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정체성이 매력? 하이브리드 제품군, IT시장 견인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여러 기능을 하나로 모은 제품들은 그다지 추천할 만하지 못했다. 설계 기술도 떨어지고 부품의 성능도 미약하다 보니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모두 놓쳐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오히려 한 가지 기능만 갖춘 제품이 시장에서 외면을 받을 정도다. 여러 제품의 기능을 하나로 모은 상태에서도 만족스러운 성능을 낼 정도로 기술이 향상된 덕분이다.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을 발표할 때, 컨버전스(convergence, 집합), 퓨전(fusion, 융합), 하이브리드(hybrid, 혼합)과 같은 단어가 자주 언급되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IT업계는 물론이고 자동차, 광학, 미디어 콘텐츠 등 광범위한 분야의 제품이나 기술 이름에 위와 같은 단어들이 적용되곤 한다.
노트북과 태블릿PC를 오가는 PC, '2 in 1' 플랫폼
특히 플랫폼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는 IT업계 쪽에 이러한 경향이 강하다. 노트북,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다양한 형태의 단말기가 공존하며 콘텐츠를 공유하게 되었는데, 이용하는 콘텐츠가 다양해진 만큼, 제품의 형태도 두 가지 이상의 플랫폼을 동시에 품는 경우가 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2 in 1'이라 불리는 제품이다.
2 in 1은 말하자면 노트북과 태블릿PC의 특징을 모두 갖춘 새로운 경향의 휴대용 PC다. 키보드를 갖추고 있어서 기존의 노트북처럼 이용할 수 있고, 터치스크린을 이용해 화면을 직접 만지며 태블릿PC처럼 다룰 수도 있다. 이렇게 단순히 두 기기의 기능을 함께 갖춘 것이라면 예전에도 나온 적이 있는 터치스크린 탑재 노트북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2 in 1은 두 제품의 기능뿐 아니라 형태까지 양립하고 있는 점이 다르다.
2013년 11월 현재 팔리고 있는 대표적인 2 in 1 제품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평소에는 일반적인 노트북의 형태였다가 화면 부분을 분리해 태블릿PC처럼 쓰는 형태(삼성 아티브탭7, HP 엔비x2), 화면 부분을 밀어 올리거나 내려서 노트북과 태블릿PC의 형태를 오가는 형태(LG 탭북, 소니 바이오 듀오13 등)가 많으며, 화면 전체를 뒤집어서 형태를 전환하는 제품(레노버 아이디어패드 요가 등)도 있다.
이렇게 방식은 다양하지만 노트북과 태블릿PC의 기능과 형태를 모두 완벽하게 제공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2 in 1은 한때 '컨버터블 PC', 혹은 '하이브리드 PC'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성능이나 품질이 제각각 인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올해 인텔에서 4세대 인텔 코어 프로세서(코드명 하스웰)을 출시하며 이러한 변형 PC의 세부 규격을 확정, 2 in 1 이라는 정식 명칭을 붙이면서 한층 안정화된 제품들이 출시, 시장에 본격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인텔의 기준에 따르면 2 in 1은 키보드를 반드시 포함한 윈도 운영체제 기반의 제품이어야 한다. 따라서 키보드 없이 판매되는 윈도 태블릿PC는 2 in 1에 포함되지 않는다.
프린터 몰아낸 복합기, 레이저 제품이 10만원대 초반
한편, 이미지 장치 시장은 이미 이러한 융합 제품이 확실히 자리잡아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분야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이 시장은 프린터가 대표 제품이고 복사기나 스캐너 등이 뒤를 따르는 상황이었지만, 현재는 이들 기능을 하나로 모은 ‘복합기’ 제품군이 시장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2013년 11월 현재, 가격비교 사이트인 에누리 닷컴의 프린터/스캐너 부문을 살펴보면 인기 상위 20위까지의 제품 중 15개를 복합기가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스캐너 제품은 아예 순위권에 없으며, 프린터의 경우, 스마트폰용 휴대용 프린터와 같은 틈새 제품이 존재감을 살짝 드러내고 있는 정도다.
가격 면에서도 이점이 있다. 한때 고가 제품의 대명사였던 레이저 제품군의 경우, 흑백 전용 제품은 10만원 초반대의 가격대로 살 수 있는 제품(후지제록스 M215b, 브라더 DCP-1510 등)의 출시가 이어지고 있으며, 컬러 제품 역시 20만원 대 초반에 살 수 있는 제품(삼성 CLX-3302, 후지제록스 CM-215b)이 많다. 값은 싼 편이지만 프린터와 복사기, 스캐너로서의 전반적인 기본기는 충실하다.
SSD와 HDD의 공존, 혹은 합체가 ‘대세’
저장장치 시장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한때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가 HDD(하드디스크드라이브)를 완전히 대체하고 저장장치의 대세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으나, 현재 시장은 점차 두 장치의 공존, 혹은 융합이 일반화되는 형태가 자리잡고 있다. SSD의 빠른 속도를 발휘하는 반면, 비슷한 용량의 HDD에 비해 가격이 10배 가량 비싼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SSD의 가격하락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으나, HDD의 용량 확대 역시 그에 못지 않게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당분간 두 장치의 공존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최근에는 SSD와 HDD를 동시에 탑재한 PC가 다수 출시,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운영체제 및 응용프로그램은 고속 SSD로 구동해 시스템 동작 속도를 높이고, 멀티미디어 콘텐츠나 단순 저장 파일은 고용량 HDD에 저장해 속도와 용량을 동시에 추구하는 형태다. 이는 특히 속도와 용량이 모두 중요한 게임용이나 멀티미디어용 PC에 적극적으로 보급되고 있다.
2013년 11월 가격비교 사이트인 다나와의 게임용 노트북 부문에 올라온 제품들의 사양을 살펴보면, 인기 상위 20위까지의 제품 중 14종의 제품이 SSD + HDD 구조가 기본 사양(HP 엔비14 등)이거나 구매 시 옵션을 통해 두 저장장치를 동시에 탑재할 수 있는 제품(MSI GE60 등)일 정도다.
아예 SSD와 HDD를 하나의 장치로 구성한 제품도 팔리고 있다. 하이브리드 HDD, 혹은 SSHD(Solid State Hybrid Drive)라고 하는 장치가 그것으로, 제품 내부에 SSD의 플래시메모리(반도체의 일종)와 HDD의 플래터(자기디스크)를 함께 갖춰 용량과 속도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가장 많이 팔리는 ‘씨게이트 랩탑 SSHD’ 제품의 경우, 같은 용량의 일반 HDD에 비해 30~40% 정도 비싸지만, SSD에 비하면 1/7 정도의 가격에 살 수 있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