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3D 프린팅 산업을 바라보는 정부, 학계, 기업의 시각
[IT동아 강일용 기자] "이것이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려오는 것들이 있다. 3D 프린팅, ICT, IoT, 빅데이터다. 오늘은 3D 프린팅 얘기를 좀 해보자.
2년 전 오마바 미국 대통령이 3D 프린팅 산업에 1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언급한 후 전세계적으로 3D 프린팅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는 2020년까지 한국이 3D 프린팅 산업을 선도하는 국가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 방안으로 '3D 프린팅 메이커(제품 제작을 위한 3D 설계도를 그릴 수 있는 사용자)' 1,000만 명을 양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 5명 가운데 1명은 3D 프린터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것. 3D 프린팅을 PC로 문서를 작성하는 것과 다를 바 없게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정부만 앞장서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학계도 3D 프린팅에 큰 관심을 보내고 있다. 홍익대, 국민대, 상명대 등 여러 대학이 3D 프린팅 관련 수업을 정식으로 도입했고, 컴퓨터공학, 산업디자인, 화학 등 여러 분야의 교수가 3D 프린팅 관련 논문을 집필하고 있다. 3D 프린팅이 산업디자인학과 졸업생들의 주요 관심사가 된지 오래다.
기업과 스타트업도 3D 프린팅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기존 중견 기업들은 재료,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등 3D 프린팅의 세 가지 분야에 자사의 기술과 제품을 접목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있고, 3D 프린팅을 앞세운 스타트업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3D 프린팅에 열광해야 할 사용자들은 정작 시큰둥하기 만하다. 말로는 미래 먹거리요 제조업의 혁신이라지만, 실제 변화를 체험하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가 뭘까? 3D 프린팅이 우리 삶에 스며들 정도로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이다. 3D 프린팅이 기대와 지지부진한 이유. 정부, 학계, 기업 관계자에게 듣고 그 해결방안을 정리했다.
재료는 경쟁력 있는데 소프트웨어가...
먼저 국내 3D 프린팅 현황에 관한 학계의 정리부터 들어보자. 16일 국회에서 열린 3D 프린팅 메이커스 세미나에서 한국 폴리텍2 최성권 교수가 발표한 내용이다. 최 교수는 홍익대, 서일대, 폴리텍2 등 여러 대학에서 산업디자인과 3D 프린팅 관련 강의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산업 디자인이 3D 프린팅으로 발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1986년 액체 타입의 3D 프린팅 기술이 개발된 후 87년 실제로 상용화됐다. 2년이 지난 뒤 국내에도 도입됐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한국의 3D 프린팅 역사는 어느 나라보다 길다. 하지만 그동안 일부 분야에만 적용되는 등 조용했던 것이 사실이다. 3D 프린팅 붐은 지난 2013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발언이 큰 역할을 했다. 이후 여러 기관에서 장미빛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가야할 길이 멀다. 과거에 사용하던 절삭식(재료를 깍아내서 제품을 완성하는 방식)이 적층식(재료를 쌓아서 제품을 완성하는 방식)으로 발전했고, 완제품의 품질도 테스트 버전을 만드는 수준에서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완제품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왔다."
"한국은 열가소성 수지(플라스틱) 재료를 활용한 3D 프린팅이 주를 이루고, 유럽은 금속 재료를 활용한 3D 프린팅이 대세다. 플라스틱 시대와 철기 시대로 양분된 상태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뛰어나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재료마다 일장일단이 있기 때문. 전세계 3D 프린팅 산업에서 한국의 비중은 2.3% 정도다. 미국이 38.3%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중국 역시 매섭게 성장하고 있어 과소 평가할 수 없다. 3D 프린팅의 핵심은 재료다. 실제로 제품을 제작할 때 투입되는 재료의 종류에 따라 완제품의 형질이 전혀 달라진다. 재료는 분말, 액체, 필라멘트 등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공급되고 있다. 한국은 제조업이 중심이 되는 국가인 만큼 재료만큼은 다른 나라에 뒤떨어지지 않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하드웨어(3D 프린터) 역시 국내 기업을 중심으로 국산화가 진행 중이다. 문제는 소프트웨어(3D 도면 제작 프로그램)다. 소프트웨어는 외국에 기대는게 현실이다. 3D 프린팅 선도 국가가 되기 위해 한국이 해야할 일이 너무 많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관련 인프라 구축 등 모든 것을 하나하나 해나가야 한다. 3D 프린팅 관련 인재 교육도 잘 안되고 있다. 기업이나 진흥원이 설립한 협회 중심으로 진행 중이고, 국가가 교육 정책까지 진출하지 못한 상태다. 이제 3D 프린팅 업체는 모형이 아니라 실제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을 생산해야 한다. 때문에 후처리 기술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제도적 걸림돌 치워야
이제 3D 프린팅 산업에 관한 정부의 입장을 들을 차례다. 참고로 국내에서 3D 프린팅 산업에 관여하는 부서는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와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 등 두 군데다. 미래부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라는 IT업 관점에서, 산자부는 재료와 하드웨어라는 제조업 관점에서 3D 프린팅 사업을 지원, 육성하고 있다.
먼저 강성주 미래부 정보통신융합정책 국장의 얘기를 듣자.
