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친구의 배터리에 '빨대'를 꽂아라
이런 상황을 가정해보자. 점심 약속에 늦어 허겁지겁 집을 나섰다. 버스를 잡아타고 휴대폰을 봤는데 남은 배터리 용량이 10% 남짓. 급하게 나오느라 추가 배터리도, 충전기도 챙기지 못했다.
기자는 이를 '절망'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휴대폰이 꺼진 후 중요한 연락이 오면 어쩌지', '집에 돌아가는 동안에는 무얼 해야 하나', '친구를 만나기 전에 휴대폰이 종료되면 어떻게 연락할까' 등 수많은 걱정이 머리를 가득 채울 것이다. 아마 친구를 만나도 음식점, 카페 등을 돌아다니는 내내 점원에게 '혹시 휴대폰 충전되나요'라고 요청할 확률이 높다.
이런 긴급한 상황일 때 강하게 끌릴 제품이 있다. kt cs가 출시한 '빨대'가 바로 그것. 빨대는 다른 사람의 스마트폰과 자신의 스마트폰을 연결해 배터리를 충전하는 케이블이다. 이로써 마치 모기처럼 상대방의 배터리에 빨대를 꽂아 긴급 수혈을 할 수 있다. 편리할 것 같으면서 이기적이다.
정말 쉬운 사용법
한 뼘을 살짝 넘는 길이(25cm)의 케이블이라 휴대성이 좋다. 보조배터리나 치렁치렁한 케이블이 달린 충전기보다 무게도 가볍고 부피도 작다. 사용해보니 외출 시 빨대 하나 더 챙기는 게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직접 스마트폰과 스마트폰을 이어 수혈을 받아봤다. 참고로 OTG(On The Go) 기능을 지원하며 마이크로USB 단자가 있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만 이용할 수 있다. 만약 OTG 기능이 없다면 주는 것은 안되고 받는 것만 된다. 또한, 애플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사용하려면 변환 젠더가 필요하다.
사용법은 허무할 만큼 쉽다. 커넥터 부분을 보면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가 그려진 커넥터를 꽂은 스마트폰의 전기가 '↑'가 그려진 커넥터를 꽂은 스마트폰으로 들어간다. 화살표 방향을 따라 전기가 이동한다고 생각하면 쉽겠다. 참고로 OTG 기능이 있는 스마트폰에 케이블을 꽂으면 화살표 모양에 불이 들어온다. '↓'은 빨간 불, '↑'은 초록 불이다.
어떤 스마트폰을 연결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지 차이'
충전을 위해 LG전자 옵티머스G프로에 삼성전자 갤럭시노트3를 연결했다. 옵티머스G프로가 받는 쪽, 갤럭시노트3가 주는 쪽이다(갤럭시노트3→옵티머스G프로).
당시 옵티머스G프로의 배터리는 거의 '아사' 직전. 제발 살아나길 기원하며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배터리 수혈 효율을 높이고자 충전 중에는 디스플레이를 꺼둔 채 되도록 스마트폰을 조작하지 않았다. 참고로 와이파이(Wi-fi)에는 연결된 상태였다.
충전을 시작한 지 30분이 지나자 갤럭시노트3 배터리는 12% 줄어든 반면, 옵티머스G프로의 배터리는 11% 늘었다. 얼핏 보기에도 꽤 만족스러운 수치다.
그렇다면 거꾸로 옵티머스G프로로 갤럭시노트3를 충전해보면 어떨까(옵티머스G프로→갤럭시노트3)? 케이블로 연결 후 42분이 흐른 후 확인해보니 갤럭시노트3의 배터리는 6% 추가로 찼지만, 옵티머스G프로의 배터리는 35%나 줄었다. 두 제품의 역할만 바꿨을 뿐인데 어림잡아 보기에도 엄청난 효율 차이가 발생했다.
태블릿PC도 이 케이블을 활용할 수 있을까? OTG 기능을 탑재한 태블릿PC라면 가능하다. 실험을 위해 갤럭시노트3에 레노버 요가 태블릿 B6000(이하 요가)을 연결했다. 30분이 지나자 갤럭시노트3의 배터리가 추가로 5% 찼다. 반면, 요가의 배터리는 6%가 줄었다.
물론 모델마다 배터리 용량, 출력 등이 다르기에 단순히 퍼센트 수치로만 비교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그래도 대략적인 계산을 위해 각 배터리 용량을 100으로 나눠 1%당 몇 mAh인지 계산했다. 그 후 줄어들거나 늘어난 퍼센트 수치에 해당 값을 곱했다.
갤럭시노트3의 배터리 용량은 3,200mAh이며, 옵티머스G프로는 3,140mAh다. 먼저 '갤럭시노트3→옵티머스G프로'의 경우를 살펴보자. 단순셈으로 계산해보면 갤럭시노트3 배터리의 384mAh가 빨대를 타고 이동하며 343mAh가 됐다. 손실률은 대략 10% 정도.
