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현장에서 맥 프로를 사용하는 이유, KBS 기획제작국 정찬필 PD

지난 2007년, KBS 내부에 큰 변화가 있었다. 당시 방송 편집 장비로 주로 사용하던 베타 테이프 방식(소니 표준 방식)을 디지털로 전환하겠다는 것. 이는 전반적인 흐름에서 찾아온 변화다. 요즘 필름이나 테이프를 넣는 카메라나 비디오카메라(캠코더)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을까. 방송장비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시대에 맞춰 방송장비도 디지털 방송장비로 전환했다. 이를 영상 촬영하는 카메라만 바뀐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방송용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동영상을 편집하려면, 관련 장비도 디지털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당연한 소리다.

국내 방송 3사에서 이를 가장 먼저 도입한 곳이 KBS이고, 뒤를 이어 MBC, SBS가 디지털 방송장비를 도입했다. 당시 KBS는 디지털 방송 장비로 전환하면서, 표준 편집 툴로 파이널컷7을 선택했다(지금도 사용 중이다). 그리고 지난 2013년 말, 애플이 새로운 '맥 프로 2013(이하 맥 프로)'를 선보이자 발 빠르게 이를 편집 장비로 대체했다.

이에 KBS 기획제작국 정찬필 PD(이하 정 PD)를 만났다. 그는 지난 3월 20일 방영한 KBS 파노라마 '21세기 교육혁명 - 미래교실을 찾아서 1편: 거꾸로교실의 마법'의 2편을 준비하느라, 2평 남짓한 편집실에서 기자를 맞았다. 편집질 책상 위에는 맥 프로와 커다란 모니터 2대가 놓여 있었다.

KBS 정찬필 PD
KBS 정찬필 PD

방송 편집 장비로 맥 프로를 사용하는 이유

IT동아 : 만나서 반갑다. 방송 PD와 만나는 자리는 기자도 처음이다. 이번에 찾아오게 된 계기는, 방송 현장에서 애플 맥 프로를 사용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맥 프로는 대다수 일반인을 위한 기기라기 보다 소수의 전문가를 위한 기기다. 가격 자체가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렵다(웃음). 이에 전문 현장에서 맥 프로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전문가들은 왜 이런 고가의 장비를 사용해야 하는지 등을 듣고 싶다. 서두가 길었다. 이미 이번에 새롭게 출시한 맥 프로를 사용 중이신데, 이건 언제부터 사용 하셨는지.

애플 맥 프로 2013
애플 맥 프로 2013

정 PD : 작년 12월… 출시하자마자 구매했다. 국내에 처음 들어온 10대 중 1대다. 2007년 디지털, 그러니까 파일 기반(디지털)으로 전환하는 이슈가 있었다. 당시에 KBS 정책 파트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이를 담당했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20년째 KBS에서 근무 중이다(웃음).

대한민국 방송사가 다 이랬다. 베타 테이프라고 소니가 표준화시켰던 테이프 데크 2대를 물리는 방식, 이를 1:1 편집 방식이라고 하는데, 이걸 사용했다. 그리고 2007년, KBS가 국내 지상파 방송사 중에 최초로 컴퓨터 기반으로 편집 방식을 전환했다. 뒤를 이어 MBC, SBS가 뒤따랐다. 이건 정말 큰 일이다. 엄청난 리소스가 들어가는 일이다.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전략적으로 전환했다(웃음).

IT동아 : 과거 테이프, 그러니까 아날로그 방식에서 지금의 디지털 방식으로 바뀌고 난 뒤에 편해진 점은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정 PD : 한동안 이렇게 전환하고 난 뒤 여러 곳에 강의도 많이 하러 다녔었다. 음… 일단은 편집 속도, 그러니까 효율성이다. 그리고 비용도 저렴해졌다. 기존 테이프를 사용할 때의 편집 방식을 리니어(linear) 편집이라고 한다. 선형 편집이라고도 하는데… 이거 참, 몇 년 지나니 설명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웃음). 아무래도 전문용어이기도 하고.

