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인물열전] 개방과 연결 그리고 공유를 위해, 팀 버너스 리

이상우 lswoo@itdonga.com

[IT동아 이상우 기자] 월드 와이드 웹의 아버지, 팀 버너스 리

20년 전만 해도 정보를 찾으려면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물건을 사려면 시장에 가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오늘날 방문을 열지 않고도, 자리에 앉아서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컴퓨터만 켜면 간단한 검색으로 자신이 원하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으며,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원하는 물건을 구매할 수도 있다. 이는 인터넷, 정확히는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 이하 W3) 덕분이다.

월드 와이드 웹
월드 와이드 웹

<출처: Pixabay 무료 이미지>

W3(일반적으로는 웹이라고 부른다)는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를 통해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HTML이라는 언어로 작성한 문서를 이 W3에다 모아놓으면, 사용자는 링크를 통해 연결된 문서로 이동해가며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문서를 흔히 '웹 페이지'라고 부르며, 웹 페이지를 모아놓은 것을 웹 사이트라고 한다. 우리가 웹 브라우저 주소창에 입력하는 영어 단어(예를 들면 http://www.naver.com/)는 해당 문서가 존재하는 위치를 의미한다. 그리고 주소를 입력하고 여러 문서를 찾아 정보를 얻는 행위를 웹 서핑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W3는 오늘날 인터넷 사용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W3라는 용어를 인터넷과 같은 뜻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 이 W3라는 개념을 고안해낸 사람은 영국의 컴퓨터 공학자 '팀 버너스 리'다. 지금부터 그의 삶과 업적을 알아보자.

팀 버너스 리
팀 버너스 리

월드 와이드 웹의 태동

팀 버너스 리는 1955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으며, 1973년부터 1976년까지 옥스퍼드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통신회사에서 기술직으로 잠깐 있다가 1980년부터 스위스에 있는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CERN)에서 잠깐 일하게 된다. 여기서 그는 작업의 편리를 위해 한 가지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 이것이 W3의 기초가 된 인콰이어(ENQUIRE)다. 당시 CERN에는 1만여 명이 근무했고, 각 직원이 원하는 정보나 하드웨어/소프트웨어적인 사양이 달랐다. 팀 버너스 리는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관리하기 위해 인콰이어를 개발했다.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

얼마 뒤 CERN을 떠난 팀 버너스 리는 '이미지 컴퓨터 시스템'이라는 회사에서 일하며 데이터 네트워크에 관한 경력을 쌓고 1984년 CERN 연구원으로 돌아왔다. CERN에 돌아온 그는 연구소 정보 검색 시스템 구축 작업에 착수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당시 CERN에는 많은 과학자가 참여했고, 그만큼 발생하는 연구 결과나 정보가 많았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서 정보 공유는 쉽지 않았고, 심지어 정보가 유실되는 경우도 있었다.

1989년 그가 제안한 아이디어는 인터넷과 하이퍼텍스트를 결합하는 것이었다. 인터넷은 초창기 멀리 떨어진 컴퓨터 집단(네트워크)을 서로 연결해 파일을 주고받기 위한 용도로 쓰였다. 하지만 각 정보 사이의 연결성이나 연속성이 떨어졌다. 여기에 테드 넬슨이 구상한 하이퍼텍스트를 적용해 전세계 곳곳에 흩어져있는 정보가 서로 이어지는 정보의 흐름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CERN의 데이터 센터
CERN의 데이터 센터

*참고: 하이퍼텍스트는 초월한(hyper)과 글(text)의 합성어로, 1960년대 미국 철학자 테드 넬슨이 고안한 용어다. 위에서 아래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책이나 종이 문서와 달리 문서 중간마다 있는 링크를 통해 다른 문서를 넘나들며 다양한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 문서가 서사구조의 완결성을 중시하는 선형적 구조라면 하이퍼텍스트는 방대한 정보를 찾고 습득하는데 어울리는 비선형적 구조다. 위키백과가 이러한 비선형적 구조의 대표적인 사례다.

최초의 웹 서버와 웹 브라우저의 탄생

1990년 10월, 'CERN HTTPd'라고 이름 붙여진 최초의 웹 서버가 가동됐다. 팀 버너스 리는 이 웹 서버를 만들면서 웹 페이지를 제작하고 읽을 수 있는 브라우저 '월드와이드웹'도 함께 개발했다. 월드와이드웹은 URL과 HTML, HTTP 등 하이퍼텍스트 구성 요소를 통해 각 컴퓨터에 담긴 정보를 쉽게 검색하고, 게시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참고로 정보 검색 시스템인 '월드 와이드 웹'과 브라우저 '월드와이드웹'은 띄어쓰기를 통해 구분하는데, 후자는 나중에 혼동을 막기 위해 넥서스(Nexus)로 이름을 바꿨다.

