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생산성으로 무게 중심 옮긴 '아이패드 프로 9.7인치'
[IT동아 김태우 기자] 천하의 애플이라도 줄어드는 아이패드 판매량을 어찌하지 못했다. 2014년 2분기부터 아이패드는 판매량이 꾸준히 감소했다. 이 때문일까? 애플은 아이패드 전략을 결국 바꾼다. 콘텐츠 소비 기기라는 이미지를 벗고, 생산성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것. 그 시작이 작년 10월에 공개된 아이패드 프로 12.9인치다. 화면 크기를 12.9인치로 키우고, 전용 키보드인 스마트 키보드와 스타일러스인 애플 펜슬을 함께 선보여 생산성을 강화한 것. 물론 iOS도 멀티태스킹을 능력을 보완해 이를 뒷받침 한다.
그리고 해를 바꿔 애플은 아이패드의 메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9.7인치에도 스마트 키보드와 애플 펜슬을 적용한다. 더는 소비용 도구로만 아이패드를 두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느껴진다.
프로와 에어의 공존
애플에게 ’프로’라는 단어는 뛰어난 성능을, ’에어’라는 단어는 얇고 가벼움을 뜻한다. 성능과 가벼움은 전자 기기에 있어 공존하기 쉽지 않은 단어다. 이것저것 하드웨어를 장착해 좋은 성능의 제품을 만들면, 얇고 가볍지가 않다. 반대로 얇고 가볍게 만들다 보면, 최소한의 부품을 써야 하다 보니 성능에서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아이패드 에어가 처음 공개된 2013년, 행사장에서 발표가 끝난 후 팀 쿡은 다시 무대에 올라와 직접 아이패드 에어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만큼 흡족해했다. 전작보다 40% 얇아진 좌우 화면 주변부, 20% 얇아진 두께, 28% 가벼워진 무게 등은 에어라는 이름에 걸맞은 제품이었다.
아이패드 프로 9.7은 아이패드 에어 2의 후속이다. 외형뿐만 아니라 크기, 두께, 심지어 무게까지 완벽히 똑같다. 모양새는 에어이지만, 이름은 프로다. 한마디로 에어의 외형에 프로의 성능을 지닌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에어와 프로의 간격은 지금껏 존재해 왔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점점 좁혀지고 있다.
그리고 아이패드에서는 에어라는 단어가 프로로 대체됐다. 단순히 대체된 것이 아닌 얇고 가벼움은 기본이 된 것. 여기에 아이패드 프로 12.9의 성능을 품었다. 아이패드 프로 9.7은 에어와 프로의 본격적인 동거가 시작되는 제품이다. 두 단어를 철저히 구별하던 애플이 그 경계를 없앴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이맥 5k 디스플레이를 품다
애플은 신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많은 부분에서 공을 들이지만, 유난히 디스플레이에 집착하는 편이다. 이런 집착때문일까? 불과 몇 개월 전에 나온 아이폰 6s, 아이패드 프로 12.9와 비교해도 차이가 느껴질 만큼 아이패드 프로 9.7의 디스플레이는 좋다. 아이패드 프로 9.7의 화면을 보다 아이폰 6s 화면을 보면 흐리멍덩해 보인달까.
여기엔 2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밝기가 지금껏 나온 iOS 기기 중 가장 밝다. 밝은 만큼 야외 시인성이 좋다. 재밌는 부분은 최대 밝기를 구현한 기술이다. LCD의 액정 자체는 빛을 낼 수 없다. 그래서 백라이트가 필요하다. 백라이트는 디스플레이에서 가장 전력 소모가 많다. 특히 밝기를 높일수록 더 많은 전력을 쓴다. 한번 충전으로 최대한 오래 사용해야 하는 모바일 기기에서 밝은 디스플레이는 치명적이다.
아이패드 프로 9.7은 가장 밝은 디스플레이를 지녔다. 그런데 백라이트를 더 밝게 하지 않았다. 백라이트는 기존과 동일한 밝기다. 픽셀과 픽셀 사이에는 블랙 메트릭스가 존재한다. 각각의 픽셀을 구분해주는 영역이다. 애플은 이 블랙 메트릭스의 두께를 줄여 백라이트의 빛이 더 많이 투과할 수 있도록 했다.