자, 리니어 편집 즉, 테이프를 사용했을 때는 앞부분의 영상을 보고 있다가 뒷부분을 보려면 직접 테이프를 돌려야 했다. 뒷부분을 보고 있다가 앞부분을 보려면? 마찬가지다. 테이프를 감아야 한다. 하지만, 디지털 그러니까, 넌리니어(non-linear, 비선형) 편집으로 넘어오면서 타임라인이 생겼다. 리니어 방식에는 타임라인이 없다. 보는 그 시간만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디지털은 전체 시간을 볼 수 있다.

파이널컷10 타임라인
파이널컷10 타임라인

이건 엄청난 변화다. 원하는 부분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또한, 동영상 편집 작업이라는 것은 사진처럼 정지된 영상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동영상을 편집할 때는 원하는 만큼 길이를 잘라서 원하는 곳에 붙여야 한다. 리니어 편집은 테이프에 담긴 영상을 편집하려면 계속 돌리고, 확인하고, 자르고, 갈아 끼워야 했다. 넌리니어 편집은 이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편집 작업이라는 것은 수 많은 소스(동영상)을 가져와서 하나의 완성품을 만드는 과정이다. 이걸 테이프 하나씩 전부다 확인하면서 잘라 넣는다? 글쎄…(웃음). 추천하고 싶지 않다.

넌리니어 편집 방식으로 전환한 뒤에 바뀐 속도 차이를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평균적으로 1/3이상 편집 시간이 줄었다. 약 3배 정도 빨라진 것. 그런데 사실, 이 수치도 의미가 없다. 그냥 빨라졌다(웃음). 어떤 경우에는 수십배 빠를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조금 빠를 수도 있고, 어쩌면 조금 늦어질 수도 있다. 다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확실히 효율이 높아졌다.

IT동아 : 비용에 대한 것이 조금 궁금하다. 테이프를 사용하지 않아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뜻인가?

정 PD : 리니어 방식에서 HD기준 테이프 데크 1대의 제품 가격은 5,000만 원 정도다. 그리고 아까 어급했지만, 편집은 1:1로 해야 한다. 즉, 2대가 필요하다. 이게 1세트다. 당시 편집실을 만들기 위해서는 테이프 데트 2대와 관련 장비를 더해 약 1억 1,000만 원 정도가 필요했다.

KBS 정찬필 PD
KBS 정찬필 PD

최초로 디지털로 전환했을 당시 맥 프로 최고 사양을 붙였을 때 2,500만 원이었다. 옵션으로 붙일 수 있는 건 다 붙였다. 모니터도 시네마 디스플레이 2대를 구매해 듀얼 방식으로 연결했다. 이걸 다 포함해서 2,500만 원이었다. 그 때는 몰라서 그랬다. 좀더 효율적으로 구성한다면, 1,500만 원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나. 그리고 모바일용 편집은 150만 정도의 맥북 프로로도 충분하다. 1억 vs 150만 원. 간단하잖은가.

IT동아 : …일반인들은 이런 생각을 전혀 못한다. 맥 프로의 가격만 보고 '이건 그냥 비싼 컴퓨터'라고 치부할 뿐인데, 이렇게 직접 들으니 어느 정도 감이 온다(웃음). 조금 다른 질문을 해보겠다. 이전에 사용 중이던 맥 프로와 지금 사용 중이신 맥 프로 2013년형. 어떤 차이가 있는지. 좋아졌나? 얼마나 조금더 좋아졌는지(사무실 한 켠에 2011년형 맥 프로가 놓여 있었다).

2011년형 맥 프로
2011년형 맥 프로

정 PD : '조금 더'가 아니다(웃음).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이번 맥 프로는 출시하자마자 들여왔다. 이 말은 다시 말해 출시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사실, 이게 출시하지 않았다면, 이번에 제작한 방송을 못 내보냈다. 이번에 기획 제작한 방송의 소스 양이 상당했다. 6개월 동안 동시에 5~6대의 카메라를 5~6대로 촬영하니 그 양이 무지막대했다.

