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와 비교당하고, QM3/티볼리에 치이던 '쏘울'의 몰락
2008년 첫 모델이 출시된 기아자동차의 '쏘울(SOUL)'은 당시 기아에서 주창하던 '디자인 기아'의 대표주자였다. 색다른 디자인과 넓은 실내공간이 특징인 '박스카'임을 강조한 쏘울은 한동안 월 2,000대 남짓의 안정적인 판매량을 기록하며 기아의 스테디셀러로 자리잡는 듯 했다.
하지만 2012년 이후, 쏘울의 판매량은 곤두박질을 치기 시작했다. 첫 번째 타격은 다름 아닌 자사에서 출시된 경차 '레이'에서 비롯되었다. 레이는 쏘울과 유사한 박스카 디자인을 갖추고 있는데다 경차 혜택까지 받을 수 있고, 가격도 더 저렴했다. 레이가 첫 출시된 12월부터 쏘울의 판매량은 월 1,000대 이하 수준으로 떨어졌고 이후에도 좀처럼 이를 회복하지 못했다.
기아가 2013년 10월, 2세대 모델인 '올 뉴 쏘울'을 출시했으나 신차효과를 전혀 보지 못하고 여전히 판매는 부진했다. 올 뉴 쏘울은 뼈대와 내부를 일신한 풀 모델 체인지(완전변경) 차량이었으나 전반적인 외형은 1세대 쏘울과 크게 다르지 않아 상당수 소비자들은 단순히 기존 쏘울의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 혹은 연식 변경 모델로 인식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쏘울에 두 번째 타격을 가한 건 2014년을 전후해 경쟁사에서 봇물처럼 쏟아진 소형 SUV들이다. 쉐보레의 트랙스, 르노삼성의 QM3, 그리고 최근 출시된 쌍용의 티볼리까지 전방위에서 쏘울은 압박을 당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소형 SUV의 유행은 어찌 보면 쏘울에게 있어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차량의 배기량이나 크기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랙스를 제외한 QM3, 티볼리와 차량 크기를 비교해보면 의외로 쏘울은 작지 않다. 오히려 미세하게 나마 세 차종 중 높이가 가장 높고 폭도 가장 넓다. 길이 역시 티볼리에 비하면 55mm 짧을 뿐, QM3에 비하면 15mm 더 길다.
차량의 크기가 거의 비슷한데 가격은 가장 싸다. 가솔린 자동 변속기 모델 기준, 티볼리는 1,795 ~ 2,347만원 이지만, 쏘울은 1,600 ~ 2,025 만원에 살 수 있다. 디젤 모델 기준이라면 QM3는 2,280 ~ 2,495만원이지만 쏘울은 1,985 ~ 2,195만원으로 제법 큰 차이가 난다.
다만,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문제는 소비자들이 쏘울을 QM3나 티볼리의 비교 모델로 전혀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출시 초반에 강조했던 '박스카' 이미지가 이제 와서는 독이 된 셈이다. 이제 와서 쏘울을 소형 SUV라고 홍보하며 경쟁을 하기에도 다소 무리가 있다.
경쟁사의 소형 SUV에 비해 화제성이 한참 떨어진다는 점도 생각해 볼 일이다. QM3의 경우, 한 급 위의 덩치를 갖춘 투싼이나 스포티지에 맞먹은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18.5km/L(복합연비 기준)에 달하는 경이적인 연비가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티볼리의 경우는 콘셉트카를 그대로 양산한 듯한 개성적인 디자인, 그리고 QM3 대비 저렴한 가격으로 요즘 유행하는 '소형 SUV'를 살 수 있다는 점도 매력으로 꼽힌다. 물론 이런 소비자들에게 있어 쏘울은 레이보다 좀 더 비싼데 덜 귀여운 박스카 중 하나일 뿐, 소형 SUV와 비교할 만한 차량은 아닐 것이다.
2014년 12월, 쏘울은 국내에서 불과 261대가 팔렸으며, 이는 기아에서 판매하는 승용차 중 최하위다. 반면, QM3는 전량 수입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3,327대나 팔릴 정도로 인기이며,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은 소형 SUV인 쉐보레 트랙스도 1,173대나 팔렸다. 티볼리의 경우, 아직 판매량이 집계되지 않았지만 사전 예약 4,000여대라고 하니 최소한 쏘울보다는 많이 팔릴 것은 거의 확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제조사인 기아는 쏘울의 상품성이나 마케팅 강화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올 뉴 쏘울이 출시 된지 1년 좀 넘었으니 이제 와서 부분변경 모델을 내놓기도 애매하다. 게다가 쏘울은 국내에선 인기가 없지만, 생산 물량의 90%가 수출용일 정도로 북미에선 제법 잘 팔리고 있기 때문에 굳이 국내 판매에 공을 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최근 현대 기아차 그룹의 상당수 차종이 DCT(듀얼 클러치 변속기)를 탑재하는 등, 상품성을 강화하고 있지만 쏘울 관련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아차 판매사원은 "QM3나 티볼리 구매를 생각하는 고객들에게 쏘울은 비교 대상이 아닌 것 같다. 그 차들과 쏘울의 크기가 비슷하다고 하면 다들 믿지 못하는 표정"이라며, "제조사의 성의 없는 마케팅 때문에 한때 국산 자동차 디자인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 받은 하나의 차종이 이렇게 몰락하는 것은 자동차 애호가 입장에서도 아쉬운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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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