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인물열전] USB로 세상을 바꾸다, 아제이 바트
[IT동아 강일용 기자] 100억 대가 넘는 기기에서 사용되고 있는 유선 연결 규격 'USB(Universal Serial Bus: 범용 직렬 버스)'가 세상에 등장한지 어느덧 20년이 되었다. 이제 USB가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다. PC, 노트북, 스마트폰, 태블릿PC 같은 IT 기기부터 TV, 셋톱박스, 냉장고, 자동차 같은 일반 제품까지 모든 기기의 표준 입력 단자로 USB가 이용되고 있다. 이러한 USB는 누가 개발한 것일까?
모든 사람과 사물은 아버지 또는 아버지 격에 해당하는 인물이 있기 마련이다. USB도 마찬가지다. 인텔의 USB 개발팀을 이끈 수석 설계자 '아제이 바트(Ajay Bhatt)'가 바로 USB의 아버지다. 아제이 바트는 30년 동안 컴퓨터와 입출력 인터페이스를 설계한 기술자다. 그가 개발한 많은 기술이 컴퓨터 입출력 인터페이스(I/O)에 적용되었고, 우리 삶을 바꿨다. USB의 아버지를 넘어 모든 입출력 인터페이스의 아버지라고 부를만한 인물이다. 그의 종적을 자세히 살펴보자.
인도에서 미국으로
실리콘밸리는 가히 '인도 천하'라고 부를만한다. 많은 인도 개발자가 성과를 내고, 요직을 차지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어도비 등 주요 IT 기업의 수장이 모두 인도인이다. 대부분의 인도 개발자가 인도 본토에서 대학을 마친 후 미국 대학원에 진학해 학위를 따고 실리콘밸리 기업에 취업하는 순서를 밟고있다.
아제이 바트도 마찬가지다. 1957년 인도 구자라트 주에서 태어난 그는 인도 마하라자 사야지라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한 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뉴욕시립대 전자전기공학 석사를 취득한 후 아제이 바트가 처음 선택한 직장은 모토로라 왕 연구소였다. 지금이야 사람들의 인식에서 사라진 모토로라지만, 당시에는 CPU와 워크스테이션으로 나름 입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아제이 바트는 왕 연구소에 입사한 후 모토로라 680X0 기반의 워크스테이션 생산 라인에서 메인보드와 입출력 인터페이스 설계를 담당했다.
인텔에 합류하다
6년간 모토로라 생활을 접고 1990년 아제이 바트는 인텔로 이직한다. 그는 인텔에서 다양한 작업에 관여했다. 먼저 PC의 전원관리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바꿨다. 이를 통해 PC는 상황에 맞춰 유동적으로 전원을 소모하기 시작했다. 또, 산업표준이 된 플러그&플레이(입출력 표준, 별도의 드라이버를 설치하지 않아도 PC에 주변장치를 연결하면 바로 인식하는 것은 이러한 표준이 있기 때문이다) 개발에도 참여했다.
무엇보다 직접 메모리 접속(DMA, Direct memory access) 개발팀에 참여한 것이 눈에 띈다. DMA는 PC의 부속품 또는 주변기기가 CPU를 거치지 않고 바로 메모리(RAM)에 접속하게 해주는 기술이다. 이를 통해 메모리는 프로세서에서 분리된 별도의 장치로 거듭났고, PIO 인터페이스를 쓰던 과거의 PC보다 빠르게 외부의 정보를 메모리에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의문이 생긴다. 인텔은 프로세서(CPU)를 만드는 회사 아니었던가? 아제이 바트는 왜 프로세서 개발 대신 전원, 메인보드, 입출력 인터페이스 기술을 개발에 투입된 것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PC 산업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 인텔은 프로세서를 만드는 회사인 동시에 프로세서가 제성능을 낼 수 있도록 메인보드를 설계하는 회사이기도 하다. 다만 프로세서만 직접 생산하고, PC의 핵심인 메인보드는 직접 생산하지 않고 설계도를 공개해 다른 회사가 만들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실 한때 직접 메인보드를 만들기도 했다. 요즘은 관뒀지만) 아제이 바트 역시 프로세서가 제성능을 낼 수 있도록 메인보드, 입출력 인터페이스 기술 개발에 2년 동안 종사했다.
USB를 만들다
컴퓨터가 막 보급되기 시작한 1990년대 초의 얘기다. 당시 컴퓨터와 주변기기를 연결할 때 사용하는 인터페이스(포트, 케이블)의 종류는 정말 중구난방이었다. 때문에 연결해서 사용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컴퓨터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사용자들은 주변기기를 연결하는 것 자체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어떤 케이블을 어떤 포트에 꽂아야 하는지, 그리고 연결 후 어떤 설정을 해 줘야 주변기기가 정상 작동하는지 사용자들이 알기 힘들었단 의미다.
이는 사용자뿐 아니라 제조사에게도 곤란한 문제였다. 컴퓨터 주변기기의 종류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데 기기의 종류마다 다른 규격의 인터페이스를 사용한다면 PC에 어떤 인터페이스를 달아야 하는지, 주변기기를 어떤 인터페이스 기반으로 설계해야 하는지 혼란스럽기 마련이다. 게다가 '모든 컴퓨터 주변기기들이 동일한 표준 인터페이스로 연결'되고, '별다른 조작 없이 연결 즉시 사용 가능한 상태'가 되며, '연결된 주변기기가 별도의 외부 전원을 꽂지 않아도 작동'한다면 PC 보급률을 더욱 높힐 수 있지 않을까.
