 선언한다. 혈액 검사 결과 HIV 양성 반응이 나왔기 때문이다. 잘 나가던 그의 커리어는 순식간에 나락으로 추락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좌절하고 은둔 생활을 선택했겠지만, 매직 존슨은 그러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HIV 양성 반응이 나왔음을 당당히 밝히고 에이즈를 극복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매직 존슨은 1992년 NBA 올스타전과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드림팀'으로 참전해 자신의 실력이 건재함을, 결코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임을 대중들에게 보여주었다. 이후 매직 존슨은 LA 레이커스의 코치 겸 임시 감독으로 활약하다가 1996년 잠깐 현역 선수로 복귀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에 따른 체력적 한계를 느끼고 결국 선수로서 영원한 은퇴를 선언해야 했다.
<매직 존슨(왼쪽)이 LA 레이커스 행사에 참석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매직 존슨 페이스북>
여기까지가 우리가 기억하는 매직 존슨의 커리어다. 하지만 우리는 은퇴 후 지난 20년 동안 매직 존슨이 무엇을 했는지 모른다. 운동선수로서의 그만 기억하지, 미국 내에서 손 꼽히는 흑인 사업가였던 그의 천부적인 사업 감각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매직 존슨은 운동선수에서 은퇴한 후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의 이름을 딴 '매직 존슨 엔터프라이즈(Magic Johnson Enterprises)'를 설립하고 다양한 프랜차이즈 사업과 투자 사업 그리고 사회 공헌을 시작했다. 농구 선수 매직 존슨이 번 돈은 총 2200만 달러(241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은퇴한 운동선수 가운데 5번째로 많은 수치다. 하지만 사업가 매직 존슨은 현재 6억 달러(6591억 원)가 넘는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은퇴 이후 그는 사업을 통해 자신의 재산을 30배 가까이 늘리는데 성공했다. 농구 선수 매직 존슨 대신 사업가 매직 존슨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보자.
농구 선수로 활동 도중 빛난 그의 사업 감각
매직 존슨의 매직은 그의 마술 같은 농구 실력을 감탄하는 의미에서 붙은 별명이다. 그의 본명은 어빈 존슨 주니어(Earvin Johnson Jr)다. 1959년 어빈 존슨 시니어와 크리스틴 존슨 사이에서 6남매 가운데 하나로 태어났다. 매직 존슨은 어린 시절부터 천부적인 농구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농구 실력을 살리기 위해 에버렛 고등학교로 진학해 농구팀에 합류했다.
하지만 그는 곧 인종차별이라는 거대한 벽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자신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차별하는 백인 선수와 감독을 향해 매직 존슨은 화를 내기도 했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고 자신의 실력으로 그러한 편견을 넘어서기로 결정했다. 대회에 출전한 매직 존슨은 고등학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활약을 펼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곧 매직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팀 동료들은 매직 존슨의 실력을 보고 그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부터 그는 본명 어빈보다 매직으로 더 유명해지게 되었다.
미시건 주립대학에 진학해 미국 대학농구에서 뛰던 그는 평생의 라이벌 래리 버드와 첫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이후 매직 존슨과 래리 버드는 LA 레이커스와 보스턴 셀틱스의 선수로 뽑히며 라이벌 관계를 NBA에서도 이어가게 되었다.
LA 레이커스의 포인트가드로 활약하던 1982년 매직 존슨은 자신의 연봉으로 사치를 부리지 않고 투자와 사업을 진행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2개의 콜로라도 라디오 방송국에 돈을 투자했고, 자신의 이름을 딴 32개의 매직 스토어 상품 판매점을 열었다.
1987년 래리 버드를 제치고 NBA 파이널 MVP를 수상한 그 해, 농구 선수로서 최고의 영광을 누리던 매직 존슨은 농구 대신 다른 쪽으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매직 존슨 엔터프라이즈'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자신이 관리하던 투자사와 소매점을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관리하도록 위임했다. 1990년 매직 존슨은 펩시 콜라 유통 대리점을 인수하는 등 본격적으로 사업에 관한 야심을 드러냈다.
