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편리함으로 공짜를 이긴 넷플릭스
[IT동아 강일용 기자] 지난 2010년까지만 해도 인터넷은 '공짜'가 지배했다. 비트토렌트를 위시한 각종 파일 공유 서비스가 인터넷 트래픽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콘텐츠가 그 속에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공짜로 공유되고 있었다. 콘텐츠 창작자들에게 인터넷은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2010년 하반기 북미에 시작된 넷플릭스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가 모든 것을 바꿨다. 2011년 1분기(1~3월) 북미 인터넷 트래픽을 살펴보자. 북미의 ISP 샌드바인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트래픽 점유율은 29.7%(유선 인터넷 다운로드 기준)에 이른다. 10.37%를 차지한 비트토렌트를 제치고 다운로드 트래픽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이후 넷플릭스는 유튜브와 함께 북미 인터넷 트래픽을 양분했다. 작년(2015년) 결과를 살펴보자. 넷플릭스는 36.48%로 1위를, 유튜브는 15.56%로 2위를 차지했다. 비트토렌트의 점유율은 고작 2.76%에 불과했다. 고작 5년만에 일어난 변화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이끌어낸 것일까? 북미 사용자들의 저작권 의식이 성숙해서? 정부의 저작권 보호 정책이 강화되어서? 물론 이러한 이유도 있을테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편리함'이다. 넷플릭스가 제시한 편리함이 공짜를 선호하던 사용자들의 마음을 돌린 것이다.
넷플릭스의 편리함?
넷플릭스의 편리함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원하는 영화와 드라마를 보기 위해 복잡한 인터넷을 헤매지 않아도 된다는 것, 2) 영화와 드라마를 고른 즉시 감상할 수 있다는 것, 3) 가입 절차가 빠르고 간단하다는 것 등이다.
비트토렌트에 수많은 콘텐츠가 존재한다지만, 그것을 찾으려면 많은 수고가 필요하다. 설사 원하는 콘텐츠를 찾았다고 해도 내려받는데 상당한 시간을 요구한다. 게다가 콘텐츠를 내려받을 수 있는 유통기한까지 존재한다. 토렌트에서 시드가 생성된지 1년이 지난 콘텐츠를 내려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제아무리 공짜를 좋아하는 사용자라도 지칠만하다.
넷플릭스가 이러한 맹점을 파고들었다. 서비스를 최대한 편리하고 사용자 친화적으로 만들었다. 먼저 사용자가 보고 싶어하는 모든 영화와 드라마를 갖췄다. 약 4,000만 개에 이르는 콘텐츠를 확보했다. 사용자가 영화와 드라마를 찾아 인터넷을 헤매지 않아도 되도록 만든 것이다. 또, 검색을 위해 단어를 입력할 필요조차 없게 만들었다. 사용자의 취향을 분석하고 이에 맞는 콘텐츠를 찾아주는 추천 시스템을 구축해, 사용자가 넷플릭스를 실행하기만 하면 보고싶은 콘텐츠가 보이도록 했다.
동영상 스트리밍 방식을 채택해, 콘텐츠를 선택하면 10초 이내로 감상을 시작할 수 있게 했다. 최대한 빨리 실행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일단 저화질 재생을 시작하고 재생 10~20초 후 화질이 향상되는 시스템을 택했다.
가입 절차는 15초 이내에 끝나도록 간소화했다. 서비스 탈퇴는 더 쉽다. 10초면 가능하다. 요금 결제는 신용카드에서 알아서 진행되도록 했다.
공짜를 선호하던 사용자들조차 이러한 넷플릭스의 편리함에 끌렸다. 영화, 드라마를 보기 위해 인터넷을 헤매느니 차라리 약간의 비용을 지불하고 넷플릭스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을 선택했다. 넷플릭스의 이러한 사용자 친화 전략은 주효했다. 서비스 개시 3개월 만에 북미 인터넷 트래픽 1위를 차지했고, 그 점유율은 점점 늘어나게 된다. 결국 북미 사용자들의 인식 속에 '영화와 드라마 감상 = 넷플릭스'라는 인식을 심어주는데 성공했다.
국내의 상황은?
아쉽게도 편리함이 공짜를 이겼다는 얘기는 북미 지역에 한정된다. 국내를 포함한 아태지역에선 여전히 비트토렌트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샌드바인의 2015년 인터넷 트래픽 조사결과 비트토렌트는 19.2%를 점유해, 29.31%를 차지한 유튜브에 이어서 트래픽 점유율 2위를 차지했다(유선 인터넷 다운로드 기준). 중국의 P2P '쑨레이'의 점유율을 합하면 21.13%에 이른다.
국내와 아태지역에선 여전히 공짜가 대세다. 하지만 편리함이 공짜를 이기는 것은 이제 피할 수 없는 대세다. 공짜지만 불편한 비트토렌트의 자리를 편리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신할 것이다. 북미의 사례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때문에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는 보유한 콘텐츠의 양 못지 않게 편리함을 추구해야 한다.
편리함의 대명사 넷플릭스가 국내 시장에 진출함에 따라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는 변화를 꾀하고 있고, 새로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동영상 콘텐츠 부족으로 고전하고 있는 지금, 다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는 넷플릭스의 편리함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결국 콘텐츠 부족이란 문제를 시간으로 해결한 넷플릭스가 국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을 접수하고 말 것이다. 2011년부터 시작했어야 할 편리함(사용자 친화적인 서비스 구축)을 지금 부랴부랴 진행하는 점이 아쉽지만, 이마저도 하지 않으면 토종 동영상 콘텐츠 서비스는 경쟁에 밀려 결국 말라죽을 수 밖에 없다.
자료로 사용된 샌드바인의 인터넷 트래픽 조사결과는 '2015년 북중미 트래픽 보고서'와 '2015년 아태&유럽 트래픽 보고서'에서 볼 수 있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