그리고 멀티캠 즉, 한 장면을 여러 대의 카메라로 동시에 촬영하는 방식이다. 이걸 편집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카메라가 찍은 영상을 동시에 가져와야 한다. 멀티캠 편집이다. 여기에 2가지 문제가 있다. 물론, 이전에도 멀티캠이 있었지만, 이전의 멀티캠은 원본을 가져와서 트랜스코딩(코덱을 바꿔주는 과정)을 해야 했다. 여러 동영상을 동시에 불러와야 하는데, 기존 기기 성능은 원본 동영상을 동시에 돌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제작한 방송은 원본 그대로 가져와서 멀티캠을 돌려야 했다. HD 화질을 유지하려고 생각했기 문이다. 원래 원본을 그대로 가져와서 돌리려면, 2가지가 필요하다. 시스템 자체 성능이 필요하고, 동시에 5~6개의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받아주는 대역폭(썬더볼트 인터페이스)이 필요했다.

파이널컷10
파이널컷10

썬더볼트가 아니면 이처럼 원본 동영상 5~6개를 동시에 가져오는 것이 불가능하다. 일반인들에게 이같은 대역폭, 썬더볼트 규격은 거의 의미가 없다. 하지만, 전문가 영역으로 이정도 대역폭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작업들이 있다(웃음). 이것이 없었다면, 이번 프로젝트를 시도조차 못했을 것이다.

IT동아 :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는데, 야외에서 여러 대의 카메라로 촬영하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도 이렇게 사용하는 것인가?

정 PD : 음… 그렇긴 한데, 그쪽은 아직도 기존의 시스템을 이용하면서 트랜스코딩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참고로 말하는데, 국내 지상파 방송사가 맥 프로와 파이널컷10을 사용하는 것은 최초라고 보면 된다.

IT동아 : 개인적인 질문이다. 파이널컷10으로 구현할 수 있는 영상 편집 기능 등이 많이 있는지.

정 PD : 앱스토어처럼 파이널컷10 안에 플러그인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스토어가 있다. 주로 FX팩토리를 잘 이용 중이다. 영상 기법이나 촬영 기법 등을 간단하게 구매해 이용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기존에 없던 방식이다. 이것도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장점이다. 기존에는 오프라인으로 이러한 것들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단가도 높고, 구현하기 위한 방식도 복잡했다. 지금은 49달러면 남들이 사용하지 않는 특별한 기법을 쉽게 적용해 사용할 수 있다(웃음).

FX 팩토리
FX 팩토리

KBS 파노라마 - 21세기 교육 혁명, 미래교실을 찾아서

IT동아 : 이번에 1편을 방영한 'KBS 파노라마 - 21세기 교육혁명, 미래교실을 찾아서'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싶다. 부산 동평중학교 학생들이 달라지는 모습을 담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정 PD : 꼭 필요한 해외 출장이 아니면 6개월 동안 우리 팀 자체가 부산에서 상주했다. '거꾸로 교실(Flipped Classroom)'이라고 부르는 교육 방식을 한국에서 이정도 규모로 적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중등학교에서 진행한 바는 없었다. 당시 거꾸로 교실을 실제로 교육 현장에 적용할 경우, 우리의 계산이 맞다면, 상상하지 못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했다. 확신을 가졌다. 그래서 6개월 간의 과정을 모두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꼼꼼히 보면서 담았다.

KBS 정찬필 PD
KBS 정찬필 PD

IT동아 : 거꾸로 교실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정 PD : 작년 초였다. 교육 컨퍼런스를 다녀왔다. 전세계적으로 교육계가, 국내에서 예상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심상찮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국내에서는 스마트 교육이라는 컨셉으로 접근하고 있었는데, 해외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그래서 약 3개월 동안 관련 시장을 배우고 파고들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전세계에 스마트 교육과 유사한 교육 이론은 존재하지 않더라'이다. 기술이 교육에 활용되어야 한다는 것은 공감하지만, 기술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21세기의 교육이 이전의 교육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 또는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었고,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구현하는가를 논의했다. 이러한 교육 방법의 변화 중에서 가장 파괴력이 크다고 느낀 것이 '거꾸로 교실'이었다.

