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의 세계] 기록되지 않은 중세 농민의 삶, 아그리콜라
흑사병이 지나간 중세 유럽, 특출하지 않은 농민의 삶은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보드게임이 그 역사의 뒷편을 들췄으니, 그 게임이 바로 '아그리콜라'다. 아그리콜라는 라틴어로 '농부'를 뜻하는 말로, 보릿고개 속에서 힘든 삶을 살았던 우리 조상들을 떠올리게 한다.
아그리콜라 한글판 (2007) <출처: divedice.com>
아그리콜라는 2008 독일 올해의 게임상(Spiel des jahres)에서 '복잡한 게임' 특별상과 2008 독일 게임상(Deutscher Spiele Preis) 가족/성인 최고게임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전 세계의 많은 국가에서 수여하는 보드게임 상들을 휩쓸 정도로 그 인기를 확실하게 증명한 게임이다.
게임 방법
아그리콜라 게임 구성물 <출처: divedice.com>
아그리콜라는 중세 유럽의 농부가 되어 자신의 농장을 가꾸는 게임이다. 아그리콜라는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가족용 게임, 직업 카드와 설비 카드를 사용해 테크트리를 짜는 일반 게임, 1인용 게임 등, 세 가지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 여기서는 게임의 기본이 되는 가족용 게임 방법을 소개한다.
각 플레이어들은 개인 게임판 1개와 가족말 2개, 약간의 음식을 가지고 게임을 시작한다. 플레이어들은 6개의 주기, 총 14라운드 동안 게임을 하게 되는데, 매 주기마다 수확의 시기를 거치며, 그 때마다 음식을 소모해야 한다. 따라서 플레이어들은 매 라운드 가족말을 사용해서 개인 게임판을 개발해야 하며, 틈틈이 음식을 모아 가족이 굶지 않게 해야 한다.
아그리콜라는 6개의 주기, 14라운드로 진행된다. <출처: divedice.com>
아그리콜라에서는 농장에 있는 모든 것이 평가의 대상이 된다. 밭, 작물, 동물, 가족말, 방 등의 개수에 따라 점수를 매긴다. 설비나 직업에 보너스 점수가 있는 경우도 있다. 게임이 종료되고 점수를 계산해, 총점이 가장 높은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승리한다.
플레이어들은 매 라운드마다 가족말을 공용 게임판의 여러 행동 칸 중 하나에 올려두고, 그 칸에 표시된 행동을 수행하게 된다. 행동 칸은 나무, 진흙, 갈대, 곡식, 채소와 같은 자원 혹은 양, 돼지, 소와 같은 가축을 가져오거나, 이 자원들을 소비해 방, 설비 혹은 울타리를 짓는 등의 내용으로 구성됐다. 자원을 가져갈 수 있는 행동 칸에는 매 라운드마다 일정 개수의 자원들이 추가된다.
따라서 자원이 많이 모였을 때 가져가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모든 플레이어가 그 시기를 노리고 있기 때문에 행동칸을 선점하려는 경쟁이 발생하게 된다. 자원을 활용하는 행동 칸도 마찬가지로 경쟁이 심화된다. 누군가 가족말을 이미 놓은 행동 칸에는 그 라운드 동안 더 이상 게임 말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의 말을 행동 칸에 놓아 경쟁하는 게임 방식을 '일꾼 놓기 게임 구조(Worker Placement Game Mechanics)'라 하는데, 이러한 일꾼 놓기 게임에서는 일꾼을 많이 가질수록 유리하다. 따라서 아그리콜라에서는 게임 내내 가족을 늘리는데 치중하게 된다. 아그리콜라에서는 가족늘리기 행동칸을 사용해 가족을 늘릴 수 있는데 그러려면 가족이 머물 방을 먼저 지어야 하고, 방을 짓기 위한 자원을 먼저 모아야 한다.
