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러문과 함께하는 감성 쇼핑 여행기, (2) 프랑스 파리
1.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가르쳐 줄래?"
"그건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에 달렸지"
"어딜 가고 싶은지는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그럼 어느 길을 가도 상관없겠네"
"하지만 어딘가 도착하고 싶어"
"넌 틀림없이 어딘가 도착하게 될 거야. 계속 걷다 보면 어디든 닿게 되거든"
"혹시 나는 갈 곳이 없는 게 아닐까?"
"지도만 보면 뭐해. 남이 만들어 놓은 지도에 네가 가고 싶은 곳이 있을 것 같아?"
"그럼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 나와 있는데?"
"넌 너만의 지도를 만들어야지"
-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中
2.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나는 나만의 여행 지도를 만들기 위해 길을 떠났다. 프랑스에 도착한 둘째 날, 목적지는 몽 생 미셸이었다.
몽 생 미셸을 들리기 전 들른 마을, 옹플뢰르. 옹플뢰르는 프랑스 근교의 항구 도시로,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로 꼽힌다. 강을 둘러싸고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강은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집들을 아른아른 비추고 있었다. 갈매기들은 한가로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공기는 강물처럼 맑았다. 날은 흐렸지만 마을은 여유의 정취를 담고 있었다.
언제나 몇 번이라도, 이런 곳에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나 몇 번이라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뉴에이지 음악의 제목인데, 옹플뢰르의 분위기와 참 잘 어울린다. 문득 '언제나 몇 번이라도'라는 말이 굉장히 너그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 그대로 언제나 몇 번이라도 (괜찮다)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다.
언제나 몇 번이라도 괜찮다고, 얼마든지 기대도 된다고.
옹플뢰르를 걸으며 그 노래의 멜로디를 몇 번이고 생각했다.
3.
좋았던 여행지를 기억하는 방법 중 하나는 바로 기념품 구입. 여행을 동행한 J는 옹플뢰르 마을의 정취를 담아낸 자석과 오르골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는 어제 샹젤리제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구입한 물품을 판매한 이야기를 J에게 하며, J에게 셀러문 앱을 추천해 주었다. 상점에서 사진을 찍어 즉시 셀러문에 올린 J는 자신이 올린 물품이 언제 팔리는지 줄곧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사람들이 내가 올린 물건에 얼마나 관심을 가질지 궁금해. 나도 모르게 계속 확인하게 되는 게 재미있네"
4.
옹플뢰르에서 좀 더 긴 시간을 머물면 좋았겠지만, 일정이 빠듯한 관계로 몽 생 미셸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몽 생 미셸은 미카엘 대천사의 계시를 받고 짓게 된 수도원으로, '천공의 섬 라퓨타'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만조 때가 되면 바다에 둘러싸이는 신비한 장소다.
화강암으로 된 바위섬에 수도원이 들어선 것은 8세기. 아브랑슈의 주교인 성 오베르는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다. 그의 꿈에 등장한 미카엘 대천사는 이 섬에 수도원을 지으라고 명했다.
처음에 성 오베르는 꿈을 무시했다. 그러자 미카엘 대천사는 계속해서 꿈 속에 등장했고, 어느 날 손가락을 내밀어 신부의 이마를 때렸다. 꿈에서 깨어난 성 오베르는 자신의 이마에 실제로 붉은 자국이 남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확인한 신부는 몽 생 미셸을 건설하게 되었다고 한다.
신의 계시라, 살아가면서 과연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까? 만약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한다는 계시가 주어진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필자는 무신론자로 ‘신을 믿지 않아’라고 생각하지만,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아 내 소중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실천할 것 같다.
그렇다면 나를 움직이게 될 내 소중한 사람은 과연 누가 있을까?
4.
이렇게 지어진 건물은 약 300년 동안 건설을 하게 된다. 몽 생 미셸은 지어진 세월만큼이나 신비롭고 장엄한 분위기에 둘러싸여 있었다. 신념 하나만으로 300년 동안 건축을 하다니, 나는 과연 어떤 신념을 가지고 어떤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있을까?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일까? 몽 생 미셸을 보며 나는 끊임없이 ‘나만의 지도를 만들기 위한’ 고민을 했다.
만약 신념 하나만으로 어떤 일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그렇다면 난 어떤 일을 오랫동안 하고 싶어하는 사람일까?
문득,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어릴 적 동경했던 수많은 꿈들은 아직도 유효한지, 지금의 나는 과연 어떤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정말 어려운 일이다.
5.