최초의 웹 브라우저
월드와이드웹
최초의 웹 브라우저 월드와이드웹

<세계 최초의 웹 브라우저 월드와이드웹, 출처: W3C 홈페이지>

정보의 개방과 연결 그리고 공유를 위해

1990년 12월, 그가 만든 시스템을 CERN 내부에 공유했고, 이듬해 8월에는 온라인상에 웹 페이지 제작에 관한 모든 정보를 공개해 외부 개발자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1990년 탄생한 세계 최초의 웹 사이트는 'http://info.cern.ch'이다. 여기서 W3의 개념과 기술 그리고 소프트웨어 구조와 코드 등을 공개했다. 현재 이 페이지는 W3의 역사, CERN에서 W3가 탄생한 배경 등을 소개하고 있다.

W3의 확산 속도는 1993년 등장한 그래픽 기반 웹 브라우저 '모자이크(Mosaic)'가 등장하면서 빨라졌고, 웹 서버 숫자도 늘어났다. 빠르게 성장하는 W3에 대응하기 위해, 팀 버너스 리는 1994년 10월 미국 MIT에서 '월드 와이드 웹 컨소시엄(이하 W3C)'을 설립한다. W3C를 통해 모든 웹 표준과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W3의 모든 특허를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했으며, 현재는 W3C의 이사로 활동하며 정부 데이터의 국민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영국 정부와 함께 일하고 있다. 영국 정부와 힘을 합쳐 만든 정부 정보공개 사이트는 'http://data.gov.uk'다.

W3 컨소시엄
W3 컨소시엄

2012년에는 개방 데이터 연구소(ODI)의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3년에는 구글, 페이스북, 시스코, 인텔, MS 등이 참여하는 '저렴한 가격의 인터넷을 위한 연합'을 주도하면서 전세계 누구나 웹을 이용하고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도록 주도하고 있다.

이런 그가 2009년 해외 매체를 통해 W3 개발에서 자신의 '큰' 실수를 고백했다. 자신의 실수 때문에 사람들이 웹 브라우저에 주소를 입력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 실수는 바로 '//'다. 'http://'에서 뒤에 붙는 빗금(Slash) 두 개는 사실은 쓸모 없는 것이며, 20년 전 개발 당시에는 상당히 좋은 아이디어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사람들이 시간과 잉크 그리고 종이를 낭비하게 돼 미안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수상 경력과 영예

팀 버너스 리는 이러한 공헌 덕분에 수많은 상과 영예를 얻었다. 1999년에는 영국 대표 언론사 타임스(Times)가 선정한 20세기 가장 중요한 인물 100인의 하나로 선정됐으며, 2001년에는 영국 왕립 학회 연구원과 미국 인문/과학 아카데미 연구원으로 선임됐다. 2004년에는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Knight Commander of Order of the British Empire, 2등급 훈장)를 받았다. 이 밖에도 지난해 말까지 수십 건의 수상 경력이 있다.

팀 버너스 리
팀 버너스 리

팀 버너스 리의 사상은 2013년 그가 한국을 찾았을 때 했던 연설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SDF 2013 기조연설에서 "인터넷 사용 자체가 인권이며, 인터넷에서 정보 공유와 개방을 막는 검열은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20여 년 전 그가 처음으로 웹을 설계하면서 생각했던 신념을 지금까지 이어온 셈이다.

구텐베르크가 내놓은 활판 인쇄술은 특정 지배계층만 공유하던 지식과 정보를 일반인들도 알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당시 성서를 비롯한 대부분의 책은 손으로 직접 쓰는 것이라 수량이 적고 가격이 비싸 구하기 어려웠지만, 활판 인쇄술을 통해 책을 대량 생산하면서 일반인들도 책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즉 스스로 정보를 찾고 잘못된 주장에 대해서는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이는 문예 부흥 운동에 힘을 실어 줬고, 종교개혁의 불씨가 됐다.

팀 버너스 리가 개발한 월드 와이드 웹은 20세기의 인쇄혁명이라 부를 수 있다. 특정 집단만 공유하던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와 공유할 수 있게 됐으며, 필요한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세상이다.

물론 일부는 아직 정보를 독점하고, 세상에 알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팀 버너스 리가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우리 모두 그의 뜻에 동참하면 르네상스나 종교개혁만큼의 '혁명'을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글 / IT동아 이상우(lswoo@itdonga.com)

※본 기사는 네이버캐스트(http://navercast.naver.com/)의 'IT 인물 열전' 코너에도 함께 연재됩니다.

※해당 기사에 대한 의견은 IT동아 페이스북(www.facebook.com/itdonga)으로도 받고 있습니다.

IT동아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Creative commons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의견은 IT동아(게임동아) 페이스북에서 덧글 또는 메신저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