매 라운드마다 새로운 행동 칸이 펼쳐져 플레이어들이 할 수 있는 행동들은 늘어나며, 어떤 행동 칸이 펼쳐지느냐에 따라 게임의 판도가 크게 바뀌기도 한다. 이 게임은 수확 시기마다 밭에 뿌린 곡식이나 채소를 가져오거나, 가축이 번식을 하는 등 농경 테마에 잘 어울리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아그리콜라의 각종 자원 <출처: divedice.com>
처음 아그리콜라를 할 때는 가족 규칙으로 즐기는 것이 좋지만, 아그리콜라의 진정한 매력은 일반 규칙에 있다. 일반 규칙은 가족 규칙을 따르되 직업 및 보조 설비 카드를 사용하면 된다. 가족 규칙을 익혔다면, 일반 규칙으로 도전해 카드를 조합하고 좀 더 풍성한 농장을 가꾸어 보자. 아그리콜라는 1인용으로 플레이할 수도 있는데, 이럴 경우에는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
아그리콜라를 처음 접할 때의 어려움
풍요롭고 아름다운 농장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 게임을 처음 하면 봉착하는 문제가 2가지 있는데, 여기 약간의 팁이 있다.
밥을 먹이는 것에 허덕이다. 구걸카드 <출처: divedice.com>
첫 번째 문제는 가족들의 밥 먹이기가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그리콜라는 6주기의 14라운드로 이루어져 있으며, 처음 4라운드가 1주기로 시작해서 점차 주기가 3라운드, 2라운드, 2라운드, 2라운드, 1라운드 식으로 점차 짧게 다가온다. 이 주기마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가족 말마다 2개의 음식을 장만해야 한다.
음식이 없다면 비참한 구걸이 기다리고 있다. 구걸 카드를 받는다면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절대 버릴 수 없는 페널티로 돌아오게 된다. 많은 사람이 이 가족 먹여살리기 단계를 힘들어한다. 어떤 초보자들은 게임 내내 음식만 장만하다 아무것도 못하고 텅 빈 농장 상태에서 게임이 끝나, 아그리콜라를 어렵고 황폐한 게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그리콜라에는 음식을 장만하는 방법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화로, 화덕 설비를 장만해 동물을 구워먹는 방법부터, 곡식을 수확해 빵을 구워먹는 방법, 가구, 그릇, 바구니 등을 만들어 음식과 바꾸는 방법, 설비 등을 놓아 추가로 음식을 구하는 방법, 심지어 유랑극단과 낚시, 날품팔이 등 가족이 행동하기만 해도 음식을 주는 행동 칸이 있다. 게다가 직업과 보조설비를 사용하면 이러한 행동들의 효율을 늘릴 수 있으며, 음식이 음식을 가져오게 하는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직업과 설비를 통해 가족의 행동으로 가져오는 음식의 절대적인 양을 늘릴 수 있다. 낚시나 유랑극단 칸에 가면 음식을 추가로 가져온다든가, 곡식이나 채소 같은 음식과 함께 도움이 되는 자원을 추가로 가져오게 하는 방법이다.
또는 빠르게 울타리를 장만해, 잡아먹어도 번식하여 그 수가 줄어들지 않는 3마리 이상의 동물을 모으는 방법이 있다. 이렇게 사육을 하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아도 매번 음식이 자동으로 모인다. 이렇게 되면 음식 걱정을 덜고 농장의 다른 부분 개발에 더 힘쓸 수 있다.
아그리콜라에서는 음식을 장만하는데 최소한의 행동을 소모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들의 매 행동을 음식 장만에만 쏟는다면 좋은 점수를 얻기가 힘들다. 최소한의 행동으로 가족들의 음식을 해결하고, 남는 행동으로 농장을 꾸미는 것이 이 게임의 가장 중요한 전략이다.
