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의 세계] 대공황 속에서 태어난 보드게임, '모노폴리'
20세기 초 미국 경제 대공황 당시, 찰스 대로우(Charles Darrow)는 '모노폴리(Monopoly)'라는 보드게임을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이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모노폴리는 대공황 시대의 '독점만이 살 길이다'라는 교리를 제일 즐겁고 단순하게 재현한 보드게임이며, 찰스 대로우는 그 대공황의 최대 피해자, 실직자였기 때문이다.
Figure 1 모노폴리 한글판
땅을 독점하자
모노폴리는 규칙이 쉽고 간단한 게임이다. 먼저 주사위 두 개를 굴려서 나온 수만큼 자신의 말을 옮기고, 도착한 곳의 땅을 구입한다. 해당 지역을 다른 사람이 소유하고 있다면 소유주에게 이용료를 낸다. 만약 구입할 수 있는 부동산이 아닌 특수한 칸이라면, 그 칸에 쓰여있는 지시를 따른다. 그리고 같은 색깔의 땅을 독점하면 더 많은 이용료를 받거나, 건물을 지어 더 높은 이용료를 부과할 수 있다.
즉, 게임에서 승리하려면 같은 색깔의 땅을 모아야 하는데, 이것이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모노폴리에서는 다른 사람과의 부동산 및 재산 거래를 허용하고 있다. 다른 플레이어와 협상해 부동산을 교환하거나, 돈을 주고 부동산을 구매할 수 있는 것. 그렇게 거래를 통해 플레이어들이 땅을 독점해나가고 건물을 건설할수록 이용료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기록한다. 결국 자신의 모든 부동산을 판매하고 재산을 긁어 모아도 이용료를 지불하지 못하게 되면 파산하고 게임에서 탈락한다. 모든 플레이어를 탈락시키고 최종적으로 남은 플레이어가 승리한다.
Figure 2 주사위를 굴리고 땅을 사거나, 건물을 짓거나 혹은 임대료를 내거나.
모노폴리는 규칙은 단순하지만, 플레이어들과의 상호작용 및 거래 요소를 통한 전략성을 적절하게 부가해, 많은 게이머들과 가족 플레이어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모노폴리의 탄생
1933년, 찰스 대로우는 '모노폴리'라는 보드게임을 만들어 '파커 브라더스(Parker Brothers)' 사에 출판 제안을 한다. (파커 브라더스는 미국 최대의 완구회사 중 하나인 '해즈브로(Hasbro)'의 자회사이며, '클루'라는 희대의 걸작을 출시하기도 했다) 파커 브라더스는 처음에 복잡한 규칙, 긴 플레이시간 등을 핑계로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만, 찰스 대로우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돈으로 7,000 카피를 만들어 판매를 시작해 좋은 반응을 얻는다. 그러자 파커 브라더스는 재빨리 찰스 대로우를 다시 만나 계약한다. 그리고 1935년 정식으로 게임을 출판,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다. 이것이 우리가 잘 아는 '모노폴리' 게임의 탄생 배경이다. 참고로, 최근 '모두의 마블'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부루마불'의 경우, 모노폴리 게임의 아류작 중 하나다.
Figure 3 모노폴리가 원조? ⓒBoardgamegeek.com
그러나 사실, 이 모노폴리마저 오리지널은 아니었다. 오리지널은 바로 1904년 특허 출원을 받은 엘리자베스 메기의 '지주 게임'라는 보드게임이다. 이 게임은 '주사위를 굴려서 도착한 곳의 땅을 산다'라는 규칙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모노폴리의 기본 규칙과 동일하다. 하지만, 지주 게임은 모노폴리와 정반대로 '독점으로 인한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판하기 위한 게임이었다.