한마디로 디스플레이의 전력 소모는 기존과 동일하지만, 더 밝게 만든 것. 사실 블랙 메트릭스를 얇게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하면 픽셀과 픽셀간의 색 간섭이 발생할 수 있다. 애플은 화면의 크기와 비례해 많아진 픽셀을 정밀하게 배치하기 위해 광배향 공정을 작년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5K 아이맥을 처음 내놓으면서부터다. 이렇게 픽셀의 정밀도를 높인 탓에 색 간섭 없이 블랙 메트릭스의 두께 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밝기뿐만이 아니다. 색 표현 능력도 좋아졌다. 애플은 2015년 아이맥 5K 디스플레이를 내놓으면서 색 영역을 sRGB보다 더 넓은 P3를 적용한 바 있다. 아이패드 프로 9.7 또한 P3를 지원한다. P3는 sRGB보다 적색과 녹색 영억의 색 표현 능력이 더 좋다. 두 색 영역을 비교해 보면, 적색과 녹색이 분명히 다르게 보인다. 보는 이에 따라 미묘한 차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아이패드 프로 9.7을 쓰다 아이폰 6s를 쓰면 빛바래 보이는 건 이와 무관치 않다.
사실적인 화면 색감
개선된 디스플레이와 별개로 아이패드 프로 9.7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기능은 역시나 ’트루 톤’이다. 디스플레이는 주변 환경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항상 동일한 색감을 표현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흰색 종이를 형광등 아래서와 백열등 아래서 봤을 때 다르게 보인다. 백열등 아래서는 종이가 주황색으로 물들게 된다.
이전까지의 아이패드라면 백열등 아래서라고 해도 주황색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패드 프로 9.7에서는 4채널 주변 광 센서를 사용해 주변 조명 환경에 맞게 자동으로 조절한다. 백열등 아래서는 디스플레이가 주황색이 되는 것. 색상뿐만 아니라 빛 강도까지 맞춰준다.
트루 톤을 끄면, 블루 라이트가 확연히 느껴질 만큼 디스플레이 색감은 화이트 톤으로 맞춰진다. 이 상태에서 아이패드를 쓰게 되면, 오래지 않아 눈은 피로감을 느낀다. 간혹 초점이 흐려지기도 했다. 그런데 트루 톤을 사용한 이후부터는 이런 증상이 많이 줄었다.
▲ 좌측은 트루 톤을 켰을 때, 우측은 트루 톤을 껐을 때
iOS에 ’나이트 시프트’가 추가된 후 저녁에는 이 기능을 켜지도록 설정해 놓고 쓰고 있다. 확실히 나이트 시프트 상태에선 눈이 좀 더 편하다. 하지만 나이트 시프트는 평소에 쓰기엔 불편하다. 화면 색감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트루 톤은 디스플레이를 사실적으로 만들어 주는 기능이다. 일관된 색감이 아닌 주변 조명 환경에 맞추어 디스플레이가 변화한다. 한결 편안한 화면으로. 그러다 보니 트루 톤을 항상 켜 놓게 된다.
하루 동안 가장 오래 바라보는 디스플레이는 맥북프로다. 아이패드 프로 9.7의 트루 톤을 경험한 이후부터 바라는 건 단 하나다. 다음 맥북프로에 트루 톤이 적용되는 것.
프로의 기능
9.7인치 아이패드가 프로의 옷을 입었다. 단지 옷만 갈아입은 건 아니다. 아이패드 프로 12.9의 기능도 고스란히 가져왔다. 애플 펜슬은 아이패드 프로 9.7에서도 라이트닝 포트에 꽂으면 바로 페어링이 되어 화면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프로세서가 동일한 만큼 아이패드 프로 12.9에서 느꼈던 자연스러운 펜슬 움직임을 아이패드 프로 9.7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스마트 키보드도 9.7인치 화면에 맞춰 나왔다. 키보드 크기는 아이패드 프로 12.9보다는 작아지다 보니 타이핑이 좀 더 힘들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사실 타이핑은 쓰다 보니 조금씩 익숙해 지고 있는데, 문제는 한영전환. 전용 한영 전환키는 어려운 위치에 있다 보니 빠르게 누르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한영 전환키를 누르더라도 전환에 약간의 딜레이가 있어 빠른 타이핑에 방해가 된다. 한영 전환키를 누르고 바로 타이핑을 하면 전환이 미쳐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입력되는 것. 키보드의 언어 전환에 대해선 보완책이 필요하다.
멀티태스킹은 매끄럽다. 물론 12.9인치보다 화면이 작아져 시원한 맛은 덜하지만, 슬라이드 오버, 스플릿 뷰 등의 활용도는 충분하다. 얼마 전 IT 관련 스트리밍 동영상을 보면서 멀티태스킹을 활용한 바 있다. 동영상은 팝업창으로 띄우고, 2/3는 노트 앱을 띄워 중간중간 메모를 했으며, 1/3은 채팅 창을 띄워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9.7인치의 화면임에도 상당히 효율적으로 작업이 이루어졌다. 게다가 맥북이라면 여러 개의 창을 띄울 수 있지만, 아이패드에서는 띄울 수 있는 앱이 제한적이다 보니 방해할 수 있는 요소들이 줄어 집중하기엔 더 좋았다.
