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테슬라 기술 품은 프리미엄 이어폰, 아스텔앤컨 AK T8iE
[IT동아 강형석 기자] 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들에게 아스텔앤컨(Astell&Kern)은 어떤 이미지일까? 고가의 프리미엄 브랜드일 수도 있고, 무손실 음원 플레이어의 선두주자 정도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고가인 만큼, 그들은 다른 프리미엄 브랜드와의 협업을 주저하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아스텔앤컨의 옷을 입은 제품들은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최근 아스텔앤컨은 프리미엄 이어폰 하나를 선보였다. AK T8iE가 그 주인공인데, 헤드폰을 위해 협업한 바 있는 독일 오디오 제조사 베이어다이나믹(Beyerdynamic)과 손을 잡았다. 프리미엄 헤드폰에 적용된 테슬라 기술로 유명한 이 브랜드는 자신들의 기술을 아스텔앤컨의 작은 이어폰에 넣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아스텔앤컨 AK T8iE는 테슬라 기술이 도입된 첫 프리미엄 이어폰으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과연 이어폰에 탑재된 테슬라 기술은 어떤 느낌일까?
이번에는 베이어다이나믹과의 협업
아스텔앤컨 브랜드 이어폰은 여러 유명 브랜드들과 협업을 해왔다. 제리 하비 오디오(Jerry Harvey Audio)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라일라(Layla)와 앤지(Angie), 록산느-아스텔앤컨(Roxanne-Astell&Kern) 한정판 외에도 파이널 오디오 디자인(FAD)의 AKR01, AKR02 등도 있다. 헤드폰은 베이어다이나믹의 T5p를 기반으로 한 AK T5p가 있다.
여러 유명 음향기기 제조사와 협업한 것을 바탕으로 노하우를 쌓은 아스텔앤컨의 새 이어폰 AK T8iE는 베이어다이나믹의 손에서 태어났다. 주로 마이크나 헤드폰 등으로 잘 알려진 브랜드지만 그 노하우를 살린 이어폰 또한 마니아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AK T8iE는 인어이 이어폰 구조다. 귀에 살짝 거는 오픈형이 아닌 유닛이 귀 가까이에 닿기 때문에 소리 전달 측면에 유리한 부분이 있다. 다만 이물감 때문에 이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 또한 있으니 구매 전, 청음매장을 한 번 방문해 착용하는 것을 권장한다. 그러나 이 비싼 물건을 어느 매장이 얼마나 구비해 놓을지는 미지수.
외형은 제법 고급스럽다. 재질감이나 마감 모두 만족스럽다. 크롬 증착 기술을 적용했기 때문에 손에 쥐었을 때 무게감이 전달된다. 크기 대비 묵직하다는 느낌이 든다. 귀에 착용했을 때에도 이 무게감은 조금 느껴지지만 거부감이 들 정도는 아니다.
제품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기 전, 베이어다이나믹이 어떤 곳인지를 알아보자. 이 곳은 1924년 오이겐 바이어(Eugen Beyer)가 독일 베를린에 설립한 회사로 90년 이상 음향기술에 매진한 곳이다. 1937년에 첫 다이나믹 헤드폰 DT 48을 선보인 이후로 스튜디오용 다이나믹 마이크나 하이파이 스테레오 헤드폰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다.
이 외에도 베이어다이나믹은 강한 자장을 이용한 테슬라 기술(TESLA Technology)을 활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강력한 자장을 내는 드라이버로 배음왜곡(Harmonic Distortion)을 줄인 이 기술은 깨끗한 재생력으로 최대한 원음에 가까운 사운드를 전달한다는 개념으로 도입됐다. 이는 플래그십 헤드폰 T1에 적용된 바 있다.
아스텔앤컨 AK T8iE에도 이 테슬라 기술이 적용되어 있다. 베이어다이나믹으로는 처음 이어폰에 테슬라 기술을 적용한 것이다. AK T8iE에는 T1에 들어간 링 마그넷을 1/16 크기로 줄이고 미세하게 가공한 코일을 달았다고 한다. 이렇게 완성된 이어폰은 16옴의 저항과 109 단계의 음압, 8~4만 8,000Hz의 주파수 응답 등 사양 자체로는 여느 플래그십 이어폰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이다.
다시 이어폰을 살펴보자. 유닛과 케이블은 교체가 가능한 MMCX 탈착식이다. 단선이 일어나면 이어폰을 다 교체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사설이나 개인이 완성한 커스텀 케이블을 활용하기에 용이하다. 더 좋은 음질을 탐하고자 금이나 은을 동원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는 얘기다.
외형적인 부분은 아스텔앤컨 특유의 A자 로고와 게르만의 자부심 '메이드 인 젊은이(MADE IN GERMANY)', 내 이어폰이 몇 번째인지를 알려주는 시리얼 번호 등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다른 이어폰과 큰 차이가 없다.
케이블은 패키지에 2개가 제공된다. 1개는 일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기타 플레이어 등에서 활용할 수 있는 3.5mm 규격 케이블이다. 다른 1개는 2.5mm 규격으로 아스텔앤컨 기기에 가능한 밸런스 케이블이다. AK100 II나 AK120 II, AK240, AK380 등에서 쓸 수 있다.
케이블은 방탄용 아라미드 섬유를 적용해 내구성을 높였다고 한다. 얼핏 보면 단자와 케이블 사이의 마감이 조금 불안해 보이기도 하는데, 높은 내구성을 갖췄다고 하니 일단 믿어보자.