그런데 '옵티머스G프로→갤럭시노트3'의 효율을 계산해보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42분 동안 옵티머스G프로 배터리 중 35%, 즉 1,099mAh가 빨대를 타고 이동해 갤럭시노트3 배터리의 6%, 즉 192mAh를 채웠다. 수혈 중에 907mAh, 보낸 양의 약 82%가 사라진 것.
태블릿PC인 요가는? 요가의 배터리 용량은 6,000mAh. 요가 배터리 중 360mAh가 빨대를 타고 가다 160mAh가 됐다. 요가로 수혈한 경우 옵티머스G프로보다 사정은 훨씬 나았다. '그나마' 약 55%가 날아갔으니.
어떤 기종이 배터리를 '주는 쪽'이었는지에 따라 결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걸까?
삼성전자 스마트폰이 '주는 쪽'으로 제격
빨대를 이용해 충전해보니 두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첫째, 왜 이런 손실이 생기는 걸까? 둘째, 제품마다 수혈 효율이 다른 까닭은 뭘까?
kt cs 유순미 대리에 따르면, 빨대는 OTG 기능을 이용해 배터리를 충전한다. 스마트폰 충전 단자에 USB, SD메모리 리더기 등을 꽂으면 일정한 전류가 액세서리로 공급되는데 빨대는 이를 활용해 다른 스마트폰을 충전하는 아이디어 상품이다.
그런데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에는 배터리 출력에 제한이 걸려 있다. 너무 많은 배터리가 한 번에 소모되면 제품을 구동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 모델마다 배터리 출력 시 설정된 압력 값이 달라 충전 중 손실이 발생하는 것이다.
유순미 대리는 "휴대폰 자체 소비 전력이 단말기마다 다르므로 충전량이 적다고 충전 효율이 낮다고 보기는 어렵다. 갤럭시노트3의 배터리 용량이 옵티머스G프로보다 많지만, 연속 대기 시간은 옵티머스G프로가 더 길다"며, "옵티머스G프로에서 1%의 배터리를 보내도 갤럭시노트3 자체에서 소모되는 소비 전력이 높으므로 1% 충전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배터리를 내보내는 중에도 휴대폰은 작동 중이라 전력이 소비되고 있으므로 단순히 이를 수치로만 비교할 수는 없다는 뜻.
또한, "와이파이에 연결되어 있고 휴대폰 화면이 꺼져 있더라도 화면이 밝게 설정되어 있거나 조명 대기 시간이 길면 소비 전력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갤럭시노트3와 요가 태블릿의 경우, 두 단말기 간 승압 차이가 있다"며, "일반적인 휴대폰의 승압은 5V, 요가 태블릿은 20V라 이러한 결과가 발생한 것"이라고 실험 결과에 대한 의견을 전했다.
참고로 배터리 용량이 클수록 출력값도 비례적으로 커지는데 출력값이 크면 충전해줄 때의 효율도 높다. 따라서 대체로 스마트폰보다 배터리 용량이 많은 태블릿PC로 충전해줬을 때 효율이 높다. 또한, 유순미 대리는 "보통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출력 제한이 낮아 충전해주는 스마트폰으로 적합하다. 빨대는 모바일 기기를 연결해 전력을 보낼 수 있는 아이디어 상품. 즉, 매개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실험해본 결과 LG전자 옵티머스G프로, 뷰3 등은 충전해주는 쪽으로 적합하지 않았다. 잘못하다간 옵티머스G프로도 죽고, 충전받는 스마트폰도 죽는 '동반자살'이 일어날 수 있으니 조심할 것.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빨대의 충전 효율을 여타 보조 배터리나 충전기에 비교해서는 안 된다. 분명히 빨대의 충전 효율은 이들보다 아래이기 때문.
그러나 빨대는 물에 빠진 사람에게 '지푸라기 한 줌'의 역할을 한다. '혹시 살 수 있지 않을까'싶은 마음에 어떻게든 허우적거리며 움켜쥐는 지푸라기. 지푸라기를 잡는 순간만큼은 살겠지만 금세 다시 물에 빠져 죽을 수 있다는 것까지 비슷하다.
빨대를 쓰려는 사람이라면, 일단 욕심을 버리라고 말하고 싶다. 꼭 받아야 하는 문자가 있거나, 짧은 전화 통화가 필요한 위급 상황에만 사용하라. kt cs 관계자도 "빨대는 수시로 쓰는 제품이라기보다 위급할 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 제품"이라고 밝혔다.
또한, 자신의 스마트폰을 잠깐이나마 살려두기 위해 친구의 스마트폰은 자칫 반죽음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길. 필요하다면 되도록 태블릿PC나 삼성전자 스마트폰으로부터 수혈받길 권한다.
빨대는 오렌지, 화이트, 블루, 레드 등 총 4가지 색상이 있으며 가격은 1만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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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IT동아 나진희(najin@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