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4K 게이밍 입문용 그래픽카드, AMD 라데온 RX 베가 56
[IT동아 김영우 기자] 요즘 AMD는 분위기가 좋다. 신형 CPU인 라이젠 시리즈의 시장 반응이 호의적이기 때문이다. 여세를 몰아 그래픽카드 시장에서도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14일부터 본격 출시를 시작한 라데온 RX 베가(AMD Radeon RX Vega) 시리즈가 그 선두에 섰다.
라데온 RX 베가 시리즈는 넓게 보면 2015년에 나왔던 AMD의 플래그십급 그래픽카드인 라데온 퓨리(Fury) 시리즈의 후손이다. 라데온 퓨리 시리즈는 PC용 그래픽카드 중 최초로 HBM(High Bandwidth Memory, 고대역폭 메모리) 기술을 적용해 큰 관심을 끌었으나, 메모리 용량(4GB)이 부족한 편이었고 28nm 수준의 구 공정이 적용되는 등의 약점이 있어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라데온 RX 베가 시리즈는 기존의 1세대 HBM 을 개선한 HBM2를 적용하고 메모리 용량도 8GB로 늘렸다. 제조 공정도 14nm 수준으로 미세화 했으며, 무엇보다 기존의 GCN(4세대) 아키텍처(기반기술)를 일신한 베가(Vaga) 아키텍처를 적용하는 등, 4K , VR 등으로 대표되는 차세대 게이밍에 충실히 대응하고 있다. 여러가지 측면에서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4K급 게이밍을 위한 베가 시리즈, 그 중에서도 입문용 제품이 될 것으로 보이는 AMD 라데온 RX 베가 56의 면모를 직접 살펴보자.
차세대 라데온의 문을 연 베가 시리즈의 막내
AMD 라데온 RX 베가 시리즈는 라데온 RX 베가 64 수랭식(699 달러) 및 라데온 RX 베가 64(499 달러), 그리고 라데온 RX 56(399 달러)의 3가지 버전으로 출시된다. 라데온 RX 베가 64 시리즈는 이미 지난 14일 출시되었으며 라데온 RX 베가 56은 오는 28일부터 시장에서 살 수 있다. 참고로 지난 6월에 출시된 '라데온 베가 프론티어 에디션(수랭식 1499 달러, 일반 999 달러)' 이라는 제품도 있는데, 이는 전문가를 위한 워크스테이션용 그래픽카드라 일반인들이 살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레퍼런스(표준) 모델 기준으로 라데온 RX 베가 56의 외형은 무난한 수준이다. 70mm 냉각팬을 기반으로 기판 전체를 감싸는 쿨러 유닛 과 함께, 기판의 휨을 방지하는 백플레이트(후방 커버)로 외형을 구성했다.
제품 상단에는 두가지 바이오스를 전환하는 스위치가 달려있다. 과도한 오버클러킹으로 그래픽카드가 제대로 구동하지 않을 때 본래 상태의 바이오스로 되돌리는 등의 용도로 쓴다. 그리고 PCIe 보조전원 포트(8핀 x 2) 근처에 현재 GPU의 활동 정도를 단계별로 표시하는 LED가 달려있는데, 이는 근처의 스위치를 통해 켜고 끄거나 색상(레드, 블루)을 전환하는 것도 가능하다.
PC와의 접속 인터페이스는 PCI 익스프레스(PCIe) 3.0 x16 규격이다. PCIe 3.0 인터페이스는 2015년 즈음부터 출시된 메인보드부터 본격 지원하기 시작했다. 하위호환을 지원하므로 PCIe 2.0 규격 슬롯을 이용하는 구형 메인보드에서도 문제 없이 작동한다. 이 경우, 수치 상의 성능이 약간 저하될 수 있지만 체감적으로 크게 느껴지는 수준은 아니다.
출력 인터페이스는 디스플레이포트(DP) 3개 및 HDMI 1개로 구성되었다. DP는 1.4 규격, HDMI는 2.0 규격이다. 4K UHD급 해상도의 영상을 60Hz의 주사율(초당 화면 변환수)로 전송할 수 있어 최신 사양의 모니터와 궁합이 좋다. 3대 이상의 모니터로 하나의 화면을 구현해 현장감을 높일 수 있는 아이피니티(Eyefinity) 기술 역시 지원한다.
