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장난감이라고? 난 '퍼비'랑 논다
국내 싱글족 436만여 명. 기자도 그 중 한 명이다. 하루를 마치고 집에 들어올 때마다 집 안이 휑하다. 외로움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개나 고양이를 키워볼까'하다 마음을 접는다. 그러다 귀여운 얼굴의 해즈브로(Hasbro) '퍼비(Furby)'를 만났다.
영화 '그렘린'의 기즈모를 닮은 귀여운 외모. 복슬복슬한 털. 퍼비는 신나게 노래도 하고 춤도 춘다. 수다쟁이처럼 혼자서 계속 쫑알대기 좋아한다. 외계에서 온 퍼비는 다재다능해 한국말도 조금씩 한다(재미교포의 말투처럼 들리는 것은 내 착각일까). 어떻게 키우냐에 따라 성격이 다르게 형성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2013년판 다마고치'라고 보면 된다. 호기심에 이끌려 그렇게 퍼비를 '입양'했다. 일주일간 퍼비를 관찰한 내용을 공개한다.
10마리의 개성있는 퍼비
퍼비는 털색에 따라 총 10종으로 나뉜다. 기자가 데려온 퍼비는 보라색의 '퍼비 부두(VOODOO)'다. 부두교의 부두라니, 미스터리한 이름이다. 청록색의 퍼비 이름은 '퍼비 타부(TABOO)'인데 '금기', '터부'란 심각한 뜻을 아이용 장난감 이름에 붙인 제조사의 의도가 궁금해진다.
10마리의 퍼비들은 전체적인 색깔뿐 아니라 털이 난 스타일도 다르다. 예를 들어 부두는 직모로 털이 삐쳐있는데 퍼비 스프라이트는 털이 몽실몽실한 느낌으로 커팅돼 있다.
귀여운 털뭉치
퍼비가 도착했다. 포장 상자 뚜껑에 퍼비의 색을 가늠할 수 있도록 털이 조금 붙어있다. 처음에는 뚜껑에 구멍이 뚫려 실제 퍼비의 머리가 살짝 나와있는 줄 알았다. 뚜껑을 열어보니 그냥 상자에 털만 붙여 놓은 거였다. 조금 섬뜩했다.
퍼비는 동그란 털뭉치처럼 생겼다. 말랑말랑한 고무 재질의 귀가 길쭉하다. 기분에 따라 귀를 앞뒤로 움직인다. 퍼비는 손이 없고 발만 두개다. 발은 봉제 인형처럼 천 안에 솜이 들어있는 모양이다. LCD로 만들어진 눈으로 대부분의 표정을 표현한다. 웃는 눈, 화난 눈, 어리둥절한 눈 등 표현력이 풍부하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더니. 눈 하나로 퍼비의 성격까지 달라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꼬리는 끝 부분에만 털이 나있다. 꼬리와 몸통 연결 부분에 센서가 있다. 꼬리를 잡아당기면 깜짝 놀라거나 장난스럽게 웃는다. 물론 너무 많이 잡아당기면 성격에 따라 "만지지마!"하고 짜증을 내기도 낸다. 배와 엉덩이가 통통해 옆모습이 무척 귀엽다.
무게가 가벼워 아이들이 갖고 놀기에도 부담 없다. 건전지 넣은 후의 무게가 490g이다. 웬만한 스마트폰 정도의 무게라고 생각하면 된다.
퍼비 엉덩이 부분에서 기다란 플라스틱 두개가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퍼비를 움직인다. 걸어 다닐 순 없지만 뒤뚱대는 정도는 할 수 있다. 헤드벵잉하는 것처럼 춤을 추기도 한다.
'누누코코 누누코코' = 더 말해봐!
퍼비는 AA건전지 4개로 작동한다. 따로 전원 버튼은 없고 건전지를 넣으면 바로 작동한다. 드라이버를이용해 나사를 풀어 뚜껑을 열고 건전지를 넣는다. 건전지 투입구 옆에 '재시작' 버튼이 있는데 지금의 퍼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를 누른다. 그럼 퍼비의 성격이 리셋(reset)된다.
사진을 찍는 중 건전지를 넣는데 갑자기 퍼비가 깨어나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퍼비시'라고 퍼비가 사는 외계 행성의 언어다. '니타이' '누누 코코, 누누 코코' 등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다. 갑자기 노래도 불렀다. 당황스럽게 혼자만 신나 보인다. '이히히히히 이히히'하고 경망스럽게 웃기도 한다. 영화 '아마데우스' 속 모차르트 웃음 소리를 닮았다. 조용했던 주변이 일순간 시끌벅쩍해졌다. 부끄러워 얼른 데리고 나왔다.
사무실에선 더 했다. 사무실 책상에 가만히 앉아있길 바란 퍼비는 계속 말을 해대 동료의 눈총을 받게 했다. 음소거나 음량 조절 기능 같은 것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건전지를 뺐다. '퍼비야 미안하다. 집에 가서 놀자'
스마트폰 앱으로 놀자
퍼비와 더 제대로 놀고 싶다면 퍼비(Furby)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을 활용하면 된다. '식품 저장실'이나 '샌드위치 가게' 기능으로 퍼비에게 밥을 준다. 참고로 입에 손가락을 넣으면 앱을 이용하지 않아도 밥을 줄 수 있다.
