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안드로이드 관리 강화에 나서는 이유
벌써 4년 전이다. 구글이 HTC와 함께 처음으로 레퍼런스(표준) 스마트폰 '넥서스 원'을 선보인 때가 지난 2010년 1월이었으니…. 이 때를 기점으로 구글은 넥서스 시리즈의 시작을 알렸다. 넥서스 시리즈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태블릿PC의 길잡이 역할을 담당했다. 안드로이드는 iOS와 달리 제조사에게 공개한 모바일 운영체제이기 때문에 각 제조사가 선보이는 안드로이드 기기는 같은 듯 달랐다. 글쎄. 어느 노래 가사처럼 구글은 각 제조사가 선보이는 안드로이드 기기를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로 바라보지 않을까.
넥서스 시리즈는 제조사마다 다른 여러 안드로이드 기기의 기준이다. 그래서 레퍼런스 폰이고 레퍼런스 태블릿PC다. 구글이 생각하는 '안드로이드 기기는 이런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는다. 강제적이지 않지만, 넥서스 시리즈를 출시하며 나름의 기준을 선보이고, 어떻게 하면 안드로이드를 각 기기에 잘 '최적화'할 수 있을지 알린다. 구글은 넥서스 원을 시작으로 넥서스S(삼성전자, 2010년 12월), 갤럭시 넥서스(삼성전자, 2011년 11월), 넥서스7(에이수스, 2012년 6월), 넥서스4(LG전자, 2012년 11월), 넥서스10(삼성전자, 2012년 11월), 넥서스7 2013(에이수스, 2013년 7월), 넥서스5(LG전자, 2013년 11월), 넥서스9(HTC, ), 넥서스6(모토로라) 등을 순차적으로 선보인 바 있다.
확실히 구글과 함께 넥서스 시리즈를 선보인 제조사들은 안드로이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뭔가 배운 듯했다. 각 제조사들이 넥서스 시리즈 다음에 선보인 안드로이드 기기는 '정말 알고 만든' 느낌이 강했다. 안드로이드라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조화롭게 맞물려 있다. 이 같은 조화는 자연스럽게 기기 성능을 끌어올렸다. 배터리 효율, 앱 호환, 업그레이드 문제 등도 해결됐다.
넥서스 시리즈는 저렴한 가격도 장점이다. 동급 성능의 다른 제조사 스마트폰, 태블릿PC 등과 비교하면 절반 가격 정도에 불과하다. 구글이 이같은 가격 정책을 세울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넥서스 시리즈는 이익을 얻기 위해 판매하는 제품이 아니다(물론, 얻으면 좋기야 하지만). 수많은 제조사가 선보이는 안드로이드 기기의 표준 제품 역할이 크다. 안드로이드 전체 시장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수단 중 하나라고 생각해도 좋다. '이익'을 포기했으니 가격은 자연스럽게 내려갈 수밖에.
넥서스, 진정 안드로이드 레퍼런스 폰일까
그랬던 구글이 고민에 빠졌다. 넥서스 시리즈를 선보이는 이유와 목표, 전략 등이 처음 의도했던 바와 달리 큰 실효성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넥서스 시리즈를 구글과 특정 제조사가 함께 선보이며, 해당 제조사에게 안드로이드 관련 정보와 최적화 등의 노하우를 알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안드로이드는 강제성이 없다. 제조사들은 그저 참고할 뿐이다. '아, 이런 기능은 이렇게 해결할 수 있군' 정도? 결국 제조사는 필요한 것만 가져온다. 심지어 삼성전자는 '갤럭시 넥서스'라고 제조사의 입김을 조금 더 담은 넥서스 시리즈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동통신사도 넥서스 시리즈를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제품과 관련한 제휴 마케팅, 프로모션 등의 활동을 구글로부터 지원받을 수 없기 때문. 오히려 저렴한 넥서스 시리즈의 가격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안드로이드 기기가 비싼 것 아니냐는 '거품 가격' 논란을 야기하는 골칫거리에 가깝다.