아그리콜라 개인농장판 <출처: divedice.com>
초보자가 당면하는 두 번째 문제는 당장 오늘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한 농부의 삶에 봉착한다는 것이다. 당장 올해는 무엇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며, 집은 어떻게 늘리고 단장할 것인지, 2세 계획은 어떻게 가져야 하며 이 황폐한 땅을 개간하는 데 도움을 주는 직업은 어떤 것인지, 삶을 개척하는데 좋은 설비는 어떤 것인지, 이 일들의 우선 순위는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 등등 고민할 것이 많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효율적인 행동을 고르면 된다. 자원을 가져갈 때도, 음식을 가져갈 때도, 많은 것을 가져가면 된다. 첫 수확 전인 1주기에는 기본적인 직업을 결정하고, 안정적으로 음식을 획득하는 방향을 계획한다. 그리고 방을 늘리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잡는 것이 좋다.
1주기는 내 농장의 방향성을 잡는 제일 중요한 구간이다. 이를 바탕으로 2주기에는 반드시 가족을 늘리는 데 주력해야 한다. 방을 늘려야 가족을 늘릴 수 있으며, 이 가족을 늘리는 경쟁은 플레이어들 간에 매우 치열하다. 방을 늘리고 늘어난 가족을 먹여 살릴 음식을 지속적으로 획득하는 계획까지 착실히 수행하는 것을 2주기의 목표로 삼자. 여기까지 성공한다면 이제 밭을 갈든지, 울타리를 치든지, 설비를 더 짓든지 마음대로 게임을 할 수 있다.
아그리콜라 잘하는 법
아그리콜라는 왕도가 따로 없다. 상황에 따라 가장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이 게임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쉽게 점수를 올릴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작은 목표부터 차근차근 도전한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이다. 게임을 처음 하는 플레이어라면, 먼저 가족들의 굶주림을 면하고 음식을 풍족하게 준비해 구걸 카드를 받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자. 음식을 얻거나 만드는 방법을 충분하게 익혔다면,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동물들을 가득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해보자.
그 다음에는 밭에 씨앗을 뿌려 농사를 크게 지어보자. 여기까지의 목표를 달성했다면, 다양한 설비들과 보너스 점수를 목표로 게임을 풀어 나가보자. 이런 식으로 매 플레이마다 목표를 20점, 30점, 40점 등 조금씩 높여 잡으면서 카드의 상호 작용과 효율성을 조금씩 익혀나가면, 어느새 이 모든 목표를 다 이룰 수 있는 고수의 길로 접어들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판세를 읽자. 아그리콜라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카드와 전략에 따라서도 판세가 심하게 변하는 게임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음식을 쉽게 장만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했다면, 그 게임에서 음식은 상대적으로 넉넉해진다. 따라서 나 또한 음식을 구하는 방법이 자연스레 증가한다. 나무와 같은 건축 자원,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이 내려놓은 카드의 효율성에 따라, 다른 이들이 해당 자원을 구할 방법과 효율성 등이 달라진다.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플레이하는지 유심히 지켜보고 내 행동의 효율성을 고려한다면, 보다 매끄럽게 게임을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가족 늘리기를 외면하지 말자. 흔히 초심자들은 가족이 먹는 음식이 무서워서 가족 늘리기를 하지 않고 게임을 진행한다. 하지만 가족을 늘리면 플레이어가 라운드에 할 수 있는 행동이 늘어나며, 늘어난 행동으로 충분히 음식을 마련할 수도 있다. 가족 늘리기에서 다른 사람에게 밀리면, 평범한 전략으로는 따라가기 힘들다. 방을 늘리고 가족을 늘리는 것, 그리고 그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플레이하면, 어느 새 목표 점수는 훌쩍 늘어나 있을 것이다.
