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인물열전] '갓겜'을 개발한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하사비스
[IT동아 강일용 기자] IT인물열전에서 다룬 개발자치고 천재가 아닌 사람이 없지만, 그 중 '데미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 만큼 두각을 드러낸 인물도 드물 것 같다. 하사비스는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Deepmind)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다.
13살의 나이에 체스마스터의 자리에 올랐고, 17살에 게임 개발에 나섰다. 28살에 인공지능 개발에 뛰어들었고, 39살에 마침내 인공지능을 만들어냈다. 그 와중에 짬짬이 ‘마인드 스포츠 올림피아드(Mind Sports Olympiad, 두뇌 능력을 겨루는 대회)'에 출전해 챔피언 자리에 5번 오르기도 했다. 월드 와이드 웹의 개발자 '팀 버너스 리'는 하사비스를 가리켜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하사비스의 삶
1976년 영국에서 태어난 하사비스는 참 복잡한 혈통을 지닌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는 그리스 출신이고, 어머니는 싱가포르 출신이다. 컴퓨터와 무관한 삶을 산 가족과 달리 하사비스는 어린 시절을 컴퓨터와 함께 했다. 어린 나이에 프로그래밍을 배우며 개발자로서의 역량을 키웠다. 1989년 하사비스는 13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체스마스터의 자리에 오른다. 그의 ELO 레이팅(체스 능력을 가늠하는 점수, 바둑의 단에 비교할 수 있다)은 2300으로, 헝가리 출신의 여성 체스선수 유디트 폴가 다음으로 높은 수치였다.
이러한 하사비스의 재능을 알아본 인물이 세계 최고의 게임 개발자 가운데 한명으로 꼽히는 '피터 몰리뉴'다. 몰리뉴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하사비스를 개발자로 영입해 '신디케이트(Syndicate)'와 '테마파크(Theme Park)'라는 게임을 개발했다. 이후 하사비스는 캠브리지대학교에 진학해 컴퓨터공학 학사 과정을 마쳤다. 졸업 후 그는 다시 게임 개발자로 업계에 복귀했다. 하사비스는 피터 몰리뉴와 함께 게임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명작 '블랙&화이트(Black&White)'를 개발했다. 블랙&화이트 개발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인공지능 프로그래머였다. 이후 스스로의 게임 개발사를 창업하기 위해 독립했다. 비디오게임 개발사 엘릭서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리퍼블릭: 더 레볼루션(Republic: The Revolution)'과 '이블 지니어스(Evil Genius)'라는 게임 개발을 주도했다. 2009년에는 게임 업계에 공헌한 것을 기념해 영국왕립예술협회의 회원으로 뽑히기도 했다.
<블랙&화이트, 하사비스는 환경
변화에 따른 게임내 NPC들의 반응을 설계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래머였다>
2005년 하사비스는 게임 업계에서 은퇴한 후 인공지능 개발에 뛰어들었다. 인공지능을 개발하려면 먼저 사람의 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고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 들어가 인지신경과학(뇌과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때 그는 기억과 상상이 뇌의 같은 부분에서 생겨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이언스'지는 이 발견을 2007년 세계 10대 과학 성과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2009년 뇌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하사비스는 2010년 인공지능 스타트업 딥마인드를 설립했다. 2014년 딥마인드는 차세대 성장동력을 찾던 구글에게 인수되었다. 이와 함께 하사비스는 인공지능 부문 부사장으로 구글에 합류했고, 2015년 계열사 분리에 맞춰 구글 딥마인드의 최고경영자가 되었다.
하사비스가 개발한 게임의 공통점
하사비스는 원래 신디케이트, 테마파크, 블랙&화이트, 리퍼블릭: 더 레볼루션, 이블 지니어스 등 총 5개의 게임 개발에 관여했거나, 개발을 주도한 베테랑 게임 개발자다. 그가 개발한 게임은 한 가지 특징을 갖추고 있는데, 바로 NPC 간의 상호작용이 중요한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는 점이다. 특히 블랙&화이트의 경우 '신'의 입장이 되어 지구의 환경을 바꾸면 게임 내 NPC가 이에 맞춰 실제 사람같은 반응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한 게임이다. 때문에 사용자들은 블랙&화이트를 '갓겜(God Game)'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하사비스가 바로 블랙&화이트의 NPC들의 반응을 설계한 인공지능 프로그래머였다. 게임 개발에 관한 하사비스의 관심이 인공지능 개발로 확대된 것도 이때쯤이다.
MS와 페이스북 대신 구글을 선택
하사비스는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3번의 인수 제안을 받았다. 처음 받은 제안은 마이크로소프트(MS)가 엘릭서 스튜디오를 인수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 만의 기업을 갖고 외부의 간섭 없이 자신 만의 게임을 개발하고 싶었던 하사비스는 이를 거부했다. 그의 스승 중 한 명인 피터 몰리뉴가 MS와 손 잡은 것과 대조적인 선택. 이후 하사비스는 MS, EA, 액티비전 등 거대 배급사 위주로 돌아가는 비디오 게임 업계에서 인디 게임 개발사가 설 자리는 없다고 판단하고 게임 업계를 떠났다.