몽 생 미셸은 크게 3층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1층은 서민, 2층은 왕과 귀족, 3층은 성직자만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구조물이 당시 신분 계층을 고스란히 반영한 셈이다. 이런 이유로 성직자가 이용하는 계단은 '천국의 계단'이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성직자의 삶이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당시 성직자들은 성지순례 등 아주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성당을 벗어날 수 없었다고 한다. 수련을 위해 많은 것을 참아야 했다. 가령 추위를 이겨내야 한다는 이유로 난로도 사용하지 않았고(서재 제외), 하루에 두 끼 밖에 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평생 바깥에 나가지 못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지금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는 내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어디를 가든 어디에 머물든 마음의 자유가 가장 중요한 걸까? 그렇다면 마음의 자유는 과연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6.
수도원은 신을 믿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몽 생 미셸을 둘러보면서, 믿음이란 무언가를 사랑하는 대가로 아픔을 감수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혹시 속상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계속해서 견뎌내는 행위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반면, 누군가를 믿지 못한다는 것은 그런 아픔을 감수하기 싫다는 자기 방어 기제일지도 모른다.
나는 미카엘 천사처럼 절대적인 믿음을 줄 만한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에 더욱 감사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상대방에게 믿음을 주도록 노력하라는 말이 있는데, 그보다는 '나를 믿어주는 사람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실제로 더 많이 인내하는 존재는 어떤 일이 있든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외로운 이유 중 하나도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니까.
몽 생 미셸의 수도원에서 마음 속으로 기도했다. 나를 믿어주는 이들이 있어 감사하다고, 그 사람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런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다음에 이 곳을 다시 방문하고 싶다고.
7.
앞서 언급했듯이, 성직자들은 평생 수도원을 벗어날 수 없었다. 성직자들에게 필요한 음식이나 물자는 바깥에서 공수해 도르래로 올려서 가져왔다고 한다. 도르래는 사람이 8명 정도 직접 올라타서 다람쥐 쳇바퀴 구르듯 돌아야만 했다. 그러나 이는 무척 위험한 일이었고, 실제로도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 사람이 죽었을 경우, 수도원 한 쪽 구석에 시체를 버렸다고 한다. 도르래 근처의 시체 버리는 장소를 목격하고 보니 아이러니한 느낌과 으스스함이 충돌했다. 오, 신을 믿는 공간에서 인간의 마지막 존엄성을 어떻게 저버린 것일까.
8.
몽 생 미셸의 건물 바닥에는 숫자와 같은 표식이 있었다. 건물을 짓던 당시 이 지역에는 돌이 무척 귀했다고 한다. 많은 노동자들이 건물 증축에 필요한 돌을 함께 가져와 돈을 벌었다. 그런데 돌 1개당 가격이 정해져 있었고, 이를 노동자 숫자에 따라 금액을 나눠주었다고 한다. 이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다 같이 돌을 운반하고 난 뒤 서로를 죽이고 1~3명이 돈을 나누어 가졌다고 한다. 보다 큰 금액을 받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결국 노동자들이 너무 많이 죽게 되자, 이를 막기 위해 숫자 표식을 새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 적어놓았던 숫자와 마지막으로 도착한 노동자의 숫자가 일치하지 않으면 모두 다 죽여버렸다고. 그 이후로 돌을 운반하는 노동자들이 서로를 죽이는 일은 사라지게 됐다.
사람이 죽고 사는 이야기를 들으며 인간의 선과 악에 대해 생각했다. 과연 인간은 선의를 위해, 악의를 위해 어떤 행동까지 할 수 있을까? 과연 나는 어떠할까? 인간은 가장 연약하면서도 잔인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9.
몽 생 미셸을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J가 말했다.
"내가 본격적인 여행을 해본 건 신혼여행이 처음이었어. 그 때 비로소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던 것 같아. 그 전까지는 내가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진짜 여행을 알게 되니까 달라진 거야. 어쩌면 우리가 무언가를 좋아하지 않는 건, 몰라서 그런 것일지도 몰라. 진짜 무언가를 알게 되면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잖아"
J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끊임없이 뭐든 해봐야 하는 이유를 생각하게 됐다. 도전하지 않으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지 못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지 못하게 되니까. 결국 여행이든 무엇이든 도전하는 것은 곧 자기 발견이고, 자기 발견에 있어 여행이란 가장 큰 도움이 되는 일일 것이다. 필자만 하더라도 몽 생 미셸을 둘러보면서 인간과 믿음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런 진지한 이야기를 하던 와중, J는 계속해서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아까 소개해 준 셀러문에 재미를 붙인 모양이었다.
"언니 뭐해요?"
"내가 올린 물건을 본 사람들이 메시지를 하고, 구입하는 게 신기해서 계속 보고 있어. 이게 뭐라고 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네. 내가 이
곳을 여행하고 인상깊은 물건을 찾은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게 재미있는 것 같아"
10.
파리에서의 짧은 일정을 뒤로 하고, 우리는 영국 런던으로 떠나기 위해 짐을 챙겼다. 영국 음식에 대한 악평은 익히 유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을 선택한 건 '이야기가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영국은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 셰익스피어와 셜록이 있는 나라다. 과연 영국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까? 런던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만큼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글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