아그라콜라의 확장, 수많은 직업과 설비들
아그리콜라와 각종 확장 <출처: divedice.com>
아그리콜라는 직업과 보조 설비의 조합에 따라 매번 다른 게임이 된다. 언제나 한판 더 하고 싶어지며, 이 점 때문에 전세계 보드게이머들의 엄지를 들게 했다. 아그리콜라에는 169장의 직업과 170장의 보조 설비가 있으며, 이것만으로도 수많은 조합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아그리콜라 출시 후 많은 유저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만 있다면 무한한 카드 확장이 가능하다고 예상했다. 실제로 아그리콜라의 제작사 룩아웃 게임즈(Lookout Games)는 매년 새로운 직업과 설비들의 확장을 제작해, 아그리콜라를 즐기는 게이머들을 만족시키고 있다.
아그리콜라 O덱. 적은 숫자의 카드만으로 구성됐다. <출처: divedice.com>
아그리콜라의 한글판 발매는 국내 보드게임 시장에서도 큰 이슈였기에, 아그리콜라의 발매와 동시에 확장까지 한글로 발매되는 행운을 얻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확장이 X덱, Z덱, O덱이다.
Z덱은 영문판 유통사인 Z-Man games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들어졌으며, 아그리콜라 초기 한정판에만 들어갔던 덱이다. 12장의 직업과 보조설비로 이루어져 있다.
X덱은 외계인이 등장한다. 게임에 SF물을 섞은 확장으로, 다른 규칙을 추가해 색다른 분위기와 재미를 느끼게 한다.
O덱은 2009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게임축제에서 나눠주었던 프로모션용 확장카드로 구성됐다. 프로이트, 모차르트, 아놀드 슈왈제네거 등 오스트리아의 인물들의 패러디는 물론, 오스트리아의 교육 제도나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건축가 훈데르트 바서의 건물 등, 국가의 특징을 잘 담아낸 확장이다.
이 확장들은 따로따로 발매되었지만, 2010년부터 매년 에센 박람회에서 나눠주는 L덱(2008)과 함께 '아그리콜라 구디즈(Agricola: The Goodies Expansion, 2010)'라는 이름으로 재발매됐다. 아쉽게도 구디즈는 한글판으로 발매가 되지 않아, X덱, Z덱, O덱 한글판은 희귀하게 됐다.
아그리콜라 G덱. 작가의 캐릭터가 박스의 측면에 그려져 있다. <출처: divedice.com>
아그리콜라 게이머즈 덱은 이름 그대로 전 세계의 아그리콜라 유저들의 의견을 받고 베타테스트를 거쳐 만든 확장이다. 보통 G덱이라 부른다. 전략과 균형, 다양성 등 모든 면에서 매우 뛰어나다고 평가를 받고 있는 확장이다.
전세계적으로 적은 수량만 출판되어 한때 품귀현상을 겪은 WM덱. <출처: divedice.com>
아그리콜라 월드 챔피언쉽 덱은 2011년 비엔나에서 열린 아그리콜라 세계대회를 위해 만든 덱으로, G덱처럼 Play-Agricola.com의 유저들이 제작에 참여했다. 때문에 G2덱으로도 부른다. G덱이 기본 카드와 함께 조합하는데 큰 힘을 발휘하는 확장이었다면, 이 G2덱은 카드 자체만으로도 독창적이고 전략적인 게임을 만든다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Play-Agricola.com의 유저들은 2010년 5월 제작사에 G1덱을 보낸 뒤, 즉시 G2덱의 제작에 착수했다. 그리고 12월까지 7개월 간 70명의 유저로부터 1000개 이상의 아이디어를 받았다. 온라인상에서 테스트와 논쟁이 이어졌고, 작가 우베 로젠베르크를 포함한 190명의 유저들이 선호도 투표를 진행했다.
이렇게 뽑힌 120장의 카드와 30장의 후보 카드를, 이후 333명의 유저들이 2011년 1월부터 5월까지 온라인에서 2601번의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 테스트를 통해 각 카드의 통계를 만들었고, 카드 간 균형을 조절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 덕에 이 확장은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는 확장으로 알려져 있다. 안정적인 농장을 운영하며 고득점을 받는 전형적인 전략 외에도, 초반부터 하기 어려웠던 밭과 씨앗뿌리기 등을 쉽게 해줄 수 있는 카드, 설비만 지어 점수를 얻는 전략 등이 추가됐다. 이에 따라 운영과 전략의 폭이 넓어져 많은 목표를 설정할 수 있다. 독일어 이름(Agricola:Weltmeisterschaftsdeck)에서 따와 WM덱이라고도 부른다.
