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진화의 시작] 바둑 9단 알파고, 마케팅 10단 구글
[IT동아 강일용 기자] 알파고는 이세돌 9단과의 대국을 통해 자신이 바둑 9단임을 입증했다(한국기원도 이를 인정하고 알파고에게 명예 프로 9단을 수여한다). 구글은 알파고를 통해 자사가 홍보와 마케팅 10단임을 입증했다
바둑의 신 이세돌 9단과 바둑 인공지능 구글 알파고의 세기의 대국. 대국 전부터 둘 중 누가 이기든 결국 구글의 승리라는 전망이 나왔다. 뚜껑을 열어보니 '구글의 승리'라는 표현만으론 부족했다.
구글은 이번 대국으로 무엇을 얻은걸까. 구글은 알파고의 승리를 통해 전세계에 머신러닝(기계학습), 클라우드, 인공지능의 선두주자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데 성공했다. 15만 달러 내외의 대국료와 100만 달러의 상금 그리고 수십억 원의 행사비용을 투자해 수천억 원대의 홍보효과를 거뒀다.
이번 대국의 중요성 때문일까. 에릭 슈미트 알파벳(구글과 딥마인드의 지주회사) 회장, 세르게이 브린 알파벳 CEO,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 등 구글의 중역이 방한 후 이번 대국에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구글의 가장 큰 행사인 구글 I/O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인물들이다.
<이세돌 9단과 세르게이
브린 구글 창업자 겸 알파벳 CEO>
21세기가 인공지능의 시대가 될 것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이제 없다. 미국의 미래학자이자 구글의 기술자문인 레이 커즈와일은 자신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를 통해 사람의 업무를 돕는 약 인공지능(자아가 없는 인공지능)에 이어 강 인공지능(자아를 가진 인공지능)이 반 세기 내에 출현할 것이고, 이들 인공지능이 기술 특이점(기술의 수준이 사람의 이해를 뛰어넘는 현상)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공지능은 이제 모든 IT 기업에게 주어진 화두다. 인공지능 개발에 성공하는 기업만이 IT와 모든 산업을 이끌어나갈 수 있다. 모든 IT 기업이 틈만나면 자사의 머신러닝, 클라우드, 인공지능 기술을 강조하는 이유다.
구글은 지난해부터 구글 검색, 구글 포토, 구글 번역 등 자사 모든 서비스에 머신러닝이 적용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MS, 페이스북 등 경쟁사가 머신러닝 기술을 갖추고만 있고, 실제 서비스에 적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어 DQN과 알파고를 선보임으로써 자사의 머신러닝 기술이 인공지능 개발에도 그대로 적용되었음을 증명했다.
알파고를 통해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에서 뒤쳐지고 있다는 이미지도 만회했다. 구글 GCP(구글 클라우드 플랫폼)는 아마존 AWS, MS 애저, IBM 소프트레이어에 밀려 4위에 불과했다. 하지만 알파고의 하드웨어가 구글 GCP 속에서 생성된 슈퍼 컴퓨터급 클라우드 컴퓨팅인 것이 알려지면서 분위기가 변했다. 당장 극적인 시장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하겠지만, 사용자와 기업들에게 구글 GCP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는데 성공했다. 구글은 이 분위기를 살려 3월 말 샌프란시스코에서 구글 GCP만 다루는 단독 개발자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인공지능 시장의 선두주자임을 전세계에 알렸다. IBM 왓슨 등이 2년 전부터 활동을 시작했지만 시장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못하고 있는 것과 달리, 알파고는 이번 이세돌 9단과의 대결에서 승리함으로써 사람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분야에 인공지능이 적용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구글과 딥마인드는 이번 승리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이 적용될 수 있는 분야를 의료, 기후예측 등으로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기술 수준과 별개로) 구글이 앞서나간다는 이미지를 구축함에 따라 MS, IBM, 페이스북 등 경쟁사 역시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이 이번 대국에 버금가는 화제를 갖춘 행사 또는 마케팅을 선보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