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인물열전] 컴퓨터는 쉽고 단순해야 한다, GUI의 선구자 앨런 케이
[IT동아 이상우 기자]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팔로알토 연구소(Palo Alto Research Center, PARC, 이하 파크)는 1970년 프린터 기업인 제록스(Xerox)가 세운 민간 연구소로 레이저 프린팅, 이더넷(LAN을 위한 컴퓨터 네트워크 기술), 개인용 컴퓨터의 원형, 유비쿼터스 컴퓨팅 등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의 근간이 되는 하드웨어 기술과 정보 기술이 탄생한 곳이다. 특히 그래픽 기반 인터페이스(GUI)와 관련한 기술 개발이 아주 활발하게 이뤄졌다. 흔히 최초의 GUI 기반 컴퓨터를 내놓은 곳은 애플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록스 파크는 이보다 이른 1973년 최초의 GUI 기반 PC 제록스 알토(Xerox Alto)를, 1981년에는 GUI 기반 워크스테이션 제록스 스타(Xerox Star)를 상용화했다.
<제록스 파크의 정문. 지난 2002년 제록스 부설 연구소에서 자회사로 독립하면서 이름을 파크로 변경했다. <출처: 위키백과>>
제록스 파크는 근거리 네트워크(LAN)의 통신 방식인 이더넷을 만든 로버트 메트칼프, 포스트 스크립트와 PDF를 만든 존 워녹, 인터넷의 전신인 아르파넷(ARPANet) 프로젝트를 지휘한 밥 테일러, MS 오피스의 원형을 개발한 찰스 시모니 등 출중한 인물을 배출했다. GUI 관련 기술을 이끌었던 앨런 케이 역시 대표적인 인물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GUI의 기초가 된 제록스 알토를 개발했으며,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의 개념을 다지고 객체 지향 개발 언어 스몰토크(Smalltalk)를 만들었다.
<제록스 파크의 연구원 <출처: computerhistory.org>>
<제록스 알토 앞에 앉아있는 앨런 케이 <출처: computerhistory.org>>
앨런 케이(Alan Curtis Kay)는 1940년 5월, 메사추세츠 주 스프링 필드에서 태어났다. 콜로라도 대학에서 분자 생물학과 수학 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 기간에도 10대 때부터 이어온 프로 재즈 기타리스트로서의 활동을 놓지 않았다. 1966년 유타 대학교 공과대학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그의 관심사는 재즈 기타에서 컴퓨터 공학으로 옮겨갔다. 이 기간에 유타 대학교에서 교수로 있던 이반 서덜랜드를 만나 친분을 쌓게 된다. 훗날 이반 서덜랜드는 앨런 케이가 스몰토크를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준다.
<마우스 탄생 40주년 기념 행사에서 연설을 하는 앨런 커티스 케이 (Alan Curtis Kay , 1940. 5. 17. ~ ) <출처: 스탠포드 대학교 학보>>
앨런 케이는 1968년 스탠포드 연구소의 더글라스 엥겔바트가 발표한 온라인 시스템(NLS)에 영감을 얻는다. NLS는 GUI와 하이퍼링크를 기반으로 한 전자 회의 시스템으로, 마우스를 통한 직관적인 사용이 특징이다. 향후 더 많은 사람이 컴퓨터를 사용할 것이며, 화면 앞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내다본 그는 컴퓨터를 일반적인 지식만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효율적인 UI를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키디컴프(KiddiComp)라는 콘셉트의 사용하기 쉬운 태블릿 컴퓨터를 디자인한다.