아그리콜라 벨기에 덱. 여기에도 작가의 모습이 보인다. <출처: divedice.com>
체코,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확장은 각각의 덱마다 각 지역의 특색과 위인들로 구성돼 있다. 게임의 균형을 망치는 카드들도 다수 존재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아름답고 재미있는 카드들이 많다. 체코 외 나머지 확장은 120 여장의 카드로 구성돼, 별도의 박스에 담겨 출시됐다.
아그리콜라 : 새로운 도전
아그리콜라 확장 중 가장 큰 볼륨을 가지고 있는 확장은 '아그리콜라: 새로운 도전(Agricola: Farmers of the Moor, 2009)'이다. 이제 플레이어들은 늪과 숲이 우거진, 좀 더 어려운 환경의 황무지를 개간해야 한다. 가족들이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난방에도 신경써야 한다. 이를 위해 가족 말을 쓰지 않고도 할 수 있는 특수 행동과, 좀 더 많아진 주요 설비, 새로운 가축 말이 생겼다. 많은 요소의 추가로 완전히 다른 게임으로 느끼게 해준다.
아그리콜라 2인용 <출처: divedice.com>
이 외에 아그리콜라의 스핀오프(spin-off) 형태의 확장인 '아그리콜라: 크고 작은 피조물들(Agricola: All Creatures Big and Small, 2012)'이 있다. 이 게임은 2인 전용으로, 카드 및 가족 밥먹이기 등을 삭제해 게임을 보다 쉽게 만들었다. 특히 번식과 같은 재미있는 아그리콜라 내 요소는 그대로 살려 30분 내외로 간단히 즐길 수 있다. 2014년 한글판 발매를 위한 크라우드 펀딩이 시도됐으나 안타깝게도 기간 동안 목표 자금을 달성하지 못해 무산됐다.
카베르나 (2014) <출처: divedice.com>
2014년 발매된 '카베르나'는 아그리콜라를 포함한 작가의 다른 일꾼 놓기 게임들을 집대성한 작품이다. 특히 2인용으로 만들어진 '아그리콜라 크고 작은 피조물들'과 유사하게, 카드를 배제하고 타일을 통해 건물을 짓게 한 점이 눈에 띈다. 게임 배경도 판타지 세계로 바꿔, 드워프의 동굴 생활을 다루고 있다.
또한, PC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의 모험을 연상케 하는 탐험 행동이 생겨, 더욱 다채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 됐다. 아그리콜라에서는 첫 2주기 동안의 가족 늘리기가 승리의 주요 키워드였는데, 카베르나는 가족 늘리기가 쉬워지고 탐험을 통해 가족 늘리기를 대체할 수도 있어 승리의 방식이 다양하다.
한편, 설화(Legend)와 요정(fairy)을 배경으로 하는 '레전데어리 포레스트 덱(Agricola: The Legen*dairy Forest-Deck, 2010)'은 X덱의 계보를 잇는 유머 덱이다. '빌레펠트덱(Agricola: Bielefeld Deck, 2013)'은 독일의 도시 빌레펠트를 배경으로 한 기념 덱이다.
다양한 패러디와 수제 구성물들
아그리콜라의 직업 카드에는 유명 인물이나 캐릭터들을 오마주한 그림이 꽤 많이 있다.