작년 7월, 직접 실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거꾸로 교실을 먼저 시작한 줄 알았던 미국 교육 시장도 이를 도입하는 시기가 이 때쯤이었다.

IT동아 : 맞다. 기자도 작년 하반기부터 스마트 교육 관련 취재를 부산으로 자주 갔었다. 여러 초등학교를 다니며, 태블릿PC를 어떻게 교육 현장에서 사용하고 있는지 파악했다. 작년 11월, 부산시 교육청이 벡스코에서 '부산교육박람회'를 열었을 때도 다녀왔다. 이후 느낀 감정은 정 PD님과 비슷했다.

부산 스마트 교육
부산 스마트 교육

정 PD : 시기적으로 봤을 때, 거꾸로 교실을 국내에 적용하는 시점이 늦지 않았다.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국내에서 실험실 정도의 규모로만 테스트한 것으로 조사했다는 점이다. 교육 시장에서, 교육 전문가들이 힘을 실어 줬어야 하는데, 그렇게 진행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거꾸로 교실을 비롯해 해외에서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던 교육 방식의 변화는 각각의 파괴력이 검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선생님들과 현 교육 상황을 보자고 설득했다.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 있느냐라고 물었다. 선생님들도 공공연하게 말씀하셨다. 교실 내 학생들 중 사실상 70%가 소외되고 있다며, 상위 30%만 데려 간다라고 말했다. 이대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장애 요소들을 조절하고, 제거할 수 있는 것인지 따지며, 하나씩 선생님들과 함께 조사하고 준비했다. 진행하면서 계속 확신을 가졌다. 우리는 내부에서 이렇게 생각했다. 콜럼버스의 달걀이라고.

IT동아 : 2부작으로 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4월 3일로 편성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 PD : 처음 편성은 2부작이었는데, 3부작으로 늘렸다. 1부를 방영한 뒤에 정말 많은 곳에서 관심을 보내고 있다. 학부모님들이 더 나서는 중이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중이다.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처음에 이걸 준비하면서 기기를 배제하려고 했다. 새로운 스마트 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교육 방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교육 방식으로 바꾸면서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육 동기, 학습 동기를 먼저 생각하고 스마트 기기는 교재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KBS 정찬필 PD
KBS 정찬필 PD

이번 실험을 끝내면서, (1부를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현장에서 모두 가슴 속 어딘가에 뜨거운 것을 느꼈다. 학생도, 선생님도, 학부모도, 그리고 우리 관계자도 뜨끔했다. 성적 얘기를 하기 싫지만, 6개월 과정을 거친 이후에 하위권에 있던 아이들이 20점, 30점 상승했다. 단순히 성적뿐만이 아니다. 학부모님들이 우리 아이들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학교 가기 싫다던 아이가 일요일만 되면 빨리 학교 가고 싶다며, 학교에서 친구들과 떠들고 싶다고 하단다.

선생님들은 울컥했다.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돌무덤에 갇혀 있던 아이들이 돌무덤을 깨고 걸어 나왔다라고.

정찬필 PD와 인터뷰를 나눈 뒤 KBS를 나오며 많은 생각을 했다. 그는 전문가고, 전문 장비를 사용한다. 그리고 그 장비를 이용해 방송 PD로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이를 내보낸다. 이번에 그가 촬영한 6개월간의 과정은 전문 장비가 없으면 제작할 수 없었다. 그 프로그램이 담고 있는 내용은 교육 혁명이지만, 그 교육 혁명 속 안에도 (주인공은 아닐지언정) 기술이 있다. 다양한 곳에 사용되는 IT 기술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참고로 그가 준비한 'KBS 파노라마 - 21세기 교육혁명, 미래교실을 찾아서' 2부는 오늘 밤 10시에 방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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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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