2048bit의 메모리 대역폭, 56개의 컴퓨트 유닛 갖춰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역시 내부 사양이다. 라데온 RX 베가 시리즈의 메인 칩은 베가 아키텍처 기반의 GPU와 HBM2 메모리 등이 하나의 칩처럼 패키징 되어있다. 때문에 일반 그래픽카드처럼 별도의 메모리 칩이 기판에 달려있지 않다. 기존 그래픽카드의 메모리가 일반 제품은 64~128bit, 고급형 제품은 256~384bit의 대역폭(데이터가 지나가는 통로)을 갖추고 있는 것에 비해 라데온 RX 베가 시리즈의 HBM2는 무려 2048bit다. 메모리 용량도 기존 라데온 퓨리 시리즈보다 2배 커진 8GB를 확보했다.
라데온 RX 베가 56과 64는 GPU 및 메모리의 클럭에 약간 차이가 나는 것 외에도 컴퓨트 유닛(연산장치)의 수도 다르다. 라데온 RX 베가 56은 총 56개의 컴퓨트 유닛(스트림 프로세서 3584개)을 갖추고 있는 반면, 라데온 RX 베가 64는 총 64개의 컴퓨트 유닛(스트림 프로세서 4096개)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제품명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최신 기술 다수 지원하지만 전력 효율은 다소 아쉬워
라데온 RX 베가 56이 64에 비해 약간 낮은 사양이긴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고성능에 속한다. 다이렉트X 12(DirectX 12)와 벌칸(Vulkan)과 같은 최신 게임의 기반 기술은 물론, 입력 지연이나 이미지 왜곡 없이 화면의 갈라짐을 막는 프리싱크(FreeSync) 기술, 화면 전체의 색감과 명암 표현력을 향상시키는 HDR 등, 최근의 트랜드에 부합하는 기술들 역시 빠짐없이 지원하고 있다.
옥의 티를 꼽으라면 소비전력이 다소 높다는 점이다. 라데온 RX 베가 56의 TDP(열설계전력)은 210W로, 경쟁 제품이라고 할 수 있는 엔비디아 지포스 GTX 1070의 150W보다 확실히 높다. 제품에 달린 PCIe 보조전원 포트가 8핀 2개로 구성된 것을 봐도 소비전력이 낮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AMD측에서도 되도록 650W 이상의 파워서플라이가 달린 시스템에서 구동하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 참고로 상위 제품인 베가 64 일반 버전의 TDP는 295W, 수랭식 버전은 345W다. 14nm 미세공정을 도입했음에도 소비전력이 높은 점은 향후 개선이 필요하다.
벤치마크 소프트웨어를 통한 성능 측정
제품의 대략을 살펴봤으니 이제는 직접 성능을 체험해보자. 코어 i7-7770K CPU에 16GB DDR4 메모리, 슈퍼마이크로 C7-Z270-CG 메인보드 및 인텔 535 SSD로 구성된 윈도우10 64비트 시스템을 구성했다. 그래픽 드라이버는 라데온 소프트웨어 크림슨에디션 17.8.1 버전을 설치했으며, 라데온 RX 베가 56의 비교상대로는 지포스 GTX 1070(조텍 AMP Extreme, 8GB) 제품을 이용했다. 참고로 이번 테스트에 이용한 조텍 지포스 GTX 1070는 오버클러킹 제품이기 때문에 일반 제품에 비해 가격과 성능이 약간 더 높다는 점을 기억해두자.
우선 퓨처마크의 3DMark 소프트웨어를 구동해봤다. 이 테스트는 실제 게임과 유사한 고품질 그래픽을 구동해 시스템의 그래픽 구동능력을 측정한다. 우선은 최신 그래픽 기술인 다이렉트X12 기반 테스트 항목인 타임스파이(Time Spy) 메뉴를 구동해 봤다.
테스트 결과, 라데온 RX 베가 56이 지포스 GTX 1070에 비해 근소하게 우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무래도 더 나중에 나온 제품인 만큼, 최신 기술을 적용한 게임에서 좀 더 유리할 수 있다.
다음은 기존 다이렉트X11 기술 기반의 벤치마크 메뉴인 파이어스트라이크(Fire Strike)를 구동해봤다. 아직 다이렉트X12 기반 게임의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빼 놓을 수 없는 테스트다. 풀HD(1920x1080)급 해상도에 최적화된 파이어스트라이크 노멀 모드와 4K UHD급 해상도(3840 X 2160)에 최적화된 파이어스트라이크 울트라 모드를 번갈아 구동했다.
파이어스트라이크 테스트에서는 지포스 GTX 1070이 약간 더 나은 점수를 냈다. 하지만 그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테스트에 이용한 지포스 GTX 1070이 오버클러킹 버전이라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가상화폐 채굴 능력은?