아그리콜라 속 각종 패러디. <출처: boardgamegeek.com>
스타워즈의 오비완 케노비, 로빈후드, 반지의 제왕의 한 장면, 해리포터의 스네이프 교수, 카르카손(2000) 확장판의 박스 일러스트, 영화배우 조니 뎁 등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아그리콜라 베지미플. 게임에 몰입감을 더한다. <출처: divedice.com>
아그리콜라의 초판에는 나무로 된 둥근 디스크와 막대가 들어가 있었다. 제작사에서는 이후 곡식, 채소를 형상화한 '베지미플(Veggiemeeples, 2008)'과 양, 돼지, 소를 형상화한 '애니미플(Animeeples, 2008)'을 따로 판매했다. 둥근 디스크와 막대는 게임을 즐기기에 나쁘지 않았지만,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은 법이라 베지미플과 애니미플에 대한 수요는 올라갔다. 이 수요가 어느 정도 확보되자, 재판에서는 이 애니 미플을 기본으로 넣었다.
아그리콜라 한글판은 이 애니 미플이 들어간 2판으로 제작돼, 유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베지미플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있었고, 나무, 진흙, 갈대와 같은 자원의 미플에 대한 요청도 있어, 베지미플과 리소시플(Resourceeples, 2008)을 추가한 '아그리콜라 구디즈'가 발매되기도 했다. 이 구디즈에는 가족 말에 붙이는 스티커와 양면으로 사용할 수 있는 화성, 설원 등을 배경으로 한 게임 판도 추가됐다.
게임의 구성물이 이렇게 큰 호응을 받은 이유는 아그리콜라가 큰 인기를 끈 게임이라는 점, 구성물이 많은 게임이라는 점, 그리고 농장 경영이라는 아기자기한 배경을 잘 살린 점 때문이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좀 더 멋진 구성물로 손수 업그레이드하는 유저들도 있었다. 클레이로 만든 이 소품은 고급 시장을 형성하며 다른 게임들의 구성물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그리콜라 대회
아그리콜라 2011년 대회 포스터, 대전 예선 <출처: divedice.com>
아그리콜라는 2011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세계 대회를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대회가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그리콜라의 국내 유통사인 코리아보드게임즈가 2009년 지스타에서 첫 대회를 개최한 이후, 4회에 걸쳐 아그리콜라 대회를 개최했다.
지스타에서 진행된 2009년 첫 대회는 우승자에게 문화체육관광부 표창 및 상금 100만 원이, 준우승자에게는 (사)한국보드게임산업협회장상 및 상금 50만 원이 수여됐었다.
2010년 출범한 아그리콜라 리그는 국내 보드게임 커뮤니티 다이브다이스를 통해 2년여에 걸쳐 전국 각지에서 개최됐으며, 리그 대회 결과를 반영한 랭킹을 공시했다. 2011년 3월 아그리콜라 대회는 전국 예선을 거쳐 서울 본선까지 열었던 첫 공식 대회였으며, 5월 대회는 성적을 리그에 반영했다. 2011년 12월에 열린 대회는 이 리그의 상위권 랭커들을 초청한 리그 결산 대회로 진행됐다. 이 대회들은 ‘아그리콜라: 새로운 도전’의 발매와 더불어 진행됐으며 아이패드, 레전데어리덱 및 기타 기념품이 수여됐다. 이 대회 이후에는 서울과 지방 각지에서 크고 작은 리그 대회가 개최됐다.
리그가 점차 사라진 2013년의 대회는 누구든지 참가할 수 있는 오픈 대회로 개최, 진행되었다. ‘연인’, ‘시식가’ 등 강한 카드에 대해 일정한 제약을 두고 펼쳐진 것이 특징. 2013년 이후로 아그리콜라의 공식 리그나 대회는 운영되지 않고 있지만, 열혈팬들을 중심으로 아그리콜라 리그가 운영되고 있다.