Figure 4 진짜 원조, 지주게임 ⓒBoardgamegeek.com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모티브로 모노폴리가 출시됐고, 대공황에 시달린 사람들은 '나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게 됐다. 이에 모노폴리는 세계적으로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모노폴리의 다양한 판본들
약 90년 동안, 모노폴리는 다양한 버전으로 개작됐다. 예를 들면 마이 리틀 포니, 심슨, 스펀지밥, 사우스파크 등 각종 캐릭터를 활용한 버전이 있으며 첼시, 리버풀, 네셔널 파크 등을 다룬 지역 에디션이 있다. 보스턴 레드삭스, NFL, 올림픽, 월드컵 등 스포츠를 활용한 모노폴리가 있으며, 스트리트 파이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등 게임을 활용한 모노폴리도 있다. 공식 판본 및 비공식적인 판본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이미 2570종을 넘어선다. (2014년 8월 기준) 몇몇 상품은 모노폴리(Monopoly)의 철자 일부인 'opoly'를 사용해, 게임 이름을 유쾌하게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이 게임들을 모두 국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Figure 5 다양한 모노폴리. 수집욕을 자극한다. ⓒmonopoly wiki
한글판으로 발매된 이색적인 모노폴리에는 '모노폴리 엠파이어'가 있다. 이제 21세기에 걸맞게, 플레이어들은 땅을 사고 파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를 사고 판다. 브랜드를 사서 탑을 쌓으면 게임에서 승리하는데, 이 탑의 높이에 따라 월급이 달라지기도 한다. 모노폴리에 있는 스피드 주사위 규칙을 변형해 브랜드를 교환할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Figure 6 모노폴리 엠파이어. 이제 삼성도 사고 팔 수 있다.
'모노폴리 밀리어네어'는 이름 그대로 백만 달러를 모으면 게임에서 승리하는 게임이다. 게임 시작 전 모든 칸에 행운 카드를 올려 놓고, 해당 칸에 도착하면 그 카드의 내용을 따르게 해서 복불복의 재미를 더했다. 자신의 게임 말을 3번 업그레이드할 수 있으며, 업그레이드를 할 때마다 재산을 늘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특징이다.
Figure 7 모노폴리 밀리어네어. 다이아몬드를 형상화한 박스가 눈에 띈다.
'모노폴리 시티'는 3D 건물이 돋보이는 게임이다. 게임 종료 시간 및 경매 진행을 도와주는 타이머가 들어있는 것도 새로운 점이다. 임대료 수익을 2배로 해주는 고층 건물, 월급을 더해주는 종합운동장, 주거 건물의 임대료를 0으로 만드는 위험 시설까지 추가해, 단조로운 2종류의 건물 구성을 탈피하고 도시를 건설하는 느낌을 살렸다.
Figure 8 모노폴리 시티. 입체적인 빌딩이 가득하다.
'모노폴리 전자카드'는 종이돈을 없애고, 카드 결제기를 도입해 각 플레이어가 카드를 통해 재산을 거래하도록 한 게임이다. 동전과 지폐가 없어져 구성물이 좀 더 단출해졌다. 물론 재산 계산은 플레이어들이 직접 해야 하는 만큼, 모노폴리 고유의 학습 효과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예전에 판매됐던 월드 버전은 현재 찾아보기 어렵지만, 사용자들의 참여를 통해 선정된 도시를 게임 판에 배치했다. 또한, 6대륙의 상징으로 만들어진 말과 각 대륙마다 다른 주택, 호텔 디자인으로 눈길을 끌었다. (아쉽게도 서울은 47위로 선정돼, 게임판의 한 켠에 작게 표시됐다)
Figure 9 모노폴리 전자카드. 카드가 있어도 계산은 스스로 해야 한다.
'모노폴리 주니어'는 게임 판을 작게 제작하고, 주사위를 1개 사용하면서 돈의 단위를 한 자리로 줄여 아이들이 접근하기 쉽도록 한 게임이다. 비슷하게 나온 '모노폴리 마이퍼스트'는 주사위를 없애고 게임 판을 원형으로 바꿨다. 주사위를 대신해 가장자리에 있는 차를 움직여 이동 거리를 결정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이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활용한 '모노폴리 카2'로도 나왔다.
