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모바일을 품은 워크스테이션, 델 프리시전 M3800
확장성과 범용성을 추구하던 워크스테이션(업무용 컴퓨터)이 휴대성과 디자인이라는 옷을 입고 있다. 전문가들이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업무를 처리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을 워크스테이션 2.0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각 제조사의 대응방법도 천차만별이라 흥미롭다. 애플의 경우 x86 서버만한 크기의 워크스테이션을 사무실용 휴지통만하게 줄였다. HP는 모니터를 붙여 일체형 워크스테이션을 만들어 냈다. 델의 대응방식은 조금 고전적이다. 데스크톱의 형태를 버리고 노트북 형태의 워크스테이션을 만들어 냈다. 바로 '델 프리시전 M3800'이다.
전문가를 위한 그래픽 프로세서
워크스테이션과 일반PC의 차이가 뭘까. 예전에는 성능으로 구분했다. 하지만 PC 부품이 발전하면서 둘을 성능으로 구분하는 게 무의미해졌다. 지금은 용도로 가른다. 게임, 웹 서핑, 동영상 감상 등 소비적인 용도와 문서 작성 등 약간의 생산적인 용도를 갖추고 있으면 일반PC로, 동영상 및 이미지 편집, 3D 그래픽 제작 등 생산적인 용도에만 집중하면 워크스테이션이라고 부른다.
M3800은 오픈GL 가속용 그래픽 프로세서 엔비디아 쿼드로 K1100M(전용 메모리 2GB)를 탑재했다. 쿼드로 K1100M은 기존 그래픽 프로세서와 무엇이 다른걸까. 기존 그래픽 프로세서는 3D 게임 실행을 위해 다이렉트X 명령어와 오픈GL 명령어를 함께 품고 있다. 반면 쿼드로 K1100M은 오픈GL 명령어 처리에 특화돼 있다. 시중의 3D 그래픽 제작 프로그램은 오픈GL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때문에 쿼드로 K1100M은 일반 그래픽 프로세서보다 빠르게 3D 그래픽을 생성/처리한다.
어떤 프로그램이 쿼드로 K1100M을 요구할까. 엔비디아 제어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프리미어, 베가스, 오토캐드, 마야, 엑스프레스, 앤시스, 카티아, 솔리드웍스 등이다. 이 프로그램을 실행할 때 K1100M은 3D 그래픽 가속 기능으로 프로세서를 보조한다.
그렇다면 쿼드로 K1100M으로 게임을 실행할 수는 없는걸까? 잘 돌아간다. 단 조건이 있다. 게임이 오픈GL 명령어에 최적화돼 있어야 한다. 다이렉트X 기준으로 제작된 게임은 제대로 실행할 수 없다. 그래서 묻고 싶을 거다. "어떤 게임을 어느 정도로 실행할 수 있나요?" 이를 확인해봤다.
솔직히 말하자. 쿼드로 K1100M은 지포스 GT750M과 같은 제품이다. 내부 명령어 처리 방식만 다르다(이른바 '리빌딩' 모델). 때문에 '디아블로3'와 '확장팩: 영혼을 거두는 자'.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2', '보더랜드2' 등 오픈GL을 충실히 지원하는 게임은 쾌적하게 실행된다. 풀HD 해상도 하이옵션으로 실행해도 30~50프레임은 나온다. 반면 '앨런웨이크', '컴패니오브히어로즈2' 등 다이렉트X에 최적화된 게임은 HD 해상도 최저 옵션으로 실행해도 화면이 끊긴다. 특성을 많이 탄다는 뜻이다. 국내 온라인 게임의 경우 다이렉트X 위주로 제작되는 만큼 대부분 실행하기 버겁다.
QHD+, UHD에 버금가는 초고해상도
M3800의 특징은 그래픽 프로세서만이 아니다. 크기 15.6인치, 해상도 3,200x1,800(QHD+, 16:9화면비), 선명도 235ppi의 광시야각 IPS 디스플레이를 채택했다. 맥북프로 레티나 이상의 고해상도다. 이를 통해 글씨, 그림 등을 한층 선명하게 볼 수 있다.