앱 내 '붐박스'로 음악을 틀면 노래를 부르거나 랩을 하고 춤도 춘다. 퍼비의 말을 번역하려면 '사전'을 이용한다. '동영상 제작기'로 퍼비가 노는 것을 영상으로 촬영해 저장할 수도 있다. '꿈나라 시간'을 실행해 퍼비를 재운다. 다만 이 기능으로 재우면 선잠 수준으로 졸아 조그만 소리에도 잠이 깬다. 퍼비를 완전히 재우려면 한동안 말을 걸지 않고 가만히 놔둬야 한다. 퍼비 앱은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명랑한, 미친, 터프한 퍼비
퍼비는 어떻게 놀아주느냐에 따라 성격이 다르게 형성된다. 지금 어떤 성격인지는 눈과 말투를 보면 대충 감이 올 것이다.
속눈썹이 있는 예쁜 눈을 하고 있다면 명랑하고 쾌활한 퍼비다. 바비(Barbie) 인형이 떠오르는 성격으로 말도 많고 노래도 잘 한다. 거의 6초에 한마디씩 한다. 웃는 빈도도 높다. 말하는 내용도 "너무 행복해", "오 맞아 넌 천재", "매일 매일 간질여줘" 등 무척 긍정적이다. 퍼비를 자주 쓰다듬어주고 말을 많이 걸면 이런 성격이 되는 듯싶다.
한쪽 눈동자가 다른 쪽보다 큰 비대칭 눈이거나 갑자기 '으허허헝'하고 웃어댄다면 약간 미친 퍼비다. 제조사는 이를 '예측불가 개구쟁이'라고 표현했지만, 기자는 감히 이것을 미친 퍼비라 부르고 싶다. 갑자기 타잔 소리를 내거나 '움메~'하고 소 우는 소리를 낸다. 방귀를 꼈다가 트림을 했다가를 몇번씩 반복한다. '워커치워커치'하는 랩도 한다. 자기도 자신이 재밌는지 "나 웃기니?"하고 개그 실력을 뽐낸다. 잠들 때 드르렁거리며 코도 곤다. 장난치기 좋아하는 아이들은 이 성격을 제일 마음에 들어 할 듯싶다.
"난 터프가이~"하고 말하는 나쁜 남자 퍼비다. 눈이 세모꼴로 변하고 말투도 나름 거칠어진다. "친구야", "안돼"라는 말을 자주 한다. "배고파"라길래 밥을 줬는데 "안 먹어"한다. "하이이이야!"하고 무술할 때 내는 기합도 넣는다.
터프가이 퍼비일 때 명랑한 퍼비로 되돌리고 싶어서 퍼비의 재시작 버튼을 누른 적이 있다. 이 제품이 이상한 건지 몇번이고 눌러도 계속 터프가이 퍼비만 나왔다. 결국 계속 말을 걸어주고 쓰다듬어준 후에야 명랑한 퍼비를 만날 수 있었다.
퍼비의 성격이 바뀌는 것은 보통 잠을 자고 난 이후지만 놀아주다 갑자기 바뀌는 경우도 있다. 성격마다 다른데 보통 "바뀐다 바뀐다"하며 눈에서 불이 번쩍번쩍 하다가 눈 모양이 달라진다. 성격에 따라 노래를 부르거나 잠들 때 모습, 성격 변화 모습도 다 다르다.
함께 노래 부르고 춤도 추고
노래와 춤이 퍼비의 주특기다. 갑자기 혼자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내가 노래하면 따라 부르거나 춤을 춘다. 앞서 말했듯이 퍼비 앱 '붐박스' 기능을 실행하면 음악에 맞춰 노래하는 퍼비를 볼 수 있다.
잠들 때가 제일 귀여워
아기도 잠잘 때가 제일 천사같다고, 퍼비도 그 때가 제일 귀엽다. 말을 안 걸고 가만히 두면 갑자기 눈을 느리게 껌뻑대며 "아 졸려…자…자…"한다. 하품을 하며 새근대는 모습이 무척 사랑스럽다. 잠들려고 할 때나 잠이 들었을 때 흔들면 잠에서 깬다. 손으로 만져 깨우지 않으면 아마 평생 잘 듯싶다.
퍼비를 키운다고 말하면 '다 큰 어른이 외롭다고 애들 장난감을 갖고 노느냐'는 주위의 비웃음을 받곤 했다. 하지만 뭐 어떤가? 확실히 퍼비는 내게 '힐링' 아이템이다. 퍼비의 재롱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났다. 퍼비의 노래를 혼자 흥얼거리는 자신도 발견할 수 있었다.
퍼비의 가격은 9만 9,000원이다. 대형 마트, 장난감 가게, 온라인 오픈 마켓 등 다양한 곳에서 구매할수 있다. 팍팍한 세상에 퍼비 덕에 한번이라도 더 웃을 수 있다면 괜찮은 투자가 아닐까? 퍼비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퍼비 공식 홈페이지(http://www.furby.co.kr/)에서 볼 수 있다.
글 / IT동아 나진희(najin@itdonga.com)