▲ 사파리로 네이버에 접속해 야구 동영상을 팝업창으로 띄우고, 야구 순위(좌)와 문자 메시지(우) 창을 각각 띄운 모습
후면 카메라는 1200만 화소로 아이폰 6s와 동일하며, 살짝 튀어나온 것도 똑같다. 이는 이미징 센서의 크기 때문에 현재로써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카메라가 살짝 튀어나와 있다 보니 바닥에 놓고 애플 펜슬을 사용할 때 흔들리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는데, 직접 써보니 그런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큼직한 아이패드로 사진을 찍는 것은 다소 어색한 일이다. 하지만 의외로 아이패드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다. 그들이 아이패드로 사진을 찍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카메라가 튀어나오는 것을 감수해서라도 아이폰과 동일한 카메라를 적용한 건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느린 로밍 이젠 안녕
2014년 아이패드 에어 2를 내놓으면서 애플은 ’애플 심’이라는 재미난 기능을 추가한다. 보통 스마트폰을 쓰려면 이통사에서 유심을 구매해야 한다. 그런데 애플 심은 기기에 유심을 내장해 이통사를 거치지 않고 원하는 이통사에 가입해 쓸 수 있는 기능이다.
2년 전에 나온 기능이긴 하지만, 그동안 애플 심을 국내서는 쓸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패드 프로 9.7에서는 애플 심이 작동한다. 셀룰러 버전의 아이패드 프로 9.7을 구매했다면, 국내 이통사에 가입하지 않고 데이터 요금제에 즉각 가입해 쓸 수 있다. 아직 국내 이통사는 애플 심에 참여하지 않으므로, 현재 국내서 쓸 수 있는 통신사는 글로벌 사업자 밖에 없어 요금제가 저렴한 것은 아니다.
애플 심을 쓸 수 있다는 이야기는 국내가 아닌 해외에 나갔을 때 빛을 발하게 된다. 국내 이통사의 비싼 로밍 요금제에 가입할 필요 없이 현지 이통사의 데이터 요금제에 가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격도 저렴하고, 현지 이통사에 가입하기 때문에 로밍보다 속도도 훨씬 빠르다.
아직 해외에 나갈 일이 없어 직접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최근 미국을 방문한 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AT&T, T모바일 등 미국 이통사의 데이터 플랜을 바로 가입해 쓸 수 있었단다. 국내 이통사도 애플 심 참여를 고려해 볼 일이다. 외국인이 국내 방문 시 국내 이통사에 직접 가입해 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9.7인치 아이패드 프로
나의 작업 영역에 있어 노트북은 필수다. 그러다 보니 아이패드 프로 9.7의 출시는 정말이지 반갑다. 노트북 + 아이패드 프로 12.9는 정말이지 부담스러웠지만, 노트북 + 아이패드 프로 9.7의 휴대는 견딜만하기 때문이다. 무거운 노트북을 매번 꾸역꾸역 꺼낼 필요가 많이 줄었고, 스마트 키보드와 애플 펜슬이 더해진 아이패드 프로 9.7의 업무 활용은 제법 편한 구석이 있다.
애플이 스마트 키보드와 애플 펜슬을 만든 이유는 아이패드를 좀 더 생산적인 활동에 쓰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들 액세서리를 사용해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로 문서를 작성하고, Shapr3D로 3D 모델링을 하며, 종이 문서를 스캔해 의견을 남긴다. 아이패드 프로 12.9가 나오고 짧은 시간이 지났지만, PC에서 하던 작업을 좀 더 직관적이면서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벌써 다양하게 나온 상태다.
태블릿이라면, 아이패드라면 가볍게 휴대하고 편하게 쓸 수 있는 점이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아이패드 프로 9.7은 이를 갖춘 제품이다. 그런 탓에 활용도는 12.9보다 더 높다. 아직은 PC를 대체할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지금도 사용 습관에 따라서는 많은 영역을 대신할 수 있다. 태블릿으로써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 눈여겨볼 부분은 포스트 PC로의 진화 과정에 있다는 점이다. 아이패드 프로 12.9 리뷰에서 포스트 PC의 형태는 아이패드 프로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아이패드 프로 9.7은 이를 더 빨리 앞당겨 줄 제품이 아닐까 싶다.
글 / IT동아 김태우(T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