Figure 10 모노폴리 주니어. 현재 국내에는 영문판으로만 출시됐으며 영어 교육 게임으로 알려졌다.
한편, 잘 나가는 보드게임은 카드 게임이나 주사위 게임으로 꼭 나온다고 한다. 모노폴리도 마찬가지로 카드 게임 '모노폴리 딜' 한글판이 발매된 바 있다. 이젠 구하기 어려운 이 게임은 모노폴리의 핵심인 거래를 카드 형식으로 잘 버무려, 숨겨진 전략게임으로 알려져 있다.
모노폴리의 아류작들
2003년, 모노폴리의 아류작 '게토폴리'가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국내에도 그 뉴스가 보도됐다. 게토폴리는 길거리에서 마약을 팔고, 찬스 카드를 뽑아 돈을 훔치는 것을 배경으로 한 게임이다. 이 게토폴리는 말콤 엑스나 마틴 루터 킹 등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지도자를 패러디해, 당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비하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모노폴리의 판권사 해즈브로는 상표권 관련 소송을 통해 이 게임과 모노폴리가 엮이는 것을 염려했다. 결국 2006년 게토폴리의 상표권 침해가 인정됐다. 이후 경매사이트 이베이(ebay)는 게토폴리와 같은 논란이 되는 게임들을 판매하지 않고 있다.
Figure 11 상표권 분쟁의 첫 주자. 안티 모노폴리. 이제는 해즈브로 소유다. ⓒ antimonopoly.com
사실, 모노폴리의 아류작 논쟁은 1974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랄프 안스팍(Ralph Anspach) 교수가 만든 '안티 모노폴리(Anti-Monopoly)'가 출시되자, 당시 모노폴리의 판권을 가지고 있던 해즈브로는 상표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법정 분쟁은 10년에 걸쳐 이어졌고, 여기서 모노폴리의 기원이 밝혀졌다. 랄프 교수는 조사 끝에, 모노폴리를 개발한 것은 엘리자베스 메기라는 것을 밝혀냈다. 또한, 1930년대 초 애틀란타시의 퀘이커 교도들이 즐기던 게임이었다는 것 역시 알아냈다. 이 게임들은 집집마다 다른 규칙을 가지고 있었는데, 찰스 대로우는 그 중 가장 나은 규칙을 골라 상업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모노폴리와 관련된 특허는 소멸됐지만, 파커 브라더스와 해즈브로는 모노폴리의 상표권과 비슷한 종류의 상표권을 모두 취득했다. 또한, 안티-모노폴리의 상표권 또한 사들여 게임판의 특별한 디자인, 게임 카드, 게임 말에 대한 저작권, 상표권 관련 법의 보호를 받고 있다.
국내에는 1990년대 후반부터 알려진 모노폴리보다 80년대부터 즐겨온 모노폴리의 아류작인 '부루마불'이 더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렇게 아류작이 더 인기를 끌고 있는 국가는 한국과 인도, 브라질 등 일부 국가뿐이다.
모노폴리와 부루마불의 차이점은 경매 및 거래에 있다. 부루마불은 경매와 거래 규칙을 생략했는데, 아무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타인과의 거래 및 교환에 익숙지 않은 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저당과 같은 규칙도 모노폴리가 상대적으로 더 명확해, 게임 중 애매한 상황이 잘 벌어지지 않는다.
부루마불은 4가지 색의 토지를, 모노폴리는 8가지 색의 토지를 가지고 있다. 부루마불에서 토지의 색은 가치를 의미하지만, 모노폴리에서는 토지의 색은 임대료의 증대를 위한 토지 매매의 근거(독점의 근거)가 된다. 또한 부루마불은 도착한 땅을 구매하지 않고 자기 차례를 끝낼 수 있지만, 모노폴리는 경매로 넘어가서 누군가가 땅을 사야 차례가 끝난다. 모노폴리에는 스피드 주사위가 있는데, 이 빨간색 주사위를 추가로 굴려 이동 규칙을 더 다양하게 만든다.