이때 매직 존슨의 운명을 바꿀 일이 일어났다. HIV 양성 반응 때문에 농구를 그만둬야 했던 것이다. 그는 오랜 준비 끝에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1995년 소니 리테일 엔터테인먼트(현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자신의 이름을 딴 멀티플렉스 영화관 '매직 존슨 시어터'를 로스앤젤레스에 오픈했다. 이외에도 존슨 디벨롭먼트 칼퍼스라는 부동산 개발 및 관리 회사와 매직 존슨 엔터테인먼트라는 영화, TV, 출판, 애니메이션 콘텐츠 개발 및 투자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스타벅스 창업자와의 만남, 사회적 기업가로 변신
1998년은 매직 존슨과 스타벅스의 창업자 '하워드 슐츠' 두 명 모두에게 뜻깊은 해였다. 하워드 슐츠와 만난 매직 존슨은 평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를 하워드 슐츠에게 들려주었다.
"아프리칸 아메리칸(아프리카계 미국인, 흑인)과 라티노(중남미 출신의 미국인)들도 커피를 마시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만듭시다."
매직 존슨은 하워드 슐츠에게 흑인과 라티노들이 많이 거주하는 우범 지역에 스타벅스 체인점을 내자고 제안했다. 우범 지역에는 제아무리 유명 프랜차이즈라도 매장을 내는 것이 쉽지 않다. 지역 주민의 구매력이 떨어지는 데다가, 매장이 범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매직 존슨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범 지역에 진출한 스타벅스의 직원들은 철저히 해당 지역 주민으로만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우범 지역에 거주하는 흑인과 라티노에게 안정적인 직업을 제공해 그들의 구매력을 끌어올리고, 커피 하나 제대로 사 먹을 수 없었던 지역에 커피를 제공해 지역 경제를 살려보자는 계획이었다. 무엇보다 우범 지역의 범죄자들은 같은 지역 주민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매장의 안전까지 확보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아이디어였다.
둘은 의기 투합해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우범 지역에 스타벅스 체인점을 설립하기 위한 특수 목적 법인인 '도시 커피 기회 공동체(Urban Coffee Opportunities, UCO)'를 설립하고 매직 존슨 엔터프라이즈와 스타벅스 커피 컴패니가 각각 50%씩 지분을 보탰다.
UCO는 미국 전역의 우범 지역을 중심으로 매장을 확대해나갔다. 최종적으로 125개에 이르는 스타벅스 매장을 설립해서 운영했다. 매직 존슨의 아이디어 덕분에 많은 흑인과 라티노가 직업을 얻을 수 있었고, 덕분에 해당 지역의 범죄율과 실업률이 낮아졌다. 미국 언론은 이러한 매직 존슨의 성과를 두고 매직 존슨이 코트에서 부린 마술을 도시에서도 부리고 있다고 극찬했다.
매직 존슨은 스타벅스 매장 운영을 두고 하워드 슐츠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예를 들어 "스타벅스 매장에서 스콘뿐만 아니라 고구마 파이나 케이크 같은 보다 다양한 디저트를 판매해야 한다.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클래식 음악 대신 마이클 잭슨의 팝 음악 같은 트렌디한 음악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러한 조언은 모두 받아들여져 현재 모든 스타벅스 매장에 적용되어 있다.
매직 존슨은 2010년까지 이렇게 미국 전역 우범 지역에 스타벅스 매장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2010년 이 매장과 UCO의 지분 50%를 스타벅스에 매각했다. 이 지분 매각과 비슷한 시기에 진행한 LA 레이커스 지분 매각을 통해 매직 존슨은 약 1억 달러의 이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타벅스의 가치가 1998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수치였다. 현재 미국 우범 지역에서 UCO 소속으로 운영되던 스타벅스 매장은 모두 직영으로 전환되었지만, 해당 지역의 흑인과 라티노를 고용해서 운영한다는 매직 존슨의 영업 방침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매직 존슨의 사업 철학
매직 존슨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사업을 진행하기보다는 기존에 검증된 아이템에 투자하는 형태의 사업 방식을 선호했다. 돈을 위험하게 굴리지 않고 최대한 길고 안전하게 굴리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때문에 유명 프랜차이즈와 합자 회사를 설립하거나, 유망한 기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식으로 자본을 운용했다.