구글이 넥서스 시리즈로 안드로이드 진영의 우군인 각 제조사들의 경쟁력을 강화한 것은 맞다. 문제는 구글이 넥서스 시리즈를 의도대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적다는 점이다. 전세계 안드로이드 기기 중 삼성전자 갤럭시S 시리즈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63.3%에 달한다. 주요 시장조사업체는 이 자료를 통해 안드로이드 상태계에서 구글보다 삼성전자의 영향력이 더 높다고 주목한다. 이에 구글이 넥서스 시리즈에 대한 전략을 다시 한번 재고할 것이며, 새로운 프로젝트 '안드로이드 실버'를 준비 중이라고 말한다.
안드로이드 실버, 구글의 입김을 싣겠다
이미 구글은 안드로이드의 주도권을 가져오겠다는 의도를 여러 번 내세웠다. 대표적인 사례기 삼성전자 갤럭시S4 구글에디션, LG전자 G패드8.3 구글에디션, HTC ONE 구글에디션 등이다. 넥서스 시리즈 제품은 아니지만, 구글이 인증한 기기라는 뜻으로 '구글에디션'을 선보였다. 구글에디션을 하나의 인증 제도로 만들어, 해당 기기는 '구글이 인정한 제품'이라는 의미를 담은 것. 하지만, 이 제품들은 일반 사용자의 손에 들어가지 않고, 일부 안드로이드 개발자에게만 들어갔다. 제조사와 이동통신사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구글은 일부 제조사들이 선보인 안드로이드 기기의 부팅 단계에 'Powered by Android'라는 문구를 노출하도록 강제하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출시한 갤럭시S5도 전원을 껐다가 켜면 이 문구가 뜬다. 하지만, 이 역시 그다지 큰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과거 PC나 노트북을 사면, 제품 외관에 '인텔 인사이드', '지포스', '라데온' 등의 스티커가 붙어 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사용자들은 이런 스티커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과 유사하다.
이러던 와중, 올해 들어 '안드로이드 실버'라는 인증 프로그램으로 소문이 번졌다. 안드로이드 실버는 구글이 다시 안드로이드 생태계에서 주도권을 찾아오겠다는 전략적 프로젝트다. 제조사 또는 이통사가 안드로이드 기기를 출시할 때 자체적으로 미리 탑재하는 앱 종류나 개수 등을 제한하고, 되도록 순정 안드로이드와 구글이 제공하는 순정 안드로이드 앱을 메인에 배치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 이에 대한 보상책도 마련 중이다. 제조사에게 안드로이드 탑재를 위한 기술에 대해 알려주고, 이동통신사에게 마케팅 비용을 지원한다는 것.
아직 이 같은 구글의 움직임을 시장에서 어떤 의미로 받아 들일지 알 수 없다. 초기 안드로이드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크게 성장하고 있는 애플의 iOS와 아이폰, 아이패드에 대한 견제 카드로 성장했다. 제조사와 이통사 모두 '이대로는 안된다'라는 공감 하에 구글이 공개한 안드로이드를 사용했다. 딱히 대안책도 없었다. 안드로이드 이외에 선택할 수 있었던 모바일 운영체제는 '윈도폰 모바일', '블랙베리' 등 한정적이었으, MS와 블랙베리는 iOS와 마찬가지로 폐쇄적으로 운영했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들어 구글이 안드로이드와 안드로이드 기본 탑재 앱에 대한 권한을 가져오는 움직임이 더욱 거세졌다. IT 전문매체 '더 인포메이션(The Information)'에 따르면, 구글 안드로이드 단말기 제조사인 삼성전자, 화웨이, HTC 등에 안드로이드 관련 요구 사항을 추가했다. 주요 내용은 구글 서비스 관련 앱을 최대 20개까지 선 탑재하고 홈 화면에 보여지는 구글 앱을 확대하라고 요청했다는 것. 아울러, 구글 검색을 좀 더 눈에 띌 수 있도록 노출하는 것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 인포메이션은 구글의 안드로이드 관리 강화 조치가 2014년에 실시된 것으로 밝혔으나, 정확한 시점을 밝히진 않았다. 다만, 지난 2014년 1월 구글이 CES 2014에서 공개한 삼성전자 갤럭시노트 프로와 탭 프로에 적용한 '매거진 UX(Magazin UX)'를 확인한 이후, 차기 단말기에 매거진 UX를 적용하지 않을 것을 요청했다는 것. 이를 근거로 이때부터 관리 강화에 돌입한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모바일 사용자가 PC 사용자를 넘어선 현실도 고려해야
구글이 안드로이드 관리 강화를 선언하는 것에 대해 스마트폰을 통한 인터넷 이용이 늘어남에 따라 기존 데스크탑 기반 매출 감소도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줄어든 데스크탑 기반 매출을 상쇄하기 위해서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모바일 기기에서 구글 서비스 이용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8월, 구글이 'TNS Infratest Germany'의 데이터를 인용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 56개 국가의 PC 사용률은 2011년 3월부터 감소하거나 정체되어 있는 반면, 스마트폰 사용률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 출처: TNS Infratest Germany, 구글. 2014년 8월 >
모바일 기기 사용자 및 사용 시간이 증가하면서 주요 디지털 미디어 이용 패턴도 모바일 기기로 확대 중이다. 시장조사기관 '컴스코어(comScore)'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5월 기준 미국 내 주요 디지털 미디어 이용 시간 중 모바일 기기를 통한 이용 시간이 전체 이용 시간 중 60%를 차지했다(데스크탑 이용 시간 40%). 특히, 2014년 1월에는 모바일 앱을 통한 미디어 이용 시간도 데스크탑 이용 시간을 추월했다.
