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다, 그런데 강력하다. 에이수스 Z87I-PRO
PC를 좀 다룬다는 매니아들 중에는 데스크탑 PC 중에서도 특히 덩치가 큰 미들타워, 혹은 빅타워급 본체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큰 본체를 선호하는 이유는 내부 공간에 여유가 있을수록 각종 고사양 부품을 달기가 용이하고 향후 업그레이드를 하기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특히 본체가 작으면 메인보드 역시 작은 것을 써야 한다. 대형 PC에 주로 쓰는 일반적인 표준 ATX 규격의 메인보드(기판 크기 305 x 244mm)가 고성능 PC를 구성하는데 유리하지만 이는 소형 본체에 도저히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소형 본체에 주로 쓰는 것이 마이크로 ATX(244 x 244mm) 규격의 메인보드다.
다만, 마이크로 ATX 메인보드는 아무래도 기판 크기가 작다 보니 확장슬롯이 적고 전원부의 구성도 그다지 튼실하지 못하다. 업그레이드에 불리하고 오버클러킹(CPU의 클럭을 기준치 이상으로 높여 성능을 향상시킴)도 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그래서 매니아들은 마이크로 ATX 메인보드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그런데 에이수스(ASUS)에서 매니아 대상을 개발된 소형 메인보드를 출시했다. 기판의 규격은 그 작다는 마이크로 ATX보다도 한층 더 작은 미니 ITX(170 x 170mm) 규격이다. 이번에 소개할 Z87I-PRO가 그 주인공이다.
크기는 최소, 사양은 특대?
에이수스 Z87I-PRO는 미니 ITX 메인보드답게 크기가 매우 작다. 어른 손바닥 하나보다 약간 큰 정도다. 이런 규격의 메인보드는 이른바 '넷탑'으로 불리는 초소형 PC에 주로 쓴다. 성능이나 확장성을 거의 포기하고 극단적으로 작은 크기만 중시하는 제품군이다. 하지만 Z87I-PRO의 경우, 기판 크기는 미니 ITX지만 구성이나 사양은 수준급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일단 CPU를 장착하는 소켓을 살펴보면 최신 제품인 4세대 코어(하스웰)를 지원하는 LGA1150 규격이다. 미니 ITX 메인보드지만 대형 제품과 동일하게 데스크톱용 신형 코어 i7과 같은 고성능 CPU를 꽂을 수 있다는 의미다. 칩셋 역시 하스웰용 칩셋 중에 고급형에 속하는 인텔 Z87이다.
HDD(하드디스크드라이브)나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를 연결하는 SATA 포트도 6개로 넉넉하다. 미니 ITX라면 대개 SATA 포트가 2개, 많아 봤자 4개 달린 경우가 대부분이라 비교가 된다. 그리고 Z87I-PRO는 6개의 SATA 포트가 모두 최신 규격인 SATA3(SATA 6Gbps) 규격이라 신형 HDD나 SSD의 성능을 최대한 발휘하는데 문제가 없다.
각종 카드류의 부품을 장착하는 확장카드 슬롯은 PCI 익스프레스x16 1개가 달려있다. 그래픽카드 1개를 꽂으면 그대로 끝이라 아쉬울 법도 한데, 요즘은 그래픽카드 외의 확장카드를 꽂을 일이 거의 없는데다 최신 그래픽카드의 성능을 이끌어낼 수 있는 3.0 규격의 슬롯이라 큰 불편은 없을 것이다.
메모리 슬롯은 DDR3 규격을 지원하는 2개가 탑재되었다. 메모리 슬롯 4개를 지원하지 못하는 것에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미니 ITX 메인보드 중에는 메모리 슬롯 1개만 지원하는 제품도 많다. 최대 지원 용량이 합계 16GB다. 정규클럭으로는 1,600MHz, 오버클럭으로는 2,666MHz까지의 메모리 속도를 지원하므로 고성능 시스템을 구성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특별하게 설계된 12+2 페이즈 구성의 전원부
가장 눈에 띄는 점이라면 CPU 전원부다. 보급형 메인보드가 3~4 페이즈, 고급형 메인보드가 6~8페이즈 구성을 한 것이 일반적인데, Z87I-PRO의 경우는 작은 기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별도의 소형 기판을 수직 방향으로 덧붙이는 방법으로 12+2 페이즈(CPU용 12 + 메모리용 2) 구성의 전원부를 구현했다. 전원부가 탄탄할수록 시스템의 안정성이 높아지고 보다 원활한 오버클러킹을 할 수 있다.
그 외에 신형 PC케이스에 달려 나오는 전면 USB 3.0 포트를 활용하기 위한 USB 3.0 헤더가 기판에 달려있는 점도 여느 미니 ITX 메인보드와 차별화되는 점이다.
USB 10개에 와이파이 안테나까지 달린 후면 패널
후면 패널의 구성은 기판의 크기가 무색할 정도로 충실하다. USB 3.0 6개, USB 2.0 4개를 포함한 총 10개의 USB 포트를 갖추고 있는데다 와이파이(802.11n 규격) 접속이 가능한 안테나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 CPU 내장 GPU로 화면 출력이 가능한 총 3개의 영상 출력 포트(DVI, HDMI, DP)에다 PC를 부팅하지 않고 바이오스의 설치가 가능한 USB Flashback 버튼, 그리고 오버클러킹 실패 등으로 PC가 켜지지 않을 때 바이오스의 설정을 초기화 하는 Clear CMOS 버튼까지 갖추고 있는 등 전반적인 활용성이 우수하다.