초기에 주력한 사업은 기존 프랜차이즈와 협력해 매장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TGI 프라이데이, 버거킹 등과 협력해 미국 전역에 39개에 이르는 매장을 내기도 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24시간 피트니스센터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사업도 함께 진행했다.
이러했던 초기 사업 방식은 매직 존슨이 기업을 알아보는 안목이 생기면서 유망한 기업에 투자하는 형태로 선회하게 되었다. 2008년 미국의 전자양판점 베스트바이와 파트너를 맺은 것을 시작으로 바이브홀딩스, 아스파이어, 마블 익스피리언스, 미투 등 첨단 기술과 미디어를 다루는 기업에 투자를 진행해 수익을 거두었다.
매직 존슨은 단순히 돈을 좇거나 즉흥적인 결정으로 투자를 진행하지 않았다. 두 가지 큰 투자 철학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한 투자를 단행했다. 첫 번째 투자 철학은 '흑인과 히스패닉을 위한 지역 공동체를 설립하고 이들의 권익 향상에 힘쓴다'는 것이다. 그가 투자한 아스파이어(ASPiRE)의 경우 미국 흑인을 위한 TV 네트워크 기업이고, 미투(mitú)의 경우 히스패닉을 위한 방송 및 디지털 네트워크 기업이다. 또한 흑인, 히스패닉,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IT 업계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돕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구인 구직 서비스 '잡웰(Jopwell)'에도 큰 투자를 진행했다.
두 번째 투자 철학은 자신의 본업이기도 했던 '농구 선수를 위한 서비스를 발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매직 존슨은 운동선수의 이동을 추적해 선수가 자신의 몸 상태를 제대로 관리하고 경기력을 향상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을 개발 중인 '숏트래커(ShotTracker)' 등에 투자를 진행하기도 했다.
매직 존슨의 성공적인 투자 덕분에 매직 존슨 엔터프라이즈는 10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닌 개인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매직 존슨 역시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흑인 사업가 5명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스포츠 사업가 매직 존슨
이렇게 사업가로서 성공가도를 밟고 있던 매직 존슨은 2010년대에 들어 자신의 본업인 스포츠 업계로 돌아왔다. 2012년 그는 30년 지기 친구인 스텐 카스텐, 투자자인 마크 월터 등과 함께 미국 메이저리그의 야구팀인 LA다저스를 인수했다. 실질적인 인수 비용은 마크 월터의 투자 회사인 구겐하임 파트너스가 내고, 스텐 카스텐은 야구팀 운영을 위한 실무를 맡았다. 반면 매직 존슨은 단지 대외 선전용 이미지 모델을 맡은 것에 불과했다(LA다저스에서 매직 존슨의 지분은 약 2%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를 통해 매직 존슨은 오랫동안 떠나있었던 스포츠 업계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후 매직 존슨은 WNBA(여성 NBA)의 LA 스팍스를 인수해 농구 업계로 돌아왔고, 결국 2017년 자신의 고향인 LA 레이커스의 사장으로 복귀했다. LA 레이커스는 최근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는 팀의 체질을 개선하고 선수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매직 존슨을 팀의 중역으로 영입한 것이다. 매직 존슨은 단순히 사장으로서 구단을 경영하는데 그치지 않고 선수들의 멘토로서 경기에 전방위적인 도움을 줄 계획이다. 매직 존슨은 LA 레이커스의 사장직을 수행하기 위해 기존에 담당하던 ESPN의 해설직마저 그만두었다.
그는 "나의 꿈은 LA 레이커스의 사장이 되는 것이었다. 그 꿈을 이루어서 기쁘다. 이제 경기장 안팎에서 팀이 승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에이즈와 전쟁의 선봉장
매직 존슨은 단순히 성공한 사업가일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다준 HIV/에이즈와 싸우는 선봉장이기도 하다. 매직 존슨이 농구 선수에서 은퇴한 1991년 그는 매직 존슨 재단을 설립했다. 매직 존슨 재단은 미국 전역의 HIV/에이즈 환자를 돕고, 에이즈 치료법을 개발하려는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재단이다. 매직 존슨 재단은 초기에는 HIV/에이즈 환자 지원 위주로 활동을 벌였지만, 지금은 고등학교 중퇴자가 학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하거나 우범 지역의 환경을 개선해 취업률을 높이고 범죄율을 낮추는 자선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