M3800을 구매할 때 풀HD 해상도 디스플레이를 선택하면 운영체제로 윈도7을, QHD+ 디스플레이를 선택하면 윈도8.1을 제공한다. 윈도8.1부터 자동 스케일링 기능을 지원하기 때문. M3800으로 웹 서핑을 하면 글씨와 그림이 1,600x900 해상도의 노트북으로 웹 서핑을 할 때와 동일하게 나타난다. 대신 글씨와 그림이 4배 선명하다. 픽셀 4개를 하나로 묶어 그림과 글씨를 보다 섬세하게 표현한다.
하지만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등 일부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스케일링이 풀리고 화면과 픽셀이 1:1로 매칭된다. 이미지 왜곡을 막기 위해서다. 때문에 메뉴 화면에 적힌 글씨가 매우 작게 보이니 주의하자.
M3800은 초고해상도 디스플레이 뿐만 아니라 10포인트 터치스크린도 품고 있다. 윈도8.1의 모던UI가 터치스크린에 최적화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특정 상황에선 마우스보다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워크스테이션, 하스웰로도 충분
워크스테이션은 인텔의 HPC 및 서버용 프로세서 제온(Xeon)을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M3800은 4세대 인텔 코어 i7-4702HQ 쿼드코어 프로세서(하스웰, 2.2GHz)를 채택했다. 이유는 크게 2가지다. 하나는 제온의 전력소모(TDP)와 발열이 크기 때문이다. 내부 공간이 좁은 노트북에 탑재할만한 여유가 없다. 다른 하나는 일반 프로세서의 성능도 많이 발전해 단일 작업을 처리할 경우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3~4가지 이상의 작업을 동시에 처리할 때에만 차이가 난다.
i7-4702HQ의 성능은 데스크탑용 코어 i5-4670(코어 i5 최상위 모델)과 비슷하다. 동급 워크스테이션에 널리 사용되는 제온 E3 V2 프로세서보다는 성능이 조금 떨어진다.
기크벤치 (Geekbench3) 벤치마크 점수
코어 i7-4702HQ: 11320
코어 i5-4670: 11509
제온 E3-1245 v2: 12704
i7-4702HQ은 노트북용 모바일 프로세서이고, 다른 둘은 데스크톱 및 서버용 프로세서인점을 감안할 것. 충분히 높은 성능이다.
M3800의 동영상 인코딩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방송용 카메라로 촬영한 '4.41GB MTS(TP) 파일'을 '4K 해상도 HEVC 코덱 MKV 파일'로 인코딩했다. 그 결과 165분 걸렸다. M3800과 비슷한 가격을 갖춘 맥북프로 레티나 2013(4세대 인텔 코어 i5 2.6GHz(듀얼코어), 8GB 메모리) 모델로 동일한 조건에서 인코딩을 실행해본 결과 375분 걸렸다. 같은 노트북이지만 성능 차이는 꽤 크게났다.
M3800의 메모리(RAM) 용량은 16GB다. 때문에 다양한 작업을 동시에 실행해도 별 다른 부담이 없다. 초고해상도 RAW 사진 파일을 열어도 응용 프로그램이 강제 종료되는 현상은 생기지 않았다. 워크스테이션의 경우 ECC 메모리(오류검출 메모리)를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M3800은 일반 프로세서를 채택한 관계로 일반 DDR3 메모리를 채택했다. M3800을 서버로 사용할 일은 없을테니 큰 문제는 아니다. M3800의 메모리 슬롯은 2개이고, 거기에 8GB 메모리가 하나씩 꽂혀있다. 메모리 용량을 32GB로 확장하고 싶다면 사용자가 16GB 메모리를 2개 구매해 꽂으면 된다. 메모리가 32GB씩이나 필요하겠냐만.
저장공간으로 512GB 용량의 SSD를 제공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512GB SSD 1개를 탑재한 것이 아니라 삼성전자 840 프로 SSD 256GB 모델 2개를 레이드로 구성했다. 단일 모델일 때보다 더욱 빠르게 파일을 주고받을 수 있다. 운영체제 부팅은 5초, 포토샵CC 실행은 7초만에 완료된다.
정리하자면, 데스크탑 형태의 워크스테이션만은 못하지만 현존 최고의 성능을 갖춘 휴대용 워크스테이션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정도 성능으로도 만족할 수 없다면 휴대성을 포기하고 데스크탑 형태의 워크스테이션으로 가는 게 현명하겠다.
