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운명과 우연을 잇는 웜홀을 발견하라 - <이기적 우주론>

이문규 munch@itdonga.com

[IT동아 이문규] 영화 '인터스텔라'의 흥행과 얼마 전 확인된 중력파 등으로 인해 우주과학에 관한 전국민적 관심이 대단히 높아졌다. 그에 따라 온/오프라인 서점가에도 우주/전체과학, 상대성이론/양자역학 등을 다룬 과학교양서가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과학서는 대개 국내외 저명한 물리학자나 교수, 박사 등이 집필하는데(킵 손 교수나 이종필 박사 등), 국내 현직 의사가 자신의 생각과 경험, 철학을 토대로, 운명과 우연의 절묘한 관계를 '우주적'으로 풀어낸 책이 발간됐다.

명문고등학교, 명문 의과대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종합병원 의사로 근무하는 이가 난데 없이 우주론을 말한다. <이기적 우주론 - 베타 우주론>은 다만, 일반적인 우주물리학 서적에서 다루는 물리학/천문학 원리가 아닌, 사람이 살면서 겪었고, 겪고, 또 겪을 운명과 우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기적 우주론 표기
이기적 우주론 표기

이름을 '존 도우(John Doe, 우리말의 '홍길동'과 유사)'로 밝힌 저자는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생각하고 터득하고 깨달은 바를 운명과 우연의 측면에서 바라본다. 즉 지금 자신이 처해 있는 현재 모습이 과거로 인한 운명인지, 미래에 대한 우연의 발생인지 진지하게 고민한다.

특이한 것은, 저자는 이 책의 시작부터 중반까지, '책을 읽고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과감히 책 읽기를 포기하라'고 종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 읽은 후의 결과에 대해 자신은 책임질 수 없으니, 자신 없으면 쓰레기통에 당장 책을 버리라 한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썼길래 이리도 극단적으로 경고하는 걸까?('당신의 따뜻한 가슴은 송두리째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송두리째 함입해야 할지도 모른다' - 36쪽)

책 읽기를 포기하라는 경고
책 읽기를 포기하라는 경고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저 저자의 상상 내지는 망상, 허무맹랑한 공상을 늘어놓은 책이라 예상했는데, 중반을 넘어갈수록 이상하게도 그의 논리와 생각,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리는 운명과 우연의 관계에 관해, 마음으로 동의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저자의 나이는 정확히 공개되지 않았지만, 책 내용으로 미뤄 40대 중반이라 짐작하는데, 나이에 비해서는 인생에 대한 상당한 고찰과 철학이 심각하게 담겨 있다. 저자가 과거에 겪었던 처절한 경험과 선명한 기억을 투영하는 고찰과 철학이다.

얼핏 보면 시집 같기도, 또는 에세이 같기도, 소설 같기도, 더러는 과학교양서 같기도 한 이 책은 읽어갈수록 묘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다만 저자 자신의 복잡/혼란한 생각을 글로 정리한 거니, 한번 읽고 이해하고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서너 번 천천히 다시 읽으면 '오호~ 그럴 듯한데...'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오게 된다. 책 읽는데 많은 지식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적지 않은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고, 저자의 생각을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배려도 있어야 한다.

운명과 우연을 우주적 시선으로 설명한다
운명과 우연을 우주적 시선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이 책은 평범하고 순탄한 일상을 보내는 이들보다, 무엇인지 모를 불안과 고민, 번민 등에 허덕이고 지쳐 있는 이들에게 적합하리라 생각한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방 한 구석에서 작은 불빛에만 의존해 이 책을 곱씹어 읽는다면 혼란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진정될 것이다.

당신은 왜 지금의 그 사람과 결혼했나
당신은 왜 지금의 그 사람과 결혼했나

팁을 하나 주자면, 이 책은 중반 즈음인 '베타 우주에서의 공간, 시간, 삶, 운명, 우연, 사랑, 하루' 부분이 이 책의 백미다. 참고로 필자가 읽어보니, 앞서 경고했던 바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오른쪽 양말을 왼발에 신든, 왼쪽 양말을 오른발이 신든, 차이는 없다(180쪽)'

저자: 존 도우 (Mr, John Doe)
출판사: 북랩
분량: 204 쪽
가격: 12,800원

글 / IT동아 이문규 (munc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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