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시를 둘러싼 애플과 어도비의 갈등
요즘 인터넷에 올라오는 IT관련 뉴스와 콘텐츠들을 보면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등과 같은 모바일 제품에 대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그리고 이 정보들의 중심에는 항상 애플이 있다. 애플의 앱스토어, 애플의 아이폰 UI, 애플의 아이폰 OS 등. 관련되어 나오는 얘기도 참 다양하다.
이렇게 자신과 관련된 문제들로 주변이 왁자지껄하면 일반적으로 어느 정도 수용할 건 수용하고 그렇지 않은 건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법인데, 유독 애플은 절대로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좋게 말하면 소신 있고, 자신감 넘치고, 뚜렷한 목표의식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비뚤어진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그거, 그냥 융통성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최근 불거진 어도비(Adobe)의 플래시 관련 문제도 그렇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다고, 좋은 것이라고 받아들여서 쓰는 것인데, 애플은 그렇지 않다면서 끝까지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모두가 Yes라고 말할 때, No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도 좋다지만… 아무튼 애플의 고집은 참 대단하다.
현재 아이폰, 아이패드에서는 어도비 사의 플래시를 실행할 수 없다. 애플의 최고경영자인 스티브 잡스는 예전에 “맥에서 발생하는 프로그램 충돌 대부분이 플래시 때문에 발생한다”라며, “그런 지저분한 프로그램을 지원할 생각은 전혀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게다가 얼마 전 열린 아이폰 OS 4.0 발표 현장에서는 애플리케이션 개발자 약관을 ‘어도비의 플래시 프로그램을 이용해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것은 애플의 정책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수정하기도 했다. 결론은 앞으로도 아이폰과 아이패드에서는 플래시를 기반으로 한 애플리케이션을 만나볼 수 없다는 것.
우리가 자주 접속하는 국내 웹사이트를 들어가 보면 십중팔구 열에 아홉은 플래시 효과가 들어가 있다. 기본적인 배너 광고부터 시작해서, 간단한 동영상 재생까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플래시 게임’이 간단한 캐주얼 게임처럼 여길 정도로 지금 우리는 플래시 콘텐츠에 익숙해져 있다. PC 포맷 후에 새로 깔고 나서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가장 먼저 플래시 플레이어부터 설치하라고 할 정도이니 말은 다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바로 이 화면
하지만 애플은 공식적으로 ‘우린 플래시 따위 필요 없어!’라고 선포한 것이다. 플래시 대신 HTML5(HTML5란 차세대 웹 문서형식으로, 혹자는 ‘플래시의 미래’라고도 한다. 웹 브라우저에서 오디오, 동영상, 그래픽 작업들이 곧바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큰 특징)를 지지한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HTML5가 지금의 플래시처럼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어도비 역시 HTML5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다. 하지만, 애플이 플래시가 필요 없다고 자체적으로 판단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박하고 있다. 이미 많은 콘텐츠에 플래시가 쓰이는 상황에서 필요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사용자여야 하지 애플이라는 기업이 판단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4월 9일, 어도비는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에 ‘애플의 이러한 처사는 자사의 불이익을 초래한다’라고 공시하기도 하였다. 또한, 앞으로 아이폰 OS에 대한 플래시 프로그램 개발보다 안드로이드와 같은 OS에 더욱 매진하겠다고도 한다. 이젠 정말 갈 데까지 가는 싸움 양상이 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하지만 플래시를 둘러싼 애플과 어도비의 싸움은 결국 자신의 이득 혹은 주도권을 위한 싸움에 불과하다. 과연 사용자에 대한 권리는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자, 현재 플래시가 웹페이지를 무겁고 느리게 만든다는 것은 인정한다. 거의 전 화면이 플래시 효과로 도배된 인터넷 쇼핑몰 웹사이트 몇 군데만 켜보면 컴퓨터가 갑자기 멈칫거리는 현상은 쉽게 겪을 수 있으니까. 다만, 지금 많은 사용자는 플래시 효과에 적응되어 있다는 것. 사용자 입장에서는 잘 쓰고 있던 콘텐츠를 갑자기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격이다. 이는 몇몇 국내 웹사이트만 들어가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있어야 할 곳에 파란색 레고 박스 발견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
게임을 설치하지 않아도 간단히 즐길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는 웹 게임 역시 이와 같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며 웹 게임을 어디든지 다니면서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했지만, 정작 즐기는 게임이 플래시로 되어 있다면 아이폰, 아이패드에서는 즐길 수 없다. 삼국지를 배경으로 하는 웹 게임 중에서 플래시 효과가 없는 A 게임은 아이폰, 아이패드에서도 가능하지만, B 게임과 같은 플래시 기반 게임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아이폰, 아이패드에서 실행 가능한 A 게임(좌)과 불가능한 B 게임(우)
혹자는 플래시가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빠진 이유가 무겁거나 느리다는 이유만이 아니라 플래시 효과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마우스 좌측/우측 버튼을 둘 다 활용해야 하는 경우, 마우스 커서를 올려놓기만 해도 설명이나 하부 메뉴가 보여야 하는 경우 등이 손가락으로 스크린을 ‘터치’해야만 구현되는 시스템에서는 제대로 발휘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이 어쨌든 간에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졌고, 말은 뱉었으며, 다시 주워담기도 어렵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애플과 어도비의 플래시 공방에서 이미 ‘사용자’를 위한 배려 따위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까지 주변에서 말을 해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걸어왔던 애플이 이번에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어낼지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