디자인,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기분이...
리뷰를 위해 M3800 모델을 상자에서 꺼내자 옆에 있던 선배 기자가 한 마디 했다. "맥북이냐?"
M3800은 맥북프로 레티나와 매우 유사하게 생겼다. 연관성을 부인하기 힘들 정도다. 상판에 적용된 은색 알루미늄만이 전부는 아니다. 측면을 원형으로 깍았는데, 굴절율조차 맥북프로 레티나와 같다. 노트북 디자인이 다 그게 그거라곤 하지만 이건 좀...
물론 맥북프로 레티나보다 나은 부분도 있다. 팜레스트와 하판을 검은색 우레탄으로 코팅해 정전기가 손에 닿는 것을 막았다. 맥북이나 바이오 사용자라면 알겠지만, 팜레스트마저 알루미늄으로 구성된 제품은 겨울이면 정전기가 손에 닿는 일이 잦다.
단자 구성도 맥북프로 레티나보다 훨씬 풍족하다. HDMI 1.4 단자(1개), 미니DP 1.2a(1개), USB 3.0(3개), USB 2.0(1개) SDXC 리더기, 헤드셋 단자(마이크 겸용) 등이다. USB 단자의 경우 전원을 꺼놔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충전할 수 있는 파워쉐어 기능을 지원한다. 유선 LAN 단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제품 패키지에 유선 LAN을 꽂을 수 있게 'USB to LAN 커넥터'가 동봉돼 있다.
결정적으로 매우 가볍다. 15.6인치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무게가 1.88kg에 불과하다. 13인치 노트북보다 가볍다. 하지만 전원 어댑터의 무게가 400g이 넘는 점이 아쉽다. 어댑터까지 가벼웠다면 금상첨화였을 듯하다.
배터리 사용시간과 UHD 지원 미흡이 아쉬워
좋은 제품이긴 한데 아쉬운 부분도 제법 존재한다. 일단 배터리 사용시간이 너무 짧다. 웹 서핑만 해도 3시간 30분이면 배터리 충전량이 바닥난다(화면 밝기 70% 기준). 고사양을 요구하는 작업을 실행할 경우 배터리 충전량은 눈 깜박할 사이에 바닥난다. 전원 어댑터를 반드시 함께 챙겨다니도록 하자.
배터리 사용시간이야 고성능 때문이라고 참아줄 수 있다. 진짜 문제는 UHD 출력이 제대로 되지 않는 점이다. M3800은 평소엔 전력 소모를 줄이기 위해 인텔의 내장 그래픽 프로세서 HD4400을 사용하고, 쿼드로 K1100M은 잠들어 있다. HD4400은 UHD 해상도 30Hz 출력이 한계다. 때문에 UHD 모니터와 M3800을 연결하면 60Hz로 사용할 수 없다. 엔비디아 설정창에 진입해 쿼드로 K1100M을 강제로 깨우더라도 출력값이 변하진 않는다. 오직 3D 그래픽을 가속할 때만 사용된다. 이래서야 UHD 해상도 60Hz 출력을 지원하는 DP 1.2a를 내장한 보람이 없지 않나. 페이퍼 스펙에 따르면 쿼드로 K1100M은 UHD 해상도 60Hz 출력을 지원하기에 더욱 아쉽다. 쿼드로 K1100M을 메인 그래픽 프로세서로 강제로 지정하는 업데이트를 통해 개선되길 바란다.
그렇다면 M3800의 가격은 얼마일까? 리뷰에 사용된 최고 옵션 모델을 기준으로 439만 원이다. 노트북치곤 높은 편이지만, 워크스테이션이란 점을 감안하면 낮은 축에 속한다. 고사양을 원하는 사용자라면 한 번 쯤 눈독 들여볼 만하다. M3800의 경쟁자인 애플 맥북프로 레티나 15인치 모델이나 도시바 테크라 W50도 비슷한 가격대에 위치해 있다. 성능은 앞의 두 모델보다 훨씬 낫지만 말이다. M3800은 전문가를 위한 제품인만큼 시중에서 구매하긴 힘들고, 델의 엔지니어와 1:1로 상담한 후 구매해야 한다. 상담은 델의 홈페이지를 통해 진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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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