함께 제공되는 구성물도 화려하다. 크기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실리콘 이어팁은 기본이고 크기에 따른 메모리폼 팁도 제공된다. 메모리폼 팁은 컴플라이(Comply)에서 만든 것으로 슈어나 젠하이저, 웨스톤 등 오디오 마니아가 이름 한 번 들어보면 알아차릴 음향업체들도 사용하고 있다. 실리콘 이어팁은 5쌍, 컴플라이 프리미엄 이어폰 팁은 3쌍이 제공된다.
이 외에 케이블 고정 클립과 소중한 이어폰을 더 소중히 보관하게 만들어주는 가죽 케이스 등이 포함되어 프리미엄(?) 이어폰의 가치를 더 높여준다.
끝내주는 사운드를 공간·장소 제약 없이 듣는다
이 정도 사탕발림 했으면 이제 정말인지 확인해 볼 차례다. 미리 언급하지만 사운드라는게 주관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므로 반드시 사전에 청음할 것을 권장한다. 다양한 환경을 경험하기 위해 일단 소니 ZX2 + PHA-1A 조합과 아이폰5 + PHA-1A, 블랙베리 패스포트에 각각 연결했다. 아스텔앤컨이 손에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접할 수 없었다.
기자는 개인적으로 슈어 SE535와 베이어다이나믹 T5p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마침 같은 베이어다이나믹 이어폰이 손에 쥐어지니 SE535보다 T5p와의 비교에 청각을 풀가동했다. 참고로 음원은 ZX2의 경우 무손실 음원(FLAC), 아이폰5와 블랙베리 패스포트는 각각 320Kbps MP3 음원이다.
먼저 ZX2와 PHA-1A의 조합이 가장 만족스러웠다. 공간감이면 공간감, 펀치력이면 펀치력 무엇 하나 부족함 없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헤드폰인 T5p는 중고음 영역은 엄지를 들어줄 정도로 뛰어났지만 저음이 약간 아쉽게 느껴졌다. 앰프를 쓰면 조금 나아져도 특성 자체를 뛰어넘지 못한다. 반면, AK T8iE는 이 저음이 다소 보강된 느낌을 준다. 단단하게 치는 맛이 있다.
반면, 크기 때문에 섬세함은 헤드폰인 T5p에 비해 부족한 면이 느껴진다. 유닛 크기가 주는 한계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다른 동급 프리미엄 이어폰과 비교하면 적어도 ‘음질 떨어져 돈 값 못한다’ 소리는 듣지 않겠다.
공간감은 헤드폰 못지 않다. T5p도 약 10평 남짓한 작은 스튜디오 가운데 앉아 밴드가 연주하는 음악을 홀로 듣는 호사를 누린다 싶었는데, AK T8iE도 이와 비슷하다.
일반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쓴다는 가정 하에 청음한 블랙베리 패스포트에서는 큰 차이를 경험할 수 있었다. MP3임에도 슈어 SE535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물론 큰 지출을 피할 길 없다. 개인적으로 실망한 조합은 아이폰 5 + PHA-1A였다. 디지털 출력임에도 다른 조합과 비교하면 밸런스가 조금 아쉽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입장이 녹아 있으니 참고만 하길 바란다. 아이폰을 폄훼할 생각은 없으니 말이다. 어디까지나 청음은 직접 들어봐야 진가를 알 수 있다.
아, 참고로 유닛부의 그릴(덮개)은 생각 외로 잘 빠진다. 얼마 전, 실리콘 이어팁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이 덮개가 빠져 사라지는 바람에 찾느라 진땀 좀 뺐다. 이렇게 빠지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모든 제품에서 동일한 증상이 나오는지, 샘플로 제공된 이 이어폰만의 문제인지는 알 길이 없다.
잘 빠지는게 정상이라면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생각을 해 봤다. 그리고 도달한 결론은 바로 메모리폼 팁. 이 메모리폼 팁 중앙에는 그릴의 역할을 대신할 얇은 스펀지(?) 막이 있다. 이를 사용할 때 덮개를 제거하고 이 팁을 끼우라는게 아닐까 생각이 된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다. 아무튼 이어팁 교체할 때 정신 바짝 차려야 할 듯 하다.
다른 아쉬운 부분은 이어팁이다. 메모리폼 팁은 괜찮은데, 실리콘 팁을 썼을 때의 착용감이 만족스럽지 않다. 귀와 이어폰 사이에 약간 유격이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이 때문에 차음성도 떨어지고, 청음 중 이어폰이 귀에서 이탈하는 일도 발생한다. 이 실리콘 팁 형상에 맞는 귀도 있겠지만 메모리폼 팁이 차음성이나 착용감 측면에서 더 낫다.
음질 납득은 되는데… 가격은 좀…
해외에서는 999달러, 단순 미화 환산으로 약 120만 원에 가까운 금액이다. 여기에 국내 유통 마진과 A/S 비용 등을 감안하면 약 140만 원대 가격에 형성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다. 이보다 저렴하면 더 이상 바랄게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아스텔앤컨의 가격 정책은 자비가 없다.
사운드 마니아들은 아주 미세한 차이를 더 끌어내기 위해 거금 들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AK T8iE는 그들의 심리를 자극하기에 좋은 제품이다.
기자도 약 2주일 가량 써보니 품질이나 음질 등은 프리미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뛰어났다. 그러나 이를 위해 100만 원 이상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는 점은 소비자 스스로 고민할 부분이다. 사운드, 그것도 정말 끝내주는 사운드를 경험하고 싶은데, 여기에 여유까지 넘치는 사람이라면 한 번 도전하기에 좋은 제품이라 평가하고 싶다.
글 / IT동아 강형석 (redb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