기판 작지만 고사양 부품 문제없이 소화해
과연 이 작은 메인보드로 고성능을 원활하게 구성 가능한지 실제로 PC를 구성해 봤다. CPU는 하스웰 중에서도 고급형에 속하는 코어 i7-4770, 메모리는 PC3-12800 규격의 8GB DDR3를 꽂았으며, 삼성의 840 Evo SSD로 전반적인 구동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AMD의 신형 그래픽카드인 라데온 R9 280X도 장착했다. 라데온 R9 280X은 고급형 그래픽카드라 미니 ITX 메인보드 보다 덩치가 크다. Z87I-PRO에 장착하면 완전히 '가분수'가 되는데, 고성능 PC용 메인보드를 지향하는 Z87I-PRO의 구매자라면 이정도 수준의 그래픽카드를 꽂아 쓰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생각 이상으로 충실한 오버클러킹 기능
위와 같이 구성된 Z87I-PRO 기반 PC를 구동해 보니 요즘 메인보드라면 거의 기본으로 제공되는 UEFI 방식 바이오스가 화면에 나타난다. 다채로운 그래픽 기반 인터페이스를 갖추고 있고 마우스 조작을 지원하므로 제어하기가 편하다. 그리고 Z87I-PRO의 UEFI 바이오스는 한글 표시도 지원하므로 외국어에 익숙하지 않는 사용자라도 문제 없이 쓸 수 있다.
에이수스 메인보드 특유의 오버클러킹 메뉴인 Ai Tweaker도 당연히 탑재되어있다. CPU 코어의 클럭이나 전압 외에도 캐시 전압, 메모리 타이밍과 같은 세세한 오버클러킹 설정이 가능하다. 이런 설정에 익숙하지 않은 오버클러킹 초보자를 위한 XMP(eXtreame Memory Profile) 모드도 제공된다. XMP 모드로 설정하면 CPU의 배수나 버스클럭, 메모리 설정 등이 자동으로 최적화되므로 좀 더 편하고 안정적인 오버클러킹이 가능하다.
바이오스를 직접 제어하는 것이 번거롭다면 에이수스에서 제공하는 윈도용 시스템 제어 소프트웨어인 AI Suite 3를 이용해보자. 오버클러킹 설정뿐 아니라 냉각팬 제어, USB 충전 설정, 네트워크 부하 제어 등 다양한 부가 기능을 제공하며, 와이파이로 연결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로 PC를 원격 제어하는 Wi-Fi GO! 기능도 있다.
일반 메인보드와 대등, 혹은 이상의 성능 구현 가능
이렇게 작은 메인보드에 고성능 부품을 꽂은 상태에서 과연 정상적인 성능이 발휘되는지 시험해 보기 위해 벤치마크 프로그램인 3DMARK를 구동해봤다. 이전에 일반 메인보드(MSI B85M-P33)에 동일한 CPU와 메모리, 그래픽카드를 꽂고 테스트한 적이 있는데 그 수치와 비교해 봤다.
테스트 결과, 가장 많은 성능 부하를 일으키는 'Fire Strike' 항목에서 일반 메인보드 기반의 시스템은 7,347점을 기록했는데, Z87I-PRO 기반의 시스템은 오히려 약간 더 높은 7,451점을 기록했다. 이 정도의 차이는 오차 범위 수준이라고 할 수 있으나 아무튼 Z87I-PRO가 고성능 PC를 구성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이질적이지만 매력적인 틈새 제품
에이수스의 Z87I-PRO는 여러모로 튀는 제품이다. 미니 ITX 규격의 메인보드는 PC매니아들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규격이지만, Z87I-PRO는 이런 편견에 도전하는 듯, 구성이나 부가기능이 철저하게 매니아 취향이다. 초소형 규격 특유의 한계를 넘기 위한 특별한 설계도 돋보인다. 특히 별도의 기판을 추가해 구현한 12+2 페이즈 구성의 CPU 전원부는 그 백미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 제품은 초소형 PC에서 최고급의 성능을 구현하고자 하는 일부 사람들을 위해 나온 틈새 제품이라 할 수 있다. 가격도 그다지 싸진 않다. 2013년 12월 현재 인터넷 최저가 기준으로 26만 원 정도에 팔리고 있는데, 이는 소켓 1150 규격 메인보드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 게다가 미니 ITX 플랫폼의 특성을 이용한 소형 PC를 고성능으로 구성하려면 케이스나 파워서플라이, 그래픽카드 등의 조합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아무에게나 가벼운 마음으로 선뜻 추천할 수 있는 제품은 아니라는 의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매력적인 제품이기도 하다. 이런 손바닥만한 메인보드를 중심으로 구성한 자그마한 PC에서 대형 본체에 필적하는 고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매니아들의 호기심을 크게 자극할 만 하기 때문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