부루마불은 건설 시 별장, 빌딩, 호텔 3종류를 지을 수 있는데, 별장과 호텔의 이익 차이가 극명해 별장보다는 호텔을 짓는 경우가 더 많다. 반면, 모노폴리에서 호텔의 가치는 5개의 주택에 비례하는 것이기 때문에 큰 차이가 없고, 항상 주택부터 지어야 한다.
부루마불 외에 다른 유사한 게임을 추가로 언급하자면, 2014년 발매된 '호텔의 제왕'을 들 수 있다. 호텔의 제왕은 원래 '세계의 콘도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소개됐는데, 모노폴리와 마찬가지로 파커 브라더스가 판권을 가지고 있었다. 2014년, 이 판권이 '아스모디(Asmodee)'로 넘어가면서 국내에 '호텔의 제왕'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오게 됐다. 상당히 화려한 구성물을 자랑하는 '호텔의 제왕'은 모노폴리나 부루마불과는 게임 규칙에 차이가 있다.
Figure 12 호텔의 제왕. 세계의 콘도 여행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우선, 호텔의 제왕은 상당히 화려한 구성물을 자랑한다. 또한 모노폴리나 부루마블과는 달리 땅에 대한 권리증서를 구입하고 건축허가를 받아야 건물을 지을 수 있다. 건축허가에 드는 비용은 주사위에 따라 달라지며, 다른 플레이어에게 징수할 수 있는 숙박료(임대료와 동일한 개념) 또한 주사위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가장 큰 차이점은 호텔의 입구를 만들어야 숙박료를 받을 수 있는데, 바로 건너편 호텔과 입구를 내기 위한 쟁탈전을 벌여야 한다. 모두를 파산시키고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최근에는 모바일 게임 '모두의 마블'이 성공을 거두며 널리 알려졌다. 상업화되지 않은 작품 중에는 부루마불을 모방한 '주루마블'이 있으며 이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2010년에는 딴지일보에서 정치적인 색을 가미한 '가카마블'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다.
Figure 13 딴지일보에서 출판된 패러디 작품. 가카마블. ⓒ딴지일보
모노폴리의 풍자
모노폴리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독점 자본가에 대한 풍자를 엿볼 수 있다. 주사위로 인해 '운 나쁘면' 세금을 물거나 감옥에 가거나, 그 감옥에서도 돈만 주면 풀려나올 수 있는 요소가 나온다. 이는 무자비하게 덩치를 키워가고 자본을 '독점(monopoly)'해가며,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가는 그 시대 자본가들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게임에서 다른 사람에게 더 많은 돈을 받으려면 주택, 호텔 등의 건물을 지어야 하는데, 건물을 지으려면 그 토지와 같은 색깔의 땅을 모두 독점해야 한다. ‘독점’이 자본을 늘리는 유일무이한 방법으로 표현되고, 자신을 제외한 모든 플레이어를 파산시켜야 하는 게임목표 또한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이 외에도 미국의 유명한 풍자 만화인 '심슨 가족'에도 'MR.모노폴리'(사실 이 캐릭터의 이름은 Rich Uncle Pennybegs로, 초판 모노폴리 찬스 카드에 처음 등장했다)가 등장해 '자본주의에서 성공할 거라고 믿는 서민들'을 비웃고 떠나는 에피소드도 있다.
이러한 숨은 풍자를 제외하더라도, 모노폴리는 어린이들에게 연산 및 교환, 거래에 대한 개념을 심어준다. 보드게임이 가진 장점 즉, 승리하기 위해 타인과 협동하는 방법을 습득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교육적 요소들이 공부가 아닌 재미로 느껴진다는 것은, 이 게임이 수십 년 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글 / IT동아 보드게임 필자, 코리아보드게임즈 마케팅팀 권성현
편집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
※본 기사는 네이버캐스트 게임대백과(http://me2.do/5Cf0wCtM)에 함께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