두 번째 받은 제안은 페이스북이 딥마인드를 인수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사비스는 마크 저커버그와 페이스북은 인공지능보다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소셜)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인다며 이 제안을 거부했다.
세 번째 받은 제안이 구글이 딥마인드를 인수하겠다는 것이다. 기술 개발 자체를 중시하는 래리 페이지와 구글의 비전에 동의한 하사비스는 이 제안을 승낙했다. 구글의 딥마인드 인수 비용은 5,000억 원(4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사비스가 개발한 인공지능
10년이 넘는 연구 끝에 하사비스와 딥마인드는 2015년부터 인공지능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바로 'DQN(deep Q-network)'과 알파고다.
지난 2015년 2월 공개된 DQN은 고전 비디오 게임인 '아타리2600' 속의 46가지 게임을 사람처럼 플레이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다. 아타리2600이 세상에 등장한지 반 세기가 되어가지만, 장애물을 피해서 목적을 달성한다는 비디오 게임의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넘어야할 장애물의 난이도가 낮은 것이 살짝 흠이지만, 어찌되었든 비디오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인공지능이 세상에 등장했다.
이어 2015년 10월 유럽의 프로바둑 기사 판후이 2단과의 대결에서 알파고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알파고는 이름에 그 목적이 반영되어 있다. 구글의 지주회사 '알파벳'에 바둑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고(Go)'를 더해 만들어낸 이름이다. 구글의 바둑 인공지능임을 의미한다. 알파고는 판후이 2단과의 대결에서 5:0으로 전승하면서 파란을 일으켰다. 이어 다음 대국상대로 왕년의 세계 1위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을 지목했다.
하사비스는 왜 수 많은 작업 중에서 게임을 인공지능이 도전해야 할 분야로 본 것일까.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설립자이자 개발자인 데미스 하사비스가 한 때 인공지능 프로그래머로서 게임 분야에 종사했던 것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사람의 창의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하사비스는 원래 게임 개발자였다. 게임을 개발하면서 게임이야 말로 가장 창의적인 작업이라는 것을 깨달은 하사비스는 인공지능이 사람과 대등해지려면 먼저 게임부터 정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임은 매우 창의적인 작업이다. 수 많은 경우의 수 속에서 사람 개개인만의 최적의 수가 있다. 같은 게임을 즐겨도 즐기는 방식이 사람 별로 천차만별이다. 하사비스는 '인공지능의 창의력을 입증하기 위해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고 게임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사비스는 현재 알파고와 DQN에 적용된 인공신경망 기술을 활용한 차세대 인공지능 '딥마인드 헬스'를 준비하고 있다. 딥마인드 헬스는 기계에서 수집된 의료 데이터를 바탕으로 의사를 대신해 사람 몸 속의 병을 찾아주는 인공지능이다. 이미 앱을 통해 개인의 헬스데이터를 제공받고 이를 분석해 추후 건강상황이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해주는 '스트림'이라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기후예측에도 도전한다. 전세계의 기상 변화 데이터를 수집한 후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구의 환경이 향후 어떻게 변할지 예측해주는 인공지능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DQN과 알파고를 개발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차세대 인공지능 개발에 고스란히 적용할 예정이다.
게임 분야에도 지속적으로 도전할 계획이다. 바둑과 간단한 비디오 게임을 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융합해 좀 더 복잡한 비디오 게임에 도전한다. 바로 대한민국의 국민게임 '스타크래프트'다. 제프 딘 구글 머신러닝 총괄은 "데미스 하사비스 대표는 알파고와 DQN이 도전할 다음 분야로 스타크래프트를 고려하고 있다"고 깜짝 선언했다. 머지않아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알파고는 바둑 전용 인공지능인 만큼 다른 이름일 것이다)과 국내 정상급 프로게이머가 상금을 걸고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펼치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사비스의 행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게 2승을 먼저 거둠에 따라 대한민국은 '인공지능 쇼크'에 휩싸였다. 멀게만 느껴졌던 인공지능이 우리 삶 근처까지 다가왔고, 그 능력이 이미 사람을 뛰어넘었음을 확인한 것이다. 정부, 기관, 기업도 부랴부랴 인공지능 개발과 투자에 나서겠다고 밝힌 상황. 때문에 우리는 알파고의 아버지 하사비스의 행적에 주목해야 한다. 그의 행적에 인공지능 개발의 실마리가 있다.
하사비스의 행적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게임, 컴퓨터과학, 뇌과학이다. NPC와 환경의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시뮬레이션 게임을 개발하면서 인공지능에 눈을 떴고, 인공지능 개발을 위해 컴퓨터과학과 뇌과학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학위를 취득했다. 인공지능 개발자에게 어떤 소양이 필요한지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진정 대한민국이 인공지능 개발에서 앞서나가고 싶다면 게임, 컴퓨터과학, 뇌과학에 관한 기초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