콩 아저씨, 우베 로젠베르크
우베 로젠베르크. 2008년 SDJ 사진. <출처: boardgamegeek.com>
1970년생인 우베 로젠베르크(Uwe Rogenberg)는 독일의 유명 보드게임 디자이너다. 독일 남부 시골마을 아우리치(Aurich)에서 태어난 그는 학창시절부터 게임 개발을 시작했고, e-mail을 통해 할 수 있는 게임을 여럿 출판했다. 그가 학창시절 만든 콩 카드게임 '보난자'의 성공은 독일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그의 명성을 높여주었다. 보난자를 위시한 그의 농경 관련 게임은 그의 시골 생활 경험이 녹아 있다. 이 때문인지 그의 연작인 보난자는 다양한 시스템을 보여주면서도, 독특한 감성을 드러낸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 보난자 시리즈. <출처: divedice.com>
그는 도르트문트 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 졸업 후 2000년에 다른 게임 디자이너들과 함께 '룩아웃 게임즈'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보난자의 확장을 소량 출판했고, 이 중 몇몇 게임은 아미고, 코스모스와 같은 회사에 유통됐다. 국내에서도 소량 출판된 보난자의 확장은 인기가 있어 일부 유저들을 통해 수입됐다. 이를 계기로 우베 로젠베르크는 '콩 아저씨'라는 닉네임도 가지게 됐다.
2007년 발매된 아그리콜라는 우베 로젠베르크가 국내에서 크게 인지도를 확보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아그리콜라 한글판은 수년간 보드게임 순위 1위를 차지하고 있던 '푸에르토 리코(Puerto Rico, 2002)'를 밀쳐냈고, 우베 로젠베르크는 국내에서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르아브르와 뤄양의 사람들. 아그리콜라까지 해서 수확 3부작이라 부르기도 했다. <출처: divedice.com>
우베 로젠베르크는 아그리콜라를 시작으로 '르 아브르(2008)', '뤄양의 사람들(2009)', '오라 엣 라보라(Ora et Labora, 2011)', '카베르나(2013)', '필즈 오브 아를(Fields of Arle, 2014)'로 이어지는 농경 게임들을 출시했고, 일꾼 놓기 타입의 게임을 가장 잘 다루는 작가로 알려지게 됐다. 이 중 르 아브르, 뤄양의 사람들, 카베르나는 한글판으로 제작됐다.
우베 로젠베르크는 게임을 개발할 때, 게임을 어느 정도 완성한 뒤 혼자 50회 정도를 플레이해보고 확신이 든 뒤부터 테스트를 시작한다고 한다. 테스트를 할 때에는 아무런 편견 없이 게임 그 자체만을 담백하게 비평할 수 있는 테스터 그룹을 꾸리고, 만장일치가 될 때까지 게임을 테스트한다고 한다. 이러한 시스템이 그의 게임이 출시될 때마다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키는 게 아닐까.
아그리콜라의 주요 수상 경력
2007 Meeples' Choice Award
2008 Deutscher Spiele Preis Best Family/Adult Game Winner
2008 Golden Geek Best Gamer's Board Game Winner
2008 Golden Geek Board Game of the Year Winner
2008 Hra roku Winner
2008 International Gamers Awards - General Strategy; Multi-player
2008 Jogo do Ano Winner
2008 Juego del Ano Winner
2008 JUG Game of the Year Winner
2008 Spiel des Jahres "Complex Game" Winner
2008 Tric Trac d'Or
2009 As d'Or - Jeu de l'Annee Prix Special du Jury Winner
2009 Gra Roku Game of the Year Winner
2009 Lucca Games Best Game Mechanics Winner
2009 Ludoteca Ideale Official Selection Winner
2009 Lys Passione Winner
2009 Nederlandse Spellenprijs Winner
아그리콜라의 성공 이후, 수많은 일꾼 놓기 게임이 출시되었다. 하지만 아그리콜라는 일꾼 놓기 게임을 즐기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게임으로 인식될 정도로 구성과 테마, 게임성 모두 훌륭한 작품이다. 출시 이후 수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글 / IT동아 보드게임 필자, 코리아보드게임즈 강상구
편집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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