< 단말별 디지털 미디어 이용 시간 비중. 출처: com2core. 2014년 6월 >
특히, 라디오, 사진, 지도, 메신저, 게임 등은 모바일 기기에서만 이용할 정도로 비중이 높았으며, SNS와 자료 검색 등도 모바일 기기를 통한 이용 비중이 월등히 높았다.
< 단말별 미디어 유형별 이용 시간 비중. 출처: com2core, 2014년 6월 >
결국 모바일 기기 사용자와 이용 시간이 늘어나면서 구글의 데스크탑 광고 수익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것. 구글 입장에서는 모바일 기기에서 구글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 및 이용 시간 확대가 필요한 상황이다. 실제로 2014년 2분기 기준, 구글의 매출은 159억 5,500만 달러로 2013년 동기 대비 22% 증가했지만, 상대적으로 광고 단가가 낮은 모바일 광고가 늘어나 CPC는 11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 중이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관리 강화, 제조사들은?
구글이 자사 서비스 이용 확대를 위해 선 탑재 앱 확대, 홈 화면에 구글 앱 노출 등은 제조사와의 협력이 필수다. 다만, 제조사가 이 같은 관리 강화 요청 또는 조항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미 스마트폰은 전세계 주요 국가에서 성숙 시장으로 접어들었다. 더 이상 과거처럼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단계는 지났다는 의미. 스마트폰의 성능을 좌우하는 하드웨어 기본사양도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타 경쟁사와 차별화할 수 있는 것이 앱 또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커스터마이징 정도로 한정된다.
그나마 제조사가 경쟁사와 차별화할 수 있는 부분을 구글이 안드로이드 관리 강화 목적으로 획일화한다면, 제조사가 꺼낼 수 있는 카드는 거의 없다. 성능은 상향평준화에 똑 같은 운영체제와 똑 같은 앱을 탑재해야 한다면? 남는 건 가격경쟁력과 디자인 정도밖에 없다. 제조사가 구글의 안드로이드 관리 강화에 쉽게 동참하기 어려운 현실인 것.
더구나 구글 안드로이드의 가장 큰 우군인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에 치중된 현실을 탈피하고자 '타이젠(Tizen)' 개발에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타이젠을 탑재한 기어S 등 웨어러블 기기와 몇몇 스마트폰도 이미 선보인 상태. 구글의 관리 강화라는 이유 때문에 탈 안드로이드 현상이 급속도로 심화되지는 않겠지만, 서로가 껄끄러운 상태인 것은 분명하다.
구글은 제조사, 이동통신사와 이 같은 견해차를 어떻게 좁힐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삼성전자 갤럭시 시리즈에 '삼성 앱스'가 없고, LG G시리즈에 'LG 스마트 월드'가 없다면? 사용자는 반길지 모르지만, 제조사와 이동통신사는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물론, 아직 구글이 안드로이드 실버 또는 관리 강화 인증 프로그램을 언제 어떻게 실행할 것이라고 밝히지 않았다.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구글이 안드로이드 생태계 주도권을 조금씩 되찾기 원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향후 이 같은 구글의 움직임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 해당 기사에 대한 의견은 IT동아 페이스북(www.facebook.com/itdonga)으로도 받고 있습니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