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서현의 신간산책] 인류가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 <인간의 위대한 여정>
[IT동아]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인류 문명 이래 꼬리를 물고 계속된 질문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이 몰고 올 인간 존재의 위기 앞에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탐구가 더더욱 깊어지는 요즘이다. 지금껏 만물의 영장, 인간이라는 위대함을 자부심으로 살아 온 우리에게 과학은 광활한 우주를 보여주며 위축시키고, 기술은 이제 우리의 필요성 여부를 판단하려 하고 있다.
아, 인간 자존심이 정말 영 말이 아니다. 인간의 자존심을 회복시켜 줄 신간, <인간의 위대한 여정/21세기북스>이다.
작년, <신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질문> 등을 통해 종교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큰 반향을 일으킨 고전문헌학자인 서울대학교 배철현 교수의 신간이다. 이번에는 인간 본성의 기원을 찾는 위대한 여정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2015년 말부터 지금까지 '월간중앙'에 연재된 인간진화에 대한 거대한 담론을 책으로 묶었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 '우리는 왜 사는가?'… 삶에는 해답이 불가능한 질문이 많다. 저자는 역설적이게도 답이 없는 이런 질문이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지탱하는 공기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이게 없다면 인간은 존재 가치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도 기원이나 작동 원리를 탐구하고 알려 노력하나 보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찰스 다윈으로 대표되는 19세기에 이르러 인간의 지적 능력이 점점 자기중심에서 바깥으로 이동하면서, 사람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 결과를 과학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책은 인류 정신사의 결정적 순간을 순차적으로 짚어보고 있다. 그럼 훨씬 더 이전으로 가보자. 인간은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 되었을까? 사람들은 흔히 뇌 크기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인간의 뇌가 점점 커지면서 언어, 이성, 그리고 자기성찰과 같은 정신적인 활동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 이전에 이루어진 두발로 걷는 행위(이족보행)가 더 중요했다고 말한다. 두 발로 걷게 되면서 불의 발견이나 언어 습득과 같은 인간의 기본 습성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 다음의 혁명적 변화는 도구의 사용, 예술의 탄생, 종교의 기원 등에서 찾고 있다.
불을 습관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며 인지 능력의 요람인 뇌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했고, 그 결과 인간은 이제 주변 환경을 관찰하고 배우며, 동료 인간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됐다. 또한 활동을 관장하는 깨어남과 잠이라는 12시간의 순환구조를 스스로 조절하게 되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대부분의 동물은 오로지 생존만을 위해 활동하지만, 인간만이 취미라는 행위를 즐긴다. 생존 외에도 정신적이며 미적 만족을 위한 행위를 한다. 인간은 그런 행위를 통해 삶의 활력과 위안을 얻으며, 이는 인간만의 고유한 특징이다. 또한 요리와 저장을 통해 처음으로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됐고, 스스로 사고하고 창의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됐다.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신의를 다질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몰입과 관찰도 인간의 중요한 특징이다. 유인원이 인간으로 진화하면서 생존을 가능케 한 중요한 2가지 요소는 시각적 능력과 사회적 능력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복잡한 기술, 상징적인 행동, 그리고 공동체와 소통하는 행위를 통해 진화했다.
인류가 함께 모여 살면서 갈등도 생겨나고, 자신들이 개발한 무기로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족과 사회 약자를 돌보는 배려 문화를 만들어냈다. 저자는 인간의 여정이 위대한 이유를 이런 혁신으로 타인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는 '이타적 동물'로 스스로를 변모시켰다는 데서 찾는다.
즉 저자가 이야기하는 인류의 역사란 성찰과 묵상을 통해 자기 안의 이타심을 발견하고, 그 소중한 마음을 지키고자 노력해온 여정 그 자체이다. 인류는 오늘날의 도시 문명을 구축하기 위해 빙하기라는 마지막 통과의례를 거쳐야 했다. 약 10만 년 동안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생존해 온 것이다. 인류의 위대함은 타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기적인 전략에서 오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의 대결에서 비롯한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결국 오늘날의 우리를 만들었다.
이 책은 역사와 과학, 철학을 넘나드는 서술방식을 통해 인류의 기원을 추적하고 우리의 미래를 들여다본다. 인공지능 시대에 아날로그적 질문과 그 답을 찾으려는 집요함이 매력이다. 고문헌학자다운 풍부한 사료는 근거에 대한 타당성과 함께 보는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종교, 철학, 예술, 과학.. 모든 것이 어우러져 결국 '나라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목적이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길 바라고 있다. 생각이 깊어지는 한여름 밤이다.
글 / 오서현 (oh-koob@naver.com)
국내 대형서점 최연소 점장 출신으로 오랫동안 현장에서 책과 독자를 직접 만났다. 예리한 시선과 안목으로 책을 통한 다양한 기획과 진열로 주목 받아 이젠 자타공인 서적 전문가가 됐다. 북마스터로서 책으로 표출된 저자의 메세지를 독자에게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다. 최근 '오쿱[Oh!kooB]'이라는 개인 브랜드를 내걸고 책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관계를 연결하려 한다(www.ohkoob.com). 새로운 형태의 '북네트워크'를 꿈꾸며 북TV, 팟캐스트, 서평, 북콘서트MC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있다.
정리 / IT동아 이문규 (munc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