최근 그래픽카드 성능의 지표 중 하나로 쓰이는 가상화폐 채굴 능력도 살펴봤다. 대표적인 가상화폐 중 하나인 이더리움을 직접 채굴하는 과정에서 확인한 성능은 다음과 같다. 가장 낮은 수치와 가장 높은 수치는 제외한 평균치다.
테스트 결과, 지포스 GTX 1070이 약간 더 나은 채굴 성능을 갖춘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전의 테스트와 마찬가지로 그 차이가 아주 크지는 않다. 하지만 소비 전력 대비 채굴 효율을 생각해 본다면 아무래도 지포스 GTX 1070 쪽이 좀 더 유리하다.
게임 구동을 통한 성능 측정
최신 그래픽카드를 사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게임이다. 다른 테스트에서 좋은 성능을 발휘하더라도 게임 구동능력이 떨어진다면 좋은 제품이라 할 수 없다. 이번에 테스트한 게임들은 풀HD급 해상도와 4K UHD급 해상도 모드를 번갈아 구동했으며, 최대 프레임을 제한하는 수직동기화(V Sync) 항목을 제외한 그래픽 품질은 모두 최상으로 높였다.
가장 먼저 테스트 해 본 게임은 인기 격투게임인 ‘철권7’이다. 이 게임은 최대 프레임이 60프레임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굳이 풀HD급 해상도에서는 진행하지 않았다. 약 20여분 정도 4K UHD 모드에서 플레이하며 평균적인 프레임을 측정했다.
테스트 결과, 두 제품 모두 4K UHD 모드에서 초당 60프레임을 거의 고정적으로 유지했다. 철권7만을 위한 시스템이 필요하다면 굳이 이 정도의 그래픽카드까지는 필요하지 않을 듯 하다.
다음으로 테스트 해 본 게임은 최근 출시된 FPS 장르의 게임인 프레이(Prey)의 데모버전이다. 2006년에 출시된 원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다이렉트X11 기반의 게임이긴 하지만 전반적인 그래픽 품질이 높기 때문에 최신 그래픽카드의 성능을 테스트하기에 적합하다. 게임 초반 20여분 정도를 플레이하며 평균 프레임을 측정했다.
테스트 결과는 두 제품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거의 오차범위 수준의 비슷한 성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지포스 GTX 1070이 오버클러킹 제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라데온 RX 베가 56이 상당히 선전한 것으로 해석도 가능하다. 그래픽 품질을 약간 조정하면 4K UHD 모드에서도 무리 없는 플레이가 가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테스트한 게임은 실시간 전쟁 게임인 ‘애쉬스 오브 싱귤러리티(Ashes of the Singularity)’다. 작년에 나온 게임이긴 하지만 다이렉트X12를 비롯한 고급 기술이 다수 적용되어 있어 최신 그래픽카드의 게임 구동능력을 테스트하기에 적합하다. 게임 내에서 제공하는 벤치마크 메뉴를 구동, 기록된 평균 프레임을 확인했다.
결과는 앞서 진행한 테스트와 유사했다. 다만 최대 프레임은 지포스 GTX 1070이 약간 더 잘 나왔지만 플레이 중 프레임의 변동폭은 라데온 RX 베가 56이 더 적은 편이라 좀 더 안정적인 구동이 가능했다.
반격을 위한 기술적 기반 마련, 향후에 더 기대
AMD 라데온 RX 베가 시리즈는 이전의 퓨리 시리즈에 비해 많은 부분에서 발전을 했다. 제조공정과 아키텍처를 일신하고 메모리 용량을 늘리는 등, 실질적인 게임 구동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을 한 흔적이 보인다. 이는 라데온 RX 베가 시리즈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라데온 RX 베가 56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로 경쟁 제품 대비 부족함이 많았던 이전 세대의 제품과 달리, 라데온 RX 베가 56은 지포스 GTX 1070과 대등한 성능을 발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전력 효율 면에서 여전히 열세이며, 가격 경쟁력 면에서도 다소 아쉬움이 있다. 정가 기준으로 라데온 RX 베가 56은 399달러로 출시될 예정(국내에서 50만원대 예상)인데, 지포스 GTX 1070은 349달러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라데온 시리즈가 이 정도 수준까지 올라온 건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지금 당장 시장판도를 뒤집을 정도는 아니지만, 반격을 위한 기술적 기반을 마련했음은 확인했다. 향후 각 제조사들의 튜닝을 거친 양산 제품이 본격 출시되고, 시장원리에 걸맞는 시세가 형성되기를 기대한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