<모니터, 키보드와 마우스, 네트워크를 통한 전자 회의 시스템 NLS <출처: dougengelbart.org>>
<앨런 케이와 더글라스 엥겔바트 <출처: (CC BY) Alan Levine @flickr.com>>
앨런 케이의 본격적인 활동은 1970년 제록스 파크에 입사하면서부터 시작된다. 1972년에는 키디컴프를 발전시킨 다이나북(Dynabook)을 구상한다. GUI를 기반으로 사용 방식이 아주 단순해 어린이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었다. 향후에는 교육용 플랫폼으로 어린이 한 명이 한 대의 다이나북을 갖게 하는 것이 목표였으나 실제 제품으로 출시되지는 못했다. 이는 제록스 파크의 독특한 환경 때문인 듯하다. 제록스 파크는 연구원이 원하는 분야를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최고의 성과물을 낼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이를 사업화하는 능력은 상당히 부족했으며, 오히려 원친 기술을 공공의 이익이나 상호 발전을 위해 공개하는 일도 있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태블릿 컴퓨터가 등장한 것은 이로부터 약 40년이 지난 뒤였으며, 아이패드는 오늘날 태블릿 컴퓨터의 대명사가 됐다.
*실제로 어도비 창립 멤버인 존 워녹은 포스트 스크립트 상업화가 무산되자 제록스 파크를 떠나 어도비를 세우고, 포스트 스크립트를 바탕으로 사업에 성공한다. 한편, 스티브 잡스는 제록스 파크에 대해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만들었는지 모른다며, 연구 결과를 잘 관리했으면 90년대의 IBM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수준의 대기업이 됐을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https://youtu.be/xwjuOwSTSMY).
<다이나북 목업을 들고 개념을 소개하는 앨런 케이 <출처: 위키백과>>
앨런 케이는 제록스 파크에 입사한 1970년대 초반부터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에 관한 개념을 다지기 시작했다.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이란 컴퓨터 프로그램을 명령어의 나열로 보는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여러 개의 독립 단위(객체)가 상호작용 하는 관점으로 보는 개발 방식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개발은 객체 지향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코드가 늘어날수록 관리가 어려운 절차 지향 방식과 비교해 유지 보수가 쉬우며 무엇보다 프로그래밍의 개념을 배우기 쉽다.
<중첩 가능한 작업 창(window)과 GUI를 적용한 개발 언어 스몰토크 <출처: parc.com>>
앨런 케이와 그의 팀은 객체 지향 개발 방식의 장점을 알리기 위한 개발 언어 **스몰토크(SmallTalk)도 개발한다. 스몰토크는 GUI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개발 언어로 문법이 간단해 기초적인 문법을 아주 짧은 시간에 배울 수 있다. 특히 순수하게 객체 지향 개발을 위해 만들어진 언어인 만큼 이 개념을 배우기 적절하다(한국 스몰토크 사용자 그룹은 15분이면 스몰토크의 기초적인 문법을 알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실 시뮬라67이라는 이름의 객체 지향 언어가 1960년에 등장했지만, 실용적인 언어로 발전하지 못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최초의 객체 지향 언어로는 스몰토크를 꼽는다.
당시 제록스 파크는 세 가지 가정하에 스몰토크를 제작했다. 우선 향후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컴퓨터를 사용할 것이며, 그래픽을 출력하는 모니터와 이를 사용할 수 있는 마우스를 사용하고, 모든 사람이 자신이 사용할 응용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해 사용할 것이라는 가정이었다. 하지만 스몰토크는 오늘날 실무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다. 애초에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의 개념을 소개하기 위해 만든 언어라는 성격이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스몰토크는 자바, 루비, 오브젝티브C, 파이썬 등 오늘날 대표적인 개발 언어의 탄생에 영향을 줬다. 한편, 앨런 케이는 2003년 객체 지향 개발을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컴퓨터 과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튜링 상(Turing Award)을 받는다.
