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인물열전] 마우스의 아버지, 더글라스 엥겔바트
[IT동아 이상우 기자] PC는 게임기가 아니지만 최고의 게임 플랫폼이다. 입력장치인 키보드와 마우스는 현존하는 다른 입력방식과 비교해 아주 직관적이며, 사용자가 원하는 동작을 아주 정확하게 입력할 수 있는 도구다. 게임을 예로 들어보면 롤 플레잉 게임,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1인칭 슈팅 게임 등의 장르에서는 마우스를 따라올 만한 장비가 없다. 이런 게임에서 마우스는 내 손이자 눈이며, 각종 내부 인터페이스를 조작/사용하는 도구로 쓰인다. 스타크래프트를 게임 패드나 키보드만으로 진행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마우스는 PC 사용에 있어서 중요한 입력장치 중 하나다. 위 사진은 더글라스 엥겔바트가 최초로 디자인한 마우스 시제품으로, X축과 Y축
움직임을 읽는 바퀴 2개와 버튼 1개로 구성돼 있다, 출처: 위키백과>
물론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에는 터치 스크린이나 각종 센서를 이용한 입력 방식이 꾸준히 개발되고 있으며, 콘솔 등에서도 동작 인식 센서나 카메라를 이용한 입력 방식이 등장하고 있다. 또한 이런 입력 방식에 맞춘 게임도 하나둘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의 게임 장르에서 이들은 마우스의 사용성을 따라오기 어렵다.
<모바일 게임 장르 중 캐주얼이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조작 방식의 적합성이다. 위 사진은 PC 및 콘솔 게임인 데빌 메이 크라이를
스마트폰에서 실행한 모습이다. 공격, 시야 변경, 방향 전환 등을 위해 수많은 버튼이 있는데, PC에서는 이런 동작을 모두 마우스만으로
지시할 수 있다>
이는 업무에서도 마찬가지다. 클릭, 더블클릭, 우클릭 등으로 대변되는 마우스의 선택/실행 기능과 사용자의 움직임을 그대로 반영하는 마우스 포인터는 각종 명령어를 입력하는 시간을 줄여주고, 많은 단축키를 외워야 하는 부담을 줄여준다.
이처럼 마우스는 PC 전반적인 사용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입력장치 중 하나다. 이러한 마우스는 누가 어떻게 만들었을까?
HCI의 선구자, 더글라스 엥겔바트
최초의 마우스를 개발한 사람은 미국의 공학자인 더글라스 엥겔바트다. 그는 인간과 컴퓨터의 소통(HCI, Human Computer Interface)을 위한 기술을 연구했으며, 초기 컴퓨터 기술과 인터넷의 기초를 닦은 인물이다.
더글러스 엥겔바트(Douglas Engelbart)는 1925년 오리건주 포틀랜드시에서 태어났다. 포틀랜드의 시골 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낸 그는 오리건 주립대학에 진학해 전자공학을 전공한다. 대학 시절 중 세계 2차대전이 일어나면서, 그는 2년간 해군에서 레이더 기술병으로 복무한다. 그는 이 기간에 '버네바 부시(Vannevar Bush)'가 쓴, 'As we may think'라는 기고문을 읽는다. 기고문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 과학은 전쟁 무기 등 파괴적인 일에 쓰였지만, 이제는 평화를 위해 쓰여야 한다. 이를 위해 과학의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집단 지성이 필요하며, '메멕스(Memex)' 같은 장치가 여기에 도움을 줄 것이다'
<버네바 부시가 고안한 메멕스. 메멕스는 하이퍼텍스트와 유사한 개념의 기계로, 기억 확장 장치(Memory Extender)의 약자다.
마이크로 필름 형태의 정보를 저장해두고 필요할 때마다 해당 마이크로 필름을 불러와 정보를 획득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장치다. 물론 이 장치가
실제로 구현되지는 못했지만, 훗날 인터넷과 하이퍼텍스트의 발전에 영향을 줬다(참고기사:
http://it.donga.com/15495/)>
이 기고문을 통해 큰 영감을 얻은 더글라스 엥겔바트는 인간이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을 개선하면 인류의 삶을 더 윤택하게 바꿀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이에 관한 기술 개발에 매진한다.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졸업 후 NASA의 전신인 NACA에서 1951년까지 근무한다. 하지만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느꼈는지,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UC버클리에서 전자공학 박사 과정을 수료한다.
스탠퍼드 연구소에서 태어난 마우스
그의 본격적인 행보는 1957년부터 스탠퍼드 연구소(SRI International)에서 일하면서부터다. 그는 여기서 전자기기 소형화, 마그네틱 디바이스 등 12개 이상의 특허를 출원했다. 1962년 그가 쓴 논문 '인간 지능 증강: 개념 틀(Augmenting Human Intellect: A Conceptual Framework)'에서는 네트워크 기반의 정보 저장소(일종의 온라인 도서관)과 전자 문서 저장/검색 방안을 주창했다. 이는 인간이 지식과 정보를 나눌 때 이를 찾고 전달하는 단순한 과정은 컴퓨터가 맡고, 사유와 통찰 필요한 부분은 인간이 맡게 하자는 것이다.