때문에 인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IBM, 컴팩, HP, NEC 등 당시 컴퓨터 업계의 거물들이 모여 표준 연결 인터페이스를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1992년, 인텔을 비롯한 여러 IT 기업은 USB 개발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차세대 인터페이스 개발에 나섰다. 해당 TF의 리더는 입출력 인터페이스 설계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아제이 바트가 맡았다.
아제이 바트는 이 새로운 입출력 인터페이스의 핵심 기술을 설계했다. 그는 새 인터페이스가 어떤 규격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지 정의했다. 새 인터페이스의 데이터 전송 속도 및 규격, 전력 공급 방법, 입출력 단자의 연결방법 및 형태, 국제표준과의 호환성, PS2 단자(과거 마우스와 키보드를 PC에 연결하기 위해 사용하던 규격) 지원 기능 등을 개발했다.
아제이 바트와 그 휘하 개발진들의 4년 간 연구 끝에 마침내 USB가 세상에 등장했다. USB 인터페이스의 첫 번째(1.0) 규격이 1996년 1월 발표된 것이다. USB 단자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는 '단자 통폐합, USB 20년의 역사(http://it.donga.com/22968/)' 기사를 참고하자.
PCI 익스프레스 개발에 뛰어들다
USB를 개발한 후 아제이 바트는 서버와 워크스테이션의 입출력 인터페이스 개발자로 인텔에 복귀했다.
2000년대에 들어 PC 업계는 새로운 주변기기가 각광을 받게된다. GPU, 프로세서와 별도로 그래픽 처리에 특화된 장치다. 1990년대 초중반 프로세서에서 독립한 GPU는 3D 그래픽의 발달에 맞춰 무서운 속도로 성능을 확대했다. 막대한 데이터를 프로세서, 메모리와 주고받게 되었다. 때문에 기존에 사용하던 AGP(accelerated graphics port)를 대신할 새로운 입출력 인터페이스가 필요하게 되었다.
때문에 인텔, AMD, 엔비디아, ATI(AMD에게 인수당하기 전이다), 델, HP, 퀄컴 등 PC 업계에 주요 기업이 모여 차세대 입출력 인터페이스인 'PCI 익스프레스'를 개발할 PCI-SIG라는 기업을 설립했다. PCI-SIG는 인텔이 개발하던 3 GIO(The 3rd Generation I/O) 기술을 이어받아 PCI 익스프레스 기술의 표준을 확정했다.
아제이 바트는 USB 개발 때와 마찬가지로 PCI 익스프레스 수석 설계자로서 PCI-SIG와 함께 했다. 아제이 바트와 PCI-GIS의 개발진들의 4년 간의 연구 끝에 2005년 PCI 익스프레스 1.1 규격이 시장에 등장했다. 이때부터 PCI 익스프레스는 AGP를 밀어내고 입출력 인터페이스 시장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잡게 된다. 아제이 바트는 PCI 익스프레스의 성공을 위해 다양한 개발 컨퍼런스에 참여한 후 PCI 익스프레스 기술을 설명하고 참여를 독려했다. 또, 2009년까지 PCI 익스프레스 1.1, 2.0, 3.0 규격 개발을 지휘하며 GPU와 그래픽 카드 시장 발전에 한몫했다. PCI 익스프레스 설계 이후 그는 사용자 컴퓨팅 수석 설계자로 울트라북(인텔의 휴대용 노트북 규격) 설계에 관여했다.
"나는 돈을 위해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제이 바트는 현재 인텔의 최고 기술자(상무 대우)로서 회사에 재직 중이다. 비즈니스인사이더의 보도에 따르면, 아제이 바트는 USB 개발로 아무런 이득을 얻지 못했다. 인텔이 USB와 PCI 익스프레스를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로 공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그는 이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나는 돈을 보고 이 일을 한 것이 아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한다"며, "게다가 엔지니어로서 회사(인텔)로부터 후한 보상을 받았다. 다른 곳에서는 이러한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인텔도 아제이 바트에게 나름 대우(?)를 해주고 있다. 아제이 바트는 인텔 TV 광고의 단골 출연자다. 코어 i 프로세서 1세대 광고의 주역으로 출연한적도 있다. 인텔의 혁신을 강조하며 아제이 바트가 주인공인 TV 광고를 제작하기도 했다. 해당 광고에는 자막으로 아제이 바트가 'USB의 발명가'라고 큼직하게 쓰여있다.
<아무리 USB의 아버지라도 이런 광고는 조금 당황스럽다>
그는 지금도 우리의 삶을 더욱 편리하게 바꾸기 위해 노력 중이다. 현재 아제이 바트는 35개의 회사와 함께 스타일러스펜(전자펜)의 표준을 만들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그가 개발하고 있는 기술이 세상에 공개되면 우리는 하나의 전자펜으로 모든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터치스크린을 조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USB 단자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