<어린이들이 제록스 알토에서 스몰토크를 사용하는 모습 <출처: parc.com>>
앨런 케이는 1973년, 그의 동료인 찰스 태커, 버틀러 램슨, 밥 테일러 등과 함께 최초로 GUI를 적용한 PC 제록스 알토를 개발한다. 더글라스 엥겔바트의 NLS에 착안해 개발한 컴퓨터로 키보드, 3버튼 마우스, 5건반 키보드 등을 갖추고 있으며, 그래픽을 실시간으로 표시하는 모니터를 갖추고 있다. 사용 환경 역시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운영체제 형태로 아이콘과 창 형태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도록 디자인 됐다. 제록스 알토 개발에 참여한 네 사람은 2004년 미국 공학한림원(National Academy of Engineering)이 수여하는 찰스 스타크 드레이퍼상(Charles Stark Draper Prize)을 받았다. 한편, 앨런 케이는 2001년 인간과 컴퓨터 사이의 소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GUI를 개발한 공로로 베를린 예술 대학교에서 01상(UDK 01 Award)을 받는다.
<GUI를 적용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제록스 알토 <출처: parc.com>>
제록스 알토는 훗날 GUI 기반의 컴퓨팅 환경에 많은 영향을 줬다. 일화로 애플이 1988년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운영체제가 비슷하게 생겼다(일명 'look and feel' 소송)"는 이유로 저작권 소송을 건 적이 있었는데, 마이크로소프트는 "실은 우리 둘 다 제록스의 GUI를 훔쳐다 쓴 거 아니냐"고 반박한 것이 있다. 제록스 파크를 방문한 스티브 잡스가 제록스 알토를 기반으로 개발 중이던 제록스 스타를 표절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제록스 역시 애플이 MS를 상대로 소송을 걸길 기다렸다는 듯이 이듬해인 1989년에 애플을 상대로 리사와 매킨토시가 제록스 스타를 표절했다며 애플의 저작권을 무효로 해달라는 소송을 건다(물론 두 소송 모두 원고가 패배한다).
***스티브 잡스는 1979년, 제록스 파크를 방문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모든 컴퓨터가 GUI를 기반으로 작동하며, 네트워크로 연결된 모습을 보고 충격 받았다고 언급했다. 혹자는 스티브 잡스가 제록스 파크를 방문한 일에 대해 '현관 문을 열어준 부자 이웃(Rich Neighbor with Open Doors)'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앨런 케이는 제록스 파크에서의 경력 이후 교육에 관해 더 몰두하게 된다. 1984년부터 애플의 연구원으로 일하며 컴퓨터의 교육적인 활용 가능성에 주목했다. 같은 맥락에서 1987년에는 일반인(특히 어린이)의 컴퓨터 사용 능력을 높이기 위한 비바리엄 프로젝트(Vivarium Project)를 전개하기도 했다.
2005년부터는 절친한 친구인 니콜라스 네그로폰테와 함께 100달러 노트북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개발도상국의 아이들을 위한 교육용 기기로 저비용/저전력 노트북을 제공하자는 운동이다. 2005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 경제 포럼에서 이 프로젝트를 발표했으며, 비영리 단체인 OLPC(One Laptop Per Child)가 설립 됐다. 여기에는 구글, AMD, 레드햇, 이베이 등이 참여했다.
<OLPC를 통해 공급되고 있는 100달러 노트북 <출처: one.laptop.org>>
앨런 케이가 강조하는 것은 교육과 단순함 두 가지다. 마셜 매클루언의 "어린이는 미래를 향해 보내는 메시지"라는 말을 인용하며, 어린이는 미래를 향해 보내는 미래라고 강조한다. 즉 어린이 자체가 미래라는 의미다. 그가 단순하고 직관적인 컴퓨팅 환경 개발에 몰두하는 것도 '미래'를 향한 투자였을 것이다.
<앨런 케이 <출처: (CC BY) Marcin Wichary from San Francisco, U.S.A. @Wikimedia
Commons>>
<미국 비영리 재단의 강연회 'TED'에서 교육의 중요성과 단순한 UI의 필요성에 관한 연설을 하는 앨런 케이 <출처: ted.com>>
글 / IT동아 이상우(lswoo@itdonga.com)
※본 기사는 네이버캐스트(http://navercast.naver.com/)의 'IT 인물 열전' 코너에도 함께 연재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IT동아가 함께하는 윈도우10 오프라인 무료 강의, 윈도우10 100% 활용하기에 초대합니다. - http://onoffmix.com/event/51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