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적인 대한민국 대학 수강신청시스템에 클라우드를 권합니다

강일용 zero@itdonga.com

[IT동아 강일용 기자] 대한민국 대학가에는 명백히 악습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오랜 시간 유지돼 학생들이 악습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수강신청 기간만 되면 뻗어버리는 인터넷 수강신청시스템이다.

2월 중순과 8월 중순은 대학생들에게 시험기간 못지 않은 긴급 상황이다. 원하는 강의를 듣기 위해 수강신청시스템에서 사투를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이렇다. 수강신청 기간이 시작되자마자 수강신청시스템에 수만 명에 육박하는 재학생이 몰려든다. 원하는 과목을 수강신청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평소 적은 인원만 감당할 수 있게 설계된 수강신청시스템과 서버가 이를 감당할 수 있을리 없다. 때문에 수강신청시스템이 뻗어버리고 만다.

수강신청기간이 시작된 바로 그 짧은 시기(보통 1~3분)에 원하는 강의를 선택한 일부 학생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원하는 강의를 신청하지 못하고 결국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다. 3~4시간이 흐른 후(경우에 따라선 하루에 이틀이 흐른 후) 사람이 빠져나가 복구된 수강신청시스템에 접속해 자리가 비어있는 비인기 강의를 수강신청해야 한다. 들어야 하는 또는 듣고 싶은 강의가 아님에도 졸업 학점을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다.

수강신청
수강신청
<한재희 인턴기자가 수강신청을 하는 모습, 제공: 동아일보>

원하는 강의를 듣기 위한 학생들의 노력을 살펴보면 그 정성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원하는 강의신청이 학생들에게 얼마나 절실한 것인이 체감할 수 있다. 수강신청시스템이 열리자 마자 접속하기 위해 PC의 시간을 학교의 서버와 동기화하는 것은 애교다. 학교 서버와 물리적으로 가까우면 수강신청시스템에 보다 원활하게 접속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교내 전산실 또는 학교 앞 PC방에서 진을 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접속을 위해 매크로 프로그램까지 동원하는 사례도 있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고작 수강신청시스템이 뻗어버려서 원하는 강의를 듣지 못한다는 것. 이는 학생들이 교육받을 권리를 명백히 침해하는 처사다. 학생들이 낸 비싼 등록금. 이는 별 쓸모 없는 학사 학위와 졸업장을 따기 위해서 낸 것이 아니다. 원하는 강의를 듣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진로를 설정하고 지성과 상식을 겸비한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그 비싼 돈을 낸 것이다. 그런데 정작 거의 대부분의 국내 대학들이 학생들에게 원하는 강의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조차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대학도 할말은 있다. 이른바 '효율성'의 문제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교 정보통신처 관계자는 "1년에 4번(1, 2학기 수강신청 기간, 1, 2학기 성적열람 기간) 시스템 서버의 트래픽이 폭주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4번을 위해 서버를 증설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적은 인원만 감당할 수 있도록 설계하면 평소에 아무런 지장 없이 학사정보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는데, 4번의 초과 트래픽을 감당하기 위해 수 만명에 이르는 전교생이 접속할 수 있는 학사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돈 낭비라는 지적이다.

대학교도 폭주하는 수강신청시스템을 극복하기 위해 나름 노력을 하고 있다. 제한된 서버 인프라 속에서 최대한 공정하게 수강신청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고안해냈다. 대표적인 방법은 학부생, 대학원생의 수강신청 기간을 달리 하는 것이다. 학부생도 학년에 따라 전공 과목의 수강신청 기간을 다르게 하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방법은 선착순 대신 경제학적 원리를 수강신청에 도입한 것이다. 서울의 모 사립대는 수강신청시스템에 이른바 마일리지 시스템을 도입했다. 학생들에게 일정 마일리지를 지급하고, 수강신청을 할 때 일정 마일리지를 걸 수 있도록 했다. 마일리지를 많이 건 순서대로 수강신청이 진행된다. 학생들은 제한된 마일리지 활용해 원하는 강의를 듣기 위한 전략을 짜야 한다. 반드시 듣고 싶은 과목이 1~2개뿐이라면 마일리지를 그 1~2개 과목에 투자하면 되고, 여러 과목을 듣고 싶다면 타 학생들이 마일리지를 어떻게 걸었는지 상황을 확인해가며 해당 강의에 참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마일리지를 파악하고 이를 여러 군데 나눠서 걸면 된다.

하지만 어떤 방법이든 수강신청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 돈을 투자해 수강신청시스템의 서버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 뿐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서버를 증설할 수는 없다. 비용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딜레마 때문에 수강신청시스템이 등장한 90년 후반부터 2000년 초반까지 문제가 계속 이어졌다.

2010년에 접어들어 수강신청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등장했다. 바로 클라우드 서비스, 그 가운데 '퍼블릭 클라우드(Public cloud)'를 활용하는 것이다. 퍼블릭 클라우드란 일반 사업자가 서버 인프라가 필요할 때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자(AWS,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이동통신사 등)로부터 서버 자원을 임대해올 수 있는 서비스다. 기존에는 서버를 증설하는데 최소 3주~1달의 시간이 필요했고, 한번 증설한 서버는 계속 유지/보수 비용을 투자해야 했다. 대학 역시 이 증설/유지/보수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수강신청시스템용 서버를 증설하는데 소극적이었다.

퍼블릭 클라우드는 다르다. 사용자가 원할 때 서버를 증설할 수 있고, 증설한 서버는 3시간~1일 이내로 바로 반영된다. 트래픽이 감소해 증설한 서버가 필요 없어지면 바로 반납하면 된다. 비용은 서버를 사용한 만큼만 내면 된다. 즉 평소에는 적은 인원만 감당할 수 있도록 서버를 유지하다가 트래픽이 급증하는 수강신청기간과 성적열람기간에만 전교생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서버를 증설하면 된다는 것. 대학은 서버 유지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학생은 수강신청기간에 쾌적하게 수강신청을 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미국 최대의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닷컴'은 자사가 직접 구축한 퍼블릭 클라우드를 활용해 블랙 프라이데이의 막대한 트래픽을 감당했고, 국내 유명 웹툰 서비스 '레진코믹스'는 구글의 퍼블릭 클라우드를 활용해 평소에는 적은 사용자만 감당할 수 있는 서버를 유지하다가 사용자가 몰리는 오후 10시~새벽 2시에 서버를 증설해 트래픽을 감당하는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대학 역시 이러한 형태로 수강신청시스템과 성적열람시스템을 운영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사실 퍼블릭 클라우드도 완벽한 대안은 될 수 없다. 서버가 뻗지 않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수강신청을 할 수 있는 공평함은 담보할 수 있지만, 원하는 강의는 한정되어 있고 들으려는 학생들은 많기 때문에 결국 민첩함이 수강신청을 좌우하게 된다. 진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두 가지 뿐이다. 학생 누구나 원하는 과목을 들을 수 있도록 교수, 강사, 강의를 늘리는 것과 어떤 과목을 수강하든 학생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강의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으리으리한 건물을 짓는 것보다 학생들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것이 대학의 발전을 위한 올바른 방향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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