"미래부는 3D 프린팅이 한국의 성장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보다 3D 프린팅 산업이 뒤쳐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IT 기술이 앞서나가고 있는 만큼 경쟁력이 있고, 역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3D 프린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는 네 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 '수요 창출', '시장 생성', '기술 개발', '제도적 걸림돌 제거' 등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네 가지 지원 방안을 세웠다. 첫째, 7군데의 창조경제혁신센터에 하나 이상의 3D 프린팅 지원 센터를 설치할 것이다. 둘째, 올해 내로 50만 명에게 3D 프린팅 관련 교육을 실시할 것이다. 40만 명은 3D 프린팅 체험 교육을, 10만 명에겐 8시간 이상의 고급 교육을 제공할 계획이다. 기업, 연구소, 학계 등 모든 분야의 관계자에게 열려 있다. 셋째, 치과용 의료기기, 인체인식 의료기기, 맞춤형 치료물, 스마트 금형, 맞춤형 개인용품, 3D 전자부품, 수송기기 부품, 발전용 부품, 3D 프린팅 디자인 서비스, 3D 프린팅 콘텐츠 유통 서비스 등 3D 프린팅 10대 분야를 선정/지원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재료,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를 지원할 것이다. 넷째, 3D 프린팅 산업 진흥법을 발의해 국가적 차원에서 3D 프린팅 산업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세우겠다."
이어 문승옥 산자부 시스템산업정책 국장의 발언이다.
"한국은 제조업이 산업의 주축이다. 향후에도 제조업을 주축으로 성장해야 한다. 3D 프린팅이 제조업에 일대 혁신을 가져올 것이므로 우리(산자부)도 당연히 미리 준비해야 한다. 산자부는 3D 프린팅과 기존 산업의 융합에 힘쓰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기존 산업의 경쟁력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재료와 소프트웨어가 많은 발전을 해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산자부는 재료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소재 분야에 앞서나가지 못하면 3D 프린팅 산업을 앞서나가지 못한다. 연 20억 원 규모의 3D 프린팅 재료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3D 프린터 보급해야 혁신있어
마지막으로 기업과 스타트업이 국내 3D 프린팅 시장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아보자. 먼저 TIDE 인스티튜트 고산 대표의 얘기다. 고산 대표는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이 되기 위해 지난 2007년 훈련을 받던 도중 러시아의 변심으로 그 꿈이 좌절된 인물이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와 TIDE 인스티튜트를 창업했다.
"우주인 선발 이후 많은 경험을 했다. 공공정책을 배우기 위해 2010년 미국으로 떠났다. 그런데 미국에서 창업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에 돌아와 TIDE 인스티튜트를 창업했다. 스마트폰 관련 사업만 창업이 아니다. 앱, 서비스를 개발해야 스타트업인 것도 아니다. 미국에서 제조업의 새로운 붐도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국내에는 그런 붐이 없고, 관련 지원도 전혀 없었다. 때문에 하드웨어 관련 스타트업과 창업가를 지원하기 위해 TIDE 인스티튜트를 세운상가에 세웠다. 왜 테헤란로가 아니라 세운상가에서 창업했냐고 묻는 사람도 많았다. 하드웨어 관련 창업은 세운상가가 테헤란로, 판교보다 낫다. 관련 인프라가 세운상가 주변에 모여있기 때문이다. 한층만 내려가도 관련 부품과 지식을 얼마든지 수집할 수 있었다."
"3D 프린팅은 제조업의 한 분야다. 관련 기술이 개발된지 30년이 넘었다. 그런데 왜 이제와서 관심을 받는 걸까. 2009년 핵심 특허가 만료됐기 때문이다. 덕분에 저가형 3D 프린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모든 사용자가 3D 프린터를 보유할 수 있는 환경이 열린 것이다. 알다시피 모든 사용자가 보유하고 있어야 혁신이 시작된다. PC, 스마트폰이 그랬고, 이제 3D 프린팅이 그렇게 될 것이다."
"핵심은 보급에 달려있다. 3D 프린팅의 수준이 내려가야 한다. 우리가 문서를 만들기 위해 펜을 드는 대신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처럼 누구나 쉽게 3D 도면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다. 일반 사용자 대상의 교육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재료를 생산하는 기업의 입장도 들어보자. 대림화학 신흥현 대표가 한 말이다.
"3D 프린팅이 기대만큼 보급되지 않는 이유는 하드웨어 기술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일반 사용자가 믿고 사용할 만큼 하드웨어가 성숙하지 않았다. 소음, 전력 소모, 분진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대기업이 진출해 일반 사용자가 신뢰할 수 있는 하드웨어를 개발해야 한다. 중소기업 역시 특화된 하드웨어 개발에 힘써야 한다. 물론 소재도 중요하다. 소재는 플랫폼에 비유할 수 있다. 다양하고, 유용한 소재를 개발하고 국산화해야 한다."
기업은 정부의 지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에 대해 고블린3D 이동훈 대표와 하프토이 장석윤 디자이너가 의견을 제시했다.
이 대표는 "3D 프린팅은 민간과 정부가 함께 육성해야 한다. 비싼 장비가 반드시 좋은 장비인 것은 아니다. 시장 확대를 위해 중저가 3D 프린터 보급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통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보유한 스타트업들이 쉽게 3D 프린팅 산업에 뛰어들 수 있게 될 것이고, 궁극적으로 시장이 더욱 확대될 것이다"고 말했다,
장 디자이너는 "현재 3D 프린터는 사용자들에게 '유용하다'보다 '신기하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반 사용자가 3D 프린팅 결과물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지 조금 의문이다. 3D 프린팅의 활로는 창작가들에게 달렸다. 창작가들 덕분에 완제품의 기술적인 활용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