이런 그의 행보에 대해 미 국방부 고등연구 계획국(ARPA,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이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그가 개발한 것은 온라인 시스템(NLS, oN Line System)이다. NLS는 오늘날 PC 사용자에게 당연하다고 느끼는 그래픽 기반의 사용자 환경(GUI, Graphic User Interface), 하이퍼텍스트를 통한 문서 이동, 네트워크를 통한 화상 회의 등이 포함된 시스템이다.
<온라인 시스템을 구성하는 장치. 이전까지 PC 입력 장치는 키보드와 좌측에 있는 명령어 입력 기기가 전부였지만, NLS에서는 GUI 사용을
위해 마우스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출처: http://www.dougengelbart.org/>
그리고 이 환경을 조금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손바닥 만한 장치도 함께 만들었다. 이 장치는 가로와 세로의 움직임을 인식할 수 있으며, 각종 인터페이스를 선택하는 용도에 쓰인다. 우리는 이를 마우스라고 부른다.
<1968년에 제작된 마우스는 시제품과 달리 3개의 버튼을 갖췄다>
NLS는 1968년 더글라스 엥겔버트의 시연을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이와 함께 최초의 컴퓨터 마우스가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마우스는 이 시연에서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당시 컴퓨터라는 기계는 일반 사용자가 아닌 대학이나 기관의 연구용으로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하이퍼텍스트를 통한 문서 이동,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 전송 등이 더 주목 받았다. 그리고 NLS는 오늘날 인터넷의 원형인 ARPANET의 기초가 되고, 하이퍼텍스트의 기반 기술이 되며, 원격 회의라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다.
반면 이날 시연에 등장했던 마우스는 한동안 널리 쓰이지 않았다. 이 장치의 가치를 몰라봤다기보다는, 컴퓨터가 대중화되지 않은 만큼 수요도 그리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더글라스 엥겔바트가 196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컴퓨터 컨퍼런스에서 NLS를 소개하는 모습이다. 26분부터는 새로운 입력장치인 마우스를 소개한다. 동영상 링크: https://vimeo.com/1408300>
참고로 더글라스 엥겔바트가 제작한 최초의 마우스는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제주도에 있는 넥슨 컴퓨터 박물관 1층에는 엥겔바트와 SRI 연구진이 개발한 최초의 마우스가 전시돼 있다.
마우스로 특허로 번 돈은… 고작 4만 달러?
상업용 마우스가 등장한 것은 1980년대다. 이 때 마우스에 주목한 사람은 바로 스티브 잡스다. 애플이 1983년 내놓은 컴퓨터 리사(Lisa)는 텍스트 위주의 기존 PC(예를 들어 MS-DOS)와 달리 GUI를 적극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키보드 외에 그래픽 기반의 환경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다. 이런 이유에서 매킨토시용 마우스가 등장했다. 외형이나 기능도 최초의 마우스보다 개선됐다. 바퀴 2개를 이용해 움직임을 입력하던 것과 달리 내부에 있는 구슬로 움직임을 입력하는 '볼 마우스로' 발전했다.
<애플 리사 컴퓨터. 오른쪽에 놓인 마우스는 하나의 버튼만을 갖췄다, 출처: 위키백과>
이후 마이크로소프트, 로지텍 등 다양한 기업이 마우스를 연구개발했다. 오늘날 마우스 구동 방식은 바퀴, 볼을 거쳐 광 마우스로 발전했으며, 유선/무선 등으로 선택지도 늘어났다. 단 하나였던 버튼은(NLS 시연에 쓰인 마우스는 3개의 버튼을 갖췄지만, 더글라스 엥겔바트가 최초로 고안한 디자인은 1개의 버튼만을 갖췄다) 기본 2~3개에서 많게는 15개씩 갖춘 제품도 등장해 일반 사무직은 물론 그래픽 전문가나 게임 애호가 등 다양한 사람이 자신의 '손맛'에 맞는 제품을 고를 수 있다.
후일담이지만, 더글라스 엥겔바트는 최초로 마우스에 관한 특허를 냈지만, 특허료는 거의 받지 못했다. 특허 기간이 만료되고 나서야 마우스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으며 대량 생산됐기 때문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마우스로 번 돈은 애플이 특허권을 사들이면서 지불한 4만 달러가 전부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3년 세상을 떠나다
지난 2013년 7월, 더글라스 엥겔바트는 향년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이룩한 연구 성과는 사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감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어찌 보면 그가 고안해낸 마우스, 하이퍼텍스트 시스템, GUI 등은 오늘날 우리가 PC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당연한 것이라고 느낄 정도로 익숙한 것이기 때문이리라. 마치 우리가 숨을 쉬면서 공기의 위대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2000년 1월, 더글라스 엥겔바트는 마우스 개발과 하이퍼텍스트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립 기술 혁신 메달(National
Medal of Technology and Innovation)을 받는다, 출처: http://www.dougengelbart.org/>
글 / IT동아 이상우(lswoo@itdonga.com)
※본 기사는 네이버캐스트(http://navercast.naver.com/)의 'IT 인물 열전' 코너에도 함께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